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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74화 (174/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74화

전략 변경

나는 임진왜란을 대비하기 위해 대해국을 건국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지식. 지금의 기준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에 임진왜란을 단기간에 종결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대해국과 현재 일본은 국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고, 특히 군사의 수에서 대해국은 일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은 2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했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는 것도 가능했기에. 나는 임진왜란이 시작되면 일본의 항구를 공격하고 왜선들을 침몰시키며 조선에 상륙한 왜군의 보급을 차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서 지금까지 계획했던 전략을 수정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여진족 기병과 흑인 병사들 그리고 노예로 구매한 간토 지역의 왜인들을 군사로 동원할 수 있게 되면서 일본에 상륙시킬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동안은 대해국과 왜국의 전력 차이를 고려하여 왜선을 침몰시키고 항구를 기습 공격하는 방식으로 왜군의 보급을 차단하려고 했다. 인구가 적고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한계가 있는 대해국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보급 차단 외에 왜국에 대한 전면 공격은 무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왜국에 상륙시킬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한 이상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은 물론 오사카 성을 직접 공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점인 오사카 성을 공격할 생각까지 한 것은 오사카 성의 공격으로 히데요시의 권위가 무너진다면 히데요시가 당장 몰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임진왜란을 계속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전쟁이다. 히데요시가 조선은 물론 명국까지 공격하겠다고 하자 일본의 영주들 중에 대경실색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고, 히데요시의 가신들 중에서도 전쟁보다는 유럽인들과의 교역을 확장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일본에서 조선으로 군사들과 보급품을 수송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히데요시만 아니었으면 임진왜란은 7년이나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일어나는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성 전투를 알고 있었던 나는 지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전권을 틀어지고 있지만, 히데요시가 사망하거나 그의 권위가 무너진다면 히데요시 권력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37년생으로 이미 나이가 53세에 달했으니 16세기 기준으로 젊은 나이가 아니었다.

더구나 히데요시는 평민 출신으로 본인이 일개 병사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자리에 오른 만큼 가문 대대로 히데요시를 섬겨왔던 일명 후다이 가신들이 없었다.

히데요시의 형제들 역시 동생인 도요토미 히데나가 외에는 히데요시에게 도움이 된 형제들이 없었다.

전국시대 일본 영주들의 가신들은 몇 대에 걸쳐 영주의 가문을 섬겨왔던 후다이 가신들이 가신단의 중심이었고, 영주의 형제들도 무장이나 참모로 영주를 섬겼는 데 비해서 히데요시에게는 히데나가 외에 도움이 될 만한 형제들이 없었고, 가신단 중에 대대로 히데요시의 가문을 섬겼던 후다이 가신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히데요시의 가신들 중에 구심점이 될 만한 원로들이 없었다는 점. 그 때문인지 가신들의 결속력이 약했다는 점은 히데요시의 사후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킨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히데요시의 근위 무사 출신(일명 칠본창)으로 히데요시의 심복이었던 7명의 무장 가운데 무려 5명이 동군에 가담한 것만 봐도 히데요시 가신단의 결집력이 얼마나 약한지 잘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는 1592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생이자 도요토미 가문에서 히데요시 다음가는 영지와 권력을 가지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나가도 사망한 상태였고, 히데요시의 자녀인 도요토미 츠루마츠도 사망한 상태였다. 영주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조선을 침략한 히데요시가 전쟁이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자신의 거성이 공격받는 것을 보면 어떻게 될까. 아니, 일본의 영주들이 히데요시를 어떻게 생각할까…….’

일본에 상륙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나는 왜군이 조선으로 출병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함대를 출동시켜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인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을 공격해 조선소와 항구를 불태우고 그와 동시에 히데요시의 거점인 오사카 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여진족 기병을 왜국에 상륙시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은 물론 말도 함께 상륙시켜야 하니……. 하지만 상륙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 효과는 절대적이다. 여진족은 재물을 약탈하고 노예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도 왜인들을 공격하고 마을을 파괴할 것이고 왜군은 그동안 상대하지 못했던 난폭한 여진족 기병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여진족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해도 상관없다. 오사카 성 인근의 마을과 항구를 여진족이 약탈하고 불태운다면 오사카 성의 왜군은 여진족을 저지하기 위해 성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고 왜군이 출병한 바로 그사이에 대해국의 포병이 상륙해 오사카 성에 포격을 퍼붓는다.’

왜군에 상륙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자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칠본창을 비롯한 히데요시의 부하들과 20만의 대군이 조선으로 출병한 바로 그때가 오사카 성을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된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20만의 왜군이 조선으로 출병했을 때가 오사카 성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이다. 칠본창을 비롯해 히데요시의 가신들 중 주요 무장들이 전부 조선으로 출병했고, 규슈와 혼슈 서남부의 병력 대부분이 조선에 상륙한 다음이니 나고야 성은 물론 오사카 성을 공격하기에도 용이하다.’

최대 8,000명까지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여진족 기병에 흑인과 아랍인 보병에 간토 지역 노예 출신 보병들로 최소한 1만 이상의 보병을 확보할 것을 계획한 나는 여기에 기존 대해국의 병력을 더해 2만 이상의 병력을 왜국에 상륙시킬 계획이었다.

‘대해국의 함대와 화력 그리고 여진족 기병의 위력에 보병들도 노예 출신들이니 전공에 따라 신분 해방과 상금을 약속한다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더욱이 간토 지역 출신 노예들은 히데요시와 그를 영주들 때문에 노예가 되었으니 복수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그들을 상륙시킬 수만 있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오랜만에 집무실에 눌러앉은 나는 대해국의 내정을 살피는 한편 임진왜란을 대비한 작전 계획을 구상했다.

대해국의 내정을 돌보는 한편 기리시탄들과 노예로 구매한 주민들 가운데 규슈 출신들과 주고쿠(中国)[혼슈의 최남단 지역 나가토, 이와이, 이즈모, 호키, 스호, 아키, 빈고, 빗추] 지역 출신들 그리고 오사카 성이 있는 셋쓰와 사도 섬, 이키 섬, 대마도에 가봤거나 그 지역의 지형을 알고 있는 자들을 선발해 각 지역의 지형과 성의 위치 등을 조사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 * *

경인년(1590년) 6월 18일 대해국의 선단이 마카오에 도착한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마카오에서 모피의 판매와 노예를 구매하는 거래를 마친 사화동은 알폰스 비에이라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화동의 인사말에 알폰스 비에이라는 미안해하면서 대답했다.

“이번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 정말로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알폰스 비에이라의 말에 사화동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상인들이 좋은 상품을 낮은 가격에 구매하려는 것은 당연한 행동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비에이라 공 덕분에 잘 마무리되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비에이라 공 덕분에 노예들을 구매하는 일이 수월했고 은을 금으로 환전하는 것도 비에이라 공께서 수고해 주셔서 수수료 없이 잘 처리됐으니 저는 감사할 뿐입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사화동이 괜찮다고 말하자 알폰스 비에이라는 그제 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대해국과 계속 거래를 이어가고 싶었던 알폰스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상인들의 욕심으로 이번에 큰 위기를 겪었다.

사화동이 대해국에서 가져온 모피를 판매하려고 하자 알폰스 비에이라는 포르투갈과 마카오를 오고 가는 상선의 선장들에게 대해국의 모피를 매물로 내놓았다.

모피를 유럽으로 가져갈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높은 가격을 받을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사화동과 모피를 확인한 선장들은 단합해 형편없이 낮은 가격을 불렀다.

사화동을 마카오에서 몇 번 거래를 하지 않은 초보 상인으로 보고 가격을 낮게 부른 것이다.

선장들의 행패에 알폰스 비에이라는 기겁을 하며 선장들과의 거래를 포기하고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는 상인들에게 모피를 판매하려고 했지만, 마카오의 상인들도 소문을 듣고 선장들이 부른 것 이상의 낮은 가격을 불렀다.

사화동이 마카오에서는 막 거래를 시작한 초보인 것과 지난번에 마카오에서 거래를 했을 때 알폰스 비에이라의 주선으로 거래를 한 것이 다른 상인들의 질투와 반발을 부른 것이다.

더구나 대해국에서 가져온 모피가 최상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인들은 작정을 하고 낮은 가격을 불렀다.

앞으로도 대해국의 모피를 헐값에 구매하려는 욕심에서였다.

상인들의 이런 행패에 알폰스 비에이라는 놀라서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했지만, 상인들의 단합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상인들을 설득할 것을 포기한 알폰스 비에이라가 자신이 직접 모피들을 구매하려고 했을 때 사화동은 부둣가 한쪽에 가져간 모피들 중에 일부를 널어놓고 모피 주위에 장작을 쌓아놓았다.

그리고 알폰스 비에이라에게 상인들을 불러줄 것을 요청한 사화동은 상인들이 부둣가에 모이자 미리 준비해둔 포르투갈어로 외쳤다.

“나는 이대원 장군님의 부하인 사화동이다. 나는 왜인도 아니고 장사치도 아니다. 이 모피는 장군님께서 애써서 준비하신 보물이니 제값을 받지 못한다면 굳이 이곳에서 모피를 판매할 이유가 없다.”

말을 마친 사화동은 아무 미련 없이 불이 붙은 장작개비를 모피 주변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던졌다.

장작더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꽃이 일어나자 부둣가에 나와 있었던 상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모피에 불을 지르는 사화동의 행동은 상인들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고 특히 대해국의 모피를 유럽으로 가져가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던 상인들은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에 뛰어들어 모피를 꺼내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놀란 상인들이 황급히 물을 길어와 불을 끄려고 했지만 사화동의 명령을 받은 대해국의 선원들이 상인들의 앞을 막았다.

불을 끄지 못하게 방해하는 선원들의 행동에 놀란 상인들은 사화동에게 달려들어 사정했다.

“이제 그만 불을 끄시게.”

“자네가 가져온 모피를 모두 구매하도록 하겠네.”

상인들이 애원을 해도 사화동은 물러서지 않았다.

“제값을 받지 못한다면 모피를 모두 불태워 버릴 것이오. 모피를 헐값에 팔아 다음에 가져올 모피도 헐값을 받을 수는 없소.”

사화동의 각오가 보통이 아닌 것을 알게 된 상인들은 사화동에게 다시 한번 애원했다.

“제시했던 가격의 두 배를 주도록 하겠소. 두 배요 약속하겠소.”

사화동은 자신에게 애원하는 상인들에게 냉정한 태도로 대답했다.

“두 배로는 안 되겠소. 당신들 때문에 우리의 시간을 허비했고 귀중한 모피도 불태웠으니 그 보상을 받아야겠소.”

“말씀하시오. 얼마든지 지불하겠소. 그리고 제발 불을 끕시다. 빨리요.”

포르투갈 상인들이 완전히 굴복하자 사화동은 그제 서야 불을 끌 것을 명령했다.

사화동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해국의 선원들이 나서기도 전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물을 뿌려서 불길을 잡았다.

부둣가에 널어놓은 모피들 중에서 가장자리에 있던 모피들은 불에 탔지만 한가운데 있던 모피들은 다행히 불길이 닿지 않아 충분히 상품의 가치가 있었다.

이렇게 포르투갈 상인들을 제압한 사화동은 모피를 다섯 장씩 꺼내놓고 구매를 원하는 상인들에게 구매가격을 부르게 하는 경매 방식으로 모피를 판매했다.

한 번에 다섯 장씩 판매하니 대해국에서 가져간 모피를 전부 판매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상인들이 처음에 제시한 가격에 다섯 배 이상의 가격에 모피들은 판매됐고, 지난번에 마카오에서 모피들을 판매했던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모피를 판매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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