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련장 >
가스파르 코엘료가 보낸 서신을 받은 루이스 프로이스가 사화동을 찾아온 것은 대해국의 선단이 마카오에 도착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화동은 반갑게 루이스 프로이스를 맞이했고 사화동과 인사를 나눈 루이스 프로이스는 가스파르 코엘료의 근황을 물었다.
“잘 지내고 계십니다. 전하께서 처음에는 코엘료 신부님이 대해국에 오신 것을 반가워하지 않으셨지만 지금은 코엘료 신부님께서 계속 대해국에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된 일이군. 아주 잘된 일이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야.”
루이스 프로이스가 손을 모아 기도하는 동안 사화동은 그런 프로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네가 전해준 서신의 내용을 알고 있는가?”
기도를 끝낸 프로이스 신부가 사화동에게 묻자 사화동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프로이스 신부는 서신의 내용을 사화동에게 말했다.
“전하께서 조선 기술자들과 함께 예수회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원하신다고 하네. 자료들은 내일이라도 전해줄 수 있지만 대해국으로 건너갈 조선 기술자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네. 마카오에는 얼마동안 머무를 계획인가?”
“이곳에 도착한지 3일 되었습니다. 늦어도 7일 후에는 출항할 계획입니다.”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프로이스 신부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린 후 사화동에게 말했다.
“조선 기술자들은 이번에 소개해주기 어렵지만 대해국에 도움이 될 인재들을 준비해 두었네. 전하께서 원하시는 자료들과 그들을 3일 후에 데려오도록 하겠네. 그들을 대해국으로 데려다주게.”
“아무 염려 마십시오. 신부님. 무사히 데려가겠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프로이스 신부는 사화동에게 물었다.
“다음에는 언제 마카오에 올 예정인가?”
“정확한 날짜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이번에 대해국으로 돌아가면 내년 봄에야 마카오에 다시 올 것 같습니다. 대해국 인근의 바다는 겨울에 특히 사납고 거칠어 겨울 동안에는 대해국에서 출항을 하지 않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프로이스 신부는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3일 후에 전하와 코엘료 신부에게 보내는 서신을 써올 것이네. 그리고 전하께 보내는 선물도 가져올 것이니 전하와 코엘료 신부에게 전해 주게.”
“아무 염려 마십시오.”
경인년(1590년) 10월 30일 대해국
요새 밖 평야지대에 수많은 막사들이 세워져 있었고 막사 앞에는 상의를 벗고 바지만 있는 사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금부터 힘차게 달린다. 알겠나.”
“예~”
“그럼 출발~”
출발을 외친 교관이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하자 상체를 벌거벗고 바지만 입은 사내들이 교관의 뒤를 따라 달렸다. 미리 돌을 치우고 나무뿌리를 뽑아서 발에 걸릴 것은 없는 연무장이었지만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사내들이 달리자 흙먼지가 올라왔다. 사내들은 흙먼지를 마시면서도 잠시도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앞에서 달리는 교관을 따라 400명의 사내들이 달리고 있었으니 발걸음을 늦추면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연무장을 달리는 사내들을 따라 달리고 있는 조교들이 매의 눈으로 사내들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과 부딪치거나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있는지 감시하고 있었으니 사내들 아니 노예병들은 흙먼지를 마시면서도 달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노예병들의 뒤를 따라 달리던 조선 출신 신병들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뒤에서 달리는 것이 앞에서 달리는 것보다 힘들도 뒤처지기 쉬었지만 왜인 노예병들이 앞장서서 달리고 조선인 신병들은 그 뒤를 따라 달리고 있었으니 연무장을 모두 달리고 멈췄을 때 조선인 신병들은 앞서 달리던 노예병들 보다 더 지쳐있었다. 신병들이 숨이 차서 힘들어 할 때도 단 한사람 한명련은 숨이 차보이지 않았다. 달리는 동안 흙먼지를 마신 탓에 목은 답답했지만 한명련은 그렇게 힘들어 보이는 기색 없이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자세 바로.”
“자세를 바로 한다.”
연무장을 달린 직후 노예병들과 신병들이 힘들어했지만 조교들은 신병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자세를 바로 할 것을 명령했다. 신병들은 조교들의 고함 소리에 자세를 바로 했다.
“1소대부터 따라온다.”
조교의 명령에 1소대 35명이 조교를 따라 이동했다. 이들은 가마솥에 끓인 물로 몸을 씻은
후 아침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물을 끓이고 있는 세면장 앞에 신병들이 도착하자 조교들은 신병들을 대야 앞에 서게 한 후 대야에 끓는 물 한 바가지와 찬물 한 바가지씩을 부어주었다. 신병들은 주어진 물로 급하게 손과 얼굴을 씻고 세수한 물을 몸에 끼얹어 흙먼지를 닦아냈다.
“1소대 따라온다.”
세수를 마친 신병들은 식당으로 이동해 생선을 넣고 끓인 국에 보리밥을 말은 국밥을 받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연무장을 달린 신병들은 게눈 감추듯이 국밥을 먹어치웠다. 이렇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곧 바로 오전 훈련이 이어졌다.
사도 섬을 정벌할 것을 결정한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노예병들과 신병들을 훈련시킬 것을 명령했고 조선으로 떨어지기 전에 대한민국의 군인이었던 기억을 살려서 훈련방법에 대한 몇 가지 경험을 도시히사에게 알려주었다. 내 조언을 들은 시마즈 도시히사는 노예병들과 신병들을 훈련시키는데 내가 조언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노예병들과 신병들을 동원해 요새 밖에 훈련장을 건설하고 새벽부터 해질 때 까지 노예병들과 신병들을 열심히 굴리고 있었다.
시마즈 도시히사로부터 신병들의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나는 시간을 내서 훈련장을 방문했다. 계획에 없었던 기습적인 방문이라 내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시마즈 도시히사는 황급히 나와 나는 맞이했다.
“전하.”
“아. 과인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니 너무 신경 쓸 것 없네. 군사들이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훈련장도 궁금해서 온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나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갑자기 왕이 찾아 왔는데 신경 쓰지 않을 장군이나 군인들은 없었다. 당장 훈련장의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들부터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고 시마즈 도시히사와 그의 부장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나에게 훈련장을 안내했다.
“훈련장은 5군데 구역으로 나눠져 있으며 각각 체력훈련, 사격훈련, 방포(포격), 검술과 창술, 병법(전술교육)을 훈련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받는 신병들의 막사도 이곳 훈련장 안에 있으며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해가 질 때 까지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세면과 식사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훈련장 안에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시마즈 도시히사의 안내를 받으며 훈련장을 돌아보는 동안에도 교관과 조교들은 열심히 신병들을 굴리고 있었다. 훈련을 받을 때는 힘이 들고 괴롭지만 이런 훈련과정이 병사들을 강하게 단련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를 격려했다.
“수고 많았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훈련장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고?”
“예. 전하. 이곳에서 5개 대대 2000명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만 노예병들과 신병들을 모두 훈련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되어 이곳과 같은 규모로 훈련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시마즈 도시히사의 대답을 들은 나는 도시히사에게 다시 물었다.
“새로 건설하고 있는 훈련장의 위치는 어느 곳이며. 누가 건설하고 있는가?”
“이곳애서 북쪽으로 10리(4km) 떨어져 있는 곳에 건설하고 있으며 노예병 3000명을 동원해 건설하고 있습니다. 전하.”
훈련장을 둘러보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군사들이 천막에서 생활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어차피 눈이 내리면 야외에서 훈련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니 큰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군. 그런데 훈련장에는 군사들의 훈련을 위한 여러 가지 시설들이 준비되고 훈련을 받는 동안 군사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천막을 칠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니 유사시에는 군사들이 주둔하는 군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훈련장 외부에 담을 세우거나 목책을 치면 군사 요새로 사용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훈련장을 둘러본 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물었다.
“훈련장 전체를 그린 도면이 있나?”
“예. 전하.”
시마즈 도시히사가 부관을 시켜서 가져온 도면을 확인한 나는 내 예상대로 훈련장은 약간만 손본다면 군영이나 군사요새로 사용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도면을 살펴본 후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훈련장은 몇 곳이나 더 건설할 예정인가?”
“이곳과 지금 건설하고 있는 곳 2곳이면 동시에 4000명을 훈련시킬 수 있으니 노예병들과 신병들을 훈련시키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전하.”
시마즈 도시히사의 대답을 들은 나는 다시 질문을 했다.
“도시히사 장군은 대소호수 까지 도로를 건설하고 마을을 건설하였으니 대소호수 인근의 지형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대소 호수 인근 지역에 식수를 구하기가 쉽고 이 같은 규모의 훈련장을 건설하기에 적합한 곳이 있는가?”
시마즈 도시히사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예. 전하. 대소호수 인근은 식수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호수의 서쪽 평야지대라면 이 같은 훈련장을 짓기에 충분합니다.”
시마즈 도시히사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잘됐다고 생각하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잘 듣게. 나는 이 훈련장을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목적 외에도 병사들을 주둔시키는 군영으로 혹은 유사시에 군사들이 안에서 방어전을 벌이는 요새로도 사용할 생각을 했었네. 하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훈련장을 일부러 건설할 필요는 없지 그런데 생각해 보지 대소 호수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주민들을 이주시켜 놓고 호수 인근에 군사들을 주둔시키지 않은 것은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경험이 많은 시마즈 도시히사는 내가 군영을 건설할 생각이라는 것을 눈치 챈 기색이었다.
“전하. 대소호수 인근에 요새를 건설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네. 호수 인근에 이와 같은 훈련장을 건설해서 평상시에는 군사들의 훈련 장소로 사용하고 또 군사들을 훈련시킬 교관과 조교들 그리고 군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할 군사들이 주둔해야 할 것이니 호수와 인근 마을을 방어하는 군사요새로 사용할 생각이네.”
시마즈 도시히사는 내 말을 듣고 훈련장의 건설에 동원될 것을 걱정하는지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우선은 노예병들과 신병들을 훈련시키는 일이 시급하니 장군은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주게. 군영을 건설하는 일은 사도 섬 정벌이 끝난 후 고려해 볼 것이네.”
“예. 전하. 알겠습니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자신에게 군영을 건설하라고 하지 않는 것이 반가운 눈치였다. 나는 도시히사의 그런 반응을 보며 도시히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시히사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대소호수 까지 진군하는 동안 전투는 맹수들을 사냥한 것과 우리 대해국의 진출을 반가워하지 않는 아이누인들과의 다툼이 전부였다고 하니 마을과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주 임무였던 지난번의 북진이 무장으로 살아온 시마즈 도시히사에게는 답답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적성에 맡는 임무를 맡았는데 또 군영 건설하라고 했으면 마음에 내키지 않았을 거야.’
대소호수 까지 진군하는 동안 다행히 큰 불상사는 없었다. 마을을 건설하는 와중에 가축을 노리고 마을까지 내려온 늑대를 사냥하는 일과 마을의 건설로 살던 곳을 떠나게 된 아이누인들과의 다툼이 있었지만 늑대는 병사들이 사격훈련 삼아 간단히 해치웠다고 하고 아이누인들은 다행히 소금과 철제도구들을 나눠주어 아이누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동해도가 땅의 넓이에 비해 살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적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는 땅이 많은 곳이기에 가능한 협상이었다.
나는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고 대해국의 영토가 확장되어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전투보다는 도로 건설과 마을의 건설을 지휘했던 시마즈 도시히사는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