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자의 전리품 >
“하모치 성이 우에스기 가문의 사도 섬 남부지역 거점이기는 해도 상주하고 있는 군사들은 1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최도진이 함락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동하고 준비하는 시간도 있어야 하니 내일 공격을 시작해서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함락시키겠구나.”
이가 무리들의 정보에 의하면 하모치 성은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이 성주로 임명되어 다스리고 있었고 성의 군사들을 성주인 가신을 따라온 무사 10여명을 포함해 80여명 정도였다. 사도는 다른 영주들의 영지와 연결되지 않은 섬이기에 다른 영주들의 침입을 받을 염려가 없었고 섬이기에 육지에서 보급품을 수송하기도 어려운 탓에 사도 안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최도진에게 하모치 성을 함락시킬 것을 명령한 후 최도진을 격려하고 보내자 어느덧 정오가 되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오자 화병(취사병)들은 불을 지피고 솥에 밥을 짓는 한편 다른 가마솥에는 국을 끓였고 생선을 놓고 끓인 생선탕 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최도진을 보내고 난 후 잠시 자리에 앉아 쉬고 있던 나는 생선탕 냄새에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막사 밖으로 나오자 막사를 지키고 있던 호위병들과 호위장군 김개동이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밥 먹으러 가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개동과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화병들이 밥과 국을 끓이고 있는 곳으로 갔다. 군영 한쪽 구석에 가마솥들이 걸려 있었고 화병들은 가마솥 앞에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밥과 국을 끓고 있는 가마솥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가마솥 앞에 앉아있는 화병에게 다가가 물었다.
“밥은 다 되었느냐?”
가마솥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친 화병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예. 전하.”
“배가 고프니 밥 좀 퍼오너라. 그릇에 가득히.”
“예. 전하.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진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밥을 퍼오라는 명령에 화병들이 놀라서 분주히 무엇인가를 준비하려고 하자 나는 화병들에게 외쳤다.
“따로 음식을 준비할 것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밥과 국만 가져오너라. 병사들이 먹는 음식 그대로 먹을 것이다. 다만 배가 고프니 양이나 넉넉하게 퍼오너라.”
“예. 전하.”
화병들 중에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병사가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다른 화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화병들은 밥그릇에 고봉으로 밥을 담았고 커다란 대접에 생선탕을 가득히 부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병사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 생각도 했지만 화병들의 표정을 보니 내가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 사단장이 갑자기 병사들이 점심 먹고 있는 식당에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어. 내가 사라져 주는 것이 화병들과 병사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나는 밥과 국이 담긴 대접을 호위병들에게 들게 하고는 내 막사로 돌아왔다. 내가 막사로 돌아가자 내 등 뒤에서는 화병들과 점심을 기다리던 병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막사로 들어온 나는 보리가 섞인 밥과 생선국으로 천천히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은 후 막사에서 잠시 쉬고 있던 내게 김개동이 혼마 사마노스케의 일족이 도착했다고 보고했다.
“사와네 성의 혼마 사마노스케? 사와네 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겠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 출발시켰다고 합니다. 부상자들과 노약자들은 수레에 태워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혼다 고로자에몬에게 전령을 보내 사와네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린 아이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두 이곳으로 보내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도록 하고 사와네 성에서 잡힌 포로들을 모두 보낸 후에는 주변 마을의 주민들을 이곳으로 보내라고 하게. 역시 어린 아이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네.”
“예. 전하 명을 따르겠나이다.”
김개동은 힘차게 대답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그리고 혼마 사마노스케의 부인들 중에서 전하를 뵙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순간 나는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뭐. 내게 감사하다고? 내 부하가 남편을 죽였는데.’
“호위장군.”
“예. 전하.”
“과인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혼마 사마노스케의 부인들이 과인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 한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호위장군 김개동은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하. 혼다 고로자에몬은 분명히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혼마 사마노스케의 부인들이 전하를 뵙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어 한다고 말입니다.”
‘부인들이 남편을 죽인 사람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 한다니.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면 복수하기 위해 나를 만날 핑계를 대는 것 같은데.’
나는 궁금증 때문에라도 혼마 사마노스케의 부인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좋다. 혼마 사마노스케의 부인들이 도착하는 대로 보고하도록 하라. 과인이 그들을 만나 어떻게 된 사정인지 직접 들어보겠다.”
“예. 전하.”
그날 오후 내내 사와네 성에서 포로로 잡힌 왜인들이 연이어서 군영에 도착했다. 나는 포로들에게 음식을 줄 것과 부상을 당한 포로들은 의원들을 불러 치료해줄 것을 명령했다. 정벌군에는 기리시탄 출신 의원들이 종군해 군의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나는 군영으로부터 좀 떨어진 공터에 따로 울타리를 칠 것을 명령하고 그곳에서 혼마 사마노스케의 부인들을 만날 생각이었다.
무엇인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를 암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었으니 나는 수은갑주 차림에 투구를 쓰고 혼마 사마노스케의 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갔다. 당연히 김개동과 호위병들이 나를 경호했으며 울타리 주변에는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공터 안쪽에는 내가 앉을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혼마 사마노스케의 부인들로 보이는 여인들은 공터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가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자 부인들은 나를 발견하고 허리를 숙였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고 김개동은 내 좌측에 서서 나를 호위했고 다른 호위병들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나를 호위했다. 의자에 앉은 나는 천천히 여인들을 살펴보았다. 여인들은 모두 4명이었고 그중에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인은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도 있었다.
“과인이 대해국의 국왕 이대원이다. 너희는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과인을 보고자 했느냐?”
내가 여인들에게 묻자 여인들 중에서 좌측 끝에 서있던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인이 일어나 공손히 말했다.
“우선 저희의 절을 받으시옵소서.”
여인이 나에게 절을 하자 다른 여인들도 나에게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친 여인들은 다시 일어나 고개를 숙였고 나에게 대답했던 여인만이 고개를 들고 내게 말했다.
“저희는 혼마 사마노스케의 소실들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군사들을 보내시어 사마노스케를 죽여주신 것에 감사드리고자 감히 전하를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기에 혼마 사마노스케를 죽여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이냐?”
내 질문에 여인은 몸을 떨더니 잠시 후 몸을 추스르고는 대답했다.
“소녀는 혼마 사마노스케의 소실이 되기 전에 이미 남편이 있었사옵니다. 혼마 사마노스케는 소녀의 남편을 죽게 한 원수이옵니다.”
나는 여인의 대답들 듣고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자신이 죽은 사람의 아내를 소실로 삼은 것인가. 여인이 감사하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가네.’
대답을 하던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녀의 남편은 가와하라다 성의 성주였던 혼마 타카쯔나였으며 소녀의 옆에 있는 이 아이는 소녀의 동생이옵니다.”
여인의 말이 끝나자 여인의 옆에 서 있던 20대로 보이는 여인이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와하라다 성 성주의 부인이었고 성주 부인의 동생이라고?’
나는 상황이 그들 자매의 옆에 있는 여인들의 신분도 궁금해졌다. 나는 아직 신분을 밝히지 않은 여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혼마 사마노스케의 소실이 되기 전. 너희의 남편은 누구였느냐?”
내 질문에 좌측에서 3번째 서있던 여인이 대답했다.
“소녀의 남편은 하모치 성의 성주 혼마 다카모치였고 옆의 여인은 남편의 동생이옵니다.”
‘갈수록 태산이네.’
여인들의 대답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저 여인들의 남편은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사도를 점령했을 때 처형당했겠군. 혼마 사마노스케는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사도에 상륙했을 때 협력했으니 저 여인들의 원수가 맞고. 혼마 사마노스케가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내통한 덕분에 우에스기 카게카츠 손쉽게 사도를 점령했고 저 여인들의 남편과 오빠가 처형당했으니 혼마 사마노스케에게 저 여인들은 일종의 전리품이었겠군.’
몰락한 영주의 부인이나 가족이 승자의 전리품이 되는 것은 전국시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자매가 같은 남편을 섬기는 일도 전국시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인들의 신분을 듣자 단순히 감사 인사 때문에 나를 만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알겠다. 너희가 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러나 과인의 너희의 감사 인사를 받을 이유가 없으니 신경 쓰지 말거라. 과인과 과인의 군사들은 너희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사도에 상륙한 것이 아니니 너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하자 여인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과인은 그만 일어나겠다. 너희는 군영으로 돌아가도록 하여라. 과인의 부하들이 너희가 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좌측에 서있던 여인이 외치듯이 말했다.
“국왕전하께서는 저희의 은인이십니다. 저희는 남은 일생동안 은인을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섬기겠다니 내 소실이라도 되겠다는 말이냐?”
“소실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은인의 곁에서 섬길 수 있도록 거두어 주십시오,”
‘이것이 목적이었나.’
여인들의 신분을 들었을 때부터 단순히 감사인사를 위해 나를 찾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는 천천히 여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에게 혼마 사마노스케는 원수였다고 하였느냐?”
“예 그렇습니다. 혼마 사마노스케는 저희의 남편과 오빠를 죽인 원수입니다.”
“그런데 왜 그동안 혼마 사마노스케를 살려두었느냐? 그의 소실로 지내고 있었다면 기회를 봐서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그를 죽여서 원수를 갚지 않았느냐?”
“그건 아이도 있어서 소녀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아이에게도 해가 미칠 것이 두려웠습니다.”
“아이가 있다니 잘되었구나. 그럼 이제부터는 누구의 부인이 아닌 자녀의 어머니로 살아가도록 하라. 과인과 과인의 군사들은 사도에 계속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곧 대해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너희도 모두 대해국으로 데려갈 것이다. 너희의 자녀들도 대해국으로 함께 데려갈 것이니 대해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하여라.”
말을 마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군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인들은 대해국으로 데려가겠다는 말에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었고 나는 막사로 돌아와 여인들이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