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예병 >
“은 200냥에 말인가?”
“예 전하. 아마도 이가의 무리들이 사도 섬에서 금이 채굴되는 것을 알고 미리 닌자들을 보내 사도 섬에 대해 조사한 것 같습니다. 이와미 은광의 대한 정보도 찾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미리 준비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가의 무리들은 정보를 파는 집단이니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를 미리 조사해 놓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좋은 기회인 것 같았지만 급한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은 200냥은 너무 비싸다고 하루 더 시간을 끌었더니 이가의 무리들이 어지간히 돈이 급했는지 다음 날에 제 앞에 지도를 가져와 펼쳐 놓았습니다. 올해 봄에 이가의 무리들 중 몇몇이 사도 섬에 들어가 직접 그린 지도라고 합니다. 지도가 사도 섬의 지형과 다르면 다시 찾아와 자신을 죽여도 좋다고 장담을 할 정도였으니 믿어도 좋을 것 같아 지도를 확인한 자리에서 값을 치르고 지도와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은 200냥에 필요한 지도와 자료를 구해왔다는 보고에 나는 이케다 마사이에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잘 했네. 수고가 많았어. 그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우선은 푹 쉬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케다 마사이에를 돌려보낸 후 나는 사도 섬의 지도를 살펴보았다.
“정말 잘됐다. 이제야 작전 계획을 세울 수 있겠구나.”
그동안 지도 한 장 없이 정벌을 준비하려고 하니 답답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제 사도 섬의 지도를 확보했으니 사도에 구체적인 작전을 세울 수 있었다.
“우선은 화공을 불러서 지도의 복사본을 만들어야겠다. 복사기가 없는 시대이니 이런 것이 불편하군. 화공에게 지도를 똑같은 지도를 몇 장씩 만들게 하자.”
화공을 불러 이케다 마사이에가 구해온 지도들을 똑같이 그릴 것을 명령한 나는 조천군과 최도진 그리고 시마즈 도시히사를 소집해 사도 섬의 지도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사도 섬에 군사들을 상륙시킬 계획을 의논했다.
11월 29일 마카오로 출항했던 선단이 대해국으로 돌아오면서 예수회에서 그동안 일본에서 조사해 놓은 자료들과 지도들도 확보할 수 있었던 나는 예수회에서 제작한 지도들도 화공들을 시켜서 몇 부씩 복사본을 만들도록 하고 이가의 닌자들에게서 구매한 지도들과 비교해 가면서 지도의 정확성을 조사했다. 다행히 이가 닌자들이 제작한 지도와 예수회에서 제작한 지도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것으로 지도의 정확성 상당히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도와 자료들을 확보한 이후 거의 매일 장수들과 만나 작전 계획을 세우던 나는 사화동이 이번에도 마카오에서 노예들을 구매해 오자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노예들을 훈련시킬 것을 명령했다.
“이번에 마카오에서 흑인 노예 300명(사내 200명, 여인 100명)과 아랍인 노예 400명(사내 200명, 여인 200명)을 구매해 왔다. 하라도에도 선단을 보냈으니 히라도에서도 노예들을 구매해 올 것이다. 이번에 마카오에서 구매한 노예들과 히라도에서 구매해 오는 노예들 중에서 사내들은 전부 노예병으로 동원한다. 겨울이라 야외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단련시켜라.”
“예. 전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노예병들을 훈련시키라는 말에 시마즈 도시히사는 눈이 빛을 내며 대답했고 마카오에서 대해국으로 팔려온 노예들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기가 무섭게 훈련장으로 끌려갔다. 히라도에 다녀온 선단도 대해국으로 돌아오자 대해국은 내년 봄까지 모든 무역을 중지하고 겨울을 보냈다. 대해국의 겨울은 길고 지루하다. 동해도의 위치 탓에 겨울에는 춥고 눈도 많이 내리니 야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바다가 거칠어지는 계절인 탓에 겨울 동안에는 동해도 인근 바다에 고기잡이를 위한 출항만 허락될 뿐 마카오는 물론 히라도에도 전선들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물론 대해국의 장군들이 국내에서 겨울을 지내는 동안 나는 장군들을 재촉해 노예병들을 더 가혹하게 훈련시켰고 수병들 중에서 항해에 경험이 많거나 총명한 자들을 훈련생으로 선발해 훈련원에서 교육을 시켰다. 해군 훈련원이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육군 훈련원도 문을 열었고 육군 훈련원에서는 동해도 상륙에 참전했던 병사들을 훈련생으로 선발에 무술과 병법 그리고 지휘관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 등을 교육시켰다. 이렇게 나는 훈련생들과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는데 장군들을 동원하는 한편 무기의 제작과 사도에 군사들을 상륙시킬 작전 계획을 의논하면서 경인년(1590년)의 겨울을 보냈다.
신묘년(1591년) 2월 12일 대해국 육군 훈련장
“탕” “탕” “탕” “탕” “탕”
일제히 총성이 울리며 화승총이 불을 뿜자 조교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돌격~”
“돌격”
조교가 외치는 대로 따라 외친 병사들은 총검이 장착된 화승총을 창처럼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와아~”
함성을 지르며 달려간 병사들은 총검으로 눈앞에 있는 허수아비를 힘껏 찔렀다.
“와아~”
허수아비를 찌른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화승총을 높이 들고 함성을 질렀다.
“좋다. 돌아와라 귀환.”
“귀환.”
조교가 하는 말을 따라 외치며 사격하기 전에 대기하던 장소로 돌아오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조교 박용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저 덩치들 하며 종소리 같은 목소리에 황소 같은 힘까지 저놈들이 아군인 것이 정말 다행이다. 전장에서 저 놈들을 적군으로 만날 생각을 하면 정말 끔찍하네.‘
병사들에게 사격과 돌격 명령을 내렸던 박용범은 대관(大館)[오다테] 전투에도 참전했었던 용사였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 검은색 피부색의 덩치 큰 병사들을 볼 때 마다 적으로는 저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병사들은 마카오에서 구매해온 노예출신 병사 즉 노예병들로 흑인과 아랍인 병사들이었다. 대해국의 선단은 마카오에 다녀올 때 마다 흑인과 아랍인 노예들을 구매해 왔고 그들 중에서 사내들은 모두 노예병으로 동원되어 1000명의 흑인 노예병들과 300명의 아랍인 노예병들이 대해국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만. 식사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훈련을 계속한다.”
교관이 식사 시간이라고 외치자 병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식사 시간이다. 밥이다.”
병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줄을 서서 종대로 병장기를 담당하는 조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고 조교들에게 화승총을 반납한 후 그대로 줄을 맞춰서 식당으로 걸어갔다. 교관 허복남은 병사들이 모두 화승총을 반납한 것을 확인한 후 박용범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제는 저놈들도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 구나.”
“예. 말을 알아들으니 가르치는 것도 한결 수월합니다. 처음 저놈들을 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었는데 이제는 저도 할 만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허복남과 박용범을 비롯해 흑인과 아랍인 노예병들의 훈련과 교육을 담당하게 된 교관과 조교들은 처음 노예병들을 봤을 때 말이 통하지 않는 사실에 너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다 결국 손짓 몸짓으로 의사고통을 시작했고 때로는 위협으로 때로는 구타를 동원해 노예병들을 움직이게 하고 훈련시키기 시작하자 노예병들은 의외로 잘 따라왔다. 노예 신분이었던 노예병들은 교관과 조교들이 자신들을 강압적으로 다루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훈련 받을 때 외에는 그들을 구타하거나 가혹행위를 하지 않았고 하루에 세끼 꼬박꼬박 밥이 나오자 지금의 환경에 만족하고 있었다.
훈련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중노동 수준으로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으며 훈련을 받을 때 외에는 때리지도 않고 하루에 7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있으며 세끼 꼬박꼬박 밥을 주니 노예로 지낼 때 보다 훨씬 나은 생활이었다. 이렇게 서로 서로 부딪치며 몇 달간 지내는 동안 노예병들도 서서히 교관과 조교들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노예병들의 변화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마카오에서 대해국으로 팔려왔을 때는 잘 먹지 못한데다가 배를 타고 먼 길을 와서 다들 지쳐있었고 팔다리도 말라 있었지만 그동안 하루 세끼 밥을 먹고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을 받으면서 노예병들의 팔과 다리에는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체격도 점점 커졌다. 특히 흑인 노예병들은 체격이 커지기 시작하자 급격하게 몸이 불어났고 지금은 교관과 조교들 보다 거대한 체격을 자랑했다.
거대한 체격과 체격만큼의 힘을 자랑하면서도 노예병들은 교관과 조교들의 명령을 잘 따랐다. 노예병들은 노예 생활을 했던 경험으로 상전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교관과 조교들은 상전이었다.
“저놈들을 전장에 내보내면 어떻게 될까?”
허복남이 노예병들을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박용범은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솔직히 걱정됩니다. 저놈들을 전장으로 보내도 될지 말입니다.”
“왜? 도망칠 것 같아서?”
“도망이요? 저놈들이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말이 좀 통하는 놈에게 물어보니 저놈들의 고향에서는 적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사람을 비겁한 사람으로 보고 마을 사람들이 무시하기 때문에 사내들은 전쟁에 나가도 적에게 등을 보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럼 무엇을 걱정하는 건가?”
허복남의 질문에 박용범은 주위를 둘러본 후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대답했다.
“저놈들은 저희와는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쟁에 나가면 어느 한쪽이 모두 죽든지 도망쳐야 전쟁이 끝난다고 합니다. 적군은 죽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전장에 나가면 항복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든 부상당해서 싸울 수 없는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적군이라면 모조리 죽이려고 할 것 같습니다.”
박용범의 대답을 들은 허복남은 놀라서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저 순진한 놈들이.”
“하는 행동은 순진해 보이지만 저놈들도 무자비한 면이 있습니다. 예전에 심심해서 말이 통하는 놈에게 물어보니 저놈들의 마을에서는 도둑질을 하다 잡히면 손이 잘린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다른 사람의 부인과 사통한 것이 발각되면 바로 사형을 당하고 말입니다.”
“도둑의 손을 자르는 것은 지나친 형벌이지만 살인자가 사형을 당하는 것은 조선에서도 당연한 일이었지. 대해국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저놈들의 마을에서는 사통을 하다가 발각되면 마을 밖으로 끌고 나가서 마을 사람들이 돌을 던져 죽인다고 합니다. 차리라 참형이 그보다는 자비로운 형벌 같습니다.”
박용남의 대답을 들은 허복남은 할 말을 잊었다.
“저놈들에게 그렇게 잔인한 풍습이 있었다는 말인가? 이 사실을 장군님께 보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허복남이나 박용남 같이 전라좌수영에서부터 나를 따라 동해도로 온 사람들은 대해국이 임진왜란을 대비해 건국된 나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노예병들이 전쟁에 동원될 것을 알고 있었던 허복남은 저렇게 체격이 크고 힘이 센 노예병들이 그런 잔인한 풍습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