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이 되었다. 179화
선물의 의미
대해국에서는 내정을 살피고 있던 조천군은 조선인들과 왜인들이 집단으로 싸움을 벌였다는 보고를 받고는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올 것을 명령했다.
대해국은 전라좌수영에서 처음 동해도로 이주한 전라좌수군 출신들이 자연스럽게 지배계층으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주민들 중에는 왜인들이 조선인들보다 더 많은 만큼 조천군은 조선인들과 왜인들이 충돌하는 것을 항상 염려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선인들과 왜인들 간에 감정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조천군은 이번 사건의 관련자들을 직접 조사할 생각이었다.
잠시 후 병사들이 관아의 앞마당에 패싸움을 벌였던 조선인들과 왜인들을 잡아 왔다.
죄인들은 양측이 각각 10여 명씩 총 20여 명에 달했고 모두들 얼굴에는 멍과 상처가 보였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죄인들을 둘러본 조천군은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교에게 물었다.
“죄인들 중에 사망한 자나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중상을 입은 자는 없는가?”
“예. 장군. 사망한 자나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한 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잘됐군.”
최도진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죄인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누구이며 무슨 일로 싸움을 벌였느냐?”
최도진이 성난 목소리로 묻자 대부분의 죄인들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최도진이 죄인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조선인 중 하나가 외쳤다.
“억울합니다. 장군.”
최도진은 억울하다고 외친 자에게 물었다.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이냐? 어서 말해 보거라.”
“저희는 저희 마을의 여인들을 겁탈하려는 자들을 막았을 뿐입니다. 저놈들이 밤마다 마을로 들어와 여인들을 겁탈하려고 하기에 저희는 마을을 지켰을 뿐입니다. 장군.”
죄인의 대답을 들은 최도진은 놀라서 외쳤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여인들을 겁탈하다니, 어서 자세히 말해 보거라. 아니, 그보다 먼저 너는 누구이며 언제 대해국으로 들어왔느냐?”
조천군의 질문에 죄인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장군. 소인의 이름은 한명련이며 노비였습니다. 울릉도에서 살고 있다가 대해국으로 오면 장가를 보내주신다고 해서 대해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두 달 전에 대해국에 들어왔사옵니다.”
한명련의 대답을 들은 조천군이 그에게 물었다.
“너와 함께 왜인들과 싸운 조선인들도 모두 울릉도에서 왔느냐?”
“예. 장군. 그렇습니다.”
‘박언필에 데려온 노비들이군.’
박언필이 울릉도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던 노비들과 장가가지 못한 총각들을 대해국으로 데려와 왜인 과부들과 혼례를 치르도록 주선해 준 것은 조천군도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이 여인들을 겁탈했다니 그것은 무슨 말이냐?”
조천군의 질문에 한명련은 목소리를 높여가며 대답했다.
“마누라에게 들어보니 저 죽일 놈들이 밤마다 여인들만 살고 있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여인들을 겁탈했다고 하지 뭡니까? 소인은 처음에 그 말을 듣고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밤에 잠든 척 집안의 불을 끄고 문틈으로 지켜보니 오밤중에 저 죽일 놈들이 정말로 여인들만 사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한명련의 대답을 들은 조천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나 네 마누라가 오해를 한 것은 아니냐? 그 집에 사는 여인과 정분이 난 것일 수도 있지 않으냐.”
“아닙니다. 장군. 소인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집안에서 문을 열어준 것도 아니고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갔고 집안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 것이 여인들과 정분이 난 사이는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조천군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한명련의 말대로 사내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여인들을 겁탈했다면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그런 짓을 벌였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조천군은 왜국어로 죄인들에게 물었다.
“한명련의 말이 사실이냐? 너희가 여인들을 겁탈하려고 했냐는 말이다. 사실이라면 너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에 왜인들은 놀라서 앞다투어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장군 저희는 혼자 사는 과부들에게 찾아갔을 뿐입니다.”
“왜국에서 요바이는 흔한 일입니다. 과부들도 요바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요바이를 했을 뿐입니다.”
죄인들의 대답을 들은 조천군은 왜인 병사에게 요바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요바이란 것이 무엇이냐?”
* * *
히라도에 도착한 다음 날 준비해 간 청자와 백자 그리고 백자로 제작한 찻잔을 상인들에게 판매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판매 수수료를 지불한 후 금 3,000냥을 맡기고 은으로의 환전을 부탁했다.
환전을 부탁한 후 노예들을 확인한 후 노예 3,400명(사내 1,200명, 여인 1,400명, 어린아이 800명)을 구매할 것을 결정하고 대금을 지불했다.
노예들을 목욕시키고 배불리 먹일 것을 부탁한 나는 그 모든 업무를 마치고 나서야 갤리온으로 들어와 쉴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선장실에서 쉬고 있던 나는 알폰스 비에이라가 내게 선물을 보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알폰스 비에이라가 선물로 보낸 노예들을 선장실로 데려올 것을 명령했다.
잠시 후 베일로 얼굴을 가린 3명의 여인이 선장실로 들어오니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에이라가 보낸 노예들이 확실하군. 또 얼굴을 가린 것을 보니.’
노예들이 선장실 안으로 들어오자 나는 노예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베일을 걷고 얼굴을 보여라.”
그러나 노예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왜 가만히 있지. 얼굴을 보이라니까.”
노예들이 움직이지 않자 노예들을 노려보던 나는 노예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그제서야 내 실수를 깨달았다.
‘아 노예들이 조선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지.’
노예들에게 일본어로 얼굴을 보이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도 노예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서툰 포르투갈어로 다시 한번 명령을 내리자 이번에는 노예들도 알아듣고 두 손으로 베일을 들어 올렸다.
노예들을 얼굴을 본 나는 잠시 숨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노예들은 금발에 푸른 눈을 하고 있었고 보기 드문, 아니, 보기 힘든 미인이었다.
‘지난번에 이어서 또다시 여자 노예들을, 아니, 그것도 이런 미녀들을 보낸 것을 보니 알폰스 비에이라가 선물의 보답으로 백자와 찻잔을 보낸 의미를 오해한 모양이군.’
“다시 얼굴을 가려도 좋다.”
내 명령이 떨어지자 노예들은 다시 베일을 쓰고 얼굴을 가렸다. 노예들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단 선물로 받았으니 대해국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한다. 여인들이니 그냥 선창에서 지내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선단의 선원과 병사들 중에서 여인들은 없었다. 선원과 병사들은 모두 남자들이고 마카오와 히라도에서 구매한 노예들 외에 다른 여인들은 없었다.
마카오에서 구매한 흑인 노예들은 선창 안에서 지내고 있었고 내일 아침에 전선에 탑승할 왜인 노예들도 동해도에 도착할 때까지 선창 안에서 지내게 될 것이니 이 노예들도 지금까지 선창 안에서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들을 보니 노예이기 이전에 가녀린 여인으로 보였다.
‘그냥 선장실에서 재우자. 모든 노예들을 선실에서 지내게 할 수는 없지만 얘네 3명은 내가 선물로 받은 노예이기도 하니 그냥 선장실에서 재우자.’
결정을 내린 나는 선장실 한쪽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노예들에게 그곳에서 자라고 말했다. 선장실의 침대는 성인 2명이 누울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넓었고 노예들은 가냘프게 보일 정도로 날씬했으니 셋이 충분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노예들에게 여벌의 담요를 꺼내주고 침대에서 잘 것을 명령한 나는 해먹을 꺼내 선장실 기둥에 해먹을 묶었다.
다음 날 아침 상품들과 노예들이 부두에 도착하자 부하들에게 노예들을 시켜서 철과 구리, 유황 그리고 보리 자루들을 전선에 싣도록 한 후 부두에 나와 있는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무슨 일로 나오셨습니까?”
내 질문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내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한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간파쿠께서 이번에 아주 끝을 보시려는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간파쿠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호조 가문을 정벌하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는 것 같구나. 오다와라 성에서 나오셔서 동쪽으로 출병하신다고 하는구나.”
“오다와라 성에서 동쪽으로 출병한다면?”
“무쓰(陸奥)로 진군하시는 것 같다. 오우(奥羽) 지방도 이번 기회에 간파쿠의 뜻대로 정리를 하시려는 것 같다.”
오우(奥羽)지역은 혼슈의 최북단 지역인 무쓰국과 데와국을 합친 지역으로 혼슈에서 동해도를 마주 보는 지역이었다. 나는 오사카 성이 기반인 히데요시가 혼슈 최북단 지역까지 진군했다는 소식에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군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닌의 난 이후 교토에서 오우(奥羽)까지 출병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을 것이다. 오우(奥羽) 지방만 정리하고 돌아오신다면 규슈에서부터 오우(奥羽) 지방까지 전 국토는 간파쿠의 발아래에 있게 되는 것이다. 간파쿠께서 드디어 천하를 완전히 통일하신 것이지.”
마쓰라 다카노부도 이번에는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나는 히데요시가 혼슈 최북단까지 진군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히데요시의 행보를 생각하던 나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런데 히데요시가 마음 놓고 최북단 지역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영지를 교체당하기는 했어도 아직 자신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을 텐데.’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다이나곤께서도 간파쿠와 함께 오우로 출병하신 것입니까?”
“다이나곤께서는 아직 오다와라 성에 계신다고 하는구나. 오다와라 성도 이제는 다이나곤의 성이나 다름없다. 간파쿠께서 오다와라 성을 떠나시기 전에 다이나곤의 영지를 가신들에게 나눠주셨다고 한다. 다이나곤께서는 이제 좋으나 싫으나 에도 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지.”
마쓰라 다카노부의 대답을 들은 나는 그제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의 영지에 부하들을 배치하고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에치고로 돌려보냈겠구나. 그렇게 되면 이에야스의 동쪽에는 직속군단을 거느리고 오우로 진군한 히데요시가 있고 이에야스의 북쪽에는 우에스기 겐신이 단련시켜 놓은 에치고 군단을 거느린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그리고 서쪽에는 이에야스의 영지였던 스루가, 가이, 시나노를 점령하고 있는 히데요시의 가신들이 버티고 있는 셈이니 사방이 포위된 셈이다.’
역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빈틈이 없었다. 아무리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해도 자신의 여지를 빼앗긴 것에 이어서 히데요시의 가신들과 동맹세력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마쓰라 다카노부와 대화를 마친 나는 마침 상품들을 전선에 적재하는 작업이 끝나자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번에도 감사했습니다. 아버지. 늘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그것을 항상 잊지 말거라.”
“예,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 조심히 들어가거라. 다음에 보자.”
마쓰라 다카노부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나는 갤리온에 올랐다. 내가 배에 오르자 선단의 전선들은 일제히 돛을 펴고 항구를 벗어나 바다로 나왔다. 선단이 바다로 나오자 나는 갤리온의 선장에서 깃발신호를 올릴 것을 명령했다.
“은을 실은 갤리온과 갤리온을 호위할 전선들은 지금 즉시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리도록 하라. 시간이 없으니 지금 당장 마카오로 출발하도록 하라.”
내 명령대로 깃발 신호가 올라가자 마카오로 갈 예정이었던 갤리온과 전선들이 뱃머리를 돌렸다. 은 3만 6,000냥을 실은 갤리온과 갤리온을 호위할 전선들이 마카오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마카오로 가는 전선들을 보낸 후 나는 곧장 선단을 이끌고 동해도로 향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북해도로 출병했거나 북해도에 관심을 가졌었다는 기록은 없었지만 히데요시가 혼슈 최북단으로 진군하고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