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81화 (181/223)

< 한명련 >

“국법을 만들라는 말씀이십니까?”

“정공께서 도와주시오. 아직까지 제대로 된 국법이 없다보니 백성들이 제멋대로 살고 있소이다.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옳고 그른 것의 기준으로 삼을 국법이 필요하니

도와주시오.”

국법을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에 정옥남은 예상외로 난색을 표했다. 이제는 건강을 회복한 모습을 보인 정옥남은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정공도 아시다 시피 대해국은 인재가 부족하오. 과인을 비롯해 대해국의 중신들은 무관출신 들이라. 이런 일에 익숙하지 못하니 정공께 부탁을 드리겠소.”

내가 이렇게 까지 나오자 정옥남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승낙했다.

“소인의 실력이 미천하여 전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두렵지만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정공.”

“일을 시작하자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하.”

“무엇이든지 말해보시오.”

“우선 조선의 법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소인을 도와줄 사람이 두세 명 필요합니다. 글을 아는 자들로 말입니다.”

“구해드리도록 하겠소. 조선에서 법전을 구하는데 두세 달은 걸릴 것이니 기다리고 계시오. 법전이 도착하는 대로 정공의 일을 도울 사람들과 함께 보내드리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국법을 제정하는 일을 정옥남에게 맡기는데 성공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옥남의 집을 떠났다. 무역을 위해 선단들이 출항한 후 나는 대해국에 남아 내정을 살피고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일과 무기의 개발 및 생산을 보고 받고 때에 다라 지시도 내렸다. 내가 내정을 담당하면서 조천군은 전선의 건조와 선원들의 훈련에만 신경 쓸 수 있었고 조천군은 업무가 줄어들자 얼굴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세총(洗銃)” 

“세총”

조교가 외치자 훈련병들은 조교를 따라 외치며 삭장(꽂을대) 끝에 무명 조각을 말아서 총신 안에 밀어 넣었다. 총신 안에 들어간 삭장을 한 바퀴 돌린 후 삭장을 다시 꺼냈다가 밀어 넣는 동작을 2, 3회 반복해서 총신 안에 끼어있는 화약 찌꺼기들을 닦아냈다. 

“화약(火藥)”

조교가 외치자 훈련병들은 다시 따라서 외쳤다.

“화약”

총신에서 삭장을 꺼낸 훈련병들은 자신의 앞에 있는 작은 무명 주머니를 열었다. 주머니 안에는 총탄과 함께 화약이 들어있었다. 훈련병들은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잡고 화약을 총신 안에 부었다. 화약을 부은 후 총탄이 든 무명 주머니를 통째로 총신 안에 넣었다. 

“삭장(槊杖)”

“삭장”

조교를 따라 외친 훈련병들은 삭장으로 총신 안에 넣은 총탄을 밀어 넣었다.

“개화문(開火門)“ 

“개화문“ 

조교를 따라 외친 훈련병들은 점화용 화약을 넣는 화문을 열었다. 

“선약(線藥)”

“선약”

이번에는 화문에 점화용 화약을 부었다. 점화용 화약은 나무로 된 작은 화약통에 1회 발사분이 소분되어 있어서 훈련병들은 화약통의 뚜껑을 열고 화약을 화문에 부으면 그만이었다.

“폐화문(閉火門)”

“폐화문”

훈련병들은 화문에 들어간 화약이 화승총 내부로 흘러들어가도록 화문을 살짝 흔들어준 다음에 화문을 닫았다.

“화승(火繩)”

“화승”

훈련병들은 용두(화문에 불을 붙여주는 금속 부분) 화승(심지)를 끼웠다. 훈련병들이 화승총에 화승을 끼우자 조교들은 훈련병들이 장전한 화승총의 상태를 확인했다. 모든 화승총을 확인한 후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조교들은 훈련병들을 사격장 앞에 도열시켰다. 

“1번에서부터 10번까지 앞으로 나와.”

조교의 명령에 10명의 훈련병이 앞으로 나왔다. 조교들은 훈련병들을 과녁 앞에 정렬하게 한 후 훈련병들이 들고 있는 총에 달린 화승(심지)에 불을 붙였다.

“개화문(開火門)”

“개화문”

조교의 명령이 떨어지자 훈련병들은 화승총의 화문을 열었다.

“겨냥”

“겨냥”

훈련병들은 화승총을 들고 정면의 과녁을 조준했다.

“발사”

발사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탕” 

화승총에서는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화약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유황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던 훈련병들은 잠시 후 연기가 걷히자 정면의 과녁을 바라보았다. 과녁에 명중시켰는지 명중시키지 못했는지에 따라서 오후시간이 휴식 시간이 될 수도 아니면 추가 훈련시간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훈련병들은 자신이 쏜 총탄이 과녁에 명중했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잠시 후 조교들은 과녁을 확인한 후 명중 여부를 확인했다. 

“1번에서 10번 까지 모두 명중했다. 합격.”

“이야~”

과녁을 명중시킨 훈련병들은 화승총을 껴안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고 아직 사격을 하지 않은 훈련병들은 그들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사격을 마친 훈련병들은 자리에 앉아 대기하도록 한다.”

“예~”

조교의 명령에 힘차게 대답한 한명련은 아직 유황냄새가 가시지 않은 화승총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불과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화승총 같은 병장기는 만져본 적도 없는 한명련이었지만 지난 한달 간의 훈련 덕분에 이제는 제법 화승총을 다루는 것도 익숙해 졌다. 자리에 앉아 다른 훈련병들이 사격을 하는 장면을 바라보던 한명련은 지금도 자신이 군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한달 전만 해도 내가 군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화승총을 다루는 진짜 군사가 되었구나. 인생은 정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한명련을 군대에 집어넣은 것은 바로 나였다. 조천군에게 여인들이 겁탈당한 사건을 보고받은 이미 잡혀있던 죄인들을 곤장으로 두들겼을 뿐만 아니라 입과 코와 귀로 차가운 물을 먹이며 철저하게 사건을 조사했고 죄인들이 단순히 요바이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거부하는 여인들도 위협해서 강제로 겁탈한 사실을 밝혀냈다. 강제로 여인들을 겁탈한 죄인들 중에서 주동자급 5명은 처형할 것을 명령했고 나머지 9명은 유황광산으로 보내 평생 유황을 채취하는 작업에 투입할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죄인들에 대한 판결을 내린 후 나는 죄인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저지했었던 울릉도 출신 사내들에게도 벌을 내릴 생각이었다. 사내들이 죄인들을 저지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여인들이 겁탈당한 사실을 알고도 관아에 보고하지 않은 잘못을 물어 사내들에게는 그리 무겁지 않은 벌을 내릴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는 사내들에 대한 보고를 받던 중 한명련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한명련이라고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그 한명련이 맞을까. 내가 아는 한명련은 황해도 출신이고 노비가 아닌 천민에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했는데 어떻게 울릉도 까지 갔을까?'

나는 울릉도에서 노비로 지냈다던 한명련이 내가 알고 있는 한명련이 맞을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집안이 가난하고 흉년이 들면 천민이 아닌 평민들도 노비가 될수 있는 일이고 정여립이 강릉에서 울릉도로 노비들과 물품들을 보냈을 때는 황해도와 평안도에 흉년이든 데다가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이니 황해도와 평안도의 천민들이 노비가 되서 강원도 까지 팔려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야.’

한명련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운 의병장이었다. 천민출신이었던 한명련은 힘이 장사였고 말을 타고 달리고 칼을 쓰는 것도 능했다고 하며 선봉으로 나서서 싸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맹장이었다. 천민 출신이었지만 전공을 인정받아 경상 우도의 별장에 제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군의 제독 마귀는 한명련을 이순신, 정기룡, 권율과 함께 조선에서 제일 뛰어난 장수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이 한명련이 내가 알고 있는 맹장 한명련이라면 그냥 놔둘 수 없지. 재능은 일찍 발굴할수록 좋은 법.’

나는 한명련과 함께 죄인들과 싸웠던 사내들을 모조리 군대에 입대 시켜버렸다. 범죄가 발생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관아에 알리지 않고 사사로이 해결하려고 한 죄를 물어 3년간 군대에서 복무할 것을 명령했다. 갑자기 군대에 들어가라는 명령에 한명련을 비롯한 사내들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지만 한달 간의 훈련을 마친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집에서 병영으로 출퇴근 하는 것이 가능하고 퇴근 후에는 부인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지옥에서 천당으로 돌아온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명련은 병영에서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었고 이번 사격훈련이 한달 간의 신병훈련의 마지막 과정이었기에 한명련과 마을 사내들은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8월 한달 동안 내가 대해국의 내정과 군사들의 훈련에만 신경 쓰고 무역에 나서지 않았어도 외부와의 교역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강영남 대신 전라좌수군 출신 임광정이 지휘한 전선은 변함없이 동해도의 인근 바다를 누비며 해안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누인들에게서 철제 농기구와 식칼 등의 도구들을 판매하고 그 대금으로 모피와 사금을 받아왔고 박언필이 지휘하는 전선은 울릉도에서 대동계가 보낸 면포와 종이(한지) 그리고 대해국으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유민들을 수송해 왔고 박언필은 이번에도 여진족과의 교역을 통해 말과 모피를 구매해 왔다.

무엇보다 히라도에 처음 다녀온 강영남은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 히라도와의 교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히라도에서 늘 구매했던 철과 구리, 유황은 물론 노예 2800명(사내 1100명, 여인 1200명, 어린아이 500명)과 보리를 5000섬을 구매해 돌아왔다. 나는 무사히 히라도에 다녀온 강영남을 비롯해 수고한 장수들의 노고를 치하한 후 술과 음식을 준비하고 시마즈 도시히사 비롯한 주요 장수들을 모두 소집해 잔치를 열어주었다. 

필요한 생필품을 자급자족할 수 없어 조선으로 히라도로 연해주로 필요한 상품들을 구하기 위해 선단을 몰고 다니느라 대해국의 주요 장수들이 한달의 절반 이상을 배에서 보내고 있었고 배를 타고 나가지는 않았지만 시마즈 도시하사 역시 대해국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벌써 6개월째 황무지를 누비고 있었다. 나는 장수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고 직접 장수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안주를 권하면서 내가 가진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모처럼의 잔치에 장수들은 즐겁게 먹고 마시며 즐긴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장수들의 잔을 따라주며 답례로 잔을 받은 나는 꽤 많은 술을 마셨고 잔치가 끝나자 몸에 술기운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남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온 몸에 힘을 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간신히 내 방으로 돌아왔다.

“거기 누구 없느냐? 목이 마르구나. 물을 가져 오거라.”

왕위에 올랐지만 나는 따로 궁궐을 짓지 않았다. 동해도에 평생 머무를 생각도 아니었고 궁궐을 짓는데 인력과 재물과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깝게 생각된 나는 처음 함관을 점령했을 때 거점으로 쓰기 위해 세운 요새 안에 지은 관아를 계속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었고 한동안은 관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생활했었다. 동해도에 어머니와 정실인 이씨 부인이 도착하자 그들이 지낼 집이 필요해졌고 관아 옆에 기와집을 한 채 지어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내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취기를 참으며 간신히 사택으로 들어온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기 무섭게 물을 찾았다. 집안에는 어머니와 이씨부인 두 번째 부인인 헤이메 외에도 헤이메를 따라온 3명의 소녀들과  알폰스 비에이라가 내게 선물로 보낸 6명의 노예가 하녀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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