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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78화 (178/223)

조선 수군이 되었다. 178화

닌자

마쓰라 다카노부와 이번 거래에 대한 협상을 마친 후 갤리온으로 돌아온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오랜만에 배를 탔을 것인데 피곤하지는 않은가?”

“소인이 전하와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고 기대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전하.”

이케다 마사이에의 대답을 들은 나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기가 충천하구나. 지쳐서 비실거리는 것보다는 보기 좋다.’

“다카노부공에게 사카이 항까지의 배편을 부탁해 놓았다. 이틀 후에 이곳에서 사카이로 가는 상선이 있다고 하니 그 배를 타도록 하여라. 다카노부공에게 부탁해 놓았으니 사카이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전하.”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를 이가 닌자들의 본거지인 이가국(伊賀国)으로 보내 이가의 닌자들을 고용할 생각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여비는 넉넉하게 줄 것이니 받아가도록 하고 이가의 무리들을 고용하는 비용으로 은 500냥을 줄 것이다. 닌자들이 내가 시키는 일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돈은 얼마든지 더 줄 수 있으니 이가의 무리들에게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도록 하라.”

“예. 전하.”

“이가국까지 오고 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니. 두 달의 시간을 줄 것이다. 두 달 안에 이가의 무리들에게 일을 맡기고 히라도로 돌아오도록 하라. 두 달 전이라도 이가의 무리들을 고용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 즉시 히라도로 돌아오도록 하고 이가의 무리들과 협상이 길어져도 두 달이 되기 전에 히라도로 돌아와야 한다. 알겠느냐.”

“명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전하.”

닌자들을 고용하는 데 실패했어도 두 달 안에 돌아오라고 한 것은 이케다 마사이에의 안전과 함께 혹시라도 이가 닌자들에게 대해국에 대해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케다 마사이는 이틀 후 자신의 아들들과 무사 출신 기리시탄 둘을 거느리고 사카이로 향하는 상선에 탑승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가 닌자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닌자들을 고용하는 데 성공해 일본의 지형과 지리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 그들을 동원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의 영지가 된 간토 지역의 정보도 수집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번 영지 교체로 자신의 고향과 영지들을 빼앗겼으니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원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다만 지금은 힘으로 히데요시를 당해낼 수 없으니 참고 있는 것이겠지.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은 폐허가 된 에도 성을 재건하고 에도 성 일대를 개간하는 데 성공할 뿐만 아니라 간토 지역의 영지들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영지를 빼앗기기 이전 이상의 국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역사적인 사건을 책에서 배운 것과 현재 일어나는 사건으로 보고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호조 정벌과 이에야스의 영지 교체는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었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고 듣자 더 많은 것이 보였고 이번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감정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영지 교체를 통해 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의 가신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원망하고 있을 것을 확신하고 필요하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손을 잡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 * *

경인년(1590년) 7월 16일 사가마 오다와라 성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호조 가문의 항복을 받고 오다와라 성에 입성한 이후 히데요시는 그야말로 광폭 행보를 보였다.

그동안 눈에 가시와도 같았던 다이나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호조 가문의 영지를 하사하는 조건으로 이에야스가 다스리던 영지를 빼앗았고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이자 노부나가의 고향인 오와리를 통치하고 있는 오다 노부카쓰에게도 이에야스와 같은 방법으로 영지를 빼앗았다.

다만 순순히 간토 지역의 영지를 받았던 이에야스와는 달리 오와리와 지금 다스리고 있는 영지 대신 이에야스의 영지였던 스루가를 주겠다는 히데요시의 제안에 오다 노부카쓰는 대대로 가문에서 다스리던 오와리를 내줄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호조 정벌에 참전했던 영주들과 무장들이 있는 앞에서 노부카쓰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히데요시는 성난 표정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다 노부카쓰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히데요시에게 매달리려고 했지만 히데요시는 노부카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노부카쓰가 다이묘들 앞에서 간파쿠인 내 명령을 거절했으니 명분은 충분하다. 이대로 노부카쓰의 영지는 몰수할 것이다.”

자신의 주인이었던 오나 노부나가의 아들인 오다 노부카쓰였지만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카쓰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손을 잡고 자신에게 저항했던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오다 노부카쓰와 도쿠가 이에야스의 연합군과 히데요시가 이끄는 군대가 싸웠던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 당시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카쓰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연합군보다 월등한 군세로 출병했지만 오다 노부카쓰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코마키산에 튼튼한 성채를 구축해 놓고 방어전을 펼치는 한편 네고로의 승병집단과 사이카슈의 용병들을 고용해 오사카 성이 있는 셋쓰를 공격할 것을 사주했다.

전장이었던 오와리 지역은 오다 노부나가의 고향이자 오다 가문이 대대로 다스렸던 영지이기에 주민들과 토착무사들도 오다 노부카쓰를 지지하고 있었고 대군을 이끌고 출병한 히데요시는 전쟁이 장기전으로 진행되자 군량 수송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히데요시는 코마키산에 버티고 있는 오다와 도쿠가와 연합군의 본대를 공격하기보다는 요새를 견제하며 이에야스의 영지인 미카와로 군대를 출병시키는 한편 노부카쓰의 영지인 이세를 공격해 이세국의 성들을 함락시켰다.

미카와로 출병했던 군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요격으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돌아왔지만 노부카쓰의 영지를 공격하는 것은 성공해 자신의 성들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압박을 느낀 노부카쓰는 히데요시와 단독으로 강화를 맺었다.

수적인 열세에도 히데요시를 상대로 선전을 펼치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카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강화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자 오와리에서 철수해 미카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투에서 패했지만 오다 노부카쓰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해 전쟁에서는 승리한 셈이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에서는 승리해 이에야스가 이끄는 군사들의 전투력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히데요시에게 확실하게 알려 줬지만 동맹을 맺은 오다 노부카쓰가 이탈하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친아들인 오다 노부카쓰를 지원한다면 명분을 잃었기에 어쩔 수 없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 이후 오다 노부카쓰를 신뢰할 수 없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호조 가문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견제해 왔다.

“천하의 안정을 위해서 노부카쓰 같이 경솔한 자가 100만 석에 가까운 영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노부카쓰가 세상 물정을 좀 알 수 있도록 한동안 고생하도록 놔두었다가 차후에 생계는 이어갈 수 있도록 몇만 석 정도 영지를 내리면 될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차후에 오다 노부카쓰에게 몇만 석 정도의 영지는 내릴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다 노부카쓰를 동정하거나 노부카쓰가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번 영지 교체로 노부카쓰가 무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니 먹고 살 만한 영지를 주어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한 혼노지 변 이후에 살아남은 노부나가의 아들 중에서 오다 가문을 이을 만한 사람은 오다 노부카쓰와 오다 노부타카 둘 뿐이었지만 노부타카는 이미 죽었고 노부카쓰는 이번에 몰락했다.

오다 노부타카의 죽음도 노부카쓰의 몰락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더 이상 오다 가문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다.

홀로 술잔을 기울이던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카쓰와 대조적으로 간토의 영지를 받아들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이나곤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만만하지 않은 인물이다.”

이에야스에게 호조 가문의 영지를 하사하겠다는 명분으로 이에야스의 영지를 몰수할 때만 해도 히데요시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 이후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영지의 손실이 전혀 없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히데요시는 일본의 영주들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에게 호의적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여동생을 이에야스에게 시집보낸다는 명분으로 미카와로 보내고 그 뒤를 이어 자신의 어머니까지 딸을 만나러 간다는 명분으로 미카와로 보내야 했다.

히데요시가 여동생에 이어 자신의 어머니까지 보내자 이에야스도 더 이상 히데요시의 상경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교토로 상경해 히데요시와 회담을 벌이게 된다. 이렇게 이에야스를 교토로 상경시키고 나서야 히데요시는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에야스에게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보내야 했던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기 위해 이에야스의 영지를 몰수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방법이 바로 영지 교체였다.

이에야스가 영지 교체를 반대하면 이번 기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토벌할 생각이었던 히데요시는 이에야스가 순순히 영지 교체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이에야스의 인내심에 놀라는 한편 자신에게 항복한 다이묘들의 영지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250만 석에 달했어야 하는 이에야스의 영지를 220만 석으로 줄여 버렸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그 조치까지 순순히 받아들인 후 히데요시를 놀라게 하는 말을 꺼냈다.

‘영지를 개간하여 비옥한 옥토로 만들 것이며 영지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튼튼한 성벽을 쌓아 영지의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반대할 이유가 없는 말로 들렸지만 히데요시는 이에야스가 영주들과 무장들 앞에서 이 말을 꺼낸 이유를 간파했다.

“이에야스의 의도는 이번 전쟁으로 파손된 성벽을 보수할 뿐만 아니라 성과 요새를 증축하여 영지의 방어력을 높이고 영지 내에서 자신에게 반항하는 토착무사들을 도적의 무리로 몰아 토벌하겠다는 뜻이다. 영지를 개간하겠다는 것은 이번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곳을 개간하며 아직 개간되지 않은 황무지를 개간하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전쟁에 피해를 입은 지역과 황무지를 개간한다면 영지의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주민들도 기뻐할 것이고 이에야스는 민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영지를 개간하고 성벽을 보수하겠다는 이에야스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히데요시는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도적을 잡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영지를 개간하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성을 쌓을 것을 권했다.

이미 호조 가문이 대대로 거점으로 삼은 오다와라 성이 있었음에도 새로운 곳에 성을 쌓아 거점으로 삼으라는 히데요시의 요구에 이에야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히데요시의 눈빛을 본 이에야스는 그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오다와라 성을 이에야스의 거점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이런 철옹성에 이에야스가 들어와서 거점으로 삼는다면 이에야스는 더욱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황무지이자 갈대밭이 우거져 있는 에도 성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으라고 했을 때 이에야스가 당황한 표정이라니 정말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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