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77화
금은거래
경인년(1590년) 7월 15일 내가 지휘하는 선단이 히라도에 도착했다.
갤리온들을 정박시키고 부두로 내려온 나는 부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화동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장군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사화동은 이곳이 히라도라는 것을 감안해 나를 장군이라 불렀고 나도 반갑게 사화동과 인사를 나누었다.
“마카오에는 잘 다녀왔는가? 수고가 많았네.”
“마카오에서 피치 못할 일이 생겨 출항이 예정보다 늦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직접 히라도로 오실 것 같아 이곳 히라도에서 장군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했네. 시간이 없으니 우선 마카오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 받도록 하겠네. 그리고 자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에서 곧바로 마카오에 가줘야겠네.”
대해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시 마카오로 가라는 말에 사화동은 예상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다시 마카오로 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단이 준비되는 대로 마카오로 출항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해국에서 마카오까지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았다.
대해국에서 마카오에 갔다가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을 대해국에 들리지도 못하게 하고 다시 마카오로 보내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미안하게 됐네. 이번에만 다녀오면 다음 달부터는 무리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지금이 중요한 시기인 것은 소인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 쓰실 필요 없으십니다.”
인사를 나눈 후 사화동과 함께 갤리온으로 돌아간 나는 사화동에게서 마카오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받은 후 그의 수고를 치하한 후 사화동에게 임무를 내렸다.
“이번에 17척을 이끌고 왔네. 자네는 갤리온 3척을 거느리고 마카오로 가도록 하게. 이번에는 노예와 함께 명국의 면포와 솜, 비단과 주석을 구매하도록 하고 루이스 프로이스가 대해국에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주기로 했으니 루이스 프로이스가 데려온 사람들을 대해국으로 데려오도록 하게.”
“이번에는 마카오에 은을 보내지 않으십니까?”
이번에는 금은 거래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지. 이곳 히라도에서 자기와 찻잔을 판매하고 노예와 곡식들의 물품들을 구매할 것이네. 그 후에 자네가 가져온 금과 동해도에서 가져온 사금 그리고 자기의 판매대금으로 벌어들인 금화를 히라도에서 은으로 환전할 것이네. 마쓰라 다카노부의 재력을 감안하면 환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걸로 생각하고 있네. 금을 은으로 환전하는 대로 마카오로 보내도록 하겠네. 은의 안전한 수송을 위해 대포로 무장한 전선 3척을 보낼 것이고, 늦어도 3일 안에는 마카오로 출항할 수 있을 것이네. 최소한 3만 냥 이상의 은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니, 모두 금으로 환전해서 가져오도록 하게.”
갤리온의 선장실 안에 있었으니 부두에서와는 달린 왜인들의 시선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장소였다.
사화동은 나에게 절을 올리며 외쳤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전하.”
그 날 오후 사화동은 마카오로 출항할 선단에 탑승했고, 사화동이 타고 온 갤리온의 선장이었던 임광정을 사화동이 타고 갈 갤리온의 선장에 임명했다.
마카오까지의 뱃길을 안내하기 위해 임광정을 마카오로 가는 선단 기함의 선장에 임명한 것이다.
이렇게 마카오로 갈 선단의 인선을 마친 나는 사화동과 임광정에게 내일 아침 출항할 것을 지시한 후 마쓰라 다카노부를 찾아갔다.
“어서 오너라. 이번에 아주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더구나.”
내가 마카오로 선단을 보내는 것을 알게 된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안녕하셨습니까. 아버지. 건강해 보이시셔 정말 다행입니다.”
“나와 거래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가 않았느냐?”
마쓰라 다카노부의 눈빛은 물론 말투 또한 곱지 않은 것에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를 달래기 위해 말했다.
“루이스 프로이스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있어 마카오에 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히라도에 오는 선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이고 자기와 찻잔은 히라도에서만 판매하고 있으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자기와 찻잔을 히라도에서만 판매하고 있다는 말에 마쓰라 다카노부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마카오에서는 무엇을 판매하고 있느냐? 마카오에서 구매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
마쓰라 다카노부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묻자 나는 어려울 것 없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마카오에서는 동물의 가죽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 부하들이 사냥한 동물들의 가죽과 아이누인들이 가져오는 동물의 가죽을 손질해서 남만의 상인들에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카오에서 구매하는 상품들은 노예와 주석 그리고 비단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석은 일본에서 구할 수 없는 광물이었고 명국의 비단은 돈벌이가 되는 상품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노예들을 매달 몇천 명씩이나 구매하고 있으면서도 마카오에서도 노예들을 구매한다는 말이야?”
마쓰라 다카노부는 재미있다는 듯이 물었고 그의 말투가 완전히 풀린 것을 확인한 나는 안심하며 대답했다.
“마카오에서는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노예들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주로 온몸이 시커먼 노예들과 짙은 갈색인 노예들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체격이 좋고 힘이 세서 땅을 갈고 나무를 베는 쓰려고 합니다.”
내가 마카오에서 거래를 하는 품목들이 히라도에서 거래하는 품목들과 겹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마쓰라 다카노부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무엇이 필요 하느냐?”
“이전과 같이 노예와 철, 구리, 유황을 구매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문했었던 보리도 가져가려고 합니다.”
“노예와 보리는 이미 준비해 두었다. 철과 구리, 유황도 이틀 안에 준비해 주마. 더 필요한 것이 있느냐?”
“아버지께서 한 가지 더. 저를 도와주실 일이 있습니다.”
내 대답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흥미가 생긴 듯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 무엇이냐?”
“금을 은으로 환전해 주십시오.”
금은 환전을 하겠다는 말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금을 얼마나 가져왔느냐?”
“3,000냥입니다. 은 3만 6,000냥으로 환전해 주십시오. 아버지.”
일본에서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1 대 12였으니. 금 3,000냥을 은 3만 6,000냥으로 환전해 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16세기 일본은 이와미 은광과 이쿠노 은광에서 은을 대량으로 채굴하고 있었고,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주들이 경쟁적으로 광산을 개발하는 통에 일본 각지에서 금과 은의 채굴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나 이와미 은광은 전성기에는 1년에 15톤 이상의 은을 채굴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채굴량을 자랑하는 대형 은광이었고, 이와미 은광과 일본 각지에서 채굴되고 있는 은 덕분에 일본에서는 명국보다 상대적으로 은의 가격이 낮았다.
내가 은을 금으로 환전하겠다고 하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내가 금은 거래를 하려는 것을 눈치챘다.
“네가 마카오에 배를 보내는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 천하를 노리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것이 더 즐거운 것이냐?”
“3,000냥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거래 액수는 점점 증가할 것이고 아버지에게도 이익이 될 것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를 보며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다.
“좋다. 12배로 환전해 주마. 그러나 환전 수수료는 받지 않을 수 없다.”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1 대 12였으니 금 3,000냥을 은 3만 6,000냥으로 환전하는 것이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손해는 아니었지만, 이익을 볼 것도 없었기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환전 수수료를 받겠다고 했고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가 가장 좋아하는 상품으로 수수료를 지불할 생각이었다.
“수수료는 청자로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좋다. 아들의 일이니 확실하게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와 이렇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금은 환전에 대해 합의한 후 간토 지역의 상황을 물었다.
“간파쿠께서는 아직도 오다와라 성을 포위하고 계신 것입니까?”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나 보구나. 지난 11일 호조 우지마사와 호조 가문의 가신들이 할복을 했다고 한다.”
“그럼 전쟁은 끝난 것이군요.”
“그렇지. 아마도 간파쿠와 다이나곤은 이미 오다와라 성에 입성하셨을 것이다.”
말을 마친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내가 다가가자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호조 가문의 영지는 네가 가져온 정보대로 다이나곤에게 주어질 것 같구나. 내가 알아보니 간파쿠께서는 오사카에서 출병하기 이번부터 다이나곤에게 호조 가문의 영지를 맡기시고 다이나곤의 영지를 빼앗을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사건이 실제로 진행되자 나는 흥분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다이나곤께서는 간파쿠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간파쿠는 호조를 정벌하는 데 성공해 사기가 충천한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있으시니 말입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될 것 같다. 간파쿠께서는 다이나곤의 영지에 자신의 부하들을 어떻게 배치했을지도 이미 결정해 놓으셨을 것이다.”
“새로운 영지를 하사받은 무장들은 한동안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성과 저택을 비워주고 새로 하사받은 성으로 이사를 가야 하니 말입니다. 더구나 간토 지역으로 출병하면서 많은 군비를 소모한 무장들은 당장 자신의 일족과 가신들을 새로운 이주시키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금과 은을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다. 내가 은을 36,000만 냥이나 가져가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스루가로 군량을 수송했던 상인들과 선원들을 통해서 이 마쓰라 다카노부가 현금이 넉넉하다고 소문이 났을 것이니 이주비용이 필요한 무장들은 내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지 교체는 새로운 영지를 하사받은 영주는 많은 이주비용이 들었다.
영주의 가족들은 물론 영주의 가신들과 직속 무장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새로운 영지로 이주해야 했으니, 영지 교체로 인한 이주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 다음에야 끝나는 일이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야 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물론 이에야스가 통치하던 영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하사받은 무장들도 새로운 영지로 이주하고 영지를 안정시킬 때까지는 고생문이 열린 셈이었고.
마쓰라 다카노부 같은 상인들은 급하게 이주비용이 필요한 무장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거나 영지의 이권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이나곤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마십시오. 평소에도 검소한 삶을 살기로 유명한 인물인 데다가 가이와 시나노에는 다케다 신겐이 개발해 놓은 금광이 있으니 이주비용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눈에서 빛을 내며 나에게 말했다.
“역시 너는 언젠가 반드시 천하를 노릴 놈이다. 왜국에 있지도 않으면서 간파쿠와 다이나곤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쓰고 정보를 수집해 놓다니 언젠가는 너도 네 야망을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