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형 >
“대해국에서 여인을 겁탈한 자는 그 누구라도 용서 받을 수 없다. 무단으로 여인들의 집에 침입하고 여인들을 겁탈한 죄인들을 처형한다.”
내가 죄인들을 처형하겠다고 외치자 요새 앞의 벌판에 모여 있던 주민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죄인들이 처형까지 당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처형하라.”
“예 전하.”
내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죄인들을 끌고 왔다. 자신들을 처형하겠다는 선언을 들은 죄인들은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지만 건장한 병사들은 죄인들을 그대로 들어 올려서 끌고 나왔다. 끌려나온 죄인의 수는 다섯 명이었고 모두 왜인들이었다. 벌판 한쪽에는 이미 다섯 개의 나무 기둥이 박혀 있었고 죄인들을 끌고 나온 병사들은 죄인들을 나무 기둥 앞에 앉힌 후 강제로 고개를 숙이게 하고 머리를 풀어 나무 기둥에 묶어 놓았다.
이미 온몸이 꽁꽁 묶여 있던 죄인들은 앞으로 상체를 내민 상태로 머리카락이 나무 기둥에 묶이자 고개도 흔들지 못했다. 죄인들이 모두 기둥에 묶이자 조천군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조천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처형하라.”
조천군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하고 준비하고 있던 장교들에게 형을 집행할 것을 명령했다. 이번 처형을 위해 특별히 선별된 백호대 장교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일본도를 뽑아들고 죄인들의 앞으로 나왔다. 기둥에 묶여서도 몸부림을 치던 죄인들은 일본도를 든 장교들이 다가오자 공포에 몸을 떨며 바지를 적셨다.
“하잇”
장교들은 기합을 지으며 일본도를 내리쳤다.
죄인들이 처형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직접 처형하라고 명령했지만 보기에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시신은 화장하도록 하고 뒷정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예 전하.”
조천군에게 뒷정리를 맡긴 후 나는 관아로 들어갔다.
히라도에서 황급히 귀국한 나는 경계를 강화할 것을 명령하고 전선과 군사들을 무장시킬 것을 명령했지만 다행히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항구와 해안지역의 경계를 강화할 것을 명령한 후 나는 조천군에게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있었던 일을 보고 받았다. 다행히 외부와의 교역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동계는 울릉도에 면포 1000필과 솜 500근 그리고 대해국으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유민 120명을 보내왔고 최도진은 여진족에게서 말 500필과 동물가죽 1000장을 구매하는데 성공했다. 그와 더불어 여진족 50명을 데리고 왔는데 그들은 그동안 여진족에게서 구매해온 말을 돌보고 목장을 관리하기 위해 고용한 사람들이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안심하고 있던 나에게 조천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신 사이에 대해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나이다.”
조천군의 보고에 나는 흥미를 느끼고 물었다.
“불미스러운 일이라니 그것이 무엇인가?”
“조선인과 왜인들이 무리를 지어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싸움을 벌인 이유가 사내들이 여인들을 겁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천군의 대답에 나는 놀라서 외쳤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사내들이 여인들을 겁탈하다니 자세히 고하도록 하라.”
“왜인 사내들이 오밤중에 여인들만 지내고 있는 집에 침입하여 여인들과 동침하였다고 하옵니다. 왜인 사내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풍습이며 그 풍습을 요바이라 부른다고 하옵니다.”
요바이는 마을의 사내들이 같은 마을에 사는 여인의 집에 밤에 몰래 찾아가 관계를 가지는 풍습이다. 본래는 마음에 드는 여인에게 밤에 찾아가 구혼하는 풍습이었다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구혼보다는 밤에 찾아가 관계를 가지는 풍습으로 변질되었고 주로 남편이 사망한 과부들이나 아직 혼인하지 않은 여인들이 요바이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 지금은 요바이가 한창인 시기이다. 일본 전국시대에 남성의 수가 줄고 과부들의 수가 늘어나자 마을에서는 촌장이 마을의 사내들에게 요바이를 적극적으로 권했다는 기록도 있었어.’
“왜인들에게 그런 풍습이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조선인들과 싸움은 왜 벌어진 것인가?”
“왜인 사내들이 주로 찾아갔던 곳이 왜인 과부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습니다. 지난날에 울릉도에서 살던 노비들과 총각들이 대해국으로 들어온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 노비들이 왜인 과부들과 혼례를 치르고 그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부인에게 왜인 사내들이 과부들의 집에 침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선인 사내들이 왜인들을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려다가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요바이를 위해 마을로 들어오려는 왜인들을 같은 마을에 사는 조선인들이 저지하다가 싸움이 붙은 것은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듣다보니 상황이 좀 이상한 것 같다. 일본에서도 여인이 요바이를 위해 찾아온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부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 아니지 여인들만 있는 집에 그것도 밤중에 사내들이 침입했다면 여인들은 그 자체로 공포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관계를 가지자는 사내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리고 요바이를 하겠다고 여인들의 집으로 들어간 사내들도 좀 이상한데. 대해국의 주민들 중에서 여인들의 수가 사내들 보다 더 많은데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사내들도 있었나?’
여러 가지로 이상하다는 생각이든 나는 조천군에게 자세한 상황을 물었다.
“요바이를 위해 여인들의 집으로 찾아간 사내들은 혼인을 하지 않은 자들이었나? 그리고 여인들은 사내들이 집으로 찾아왔을 때 저항하지 않고 동침하였다고 하던가?”
“왜인 사내들 중에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지만 혼인을 해서 부인이 있는 자들도 있었사옵니다. 그리고 여인들이 순순히 사내들과 동침한 경우도 있었지만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내를 막으려고 했었던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뭐야. 부인도 있는 놈들이 밤바다 여인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서 여인들을 겁탈했단 말이잖아.’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아직 옥에 갇혀있는 왜인 사내들과 왜인들과 싸운 조선인들도 잡아올 것을 명령하고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왜인과 조선인 사내들을 심문하면서 순순히 자백하지 않는 놈들에게는 곤장을 쳤고 차가운 물을 가득 채운 물동이에 머리를 밀어 넣었다. 곤장과 물동이 덕분에 모든 사정을 알 수 있었고 사내들에게 요바이를 당한 여인들도 관아로 불러들여 사내들이 자백한 내용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모든 조사가 끝난 후 조사 결과를 확인한 나는 기가 막혔다.
요바이를 핑계로 여인들을 겁탈했던 놈들은 모두 히라도에서 구매한 노예들이었다. 노비나 노예 신분으로 대해국에 들어온 자들은 1년간은 다른 노비들과 같이 집단으로 생활한다. 병사들의 감독 하에 시키는 일을 시키거나 병사로 선발된 자 들은 다른 신병들과 함께 훈련을 받는다. 이렇게 1년을 보내고 대해국에 적응이 된 것으로 보이면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지원했다. 마음에 드는 여인과 혼인하겠다고 하면 작은 초가집과 살림살이를 지원해 주었고 장가를 가지 않았어도 대해국에서 생활한지 1년이 지난 자들은 병사들의 관리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대해국에는 사내들 보다 여인들의 수가 더 많았으니 사내들이 장가를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대해국에서 1년 이상 노예 생활을 하다가 자유롭게 생활하게 되자 바로 요바이라며 한 밤중에 여인들이 사는 집에 침입한 것이다.
‘죄인들 중에는 심지어 혼인을 한 놈들도 있었다. 아내가 있는 놈들도 요바이라는 명목으로 여인들이 사는 집에 침범했구나. 과부들뿐만 아니라 아직 혼인하지 않은 처녀들이 사는 집에 침범한 적도 있었고 여인이 거부했어도 위협하거나 강제로 집안에 들어가 겁탈했다니 기가 막히다.’
사건의 조사를 끝낸 나는 당장 대해국에서 요바이를 금지할 것을 포고하고 죄인들 중에서 요바이를 주도한 자와 요바이를 거부하는 여인도 겁탈한 자들을 선별해 처형할 것을 명령했다. 대해국에서 처음 실행된 처형이었다. 죄인들을 처형한 후 관아로 돌아온 나는 이번 일에 대해 고민했다.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만 올랐지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나라를 운영한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라를 세우고 아직 국법도 제정하지 않았고 조선인인 조선인대로 왜인들은 왜인대로 각자 제멋대로 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 큰일 나겠다.”
그동안 내정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외부와의 교역은 가능한 부하들에게 맞기고 이제부터라도 대해국의 내정과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집중할 생각을 했다. 외부와의 교역에서 물러서고 대해국의 내정에 집중하는 것도 막상 해보니 큰 어려움이 없었다. 어차피 히라도와의 무역을 제외한 외부와의 교역은 대부분 담당자들이 정해져 있었고 히라도와의 무역은 마쓰라 다카노부가 알아서 챙겨주고 있었으니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크게 어려울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우선은 국법부터 제정해야겠다. 나라에 법이 없으니 죄를 지어도 처벌할 근거도 없는 셈이구나. 국가들이 율령을 반포하고 나서 발전한 이유가 있었구나.”
국법을 제정할 생각을 하니 문제가 있었다.
“법을 만드는 일을 누구에게 맡기느냐가 문제인데.”
대해국은 지금까지 전문적인 문관이 한명도 없었다. 나와 함께 전라좌수영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모두 무관이었고 나 역시 무관이었다. 그나마 시마즈 도시히사가 영주를 보좌했었으니
문관의 역할도 했었겠지만 도시히사도 법을 만드는 것보다는 군사들을 지휘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법을 만드는 일을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하던 나는 대해국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래 정옥남이 있었지. 과거에 급제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에서 선비였으니 공부는 많이 했겠지. 국법의 제정이 시간을 다투는 일은 아니니 천천히 해보라고 맡겨야겠다.”
정옥남은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하면서 받은 육신의 상처와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일로 마음에도 큰 상처를 입어 대해국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폐인의 상태였지만 의원들의 간호와 보살핌으로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다. 자신을 간호하던 일본인 의원의 딸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었으니 나는 정옥남에게 국법을 만드는 일을 맡길 것을 생각했다.
8월이 되자 다시 선단들이 대해국의 함관항에서 출항했다. 변함없이 울릉도와 연해주로 선단을 보냈고 히라도로 가는 선단은 강영남에게 맡겼다. 전선을 몰고 동해도 해안을 돌며 아이누인들에게서 철제도구와 생필품을 팔아 모피와 사금을 구해오던 강영남에게 10여척의 선단을 맡겼으니 강영남에게 갑자기 큰일을 맡긴 셈이었다. 그러나 낯선 바다를 전선으로 다니며 동해도의 해안가를 누볐고 아이누인들과 거래를 했었던 강영남의 성실함을 믿은 나는 강영남에게 히라도 무역의 전권을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