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쓰라 시게노부 >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서신을 읽은 후 나는 다카노부를 생각하며 썩소를 지었다.
“이게 뭐야.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아이들이니 불쌍하게 생각해 달라고.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팔려 가면 대부분 사창가로 들어갈 것이니 아이들과 여인들의 장래를 위해도 내게 보내는 것이 안심된다니. 편지만 보면 무슨 구호사업 하는 줄 알겠네. 어차피 돈 받고 노예로 팔아넘긴 것은 마찬가지면서 말이야. 마쓰라 다카노부가 나와 하루 이틀 거래한 것도 아닌데 이런 편지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마쓰라 다카노부가 서신을 보낸 이유를 생각하던 나는 이번에 구매한 노예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번에도 사내들 보다는 여인들과 아이들의 수가 더 많았지. 사내들도 16세 이상인 노예들 까지 성인으로 계산해서 그 정도 숫자였을 거야.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 가면 여인들과 어린 소녀들은 대부분 사창가로 팔려가겠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제값을 받기 힘들겠구나. 일을 시킬 수도 없고 너무 어린 아이들을 매춘부로 만들 수도 없으니 말이야.”
근대화 이전 까지 일본에서는 가난한 집에서 입을 줄이기 위해 부모가 자녀들을 버리거나 상인들에게 팔아넘기는 일이 벌어졌었다. 여자아이들을 버리거나 팔아넘기는 경우 대부분 사창가로 팔려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나를 노예 판매의 주요 고객으로 선정한 것 같은데. 포르투갈 상인들에게는 제값을 받기 힘든 어린 아이들을 구매해 주는 고객으로.”
내가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서신을 읽고 있던 바로 그 시간 마쓰라 다카노부는 자신의 친 아들인 마쓰라 시게노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쓰라 시게노부는 다카노부의 장남이자 히젠국의 마쓰라군과 소노기군의 일부지역 그리고 이키 섬 까지 석고 6만3000석의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였다.
히라도의 통치와 히라도에서 벌어지는 남만 상인들과의 무역은 마쓰라 다카노부가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지만 규슈 히젠국의 영지들과 이키 섬은 마쓰라 시게노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조선인 이대원 너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진지한 말투로 마쓰라 시게노부에게 말했고 시게노부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이름은 들어보았습니다. 조선의 자기를 가져오는 상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게노부의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매섭게 말했다.
“그는 단순한 상인이 아니다. 내가 이대원에 대한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어서 그렇지 그는 조선의 무장이며 자신의 영지를 통치하고 있는 다이묘와 다름없는 신분이다. 그러니 그를 단순히 상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카노부의 질책을 들은 시게노부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조선인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입니까?”
“조선인이지만 대단한 사람이다. 이곳에서 자기를 판매하고 상품을 구매하며 거래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봐도 놀랄 정도로 철두철미한 것이 상인으로 나섰어도 크게 성공할 사람이고 그의 부하들을 보니 통솔력도 상당한 사람이다. 그의 부하들 중에서 이대원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지지 않은 자들이 없었다.”
“능력이 뛰어나도 어차피 조선인 아니겠습니까? 조선의 자기가 큰돈이 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버지께서 그렇게 까지 신경 쓰실 필요가 있으시겠습니까?”
마쓰라 시게노부의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시게노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원이 내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느냐?”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지. 조선인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다니요.”
시게노부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헤이메를 이대원에게 첩으로 주면서 사위도 자식이니 이대원을 내 양자로 삼았다. 이대원은 내가 부자관계를 맺자고 하자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이제는 스스럼없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사람을 보는 눈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잘 알고 있는 시게노부는 다카노부가 이대원을 양자로 삼았다는 사실에 이대원을 다시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원은 히라도에서 조선의 자기를 판매하고 판매 수수료를 지불하며 자기를 판매한 대금으로 철과 구리, 유황과 곡식 그리고 노예들을 구매해 가고 있다. 요즘은 마카오에서 금을 구해 와서 은으로 환전해 가기도 하지만 자기를 판매한 대금 거의 대부분을 히라도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조선과 히라도를 오고가는 경비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원이 보낸 선단이 히라도에 도착할 때 마다 히라도에 얼마나 큰 이윤이 떨어지는지 알고 있느냐? 그리고 이대원이 구매해가는 상품은 대부분 철, 구리, 유황과 곡식 그리고 노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느냐?”
마쓰라 시게노부는 전국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의 다이묘였다. 다카노부로부터 이대원이 구매해가는 상품들에 대해 듣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군사와 무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대원이 무슨 생각으로 군사와 무기들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 봐도 이대원이 큰 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그리고 의외로 음흉한 구석도 있더구나.”
“아버지 무엇입니까? 음흉하다니요?”
“몸은 조선에 있으면서도 간파쿠와 다이나곤 등 주요 다이묘들에 대해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더구나. 그래서 은근히 이곳에서 천하를 노려볼 것을 권했지만 자신의 그릇이 아니라고 단칼에 거절하더군. 그래서 조선을 욕심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이대원 이놈이 아주 음흉하게도 부하를 보내 닌자들과 접촉했단 말이지.”
“닌자들과 말입니까?”
“그래 이가의 닌자들과 접촉을 한 모양이야. 이대원의 부하가 이곳에서 상선을 빌려 타고 사카이로 갔기에 부하들을 몇 명 붙여서 알아보니 이가 닌자들에게 의뢰를 한 모양이다. 그놈의 성격상 암살이나 모략을 의뢰한 것 같지는 않고 정보를 주문했을 것 같은데 정보를 주문하는 것을 나에게 부탁하지 않고 닌자들을 고용한 것을 보니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봐야겠지.”
마쓰라 다카노부는 히젠과 히라도 지역의 해상세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다이묘였고 상인이었다. 다카노부의 부하들 중에도 이가의 닌자들과 비슷한 임무를 담당하는 무사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케다 마사이에를 미행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쓰라 시게노부는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믿을 수 없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다른 꿍꿍이를 가진 자를 그것도 조선인을 양자로 들이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시게노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인이 믿을 수 있는 상대만 골라서 거래를 할 수 있겠느냐? 이익이 된다면 원수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상인이다. 다이묘도 마찬가지야 영지를 지킬 수 있고 이익이 된다면 바로 어제 전쟁을 벌였던 원수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거라.”
“예. 아버지.”
다카노부의 질책에 시게노부를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금 히라도에게 조선의 자기를 공급할 수 있는 사람은 이대원 뿐이다. 조선의 자기가 얼마나 가치가 큰 상품인지는 너도 알겠지. 그리고 이대원과 거래를 하기 전에 노예들을 어디에 판매했는지 알고 있느냐?”
다카노부의 질문에 시게노부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남만의 상인들이 주로 구매해 갔습니다. 남만인들에게 화약을 받고 노예들을 판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주로 화약을 받고 노예들을 팔았지. 화약은 언제 가장 값어치가 있느냐?”
“전쟁을 치르는 중이거나 전쟁을 앞두고 있을 때 화약의 가격이 가장 오르지 않겠습니까? 철포를 발사하려면 화약이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간파쿠께서 호조 가문을 정벌하신 후 간토 지방의 다이묘들은 간파쿠께 굴복했고 오우(奥羽) 지방의 다이묘들 역시 간파쿠께 굴복하였다. 그런데 이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간토 지역과 혼슈 최북단인 오우(奥羽) 지역까지 군사들을 거느리고 평정한 이후 일본에서 히데요시에게 저항할 영주들은 없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마즈 요시히사 등 히데요시에게 불만을 품은 영주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미 압도적인 국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히데요시에게 대놓고 반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히데요시가 조선을 공격하겠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일본에는 태평성세가 도래한 것으로 보였다.
“아닙니다. 당분간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아니 아주 긴 시간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화약의 가격은 점점 내려가겠군요.”
“포르투갈인들은 화약을 주고 노예들을 사갔지만 이대원은 자기를 판매한 대금으로 받은 은을 지불하고 노예들을 사가고 있다. 포르투갈인들은 당장 일시키기 좋은 사내들과 매춘부로 팔아먹기 좋은 소녀들과 여인들을 주로 사갔지만 이대원은 성인들 외에 어린 아이도 기꺼이 구매하고 있고 아이가 포함된 가족단위로 팔려온 노예들이 있다면 기꺼이 가족단위로 구매해가고 있다. 포르투갈 상인들과 이대원 중에서 어느 쪽과 거래를 하는 것이 더 이익일 것 같으냐?”
생각할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마쓰라 시게노부는 아버지인 마쓰라 다카노부가 왜 그토록 이대원에 대해 신경을 쓰는지 알 것 같았다.
경인년(1590년) 11월 18일 히라도에 남아있었던 전선이 무사히 대해국으로 돌아왔고 이케다 마사이에도 그 전선을 타고 대해국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대해국으로 돌아온 이케다 마사이에는 내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이가의 닌자들에게 구매한 지도와 해도를 꺼내놓았다.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의 보고를 들으며 닌자들에게 구매한 지도를 살펴보았다. 히젠 지역의 지도는 예수회에서 제작한 규슈지역의 지도와 비교해서 검토해 볼 생각으로 대강 살펴보았고 주고쿠 지역의 영지들의 지도와 해도는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다행히 이와미국도 지도도 있구나. 작전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겠어.’
주고쿠 지역의 영지들의 지도를 살펴보던 나는 지도 다발 중에서 사도 섬의 지도와 이와미 은광을 그린 지도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이것이 무엇인가?”
“전하. 전하께서 찾으시던 사도의 지도와 이와미 광산과 인근 항구의 지도입니다.”
“사도 섬과 이와미 은광의 지도는 이번에 의뢰한 것이 아니었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지도를 가져올 수 있었는가?”
내가 놀라서 묻자 이케다 마사이에는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가의 무리들에게 이번 정보를 의뢰하면서 은 100냥을 제시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은 500냥을 지불한 것이 너무 많이 준 것으로 생각돼서 이번에는 은 100냥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가의 무리들이 처음에는 정보에 비해서 대금이 적다며 억지를 부리려고 했지만 저도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니 가격이 맞지 않으면 의뢰를 취소하겠다고 배짱을 부렸습니다. 지난번에 이가의 무리들과 거래를 하면서 눈치를 보아하니 이가의 무리들이 요즘 돈줄이 마른 것 같아 보이기에 배짱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니. 아니나 다를까. 이가의 무리들이 은 200냥이면 당장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