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84화 (184/223)

< 컬버린 >

“콰앙~”   “콰앙~”

요란한 포성이 울리며 공 모양의 포탄이 하늘로 날아갔다. 컬버린에서 발사된 포탄은 2km 이상을 날아가 산에 명중했다.

“쾅”   “쾅”  

“와르르~”

쇳덩어리로 된 포탄이 명중하자 바위가 그대로 부셔져 내렸다. 

“훌륭하다. 아주 훌륭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컬버린을 바라보며 외치자 조천군도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정말 대단한 위력이옵니다. 전하. 단방에 바위를 부셔버리다니 정말 대단한 위력이옵니다.”

“전하. 위력도 사정거리도 대단하옵니다. 저런 대포라면 총병들이 방포하기 전에 컬버린으로 총병들을 제압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사옵니다. 전하.”

실전 경험이 풍부한 시마즈 도시히사도 컬버린의 위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컬버린의 시험사격 결과에 만족하자 가스파르 코엘료는 컬버린의 성능을 자랑하듯이 말했다.

“이번에는 안전을 고려해 화약을 양을 조절해 발사하였습니다. 실제 전장에서는 이번에 발사한 것 보다 2배 이상의 화약을 넣고 발사하는 것도 가능하며 사정거리도 최대 2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전하.”

최대 사정거리가 4km에 달한다는 말에 나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명국은 물론 조선에서도 홍이포가 유명했구나. 현자총통의 최대 사정거리가 2000보(2400m)인데 컬버린의 최대 사정거리는 4km라니 이정도 위력에 그 정도 사정거리라면 무거워도 전장에 끌고 갈만 하다.’

컬버린의 성능에 만족한 나는 코엘료에게 말했다.

“정말 수고 많았네. 몬테로와 빌리노에게도 수고했다고 전해주게.”

“영광이옵니다. 전하.”

히라도와 연해주 그리고 울릉도로 선단이 출항한 후 급한 일이 끝나자 나는 마카오에서 구매한 컬버린의 성능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가스파르 코엘료를 통해 몬테로와 빌리노에게 시험사격을 준비할 것을 명령한 나는 조천군을 비롯해 대해국에 남아있는 무장들을 모두 소집했다. 마침 시마즈 도시히사도 목표대로 마을과 대로를 건설하고 곧 귀환할 예정이었기에 도시히사에게도 서둘러서 돌아올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대해국의 주요 무장들 앞에서 몬테로와 빌리노는 대해국의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컬버린의 시험사격을 준비했다. 

이들은 숙련된 포수인 동시에 직접 대포를 제작하는 장인이었던 탓에 마카오에서 대해국으로 올 때부터 컬버린만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컬버린을 수선하고 정비할 도구 일체는 물론 컬버린의 포탄과 마카오에서 사용하던 화약까지 가져왔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나는 구하기 어려운 고급인력이 대해국으로 왔다고 확신했다. 몬테로와 빌리노는 내가 명령한 기한에 늦지 않게 시험사격 준비를 마쳤고 능숙한 포수답게 스스로 컬버린에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고 발포했다.

“정말 대단한 위력이다. 대포가 크고 무거워 이동시키는 것이 힘들고 방포 후 다시 장전하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지만 이정도의 위력과 사정거리라면 그 모든 단점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정말 대단한 위력이옵니다. 전하. 사정거리도 오늘 본 거리의 2배 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컬버린을 장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아군이 컬버린으로 무장한다면 적군의 성과 요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옵니다.”

컬버린의 위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조천군은 컬버린을 도입하는 것에 찬성했고 공성전의 경험이 풍부한 시마즈 도시히사 역시 컬버린으로 무장하는데 찬성했다.

“오늘 시험사격을 한 것과 같은 컬버린을 대해국에서 제작할 수 있겠느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구해줄 것이다.”

코엘료의 통역으로 내 질문을 전해들은 몬테로와 빌리노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전하. 당장은 곤란하다고 합니다. 컬버린을 제작할 수 있을 규모의 공방을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합니다.

코엘료가 몬테로와 빌리노의 대답을 일본어로 전해주자 나는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지으며 다시 물었다.

“공방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도 구해줄 것이며 얼마든지 일할 사람들을 보내줄 것이다. 올해 안에 공방을 건설할 수 있겠느냐?”

이번 질문도 코엘료가 몬테로와 빌리노에게 포르투갈어로 물었고 다시 그들의 대답을 일본어로 내게 전해주었다.

“일할 사람들과 필요한 자재만 충분하다면 올해 안에 공방을 건설하고 내년부터는 컬버린을 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하.”

“좋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구해 줄 것이다. 내년 안에 50문 이상의 컬버린을 제작할 수 있겠느냐?”

내 질문을 들은 코엘료는 몬테로와 빌리노에게 포르투갈어로 내 질문을 전달했고 그들의 대답을 들은 후 내게 대답했다.

“컬버린을 제작한 재료와 일할 사람들만 충분하면 50문은 이상을 제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코엘료의 대답을 들은 나는 신이 나서 외쳤다.

“좋다. 오늘 수고한 몬테로와 빌리노에게 은 50냥씩을 내릴 것이다. 그대들은 내일부터 당장 공방을 건설하도록 하라.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구해줄 것이며 일꾼들은 100명이라도 보내줄 것이다.” 

은을 내리겠다는 말을 전해들은 몬테로와 빌리노는 내게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경인년(1590년) 9월 18일 히라도 

선단을 이끌고 무사히 히라도에 도착한 강영남은 마쓰라 다카노부를 찾아가 인사를 하고 내가 보낸 서신과 선물을 전달했다. 서신과 선물을 전해 받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천천히 서신을 읽은 후 강영남에게 물었다.

“아들이 주문한 상품들과 노예들은 이전과 같이 준비해 두었으니 이곳을 떠날 때 가져가도록 하게. 노예들은 이전보다 수가 줄어들기는 했어도 그중에서 건강한 놈들로 준비해 두었으니 확인하고 데려가도록 하고 아들이 보낸 서신을 보니 내게 줄 것이 있을 텐데?”

다카노부의 질문에 강영남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금 6000냥을 가져왔습니다.”

금을 6000냥이나 가져왔다는 말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은 나날이 부자가 되어가는군. 좋아 금을 가져오게 은으로 환전해 주지.”

“은 얼마로 환전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강영남이 조심스럽게 묻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건방지기는 네 주인은 내 아들이다. 설마 애비가 돼서 아들을 속일까. 은 7만2000냥을 내줄 것이니. 당장 금을 가져오너라.”

“실례를 범했습니다. 다카노부공. 금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마쓰라 다카노부를 아비지의 예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 강영남은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지만 다카노부는 이미 기분이 상한 후였다.

“건방진 놈. 내가 돈 욕심에 금을 은으로 환전해 주는 줄 아느냐. 아들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은을 내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네놈이 아들의 부하이기에 무사한 줄 알거라.”

마쓰라 다카노부는 강영남에게 호통을 쳤고 강영남은 황급히 갤리온으로 돌아가 황금이든 상자들을 들고 다카노부의 저택을 찾아왔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상자 안의 금괴들을 확인하고는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금괴들을 모두 확인한 다카노부는 강영남에게 말했다.

“네가 네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이해하겠지만 이번에는 너무 경솔했다. 더구나 나는 네 주인이 아버지로 섬기는 있는 몸이다. 주인의 아버지의 심기를 상하게 해서 네게 좋을 것이 있겠느냐.” 

“죄송합니다. 다카노부공 소인이 실례를 범했습니다.”

강영남은 다시 한번 사과를 했지만 마쓰라 다카노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내일은 가져온 자기들을 판매하겠지. 자기를 판매한 대금의 수수료는 네가 가지고 올 것 없다. 부하들을 보내 거라. 아니 내가 부하들을 보낼 테니. 수수료와 이곳에서 구매하는 상품들의 대금은 내 부하들에게 보내 거라. 노예들은 오늘저녁 네가 확인하거나 네 부하들을 보내 확인하도록 하고 은은 이틀 후 노예들과 상품들을 보낼 때 함께 항구로 보낼 것이니 가져가도록 하라. 이번에는 네 얼굴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나와 마주치지 않도록 해라.”

더 이상 얼굴을 보이지 말라는 다카노부의 말에 강영남은 그럴 수 없다고 외쳤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네놈이 제정신이냐?”

마쓰라 다카노부는 고함을 질렀고 다카노부의 목소리가 저택에 울리자 무사들이 일본도를 뽑아들고 강영남의 일행을 포위했다. 강영남은 다카노부 성난 목소리도 칼을 뽑아든 무사들도 개의치 않고 다카노부 앞에 무릎을 꿇고 외쳤다.

“소인 이대원 장군님의 부하 강영남이옵니다. 소인은 장군님 덕분에 조카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뿐인 여동생도 구할 수 있었사옵니다. 소인은 장군님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한목숨 아깝지 않은 놈입니다. 그런 소인이 장군님께서 아버지로 섬기시는 다카노부공의 심기를 상하게 하였으니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이대로는 떠날 수 없사옵니다. 다카노부공 소인의 목숨은 나리께 달려 있사오니 소인을 용서해 주시던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여주시옵소서.”

강영남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제 놈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해놓고는 자신을 용서하던지 아니면 차라리 죽여 달라니.’  

평생을 상인으로 영주로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 본 다카노부였지만 강영남의 이런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놈이 제 주인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같군. 이전에 왔던 사화동도 그렇고 아들의 부하들은 충성심이 대단하구나.’

강영남이 자신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마쓰라 다카노부는 강영남의 행동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머리 굴리며 말하는 놈은 아니고 그 정도 머리가 있는 놈도 아닌 것 같으니 상인으로써는 실격이다. 하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한 놈인 것 같군.’

강영남에 대한 판단을 끝낸 다카노부는 강영남에게 말했다.

“네놈이 죽여 달라고 해도 내 입장에서는 아들의 부하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네놈을 그냥 용서해 주기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그러니 네 놈을 어찌해야겠느냐?”

“나리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다카노부공.”

강영남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강영남을 비웃듯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좋다. 그런 네놈이 살려줄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살려주도록 하겠다. 그러나 네놈이 살려줄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지 못하면 네놈을 죽이든지 노예로 부려먹든지 내 마음대로 하겠다. 어떻게 하겠느냐?”

강영남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소인을 죽이시던지 용서하시던지 다카노부공의 처분을 따를 뿐입니다.”

“좋다. 네놈이 진정한 사내인지 입만 나불대는 놈인지 확인하도록 하겠다. 네놈이 진정한 사내라면 살 것이오. 사내답지도 못하면서 입만 나불대는 놈이라면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좋습니다. 소인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 것입니다.”

강영남의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백은 제법 있는 놈이군.’

“사내대장부가 이 세상에서 큰일을 하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고 그릇을 갖춰야 하지 않겠느냐. 큰일을 하려면 문무를 겸비해야 할 것이며 주위의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네놈의 능력을 보는 것으로 네놈이 과연 사내인지 입만 나불대는 백면서생인지 확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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