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73화
지형조사
사화동은 알폰스 비에이라가 백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나는 장군님의 명을 받들기 위해 마카오에 왔소. 이번에도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소?”
“물론이오.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시오. 내가 최선을 다해 돕겠소.”
알폰스 비에이라는 망설이지 않고 시원하게 대답했고 사화동은 모피와 은을 가져온 것과 노예들을 구매하려 한다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알폰스 비에이라는 사화동의 설명을 들은 후 어려울 것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오. 아프리카 노예들이 흔하지는 않지만,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정기적으로 실어오는 배가 있으니 돈만 있다면 충분히 구할 수 있소. 대해국의 모피는 품질이 좋아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아프리카 노예들을 구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오. 그리고 은을 금으로 환전하는 것은 나와 거래하고 있는 명국의 상인들이 있으니 그들을 통해 환전해 드리겠소. 은화는 얼마나 가져오셨소?”
알폰스 비에이라가 시원하게 대답하자 사화동은 기뻐하며 대답했다.
“은 3,000냥을 가져왔소. 금 500냥으로 환전하기를 바라고 있소.”
액수를 들은 알폰스 비에이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대답했다.
“좋소. 명국 상인들을 통해 환전을 하려면 1할의 수수료가 필요하지만 제독님께서 좋은 선물을 보내주셨으니 이번에는 수수료 없이 환전할 수 있도록 주선해 보겠소. 제독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의 보답으로 제독님께 작은 선물을 하나 보내려고 하니 부디 사양하지 마시오.”
선물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고, 마카오에서의 거래를 위해서는 알폰스 비에이라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사화동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장군님께 선물을 보내시겠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오. 내가 책임지고 장군님께 전해드리겠소.”
“정말 고맙소.”
알폰스 비에이라는 사화동의 손을 잡으며 기뻐했다.
* * *
“언제까지 산속에서 숨어 살 것이냐. 동해도로 가면 너희 모두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임장춘은 힘찬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임장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내가 임장춘에게 물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몰라서 묻는 것이냐.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되고 상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고 관아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너희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 아니냐.”
임장춘의 대답에 질문을 한 사내는 물론 임장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모두 동의하는 기색을 보였다.
임장춘 앞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남녀 50여 명이 임장춘의 말을 듣고 있었고, 임장춘을 그들을 동해도로 보내기 위해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도망친 노비들로 산속에 숨어서 살거나 마을을 떠돌며 유랑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을룽도에서 내가 보낸 서신과 은화를 받아온 임장춘은 서신에 적혀 있는 대로 은화를 처분해 송아지와 면포, 솜을 구매하는 한편 유랑민들과 도망친 노비들을 설득해 동해도로 보내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임장춘은 동해도로 가면 더 이상 밥걱정하지 않고 매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로 유랑민들을 설득해 동해도로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대해국에서의 생활과 지난달 울릉도에서 박언필과 나눈 대화는 임장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조선에서도 그럭저럭 불만 없이 살아가던 임장춘이었지만 양반이 아닌 상민 신분이기에 조선에서 벼슬을 하거나 출세할 희망은 가질 수 없는 신분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신분의 차별이 없고 조선인과 왜인이 차별 없이 대등한 대우를 받는 대해국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임장춘은 자신이 대해국의 국왕을 계주로 모신 대동계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한 명이라도 많은 유랑민을 대해국으로 보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 * *
조천군을 히라도로 보내고 대해국에서 보낸 나는 나라의 내정을 살피며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행히 이미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있었던 대해국은 조천군이 자리를 비웠어도 진행되던 일들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대소호수를 향해 북진하면서 도로와 마을을 건설하고 있었고, 이미 완성된 마을에는 주민들이 들어가 정착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할 일은 시마즈 도시히사가 이끄는 군대에 군량과 보급품 그리고 벽돌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과 새로 건설된 마을에 정착한 주민들에게 부족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정착하는 데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전선의 건조와 무기의 제작 역시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었다.
다행히 건조 중이던 8척의 전선은 5월 중에 완성됐고, 6월에는 다시 새로운 전선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전선의 건조를 지휘하는 장인들은 물론 조선소에서 직접 전선을 건조하는 장정들 역시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미 숙달된 만큼 자신이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내가 할 일은 전선을 건조할 목재가 부족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과 군사들과 장정들을 동원해 나무를 벌목하고 목재를 확보하는 것을 감독하는 확인하는 것이었다.
무기의 제작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대해국은 임진왜란과 북미대륙 개척을 위해 건국한 나라인 만큼 대장간과 공방에서는 매일 화승총과 대포 그리고 창과 칼등의 병장기가 제작되고 있었다.
대포를 제작하는 공방을 확인 차원에서 방문했던 나는 대포를 제작하고 있는 장인에게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고, 청동을 만드는 데 필요한 주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동안은 주석을 죽도 선생께서 구해줬었지…… 주석은 조선에서도 명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이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 대동계는 죽도 선생이 돌아가신 후 전라도와 강릉 외의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힘을 쓰기가 어려운 것 같으니 마카오를 통해서 주석을 구해보자.’
나는 장인에게 올해 안에 주석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한 후 장인들을 격려하고 요새로 돌아왔다.
대해국에서 궁궐이 없었다.
나라를 건국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따로 궁궐을 짓는 것은 대해국의 현실에 맞지 않았다.
나는 함관을 점령한 직후 거점으로 건설한 요새에서 계속 생활하고 있었고 업무도 요새 안에 있는 관아에서 계속 보고 있었다.
조선소와 공방을 직접 다녀온 나는 느낀 것이 많았다.
확실히 현장을 직접 확인하니 보고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보였고, 느끼는 것도 많았다.
현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 내가 집무실로 들어가자 집무실 안에는 시마즈 도시히사가 보낸 보고서가 도착해 있었다.
보고서를 펼쳐본 나는 기쁜 소식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대소호수에 도착했구나! 잘했다. 정말 잘 했어.”
시마즈 도시히사는 올해 3월 눈이 녹기 시작하자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대소호수를 향해 북진했다.
3월부터 이번 달(6월)까지 시마즈 도시히사는 군사들을 지휘해 북쪽으로 가는 길을 닦고 벽돌로 포장해 도로를 정비했고, 호수까지 북진하는 동안 주민들이 지내기 적합한 평야 지대에 마을을 건설해 대소호수까지 진군하는 동안 5곳의 마을을 새로 건설했다.
시마즈 도시히사가 건설한 마을에는 이미 대해국의 주민들이 이주해 새로운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대소호수까지 가는 도로를 정비할 것과 호수까지 가는 도중에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기에 적합한 곳에 5곳 이상의 마을을 건설할 것과 대소호수 주위에 다시 5곳의 마을을 건설하고 모든 마을을 도로로 연결할 것을 명령했었다.
시마즈 도시히사가 이끄는 군사들이 호수까지 진군했고 호수로 가는 길목에 5곳의 마을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으니 목표의 절반은 이룬 셈이었다.
“빨라도 7월은 돼야 호수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아직 6월 중순이니 예상보다 보름 이상 빨리 도착했구나. 이제는 호수까지 군량과 보급품을 수송해야 하니 보급로가 길어졌지만, 호수로 가는 도로가 이미 닦여 있으니 도로를 통해 군량과 보급품을 수송하면 될 것이고. 군사들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도로와 마을을 건설하는 것이 숙달됐을 것이니…… 10월까지는 목표대로 호수 주변에 5곳의 마을을 추가로 건설할 수 있겠구나!”
시마즈 도시히사는 큰 전쟁을 경험해본 장군답게 준비성이 철저했다.
보고서와 더불어 이제까지의 진군한 경로와 새로 건설한 마을의 위치 그리고 도로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지도를 동봉해서 보내왔다.
시마즈 도시히사가 보내온 지도를 확인하던 바로 그때 나는 그제서야 내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도. 임진왜란을 대비하고 있었으면서 왜국의 지형을 조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니! 앞으로 일어난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너무 방심하고 있었구나……. 왜군이 출병하자마자 왜국의 항구와 해안 지역을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 항구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나는 그 자리에서 종이와 붓을 꺼내 조사해야 할 지역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우선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이 건설될 히젠의 지형. 히젠 앞바다의 수심과 히젠의 앞바다에 있는 섬들의 위치. 그리고 나고야에서 출병한 왜선들이 조선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이키섬과 대마도의 지형과 주변 바다 섬들의 위치. 혼슈 서남부의 주요 항구와 해안 지역. 히데요시의 본거지인 오사카 성의 지형과 인근 바다의 수심. 오사카 인근의 대표적인 무역항인 사카이 항의 지형 인근 해안 지역.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모리 가문의 돈줄인 이와미 은광의 위치와 지형. 은광이 있는 이와미의 지형과 항구의 위치와 해안 지역의 상황. 그리고 사도 섬…….’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지역만 생각해봐도 조사해야 할 곳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모든 지형을 직접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머리가 아파 왔다.
‘잠깐 생각해 보자……. 임진왜란이 발발하기까지 아직 2년이나 시간이 남았으니 모든 지역을 직접 확인하고 조사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우선 히젠 지역은 아직 나고야 성을 건축하지 않았으니 히젠의 지형과 해안 지역에 대해 조사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고. 기리시탄들 중에 규슈 출신들이 많으니 히젠 출신들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야. 대해국의 주민들 중에서 히젠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서 히젠의 정보를 얻고, 히라도에 다녀오는 길에 히젠에 정보원을 보내 지형 정보와 해안의 정보를 수집하자. 섬들의 위치도.’
다행히 대해국으로 이주한 기리시탄들 대부분이 규슈와 혼슈 서남부 출신이었다.
나는 기리시탄 주민들을 통해 히젠과 혼슈 서남부의 정보를 수집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오사카 성과 사카이 항에 대한 정보도 수집해야 한다. 사카이는 무역항이니 정보원을 침투시키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야. 히라도에서 왜선을 몇 척 구입해 사카이 항으로 보내자.’
나는 조선으로 출병한 왜군의 보급로가 차단되고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이 공격받은 이후에도 히데요시가 전쟁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사카 성과 사카이 항을 직접 공격할 생각이었다.
오사카 성은 당시 일본 최고의 요새였고 거성이었으니 포격 몇 발로 오사카 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점이 공격을 받았고, 히데요시가 함대에 별다른 반격을 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히데요시의 권위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권위가 떨어지면 전쟁이 계속되기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