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70화 (170/223)

< 영지교체 >

박언필 다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연해주에 도착한 최도진의 선단이었다. 톨만은 두 달 만에 돌아온 아들 먼타무와 부족의 사내들 그리고 최도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선단을 군사들을 해안가 숙영지에 상륙시킨 후 직접 톨만과 함께 톨만의 부족이 사는 마을로 들어간 최도진은 톨만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도 말과 모피를 구하러 왔다는 말에 톨만은 호탕하게 대답했다.

“얼마든지 가져가게. 말은 건강한 놈으로 500필은 내놓을 수 있고 그동안 사냥한 동물의 가죽도 곳간에 가득하니 얼마든지 가져가도록 하게.”

“고맙네. 이번에도 은과 소금을 가져 왔으니 가격은 충분히 치르도록 하겠네.”

“내가 고맙지. 최장군 자네가 주기적으로 와서 말과 가죽을 사가는 덕분에 부족에 소금이 떨어지지 않고 은이 부족하지 않게 됐네. 이 부근에서 우리 부족만큼 은과 소금이 풍족한 부족도 드물 것이야.”

톨만은 기분이 좋은지 술을 마시며 호탕하게 웃었고 최도진은 기회를 봐서 톨만에게 물었다.

“톨만 어떤가.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지는 않은가? 톨만 자네만 좋다면 더 많은 재물을 벌수 있는 기회가 있네.”

많은 재물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에 톨만은 웃음을 그치며 물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많은 재물을 벌수 있는 기회라니 그것이 무엇인가?”

“혹시 왜국에 대해서 아는가?”

“들어는 본 적이 있네.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이고 왜인들이 바다를 건너 명나라 까지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납치하고 곡식과 재물을 약탈했다고 하더군.”

최도진은 톨만이 왜국에 대해 알고 있자 속으로 놀랐다.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야. 어떻게 왜국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최도진은 놀란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우리 대해국과 왜국간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네. 정확히는 왜국이 조선을 침략하려고 하고 있고 대해국의 주상전하께서는 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왜국을 공격하실 계획을 하고 계시지. 우리 대해국의 전선들이 왜선을 침몰시킬 것이고 우리의 전선들과 군사들이 출병하면 왜국의 항구와 해안가의 마을들은 불바다가 될 것이네. 대해국의 군사들이 왜국에 상륙해 마을을 불태우고 왜인들을 잡아올 계획도 하고 있네. 톨만 자내만 괜찮다면 자네도 이번 전쟁에 한몫 거드는 것이 어떠한가?”

최도진의 말에 톨만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사람 음흉하기는 왜국이 우리 부족의 땅을 침략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 부족의 전사들이 왜국까지 가야 한다는 말인가. 속 시원하게 털어놓게 우리 부족의 전사들이 필요한 것인가?”  

톨만은 역시 한 부족을 이끄는 족장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동안 최도진과 친분을 쌓았고 대해국과의 무역이 자신들의 부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국과의 전쟁에 참전하는 것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자네들 여진족 기병을 누가 탐내지 않겠나. 자네들이 용감하고 바람같이 빠르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네. 자네들 부족의 전사들이 이번 전쟁을 도와준다면 주상전하께서는 자네들의 수고를 잊지 않을 것이네.”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톨만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자네의 말만 듣고 전쟁에 끼어들 수는 없겠네. 주상전하의 분명한 약속을 받아야겠네.”

“약속이라니. 무엇을 원하나?”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 우리 부족 전사들의 지휘는 내가 맡도록 하겠네. 물론 나는 주상전하께서 명하시는 대로 전사들을 지휘하겠지만 우리 부족 전사들을 다른 사람이 지휘하게 할 수는 없네. 그리고 전투에서 세운 전공에 따라 보상을 약속하게 전쟁터에서 소금자루를 들고 달릴 수는 없으니 은으로 받도록 하겠네. 마지막으로 포로로 잡은 왜인들은 노예로 데려오겠네. 이 세 가지를 약속 받아야 부족의 전사들과 전쟁에 참여할 명분이 설 것이네.”

톨만의 요구조건을 들은 최도진은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휘권 문제만 아니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용병으로 보수를 주고 고용하려고 했으니 은을 지불하는 것은 큰 문제없을 것 같고 왜인들을 노예로 잡아가는 것도 어차피 포로들을 데려가겠다는 것이니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최도진은 잠시 고만한 끝에 톨만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좋아. 자네가 요구한 사항을 주상전하께 아뢰도록 하겠네. 전하께서 승인하시는 대로 자네에게 알려주도록 하겠네.”

“역시 최장군이야. 아주 호탕하고 사내다워 고맙네. 고마워.”

톨만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술잔을 들어 올렸고 최도진과 톨만은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잔을 비운 후 최도진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전하께서 허락하시면 자네 부족에서는 전사들을 몇이나 동원할 수 있겠나?”

최도진의 대답에 톨만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 장기간 마을을 비워야 할 것 같으니 마을에도 전사들을 얼마간은 남겨두고 가야할 것 같아. 그러면 우리 부족에서는 3000명 정도 동원할 수 있을 것 같군.”

3000명이라는 말에 최도진은 속으로 실망했다. 여진족 기병이 날쌔고 사납다고는 해도 3000명은 전황을 바꿀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가 아니었다. 최도진이 실망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황급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을 때 톨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부족에서는 3000명을 동원할 수 있고 내 의형제인 알마타와 수르첸의 부족에서는 각각 2000명 이상씩 동원할 수 있을 것이네 모두 합하면 8000명에 가까울 것이네.”

톨만의 말을 들은 최도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하니 벌렸다. 여진족 기병 8000명은 결코 적지 않은 수였다. 

경인년(1590년) 5월 13일 내가 지휘하는 선단이 히라도에 도착했다. 히라도에 도착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를 찾아가 인사를 드린 후 간토지역의 상황을 물었다.

“간파쿠(関白)[관백]-(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가 일방적으로 호조가문의 영지와 성들을 공격하고 있고 호조가문은 간파쿠의 위용에 성 밖으로 나올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하는 구나. 오다와라 성은 이미 포위됐고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마에다 도시이에와 연합해 고즈케로 진군해 들어가 고즈케의 각 성들을 함락시키고 무사시로 진군해 들어갔다 한다.”

히데요시가 이끄는 본대가 도카이도로 진군해 사가미의 각 성들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마에다 도시이에의 연합군 3만이 고즈케를 공격해 호조가문의 성들을 함락시키고 남진해 무사시로 진격해 들어가면서 호조가문은 서쪽과 북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고 있었다.

“오다와라 성이 포위된 상태에서 고즈케와 무사시 까지 공격을 받고 있다면 호조는 이미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된 것이 아닙니까.”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조 우지나오와 호조 우지마사가 오다와라 성에서 버티고 있다고는 하지만 호조 가문은 이미 끝장난 것과 다름없다. 오다와라 성만 남고 다른 성들이 모두 함락되면 오다와라 성에서 농성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마에다 도시이에의 군사뿐만 아니라 간파쿠와 다이나곤(大納言)[대납언]-(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장들도 출병해 사가미와 무사시의 성들을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병력의 여유가 있었던 히데요시는 오다와라 성을 포위한 이후 가신들에게 군사를 나눠주어 사가미와 무사시의 성들을 공격하게 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오다와라 성을 포위하고 있는 군사들을 제외한 군사들을 동원해 호조의 영지를 공격할 것을 명령하니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부하들은 경쟁하듯이 호조 가문의 성들을 공격했다. 여기에 고즈케를 거쳐 무사시 까지 내려온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마에다 도시이에의 연합군이 경쟁에 끼어들면서 호조 우지나오와 호조 우지마사가 농성을 하고 있는 오다와라 성을 제외한 사가미와 무사시 지역의 대부분의 성들이 함락되거나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게 된다.

히데요시가 별다른 피해 없이 간토지역을 정벌을 끝낼 것을 생각을 하니 속이 쓰렸다. 나는 쓰린 속을 참으며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물었다.  

“노예들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내 질문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예상대로 노예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네가 필요한 만큼 준비해 뒀다.”

“매번 감사합니다. 아버지.”

“너는 내 아들이다. 아비가 아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이 아비도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대답에 진짜 정을 느낀 나는 다카노부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주기로 결심했다.

“이번에 제가 한 가지 정보를 들었는데 아버지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문이라도 들은 것이냐. 말해보아라.”

나는 목소리를 낮춰서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말했다.

“간파쿠께서 이번에 간토지역을 정벌하신 후 호조의 영지를 다이나곤에게 내리신다고 합니다.”

내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호조 가문의 영지를 다이나곤에게 내리다니. 호조가문의 영지는 8개 국(国)에 달하는데 그 넓은 땅을 왜 다니아곤에게 내리신다는 말이냐?”

“간파쿠께서는 다이나곤에게 호조의 영지를 내리시고 다이나곤의 지금 영지를 회수하실 생각을 하고 계시다고 하십니다. 영지를 교환하는 형식이죠.”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그제 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간파쿠께서는 정말 무서운 분이시구나.”

호조정벌 이후 이루어진 영지 교체야 말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얼마나 견제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순순히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3대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겨오고 있는 가신들을 중심으로 도쿠가와 가문이 단합되어 있었던 것과 3만이 넘는 정예병을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 그리고 그 군사력을 받쳐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미카와, 토토우미. 스루가, 가이, 시나노 이렇게 5개 국(国)의 영지를 통치하고 있었고 영지의 석고를 모두 합하면 130만석이 넘었다. 특히 가이와 시나노는 전국시대 일본 최고의 무장이자 영주로 평가되는 다케다 신겐이 통치했던 영지로 다케다 신겐의 통치기간 동안 치수 사업으로 인한 농지정비와 도로건설 그리고 금광의 개발로 상당한 경제력을 지닌 영지였고 스루가 역시 비옥한 토지와 함께 바다를 접하고 있어 어업과 염전, 해상운송 등으로 상당히 부유한 영지였다.

“호조가문의 영지가 간토지역 8개 국에 석고는 250만이 넘는다고 하지만 올해는 영지 전체가 전쟁터가 되었고 간토지역의 주민들은 5대째 호조가문의 통치를 받았었습니다. 더구나 다이나곤의 군대가 선봉에 서서 간토지역을 공격했으니 토착무사들과 주민들이 다이나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호조가문을 동정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이나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겠구나. 간파쿠의 명대로 간토지역으로 이주한다면 다이나곤의 고향이자 3대째 다이나곤의 가문이 다스리고 있던 미카와를 비롯해 그동안 애써서 경영해온 영지를 잃을 것이고 만약 간파쿠의 명을 거역한다면 간토지역을 정벌한 후 사기가 오른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간파쿠께서 다이나곤을 토벌하려 하실 것이니.”

“간파쿠는 지략이 뛰어나신 분이시니 호조가문을 멸망시킨 직후 다이나곤에게 영지교체를 통보하실 가능성이 큽니다. 다이나곤이 슨푸 성이나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시기 전에 영지교체를 통보하셔서 다이나곤이 저항할 생각도 못하도록 만드실 가능성이 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