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검 >
시마즈 도시히사와 대화를 나누던 나는 훈련장을 찾아온 용건이 한 가지 더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군. 호위장군 총검을 가져오게.”
“예. 전하. 총검을 가져오너라.”
호위장군 김개동이 호위병들에게 외치자 호위병들이 나무상자를 연이어서 운반해 왔다.
“전하. 이것은 무엇입니까?”
시마즈 도시히사가 상자를 바라보며 묻자 나는 상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대해국 군사들의 전투력을 한층 더 상승시킬 병장기지. 도시히사 장군은 일거리가 늘어나겠지만 말이야.”
호위병들은 수레에 실려 있는 5개의 나무 상자들을 모두 운반해 왔다. 상자가 모두 도착하나 나는 김개동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범을 보여주게.”
“예. 전하. 시범을 보여라.”
김개동이 명령을 내리자 호위병들은 상자를 열어서 총검을 꺼냈다. 총검은 1자 길이(약 30.3cm) 길이의 칼날에 3치 길이(약 9cm)길이의 손잡이가 붙어있었고 손잡이와 칼날의 경계 부분에는 둥근 고리 모양의 쇠로된 고리가 달려 있었다. 호위병들은 익숙한 솜씨로 화승총의 개머리판을 땅에 내려놓고 두 무릎으로 화승총을 잡아 세운 후 총신에 총검을 결합했다. 화승총을 세워놓고 둥근 고리 안으로 총신을 결합시킨 것이다. 화승총에 총검을 결합시킨 호위병들은 화승총을 들고 서서 화승총을 휘두르며 총검술 시범을 보였다.
총검과 총검술을 처음 본 시마즈 도시히사와 그의 부하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물었다.
“어떤가? 총검을 병사들에게 지급하면 병사들의 전투력이 한층 더 상승할 것 같지 않은가?”
시마즈 도시히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전하. 총검을 지급한다면 총병들에게 별도로 단창이나 와키자시를 지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철포(鐵砲)[화승총]의 약점이 발포한 후 화약과 총탄을 장전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칼날을 장착하면 철포를 창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총병들이 화약과 총탄을 소진한 후에도 총병들을 전투에 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이런 총검을 생각했는지 정말 대단합니다.”
시마즈 도시히사가 감탄을 금치 못하자 호위장군 김개동이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말했다.
“전하께서 생각해 내신 무기입니다. 총검술도 전하께서 직접 창안하셨습니다. 저희 호위대도 총검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창안하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시마즈 도시히사가 나를 보며 감탄하자 쑥스러워진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총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총검은 이번에 처음 제작한 것이라 문제점이 있을 수 있네. 우선 500개를 가져왔으니 이것을 병사들에게 지급하고 병사들에게 총검술을 훈련시키도록 하게 그리고 총검에 문제점이 있거나 개량해야 할 점이 있으면 서슴없이 보고하도록 하게. 문제점을 찾아 총검을 더 개량해야 하니 말이네.”
“예. 전하 명을 따르겠나이다.”
시마즈 도시히사의 대답을 들은 나는 총검과 함께 준비해간 술과 고기를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하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마즈 도시히사와 백호대 장교들이 총검을 보며 놀라워하자 나는 기분이 좋았고 직접 훈련장 까지 찾아온 보람을 느꼈다. 총검은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화승총에 총검을 장착하는 문제와 그동안 그보다 급한 일이 많았기에 제작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사도 섬 정벌을 계획하면서 군사들을 최대한 무장시키기 위해 총검의 제작을 명령했다.
사도 정벌의 자세한 작전 계획은 사도 섬의 지도와 정보를 확보한 다음에야 세울 수 있겠지만 나와 대해국의 장군들은 이번 정벌에 동원할 수 있는 군사를 3000명 내외로 예상하고 있었다. 대해국에 1만 명이 넘는 군사들이 있었지만 3000여명의 군사들로 사도 섬을 정벌해야 하는 이유는 군사들을 수송할 전선 때문이었다.
‘사도 섬을 정벌하는 동안 히라도와 마카오에도 선단을 파견해야 한다. 히라도와 마카오를 거치는 금은거래로 인한 수익도 적지 않고 매달 히라도를 찾아가던 우리 선단이 히라도에 도착하지 않은 시기에 사도 섬이 정체불명의 함대에게 공격을 받았다면 마쓰라 다카노부는 내가 사도 섬을 공격했다고 의심할게 분명해 굳이 의심을 살 필요는 없겠지.’
매달 히라도에 10여척의 전선을 보내서 무역을 하고 있었고 마카오에도 한번에 4~5척의 전선을 보내 무역을 하고 있었으니 히라도와 마카오에 보낼 전선들을 제외하고 나자 사도 섬 정벌에 동원할 수 있는 전선은 20여척에 불과했다. 대해국에서 사도 섬까지 10일 이상을 항해해야 하는 거리이고 정벌을 위한 출병이니 전선이 군사들만 수송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과 화약, 무기 등의 보급품도 수송해야 하고 유사시에는 전선의 대포로 포격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도 섬까지 3000명의 병력을 수송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아. 그리고 3000명으로도 충분히 사도를 정벌할 수 있을 거야.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사도 섬에 많은 병력을 주둔시켜 놓지는 않았을 테니 많아야 1000여명 정도겠지.’
사도 섬의 대표금광인 사도금광(佐渡金山)이 발견된 것이 1601년이니 아직은 사도 섬의 금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이었다. 사도 섬에서 이미 금이 채굴되고는 있었지만 사도 섬에 일본 최대의 금광이 있는 것은 섬을 통치하고 있는 우에스기 카게카츠도 아직 모르고 있었으니 물자의 보급도 어려운 사도 섬에 많은 병력을 배치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3000명의 대해국 군사들도 우에스기 카케카츠의 에치고 군사들을 제압하고 섬을 점령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치고 군사들이 겐신 시절부터 일본에서도 명성이 높은 강병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군사들은 에치고 군사들 보다 화력과 장비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특히 시마즈 도시히사와 백호대가 훈련시키고 있으니 병사 개개인의 체력과 전투력도 에치고 군사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
전국시대 일본에서는 우에스기 겐신의 에치고 군사들과 다케다 신겐의 가이, 시나노 군사들은 강병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시마즈 가문의 사쓰마 군사들도 규슈 최강의 전투력과 용맹함을 자랑했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물론 시마즈 가문 출신 무장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백호는 에치고 군사, 가이 군사와 비교해도 전해 뒤처지지 않는 정예강병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왜군에서 조총병의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각 가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체 병력의 10%~30% 만이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고 아직도 대부분의 군사들이 창, 칼, 활등의 냉병기로 무장하고 있다. 반면에 대해국의 군사들은 모두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있고 포병의 수도 적지 않으며 특히 사도 섬에 상륙할 때는 전선의 포격지원도 받을 수 있으니 화력에서 에치고 군사들은 우리 대해국 군사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도 섬만을 목표로 한다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수도 더 많고 군사들의 화력과 전투력도 에치고 군사들에게 밀릴 리가 없으니 사도 섬을 정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경인년(1590년) 11월 10일 강영남이 지휘하는 선단이 무사히 히라도에 다녀왔다. 강영남은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서신과 선물을 내 앞에 놓은 후 히라도에서 교역을 한 결과를 보고했다. 계획대로 쌀과 철, 구리, 유황 그리고 노예들을 구매해왔지만 이번에 구매한 노예들은 이전에 구매해온 노예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몰락한 무사들과 영주들의 자녀들이라고.”
“예. 전하. 히데요시의 호조 가문 정벌과 이후 벌어진 영지교체로 인해 왜국의 영주들과 무사들 가운데 몰락한 가문이 많다고 합니다. 가족의 생계도 책임질 수 없게 된 영주들과 무사들은 대부분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배를 갈랐고 그들의 첩이나 자녀들 가운데 노예가 되거나 사창가로 흘러들어간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250만섬 이상의 석고를 자랑하던 호조 가문은 완전히 몰락했고 호조 가문의 영지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고스란히 차지하게 됐으니 호조 가문의 가신들 가운데 일찌감치 히데요시에게 항복하여 영지를 인정받은 몇몇 눈치 빠른 영주들과 능력을 인정받아 이에야스에게 영입된 사람들 외에는 대부분 살던 영지에서 쫓겨나 오갈 곳이 없게 되었을 것이다.
‘이에야스도 자신의 영지를 히데요시에게 빼앗겼으니 자신의 가신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호조 가문의 가신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가신들을 앉혀야 했겠지 호조 가문의 가신들과 무장들 가운데 오갈 것을 잃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호조 가문의 정벌 이후에 벌어진 영지교체로 인해서도 많은 무사들과 영주들이 몰락했다. 특히 100만석에 가까운 석고를 자랑하던 영지를 히데요시에게 몰수당한 오다 노부카쓰도 사실상 몰락했으니 오다 노부카쓰를 섬기던 가신들과 무사들도 오갈 곳이 없게 되었다.
“오다 노부카쓰도 그렇고 호조가문을 섬기던 가신들도 그렇고 또 히데요시가 간토를 정벌한 이후에도 호조 가문을 토벌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은 간토지역 영주들의 영지를 몰수했다고 하니 몰락한 무사들과 영주들이 적지는 않겠구나.”
“예. 전하. 그러하옵니다. 이번에 히라도에서 구매한 노예들의 절반 이상이 몰락한 영주와 무사들의 자녀들과 첩실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마쓰라 다카노부공께서 전하께 보내신 서신에 적혀있다고 합니다.”
“알겠다. 과인이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케다 마사이에는 언제 돌아오겠다고 했느냐?”
이케다 마사이에는 이가의 닌자들에게 지난번에 의뢰한 지도를 받아오기 위해 그리고 이와미 은광과 사도 섬의 지도와 정보를 의뢰하기 위해 강영남이 지휘하는 선단을 통해 히라도에 갔다.
“이케다 마사이에는 10일 안에 평호도에 돌아올 수 있다고 기다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단 전체가 평호도에서 이케다 마사이에를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전선을 수리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전선 1척을 평호도에 남겨두었습니다. 선장에게는 이케다 마사이에가 돌아오는 대로 대해국으로 돌아올 것을 명령하였고 10일이 지나도 이케다 마사이에가 돌아오지 않으면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대해국으로 돌아올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수고가 많았네. 10일 후에 선단을 다시 평호도로 보낼 것이니 그동안 충분히 쉬고 전선들을 재정비 하도록 하게.”
“예. 전하. 명을 따를 것입니다.”
강영남을 보낸 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케다 마사이에가 10일 안에 돌아오겠다고 했다니 이가의 닌자들과 거래에 자신이 있었나 보구나. 장담했던 대로 히라도에서 사카이 항으로 출발한지 10일 만에 다시 히라도에 돌아왔다면 지금쯤은 전선을 타고 대해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일 것이고 늦어져서 전선에 탑승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번 달 안에 선단이 히라도에 도착할 것이니 대해국으로 돌아오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케다 마사이에 대한 생각을 마친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서신을 펼쳐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