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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186화 (186/223)

< 사도 금광 이와미 은광 >

경인년(1590년) 10월 03일 히라도로 출항했던 선단이 대해국으로 돌아왔다. 강영남이 지휘하는 선단은 이번에도 철, 구리, 유황과 보리 그리고 노예들을 구매해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히라도에서 돌아온 강영남의 보고를 들은 나는 우선 강영남의 수고를 치하하였다.

“잘 다녀왔는가. 수고하였네.”

“감사하옵니다. 전하.”

“마카오로 가는 선단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가?”

“망망대해였지만 저희 선단 외에는 다른 배들이 보이지 않는 바다였으니 선단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선단을 찾는 것 보다는 평호도에서 환전한 은을 마카오로 가는 전선에 옮겨 싣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강영남은 이번에 히라도에서 금 6000냥을 은 7만 2000냥을 환전했다. 은 7만2000냥이면 2700kg이 넘는 무게였으니 바다에서 다른 전선으로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 이번에 수고가 많았네.”

“감사하옵니다. 전하. 그리고 이번에 소인이 마쓰라 다카노부공에게 실례를 범하였나이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마쓰라 다카노부공에게 실례를 범하였다니.”

강영남은 히라도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며 마쓰라 다카노부와 있었던 일과 나무 되에 술을 따라 마신 일까지 모든 일을 보고했다. 나무로 만든 되에 술을 따라 마셨다는 말을 들은 나는 기가 막혔다.

‘하신 탁주를 사발로 마시는 사람들이니 일본의 술잔이 작아 보이기는 했겠지. 그래도 그렇지 되에 술을 마시다니 탁주도 아닌 청주를 주었을 텐데.’

자신이 먼저 술을 마시고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한잔 따라주었다는 말을 들은 나는 강영남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나?”

“다행히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카노부공의 잔에 술을 한잔 따라드리고 소인도 술을 따라 한잔 더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카노부공의 무사들에게 소인이 마신 잔에 술을 따라 권하니 무사들도 한잔씩 마시고는 물러났습니다. 다카노부공 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 웃으시며 그만 돌아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강영남의 보고를 들은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다카노부공께도 어이가 없었겠구나. 술을 나무 되에 가득 따라 마시고는 다카노부의 무사들에게도 되에 술을 따라 주었다니. 다카노부공이나 무사들도 강영남의 주량에 놀란 모양이군.’

이야기로 듣기에는 웃기는 일이었지만 다카노부와의 관계가 악화될 뻔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히라도에 선단을 보낼 때 다카노부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강영남을 돌려보냈다.

“그래 알겠네. 이번 달 안에 히라도에 다시 선단을 보낼 것이니 우선은 며칠간 쉬고 다음 출항으로 준비하도록 하게.”

“예 전하. 명을 받들겠나이다.”

강영남이 물러나자 이가의 닌자들을 고용하기 위해 이가국으로 갔다가 이번 선단을 통해 돌아온 이케다 마사이에가 이가국에 다녀온 보고를 하기 위해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래 먼 길을 다녀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다녀온 일은 잘되었는가?”

“예. 전하 이가의 무리들과 계약을 맺는데 성공하였사옵니다.”

이케다 마사이에는 자신이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서 곱게 접힌 종이를 몇 장 꺼내놓았다.

“전하. 이가의 무리들이 내놓은 것입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이케다 마사이에가 꺼내놓은 종이를 펼치자 오사카 성과 사카이항으로 예상되는 항구를 그린 그림이 보였다. 

“오사카성과 사카이 항의 그림과 주변의 지형을 그린 지도들입니다. 히젠과 주고쿠 지역의 지도는 10월 안에 준비해 놓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정말 수고가 많았네.”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가 가져온 그림과 지도를 살펴본 후 마사이에에게 물었다.

“이가의 무리들과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하였는가?”

“전하께서 주신 500냥으로 이번에 가져온 지도와 히젠국 그리고 주고쿠 지역의 지도와 지형의 조사를 의뢰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정보를 더 의뢰할 경우에는 의뢰한 만큼 대금을 지불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케다 마사이에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 500냥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함부로 지도를 그리다가는 첩자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시대이니 히젠과 주고쿠 지역 그리고 오사카성과 사아키 항의 지도를 은 500냥으로 구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가스파르 코엘료 덕분에 히젠과 주고쿠 지역의 지도는 이미 손에 넣었지만 나는 아직도 정보가 필요했다.

“이가의 무리들과는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기로 하였는가?” 

“사카이에 이가 무리들이 정체를 숨기고 운영하는 여관이 있었습니다. 소인이 그곳으로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역시 정보를 사고파는 자들 답구나. 항구에 거점을 만들어 놓았다니.”

“예. 전하. 비록 돈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지만 움직이는 모습은 빈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케다 마사이에는 이가 닌자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들을 좋게 보고 있었다.

“일처리를 빈틈없이 한다니 잘됐군. 앞으로도 그들에게 시킬 일이 많을 것 같은데 말이야.”

“전하. 필요하신 정보가 더 있으십니까?”

이케다 마사이에의 물음에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방금 돌아온 사람에게 일을 시켜서 미안하지만 이번 달 안에 사카이에 다녀오게. 이가의 무리들에게 조사를 의뢰할 것이 있네.”

“전하께서 명하시기만 하시면 소인은 언제라도 따를 것입니다. 소인은 전하의 신하이니 언제라도 명만 내려주십시오. 전하.”

이케다 마사이에의 대답을 들은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명령을 내렸다.

“7일 안에 히라도로 가는 선단이 출항할 것이니 그 선단을 통해 히라도로 가도록 하게 히라도에서는 사카이로 가는 상선을 탑승하도록 하고 여비는 충분히 줄 것이니 가는 길에 고생하지 말고 최대한 편하게 가도록 하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가의 무리들에게는 이와미 광산에 대한 정보와 함께 광산의 지도와 광산에서 항구까지의 자세한 지도를 의뢰하도록 하고 사도 섬에 대한 정보도 의뢰하도록 하게 사도 섬의 지도와 함께 사도 섬 인근 바다의 해도도 구할 수 있으면 구매하겠다고 하게 정보에 대한 대금은 은 300냥을 제시하도록 하게.”

“예. 전하.”

이와미 광산과 사도 섬에 대한 정보를 의뢰하라는 명령에 이케다 마사이에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왜. 놀랐는가?”

내가 묻자 이케다 마사이에는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인도 이와미 광산이 은광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와미 광산은 일본 최대 규모의 은광이다. 1526년부터 은을 채굴하기 시작한 광산은 전성기인 1700년대에는 15톤 이상의 은을 채굴했을 정도로 막대한 채굴량을 자랑했고 1800년대 까지 은이 채굴됐으니 300년 이상 유지된 광산이었다. 

“이와미 은광을 모리 가문과 간파쿠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과인도 잘 알고 있다. 이와미 은광이 간파쿠의 자금줄인 것을 알고 있기에 정보를 수집하려는 것이니 너무 긴장할 필요 없다. 과인은 결코 경솔한 사람이 아니다.”

이케다 마사이에는 내게 절을 올리며 대답했다.

“알겠사옵니다. 전하.”

이케다 마사이에에게 몇 가지 명령을 더 내린 후 그만 들어가서 쉴 것을 명령했다. 이케다 마사이에가 내게 인사를 올리고 나간 후 나는 미사이에가 가져온 지도와 그림을 살펴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사도 섬과 이와미 은광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오랜만에 군사들을 출병시키겠구나.’

군사훈련을 겸해서 사도 섬을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외마 은광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다면 나는 이와미 은광에 대한 공격계획도 세울 생각이었다. 모리 데루모토와 도오툐미 히데요시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와미 은광은 모리 가문과 히데요시의 돈줄이었으며 히데요시는 이와미 은광에서 채굴된 은으로 임진왜란 당시 군자금을 해결하였으니 내가 보기에 이와미 은광은 중요한 전략목표였다. 

지도를 살펴보던 나는 내가 그린 일본 지도에서 사도 섬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계획대로 나고야 성의 공격에 성공하고 목표대로 히데요시의 정권이 붕괴된다면 일본은 다시 전국시대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영주들 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장 많은 영지와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석고 120만석의 영지와 이와미 은광을 보유하고 있는 모리 데루모토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고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에치고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다가 천혜의 요새인 가스가 산성을 거점으로 가지고 있으니 아무리 이에야스라도 이들을 굴복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다시 전국시대로 돌아간다면 사도 섬을 점령해서 직접 통치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이와미 은광은 중요한 전략목표였지만 나는 이와미 은광보다는 사도 섬에 욕심이 났다. 사도 섬은 섬의 면적이 거제도의 2배가 넘을 정도로 작지 않은 섬이었고 섬에서 벼농사가 가능할 정도로 토지가 비옥할 뿐만 아니라 아직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일본 최대의 금광이 있는 섬이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사도 섬을 점령한 것도 금 때문이었지. 사도 금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600년대로 알려져 있지만 우에스기 겐신도 사도 섬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보면 이미 이전부터 금은 채굴되고 있는 중이고 본격적으로 대형 금광이 개발된 것이 1600년대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미 은광은 일본이 본토인 혼슈에 있으니 우리 군사들이 은광을 점령해도 모리나 히데요시의 군사들이 은광을 되찾기 위해 몰려오겠지만 사도 섬은 에치고에 가까이 붙어있기는 해도 섬이니 사도 섬을 점령하고 왜선들이 접근하지만 못하게 하면 섬을 통치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사도 금광은 일본 최대의 금광으로 전성기에는 일 년에 400kg 이상의 금과 그 이상의 은을 채굴해 이와미 은광과 함께 에도막부의 자금줄을 담당했던 금광이었다. 1600년대에 본격적으로 금광이 개발되어 1989년에서야 채굴이 중단되었으니 이와미 은광 못지않은 300년 이상의 긴 채굴기간을 자랑하는 광산이고 갱도가 총 400km에 달하는 대형광산이었다. 

“금광과 은광만 봐도 조선과 일본의 상황을 비교해 볼 수 있지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영주들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금광과 은광을 개발했고 그 덕분에 광산을 개발하는 기술도 발전했고 사도 금광, 이와미 은광 같은 대형 광산이 개발됐지만 조선은 명나라가 금과 은을 요구할 것을 염려해 금광과 은광의 개발을 금지하고 조선에서는 금과 은이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조선과 일본의 국력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사도 금광과 이와미 은광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조선의 현실이 떠올라 속이 터지는 것 같았다. 조선에도 평안도와 충청도에 금광이 있었고 함경도와 경기도에는 은광이 있었지만 명나라가 금과 은을 조공으로 요구할 것을 염려해 금광과 은광을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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