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섬 >
사내대장부라면 능력을 증명해 보이라는 마쓰라 다카노부의 말에 강영남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소인은 장군님을 만나기전 까지 일반 병졸이었습니다. 소인은 학문도 무예도 그리 뛰어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사내대장부로써의 배포와 그릇을 보이는 것은 자신이 있사옵니다.”
강영남의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강영남이 말단 병졸 출신이라고 말하자 강영남을 다시 보았다.
‘아들이 나에게 아무나 보냈을 리는 없는데. 말단 병졸에서부터 시작해서 선단을 지휘하는 자리에 까지 올랐다는 말인가. 보기보다 대단한 놈이로구나.’
“그래. 어떻게 네놈의 배포가 크고 그릇이 크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냐?”
다카노부의 질문에 강영남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사내들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술이 빠질 수가 있겠사옵니까? 사내대장부라면 밤을 세워가며 술을 마시고도 취한 기색을 보이자 않아야 할 것입니다. 소인 술이라면 자신이 있사옵니다.”
남자들은 주량이 센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술이 약한 것은 나약하다고 여기는 시대였다. 강영남이 술에 자신이 있다고 하자. 다카노부의 부하들도 자신이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강영남을 비웃었다.
“좋다. 사내들이 같이 큰일을 하려면 술을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 필요도 있는 법이니 네가 주량으로 내 부하들을 이긴다면 인정해 주마.”
“감사합니다. 다카노부공.”
마쓰라 다카노부의 명령에 따라 곧 술상이 차려졌고 다카노부의 부하들 중에 술고래로 유명한 무사 3명이 강영남의 맞은편에 앉았다. 술상을 받은 강영남은 술잔과 술병을 보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카노부공 소인은 오늘 전쟁을 치르는 심정으로 술을 마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술잔이 이렇게 작으니 맥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술병이 이렇게 작으니 금방 술병이 빌 것이고 술병을 비울 때 마다 술을 기다려야 하니 이것도 맥 빠지는 일입니다.”
강영남의 말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강영남의 배짱에 어이가 없었다.
“좋다. 네 소원대로 큰 잔에 술을 줄 것이니 어디 원 없이 마셔보아라.”
마쓰라 다카노부는 술잔을 대신해 나무 되를 가져올 것을 명령했고 술병을 대신해 술통을 통째로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술잔 대신 되를 받은 강영남은 그제 서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고 나무 되에 사케를 가득 따라주자 단숨에 들이마셨다. 단숨에 나무 되에 담긴 술을 비운 강영남은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말했다.
“오늘은 소인이 다카노부공께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다카노부공께 한잔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다카노부는 순순히 강영남에게 잔을 내밀었고 강영남은 상위에 있는 병을 들어 다카노부의 잔에 술을 따랐다. 다카노부의 잔을 채운 강영남은 다시 되를 들고 두 번째 잔을 청했고 나무 되에 다시 술이 채워졌다. 다카노부가 잔을 비우자 강영남은 나무 되에 가득 담긴 술을 단숨에 마셨고 마쓰라 다카노부와 히라도의 무사들은 그런 강용남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경인년(1590년) 9월 20일 대해국
컬버린의 시험 사격이 끝난 후 컬버린의 성능에 만족한 나는 컬버린을 제작할 공방을 건설할 것을 명령한 후 마카오에서 대해국으로 건너온 성직자들과 의사 그리고 건축가에게도 관심이 갔다.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나는 고민 끝에 가스파르 코엘료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안녕하셨소. 코엘료 신부.”
“하나님의 은혜와 전하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코엘료의 대답을 들은 나는 코엘료가 답답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의 일본이나 마카오에 비하면 대해국이나 동해도는 황무지 개척마을에 가깝지.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신부를 불렀소.”
“그러셨습니까. 전하.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아. 기대됩니다.”
나는 가스파르 코엘료가 루이스 프로이스 이상으로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서둘러서 말했다.
“신부와 함께 대해국으로 찾아오신 분들께 작은 선물을 드리겠소. 신부와 수녀들에게는 요새 옆에 작은 교회를 지어드리겠소. 예배당과 성직자들의 숙소로 쓸 수 있는 건물을 지어드릴 것이니 교회에서 생활하도록 하시오.”
교회를 지어주겠다는 말에 가스파르 코엘료는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하나님의 은혜가 늘 전하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내 선물은 교회뿐만이 아니오. 교회 옆에 병원도 지을 것이니. 그대와 함께 온 의사와 신부, 수녀들이 병원을 맡아주시오.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의약품이나 도구들은 필요한 만큼 요청하시오. 마카오를 오고가는 선단을 통해 구해주도록 하겠소.”
교회에 이어서 병원까지 지워주겠다고 하자 코엘료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교회와 병원을 짓는 것은 전문가에서 맡기는 것이 좋겠지. 그대와 함께 대해국으로 온 건축가에게 교회와 병원의 설계와 건축을 맡기도록 하겠소. 자재는 최대한 대해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하도록 하고 일할 사람들은 얼마든지 지원하도록 하겠소. 건축가에게는 코엘료 신부 그대가 전해주시오.”
내말이 끝나자 코엘료는 이게 꿈이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정말 화통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시원하게 일을 진행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오. 코엘료 신부 그대와 마카오에서 온 사람들이 대해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지원할 것이오. 그러나 만일 그대들이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고 하거나 대해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든다면 나는 언제라도 그대들을 추방할 것이오.”
“물론입니다. 전하. 저희는 대해국에 온 이유를 항상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코엘료 신부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 있소.”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전하.”
“대해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요. 지금도 마카오와 히라도로 선단을 보냈고 조선소에서는 배를 건조하고 있소. 그러나 대해국에는 지금 건조하고 있는 배 보다 더 크고 튼튼한 배가 필요하오. 마카오에도 조선소가 있다고 들었소. 포르투갈에서 온 조선 기술자들을 불러주시오.”
내말을 들은 코엘료는 웃으며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욕심도 많으십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갤리온의 건조를 지휘하고 건조의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조선 기술자는 마카오에서도 귀한대접을 받는 고급인력입니다. 대해국으로 불러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번 기회에 전하에게 저희 예수회의 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가스파르 코엘료가 순순히 조선 기술자를 불러오겠다고 하자 나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쉽지는 않다는 대답을 할 줄 알았는데 쉽지는 않겠지만 데려올 수 있다니 예수회의 코엘료의 능력이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큰 것 같구나.’
코엘료가 기술자들을 불러준다는 데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이미 사화동이 이끄는 선단은 마카오를 향해 출항했지만 따로 전선을 보내 코엘료 신부의 서신을 마카오로 전달한 생각을 했다.
“대단히 고맙소. 코엘료 신부 3일 후에 마카오로 가는 배를 출발할 것이니 그때까지 마카오로 보내는 서신을 써주시오.”
“알겠습니다. 전하. 전하의 은혜에 저와 함께 온 일행들은 늘 감사하고 있사옵니다.”
가스파르 코엘료가 정중하게 인사를 마친 후 방을 나가자 나는 곧바로 조천군과 시마즈 도시히사를 불렀다. 조천군과 시마즈 도시히사가 도착하는 동안 나는 내가 그린 일본 지도와 코엘료가 가져온 지도와 해도들을 탁자위에 펼쳐놓고 지도와 해도들을 살펴보았다.
“코엘료가 가져온 지도와 해도는 모두 한 장씩이니 화공을 불러서 몇 장씩 더 그려야겠다. 한 벌은 내가 가지고 있고 화공이 그린 지도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군사작전을 계획할 때 작전지역의 지도는 필수였다. 지리도 모르는 곳에 군사들을 투입할 수는 없었다. 일본의 지리와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이가의 닌자들을 고용할 생각이었지만 코엘료가 지도를 가져온 덕분에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9월이니 이케다 마사이에가 곧 돌아오거나 소식을 전해오겠구나. 이가의 닌자들은 고용했겠지. 돈이 목적인 집단이고 이케다 마사이에가 자신했으니 닌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리를 파악하기 위한 지도는 확보했으니 닌자들을 통해서는 사도 섬의 지리와 이와미 은광에 대한 정보를 의뢰하기로 하자.”
코엘료가 지도를 가져온 덕분에 일본의 지리와 지형을 파악하는 것은 해결됐지만 나는 계획대로 이가의 닌자들을 고용할 생각이었다. 닌자들은 일본 내에 정보를 수집할 정보조직이 없는 나는 닌자들을 일본 내의 정보를 수집하고 히데요시의 동태를 파악하는데 동원할 생각이었다.
내가 지도를 보고 있는 동안 조천군과 시마즈 도시히사가 도착했다.
“바쁜 사람들을 불러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전하.
“장군들과 상의할 일이 있어서 불렀소.”
“말씀하십시오, 전하.”
나는 조천군과 시마즈 도시히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년 봄에 출병하려고 하오.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아니고 군사훈련을 겸해서 이곳을 공격할 생각이오.”
나는 탁자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에서 사도 섬을 가리켰다. 출병한다는 말에 조천군은 놀란 표정이었고 시마즈 도시히사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사도라는 섬이오. 혼마 가문이 통치하던 섬이지만 작년에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사도에 군사들을 상륙시켜 성주를 처형하고 섬을 점령했소.”
사도 섬을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점령했다는 말에 시마즈 도시히사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전하.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영토를 공격해서 좋을 것이 있겠습니까.”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일본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무장 중에 하나인 우에스기 겐신의 후계자였다. 우에스기 겐신은 죽고 없었지만 우에스기 겐신이 훈련시키고 지휘했던 에치고 군사들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들은 일본전체에 명성이 자자한 강병이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여러 가지 면에서 겐신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그가 거느리고 있는 에치고 군사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섬을 우에스기 카게카츠에게서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니 염려할 것 없소. 군사훈련 겸해서 섬에 군사를 상륙시키고 일시적으로 섬을 점령한 후 섬의 곡식과 재물 그리고 주민들을 대해국으로 이주시킬 것이오. 군사들이 훈련을 계속하고 있지만 실전보다 좋은 훈련은 없는 법이니 군사들에게 실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사도 섬을 공격하는 목적이오.”
사도 섬을 지배하기 위해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들의 훈련과 재물과 주민들을 잡아오는 것이 목적이라는 설명에 조천군과 시마즈 도시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인도 지금은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정면으로 출동할 생각이 없소. 차후에 히데요시와 전쟁이 벌어진다면 히데요시의 맹방인 우에스기 카게카츠와도 대결을 피할 수 없겠지만 지금 섣불리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건드려서 우리의 전력을 드러내고 군사들의 손실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