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75화
이가의 무리들
모피를 전부 판매한 사화동은 그다음으로 흑인 노예의 구매를 시도했다.
모피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사화동의 악명이 마카오 전체에 알려진 덕분인지 노예들을 구매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사화동은 알폰스 비에이라의 주선으로 만남 상인들을 통해 흑인 노예 800명(남성 500명, 여성 300명)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고, 알폰스 비에이라의 도움으로 수수료 없이 은을 금으로 환전하는 것도 성공했으니 이번 마카오행도 대성공이었다.
다만 알폰스 비에이라는 마카오 상인들이 단합해 모피를 헐값에 구매하려 한 행동 때문에 사화동과 제독의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해국의 선단이 돌아갈 시간이 되자 알폰스 비에이라는 직접 항구까지 찾아와 사화동에게 사과하며 인사를 나누었고, 인사를 마치고 사화동이 배에 오르려고 하자 황급히 사화동을 불렀다.
“그리고 제가 제독님께 보내는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이대원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는 말에 사화동은 거절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선물을 받으시는 것은 장군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선물을 주시면 장군님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번 선물도 제독님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사화동에게 대답을 한 알폰스 비에이라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알폰스 비에이라의 마차에서 전신을 가린 옷차림에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이 내리더니 천천히 갤리온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선물의 정체를 알게 된 사화동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군.’
* * *
경인년(1590년) 6월 30일 히라도에 갔던 조천군이 선단을 거느리고 돌아왔다.
조천군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돌아왔다.
가져갔던 자기와 찻잔을 제값을 받고 모두 처분한 것은 물론 철과 구리, 유황과 함께 3,000명 이상의 노예들을 데려왔다.
“마쓰라 다카노부 공께서 간토 지역의 전쟁으로 보리의 수확이 늦어졌다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달에는 보리를 준비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조천군의 보고를 받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예상했었던 일이니 신경 쓸 것 없네.”
히데요시의 호조 정벌은 7월 5일 호조 우지나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하면서 끝나게 된다.
히데요시는 호조 우지나오의 항복을 받아들이는 대신 우지나오의 아버지인 호조 우지마사와 숙부인 호조 우지테루 그리고 강경판 가신들이 할복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호조 우지마사와 가신들은 그로부터 며칠 후 할복했고 히데요시는 호조 우지나오와 그의 일가 300여 명을 추방하고 호조 가문의 영지를 몰수한다.
나는 전선에서 내리고 있는 노예들을 바라보며 조천군에게 물었다.
“노예들의 수가 예상보다 많은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가?”
“모두 같은 지역에서 붙잡힌 노예들이라고 합니다. 사내와 여인, 아이들을 불문하고 한 지역에서 붙잡힌 노예들은 모두 구매하였습니다.”
조천군은 노예들을 대해국의 주민으로 정착시키려는 내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잘했네. 노예들의 수는 어떻게 되는가?”
“사내들이 1,200명, 여인이 1,400명에 아이들이 800명입니다.”
아이들까지 총 3,400명이었다.
히라도에서는 한 달에 2,000명의 노예를 구매하겠다고 주문했었지만 그 수는 성인을 기준으로 주문한 것이었고, 이번에 구매한 노예들 중에서 800명이 아이들이었으니 주문했던 수와 큰 차이는 없는 셈이었다.
“노예들을 구매할 때 마쓰라 다카노부 공께서는 별말씀 없으셨나?”
“예. 마쓰라 다카노부 공께서는 전하께서 노예에 대한 욕심이 많으신 것을 잘 알고 계시다며 호탕하게 웃으셨습니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다카노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조천군과 잠시 대화를 멈추고 노예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노예들이 손에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조천군에게 물었다.
“노예들이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옷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벌의 옷을 한 벌씩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조천군의 대답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노예들이 여벌의 옷을 가지고 있다니 무슨 일인가?”
주민들을 노예로 납치한 병사들이 노예들에게 자신의 짐을 챙길 시간을 줬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노예들이 여벌의 옷을 가지고 있다니.
“노예들을 확인하고 구매하기로 결정한 직후 노예들을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그날 저녁부터 배불리 먹일 것을 요청했습니다.”
조천군이 히라도에서 요청한 것은 내 명령을 따른 것이다. 나는 노예들을 구매하면서 항상 노예들의 목욕과 식사를 충분히 제공할 것을 요청한다.
노예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도는 것을 방지하고 동해도 까지 항해하는 동안 노예들이 지치지 않도록 체력을 보충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다.
“노예들을 목욕시키는 것과 함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힐 것과 여별의 옷을 한 벌씩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노예들에게 여벌의 옷을……?’
내가 이유를 묻는 표정으로 조천군을 바라보자 조천군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선에서 면포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대해국의 주민들의 수가 적지 않고 조선에서 들어오는 면포의 수량도 한계가 있을 것이니 옷감의 수요가 적지는 않습니다. 노예들을 구매하는 김에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여별 옷도 한 벌씩 준비시키면 그만큼 옷감을 아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잘했네. 좋은 생각이었어.”
조천군을 칭찬한 나는 곧이어 조천군에게 미안한 말을 해야 했다.
“곧 7월이니 동해도 북부와 울릉도 그리고 우지에부의 야인들과 평호도(平戶島)[히라도] 그리고 마카오에 보낼 선단들을 편성할 것이네. 선단을 편성하는 일을 도와주게.”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리고 이번에는 과인이 평호도(平戶島)[히라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으니 과인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대해국을 잘 부탁하네.”
국왕이 또 자리를 비우겠으니 그동안 내정을 살피라는 말에 조천군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전하.”
나는 그런 조천군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변명하듯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우는 것이니 조 장군이 이해하게. 올해는 가능한 자리를 비우지 않으려고 했지만…… 과인이 직접 나서야 하는 일이 생겼네.”
“전하께서 직접 행차하셔야 하는 일이라니 그것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전하.”
조천군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고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선은 마카오로 출발한 선단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네. 마카오까지 거리가 멀다 보니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이겠지만 루이스 프로이스에게 약속한 대로 8월에 마카오에 선단이 도착하기 위해서는 7월 초에 선단이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네. 그런데 지금까지 사화동이 마카오에서의 거래해 왔고 포르투갈 상인들을 상대한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도 사화동을 마카오에 보내야 거래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아. 그래서 평호도에서 사화동과 만나 이번에 거래한 내용을 보고 받고 다시 마카오로 보낼 계획이네.”
마카오에서 거래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을 집에 돌려보내지도 않고 히라도에서 붙잡아 보고를 받고 다시 마카오로 보내겠다는 말에 조천군은 마치 악덕 사장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대해국에 인재가 부족해 벌어진 일이네 사화동을 대신해서 마카오에서 거래를 성사시킬 만한 사람이 또 있으면 사화동을 다시 마카오로 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네. 다행히 올해 건조된 전선들을 투입할 수 있으니 전선의 숫자는 부족하지 않아 마카오에는 이번에 나와 함께 출항하는 선단을 보내고 사화동과 마카오까지 뱃길을 안내할 선장 한 명만 마카오로 보낼 계획이네.”
내 대답을 들은 조천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마카오와의 거래뿐만이 아니야. 과인은 그동안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네.”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말에 조천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전하께서 잊고 계셨다는 중요한 일이 과연 무엇입니까? 전하.”
나는 왜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으면서도 왜국의 지형을 조사하는 일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조천군에게 설명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왜국과의 전쟁을 예상했으면서도 왜국의 지리와 지형을 조사하는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니 정말 큰 실수입니다. 전하.”
“아직은 일 년 이상은 시간이 있을 것으로 보이니 지금도 늦지는 않았네. 지금부터라도 전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지리와 지형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네.”
“왜인들을 동원하려 하십니까? 전하.”
“다행히 대해국으로 이주한 왜인들 가운데 구주(九州)[규슈] 출신들이 많아 구주 지역에 대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었네. 구주 지역 외의 다른 지역의 정보는 이가의 무리를 고용해서 확인하려고 하네.”
내 대답을 들은 조천군은 내게 물었다.
“이가의 무리라는 이들은 정확히 무엇을 하는 자들입니까? 전하.”
이가의 무리가 왜국의 대표적인 닌자 집단이라는 것은 조천군이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왜국에서는 흔히 닌자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쉽게 말하면 보수를 받고 움직이는 간자(間者)와도 같은 이들이네. 돈만 준다면 어떤 일이라도 한다는군.”
간자라는 말에 조천군은 놀란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돈을 받고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정보를 외국에 파는 이들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왜국의 영주들이 상대방 영주를 감시하거나 상대방 영주의 군사계획을 염탐할 때 닌자들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킨다고 하더군. 대해국의 백성이 된 왜인들을 통해 닌자들을 고용할 것이니 난자들은 대해국에 고용된 것을 모를 것이고 닌자들에게 지리와 지형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니 왜국의 지형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네.”
조천군은 닌자들이 존재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닌자들은 대해국에 유용한 존재였다.
그동안 왜국의 지리와 지형 등의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황급히 대해국의 주민들, 특히, 기리시탄들을 통해 히젠 지역을 비롯한 규슈지역의 지리와 인근 바다의 수심 등을 확인하려고 했다.
내가 왜국의 정보를 조사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자 이케다 마사이에가 나섰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소개로 나를 찾아와 기리시탄들이 동해도로 이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었던 이케다 마사이에는 동해도로 이주한 기리시탄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앞장서고 있었다.
이케다 마사이에는 나에게 닌자들에 대해 설명하며 닌자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할 것을 권했다.
난자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나는 닌자들을 통해 왜국의 정보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던 한편 이케다 마사이에가 닌자들과 인연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대는 닌자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소인은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 무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섬기던 다이묘(大名)[영주]를 경호하면서 이가 무리의 마을에 가보았고 다이묘가 이가의 닌자들과 거래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지금도 이가의 닌자들에게 정보 수집을 의뢰할 수 있겠는가?”
내 질문에 이케다 마사이에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가는 물론 모든 닌자는 의리나 충성이 아닌 돈에 따라 움직이는 무리입니다. 전하께서 보수만 후하게 지불하신다면 이가의 무리는 전하께서 원하시는 정보를 구해 바칠 것입니다.”
내가 가장 원하던 대답이었다.
“과인은 다음 달에 선단을 이끌고 히라도에 갈 것이다. 이케다 마사이에 그대도 과인과 함께 히라도로 가자. 이가의 무리를 고용하는 일을 맡기도록 하겠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이가의 무리를 고용하도록 하라.”
이케다 마사이에는 그동안 조선의 예법에 익숙해졌는지 주저하지 않고 엎드려 절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