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궁 >
“적들이 성을 포위하고 있으니 성 밖으로 전령을 보낼 수 없습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공께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신이 성밖에 진을 치고 있는 대해국 병사들을 바라보며 걱정된다는 듯이 말하자 혼마 사마노스케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가신들에게 말했다.
“츠루코 은광에 우에스기 카게카츠공의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으니 지금쯤이면 그들도 사도에 적들이 상륙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에스기가의 군사들이 모르고 있다고 해도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성벽 아래로 전령을 내려 보내 츠루코 은광으로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모든 병사들을 동원해 성문과 성벽을 굳게 지키고 적들이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만 하면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주군.”
가신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하자 혼마 사마노스케는 만족한 표정으로 가신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신들을 바라보던 혼마 사마노스케는 무심결에 성벽 아래를 내려 보다가 성벽 위를 살펴보고 있던 혼다 고로자에몬과 눈이 마주쳤다. 두정갑 차림에 투구를 쓰고 있는 혼다 고로자에몬을 발견한 혼마 사마노스케는 고로자에몬의 차림을 보고 성을 포위하고 있는 적들의 지휘관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놈이냐? 감히 이 사마노스케의 영토를 침략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 당장 무릎을 꿇고 항복한다면 목숨은 살려줄 것이지만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항복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는 네 목이 효수될 것이니 항복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혼마 사마노스케가 기세 좋게 외치자 성벽위에 있던 사마노스케의 가신들과 혼다 가문의 병사들은 낄낄거리며 웃었고 성벽 위는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성벽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와도 혼다 고로자에몬은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전통에서 유엽전을 뽑아 각궁의 시위에 걸었다.
혼다 고로자에몬은 시마즈 군에 있었을 때부터 명궁으로 이름이 높았다.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 당시 히데요시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시마즈 도시히사와 함께 히데요시의 군대에 맞서 싸웠던 혼다 고로자에몬은 히데요시의 가마에 활을 쏴 화살을 6대나 명중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고 그 일로 혼다 고로자에몬은 히데요시의 원한을 사게 되어 사쓰마를 떠나야 했다.
히데요시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돌산도로 몸을 피한 혼다 고로자에몬은 돌산도에서 조선군이 사용하는 각궁을 알게 되고 각궁의 강한 탄성과 사정거리에 매료되어 각궁으로 열심히 궁술을 연마했다. 돌산도와 동해도에서 쉬지 않고 궁술을 연마한 혼다 고로자에몬의 궁술은 조선 출신 사부(射夫)[수군 궁수]들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시위에 유엽전을 걸고 힘차게 시위를 당긴 혼다 고로자에몬은 혼마 사마노스케를 노려보았다. 혼다 고로자에몬이 활을 겨누고 있는 것을 발견한 병사가 혼마 사마노스케에게 알렸지만 혼마 사마노스케는 혼다 고로자에몬을 내려다 보며 비웃었다.
“어디 한번 활을 쏴보아라. 네가 감히 나 혼마 사마노스케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으냐.”
혼마 사마노스케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체를 완전히 드러내자 혼다 고로자에몬은 침착하게 혼마 사마노스케를 조준한 후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놨다. 순간 유엽전이 힘차게 날아가더니 혼마 사마노스케의 이마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으악~”
혼마 사마노스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사마노스케의 가신들은 황급히 혼마 사마노스케에게 달려들었다. 성벽 위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소란스러워지자 혼다 고로자에몬은 사마노스케를 맞혔다고 확신하고 공격명령을 내렸다.
“어서 발포하라. 성벽 위의 적군들을 향해 발포하라.”
“탕” “탕” “탕” “탕” “탕”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대해국의 병사들은 성벽 위의 가신들과 병사들을 조준해 화승총을 발사했다. 순식간에 총성이 울리며 10여명의 병사들이 성벽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고 사마노스케의 가신들 중에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어서 성문을 열지 못하겠느냐. 성문에 불을 질러라.”
혼다 고로자에몬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해국의 병사들은 사와네 성의 성문에 기름을 뿌리고 횃불을 집어던졌다. 성문에서는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았고 때마침 바람이 불자 성문 안으로 연기가 들어갔다. 성문 안쪽으로 연기가 들어가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자 사와네 성의 군사들은 놀란 나머지 성이 불타는 것으로 오해하고 성문을 열었다.
성 밖으로 도망치기 위해 성문을 열었지만 불붙은 성문을 열자 연기와 열기가 성 안으로 들어갔고 성문 앞을 지키고 있던 대해국의 병사들은 성 안으로 화승총을 발사했다.
“탕” “탕” “탕” “탕” “탕”
사도 섬을 통치하던 혼마 가문의 일원으로 사도 섬에 있는 금광과 은광에 욕심을 낸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손을 잡고 사도에 상륙한 우에스기군의 길잡이가 되어 우에스기군이 가와하라다 성과 하모치 성을 함락시키고 성주인 혼마 타카쯔나와 혼다 다카모치를 처형하는데 협조한 공로로 사도의 혼마 가문의 수장이 되었던 혼마 사마노스케는 혼다 고로자에몬의 활에 목숨을 잃었고 그가 성주로 있던 사와네 성은 대해국의 병사들에 의해 함락되었다.
사와네 성을 점령한 혼다 고로자에몬은 교두보를 지키고 있는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전령을 보내 사와네 성을 함락하였다는 사실을 보고한 후 성문에 병사들을 배치해 성안의 사람들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혼다 고로자에몬이 교두보를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맡기고 사와네 성을 공격하기 위해 출발한 뒤에서 단선들은 쉬지 않고 갤리온과 교두보를 오고가며 병사들과 무기들을 사도에 내려놓았다. 사도에 상륙한 날 오후에는 나도 사도에 상륙했다. 상륙지점의 교두보에는 이미 1000여명의 병사들이 집결해 있었고 대포와 포병도 보였다. 병사들 중 일부는 화승에 불을 붙인 화승총을 들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고 다른 병사들의 삽과 도끼를 들고 참호를 파고 주변의 나무를 잘라서 목책을 만들고 있었다.
“전하.”
“이곳은 전장이니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네.”
내가 사도에 상륙하자 시마즈 도시히사는 나를 맞이하기 위해 나왔고 나는 도시히사와 장병들에게 하던 일을 할 것을 지시했다.
“방금 전에 사와네 성을 진군한 혼다 고로자에몬이 보낸 전령이 도착하였습니다. 전하.”
“혼다 고로자에몬이 좋은 소식을 보냈나?”
“예. 전하. 혼마 사마노스케를 사살하고 사와네 성을 점령하였다고 합니다.”
“좋은 소식이군. 상륙한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사와네 성을 점령했다니.”
혼다 고로자에몬의 보고를 확인한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가 지휘 본부로 사용하는 천막에 들어가 사도 섬의 지도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혼다 고로자에몬에게는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을 교두보로 이송하라고 전하게.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린아이라도 상관없이 하나도 남기지 말고 이송하라고 전하고 적군의 전사자들은 사체를 화장하라고 전하게.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하게.”
“예. 전하.”
사와네 성이 함락되었으니 다음 목표는 상륙지점인 마노만의 서쪽에 있는 츠루코 은광이었다. 나는 지도에서 츠루코 은광을 가리키며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물었다.
“츠루코 은광은 직접 점령해 보겠나?”
“황송하옵니다. 전하.”
시마즈 도시히사는 직접 출병하고 싶은지 간절해 보이는 얼굴로 나에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상륙한 군사가 몇인가?”
“사와네 성을 출병한 군사들 외에 1100여명의 군사들이 교두보에 집결해 있습니다. 전하.”
“츠루코 은광에는 우에스기 가문의 에치군 군사들이 200명 정도 주둔하고 있다고 하네. 1개 대대를 데리고 가서 에치고 군사들을 섬멸하고 츠루코 은광을 점령하게 군사훈련을 겸하는 정벌이니 대포와 포병도 데려가도록 하게.”
1개 대대 병력이면 병사 400명에 대포와 포병도 동원하게 된다면 포탄을 수송할 지원 병력까지 500여명의 병력을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맡기는 셈이었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적성에 맞는 임무를 맡은 것이 기쁜 듯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오늘 중으로 츠루코 은광을 점령해 전하께 바치겠나이다.”
“너무 서두르지는 말게. 우리는 사도 섬이 처음 온 곳이니 지도가 있다고 해도 너무 방심하지 말고 신중하게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진군하도록 하게 꼭 오늘 점령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말이야.”
“예. 전하 명을 따르겠나이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힘찬 발걸음으로 막사를 나가 츠루코 은광을 공격할 병력을 선발하기 위해 장교들을 소집했다. 시마즈 도시히사가 츠루코 은광으로 출병하면 교두보에 집결한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지휘하게 된다.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가 출병한 후 최도진을 불러들일 생각을 했다.
“최장군에게도 전장에 나갈 기회를 줘야겠지. 내일 최장군을 불러들이고 사도 남부지역의 평정을 맡겨야겠다.”
나도 사도 섬 정벌을 계획하면서 기간을 10일로 정했다. 상륙한 날로부터 10일 안에 사도 섬 내의 적군을 섬멸하고 최대한 많은 주민들과 물자들을 대해국으로 수송한 후 철수할 계획이었다. 10일안에 작전을 끝내야 하니 사도 섬 전체를 점령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첫날 전과는 만족스러웠다.
“무사히 상륙했고 교두보를 확보한데다가 사와네 성까지 함락시켰으니 이정도면 만족스러운 전과다.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시간여유만 있었다면 사도의 모든 주민들을 대해국으로 이주시키고 사도에서 채굴되는 은과 사금도 최대한 많이 가져갈 텐데.”
기간을 10일로 정한 것은 우에스기 카게카츠와의 전면전을 피하고 대해국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사도의 해안을 봉쇄했으니 사도에서 에치고로 전서구라도 날리지 않는 이상 구원을 요청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도와 에치고가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해도 해안 봉쇄로 3~4일은 시간을 벌수 있을 것이고 에치고에서 사도로 부터 연락이 없는 것을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도 당장 군대를 출병시키지는 않겠지.”
나는 에치고에서 사도로 군대가 출병하기 보다는 사도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우에스기 가의 가신과 가신의 호위병들이 먼저 사도로 올 것으로 생각했다. 군사를 동원하는 것 자체가 군비를 소모하는 일이니 정확한 사실도 파악하기 전에 군사들을 출병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전선들이 바다를 지키고 있으니 사도로 들어오려던 우에스기가의 사람들은 사도에 들어오지 못하고 대해국의 수병들에게 붙잡힐 것이고 우에스기가에서는 2~3일 정도 소식을 기다리다가 사도에 보낸 사람들로 부터 소식이 없으면 그때쯤에는 사도에 일이 생겼다는 확신을 가지고 군사들 동원하겠지만 군사를 출병시키는데 2~3일은 걸릴 것이니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군대가 사도에 도착했을 때는 대해국 병사들은 철수하고 난 다음일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대해국의 정체를 들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