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71화
천하를 노려라
“아주 좋은 정보를 알아왔구나. 대단한 정보를 알아냈어.”
“제가 알아온 정보가 아버지께 도움이 되겠습니까?”
“도움이 되다마다.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이나곤이 간토로 들어가면 다이나곤이 통치하던 5개 국(国)의 영지는 간파쿠의 가신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렇게 영지가 교체되면서 새로운 영지로 들어가는 영주들은 돈이 급할 것이 분명해. 영주의 가족들은 물론 가신들과 가신들의 가족들도 새로운 영지로 이주해야 하니 이런저런 일로 돈 쓸 일이 많을 것이야. 더구나 간토 지역은 이번에 전쟁터가 되었으니 당장 쌀부터 시작해서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다이나곤의 곳간에는 쌀과 금이 쌓여있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쌀과 금이 많이 축나겠구나.”
마쓰라 다카노부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고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역시 마쓰라 다카노부는 천성이 상인이다. 돈 벌 생각을 하며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이번 전쟁으로 큰돈을 버셨을 텐데. 영지 교체로 좋은 기회를 잡으시겠군요.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내가 축하한다고 하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표정까지 변하면서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큰돈이라니 아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거래량만 많을 뿐 큰 이익은 되지 않는다. 간토 지역까지 상선으로 쌀과 화물을 운송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니 쌀과 화물을 운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수고를 감안하면 운임이 그렇게까지 큰돈이 되지는 않다.”
다카노부는 군량과 군수품의 수송이 큰돈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을 다카노부가 할 리가 없지. 군량과 보급품을 수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영주들에게 붙잡힌 사람들을 데려올 것 같은데…… 물론 영주들에게 운임을 따로 받거나 붙잡힌 사람들을 노예로 판매한 대금을 나눠 받기로 하고.‘
마쓰라 다카노부와 대화를 웃으며 넘긴 나는 주문했던 노예들이 준비가 됐는지 물었다.
“누구의 부탁이라도 내가 준비하지 않았겠느냐. 걱정하지 말거라 건강하고 일 잘하게 생긴 놈들로 준비해 놨으니.”
“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면 이번에 구매할 노예들을 미리 볼 수 있겠습니까?”
“안 될 것도 없지 걱정 말거라.”
마쓰라 다카노부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잠시 후 나는 중년 사내의 안내를 받으며 항구 한쪽에 있는 창고 앞으로 갔다.
창고의 문은 닫혀 있었고 창고 앞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나를 안내하던 사내 마고사로 아즈키가 창고를 지키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손에 창을 들고 창고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창고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창고 안에 갇혀 있던 노예들이 창고 밖으로 나왔다.
노예들은 안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온 탓인지 손으로 눈을 가리며 햇볕을 피하려고 했다.
“전부 1,000명인가?”
내 질문에 창고까지 나를 안내한 마고사로 아즈키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르신께서 특별히 선별한 노예들입니다.”
노예들은 창고에 갇혀 있던 탓에 몇몇 노예가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확실히 건강에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다들 겁에 질려 있는 것 같구나. 보나 마나 이번 전쟁으로 군사들에게 붙잡힌 간토 지역의 주민들이겠지.’
이들이 같은 지방에서 붙잡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노예들을 살펴보던 나는 마고사로 아즈키에게 물었다.
“이들과 함께 팔려온 아이들과 여인들도 있는가?”
“예.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지금 볼 수 있겠나?”
“예.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아이들과 여인들도 볼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마고사로 아즈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노예들도 그것으로 데려갈 것이니 병사들을 더 부르도록 하게. 노예들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병사들을 시켜 감시하라는 말이네.”
병사들을 더 부르라는 말에 마고사로 아즈키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보였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었던 마고사로 아즈키는 창고를 지키던 병사를 보내 200명이 넘는 병사들과 무사들을 동원했다.
병사들이 도착하자 마고사로 아즈키는 여인들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고, 나는 노예들에게 내 뒤를 따라올 것을 명령했다.
따라오라는 명령에 노예들은 불안해하면서도 병사들이 창을 들이대자 거역하지 못하고 내 뒤를 따라 걸었다.
“바로 이곳입니다.”
마고사로 아즈키가 안내한 곳에는 수십 개의 창고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역시 무장한 병사들이 창고의 문을 지키고 있었다.
“먼저 아이들부터 보자. 아이들도 구매할 것이니 아이들이 있는 곳의 창고를 열어라.”
“예, 알겠습니다.”
마고사로 아즈키는 창고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창고의 문이 열리자 안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예로 끌려온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아주 어린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8세에서 10대 초반의 아이들로 보였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병사들을 보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몰랐고 아이들을 발견한 노예들도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사내 노예들 앞으로 나가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내가 돈을 주고 너희를 샀으니 너희는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내 명령을 거역하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내 말을 들은 노예들은 절망하는 표정을 지었고 몇몇 노예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무장한 병사들이 노예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노예들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너희 눈앞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너희의 자녀나 동생, 조카, 혹은 같은 동네의 아이라도 좋다. 너희가 알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데려오도록 하라. 너희와 같은 곳으로 보내주겠다.”
아이들과 같은 곳으로 보내준다는 말에 노예들은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노예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의 자신이나 동생을 찾아 헤맸다.
“카구야. 카구야로구나.”
“다코마. 아빠다. 아빠야.”
“히메야 나다. 아저씨야 아저씨와 같이 가자.”
노예들은 아이들을 품에 안거나 손을 꼭 잡았다. 개중에는 여러 아이의 손을 꼭 잡거나 자신의 품에 아이들을 안고 버티는 이들도 있었다.
1,000여 명의 아이들 중에서 절반 정도가 사내들의 손을 잡고 나왔고 자신을 아는 사내들을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은 겁을 먹었는지 땅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마고사로 아즈키에게 말했다.
“아이들도 모두 구매하도록 하겠네. 노예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은 물론 남아 있는 아이들도 모두 구매할 것이니 저 아이들을 오늘 저녁 깨끗하게 씻기고 배불리 먹이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마고사로 아즈키는 병사들을 시켜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다시 창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나는 여인들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이제 여인들을 보도록 하지. 여인들도 이곳에 있는가?”
“그렇습니다.”
마고사로 아즈키는 내게 대답한 후 병사들을 시켜 또 다른 창고의 문을 열었다.
창고 문이 열리자 노예로 팔려온 여인들이 밖으로 나왔다.
여인들이 나오자 나는 노예들에게 말했다.
“이 여인들 중에서 부인이나 동생 혹은 아는 여인이 있는 자들은 앞으로 나와서 여인의 손을 잡도록 하라 같은 곳으로 보내주겠다.”
노예들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인들에게 다가와 자신이 아는 사람은 없는지 찾았다.
자신의 아내를 발견하고 껴안은 자들도 있었고 동생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통곡하는 자들도 있었다.
잠시 후 노예들이 여인들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나왔다.
노예들을 살펴보지 사내 노예들 중에서 가족을 찾은 자들은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한쪽에 모여 있었고 가족이나 아는 사람을 찾지 못한 이들은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내들 중에서 가족을 찾은 이들은 600명 정도 되나……. 혼자서 서 있는 사내들은 400명 정도 되는 것 같구나.’
나는 마고사로 아즈키에게 물었다.
“이들과 함께 팔려온 노예들은 더 없는가?”
“아이들은 이들이 전부 이고 여인들은 600명 정도 더 있습니다.”
“그들도 구매하도록 하겠네. 그리고 저 노예들이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장소가 있겠나.”
“물론입니다.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대금을 지불할 것이네,”
* * *
다음 날 나는 준비해간 자기와 찻잔을 상인들에게 판매했고, 판매 수수료와 노예들의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마쓰라 다카노부를 찾아갔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를 보자 반갑게 맞이했고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자기와 찻잔의 판매 수수료와 철, 구리, 유황 그리고 노예의 구매대금을 계산해서 지불했다.
수수료와 대금 계산이 끝난 후 마쓰라 다카노부는 부하들과 하녀들을 방에서 내보냈다.
“나는 그동안 내 아들은 부족한 점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장군으로서도 유능하고 상인이 되었어도 크게 성공했을 만한 재능이 있는 것을 여러 번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 일을 보고 받고 드디어 아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다.”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의 말에 웃으며 물었다.
“아버지 저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쓰라 다카노부는 다시 한번 방 안에 자신과 나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아들에게 부족한 것은 야심이다. 네가 노예들을 구매한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너는 능히 나라도 세우고 통치할 수 있을 실력과 재능을 갖추고 있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말에 놀란 나는 다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나라를 다스릴 만하다니요.”
“어제 노예들에게 아이들과 여인들을 보여주고 가족과 지인을 찾게 했다고 들었다. 너로 인해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노예들은 너를 은인으로 여길 것이다. 노예가 돈을 주고 자신을 구매한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먹기는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네가 구매한 노예들은 너를 은인으로 여길 것이고, 고마워할 것이다. 그리고 노예들을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했으니 앞으로 노예들은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반항하거나 도망칠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말을 잠시 멈춘 마쓰라 다카노부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내게 말했다.
“사람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가장 사나워지는 법.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서 떨어져 있는 노예는 살아남기 위해 주인에게 굴복하거나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반항하기가 쉽지만, 너는 노예들이 너를 은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었고 노예들을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만들었으니.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노예들이 앞으로 너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만들었으니 바로 그것이 너희 그릇이며 능력이다.”
대해국의 상황을 생각해 노예들을 가족 단위로 구매하기 위해 벌인 일을 마쓰라 다카노부는 노예들의 충성심을 받아내기 위한 용인술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다카노부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를 바라보며 아깝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 정말 아쉽구나. 너 정도의 실력과 재능에 나의 재력을 더한다면 앞으로 10년 후 간파쿠와 다이나곤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능히 천하를 노려볼 만했을 텐데 말이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말은 상당히 위험한 말이었다.
더욱이 마쓰라 다카노부에게는 친아들 마쓰라 시게노부가 있었으니 내가 아무리 뛰어나 보인다고 해도 자신의 재산을 나에게 물려줄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