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수 >
최도진과 사도 인근 바다를 봉쇄하고 있던 선단에게 철수할 것을 명령한 후 나는 사도에서 대해국으로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시마즈 도시히사와 혼다 고로자에몬이 마을의 주민들을 곧 군영으로 보낼 것이다. 내일 출발한다고 해도 대해국에 도착하기 까지 4일이 걸리니까. 노획품과 왜인들을 대해국으로 수송한 전선들이 사도에 다시 돌아오려면 빨라도 9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오늘이 사도에서 상륙한지 4일째 인데 사도에 9일 이상을 더 머무를 필요는 없다.“
사도에서 시간을 더 끌면 우에스기 카게카츠와에게 우리 함대와 병사들을 들킬 수도 있다고 판단한 나는 지금까지 확보한 주민들과 노획품만 챙겨서 대해국으로 철수할 것을 결정했다.
“아직 병력과 군수품을 내리지 않은 전선들은 그대로 대기하도록 하고 군량 외에 무기와 화약은 병사들이 장비하고 있는 것 외에 모두 전선에 적재하도록 하라. 그리고 시마즈 도시히사와 혼다 고로자에몬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니 발 빠른 전령을 준비하도록 하라.”
“예. 전하.”
결정을 내린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와 혼다 고로자에몬에게 전령을 보내 병사들과 함께 군영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 교두보에 가까이 있는 전선은 모두 몇 척인가?”
시마즈 도시히사와 혼다 고로자에몬에게 명령문을 보낸 후 막사 밖으로 나온 나는 교두보로 나가 상륙지점으로 다가오는 단선을 바라보고 있는 장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장수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전하.”
“어서 일어나서 대답하라. 교두보에 가까이 있는 전선은 모두 몇 척이냐?”
“예 전하. 전선 5척이 교두보에 가까이 정박하고 있습니다.”
“전선의 상태를 확인하고 전선에 주민들을 탑승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하라.”
“예 전하.”
장수가 대답하며 고개를 숙이자 나는 장수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도의 주민들을 대해국으로 이주시킬 것이다. 실수 없이 준비하도록 하라.”
왕이 직접 내린 명령을 받은 장수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장수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호위장군 김개동과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사와네 성의 주민들이 지내고 있는 천막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천막들이 모여 있는 천막촌을 둘러본 나는 김개동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혼마 사마노스케의 소실들과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혼마 사마노스케의 인척들을 가장 먼저 전선에 태워야 한다. 그들을 우선 대해국으로 이주시킬 것이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전하.”
김개동에게 그 외에도 몇 가지 명령을 더 내린 나는 화병들에게 지금부터 최대한 많은 주먹밥을 만들 것을 명령했다.
“철수도 시간과의 싸움이다. 모두가 무사히 철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한다. 지금부터는 끼니 때 마다 밥 먹기 힘들 것이니 주먹밥을 만들어 놓고 병사들은 일하면서 밥을 먹도록 한다.”
내 명령이 떨어지자 화병들은 가마솥마다 쌀과 보리를 쏟아 붓고 밥을 지었다.
‘이대로 철수하시려는 것인가?‘
츠루코 은광에 주둔하고 있었던 시마즈 도시히사는 전령에게서 받은 명령문을 확인한 후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까지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이대로 철수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 것이다.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명이니 거부할 수는 없지.’
시마즈 도시히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수들을 소집해 철수 명령을 내렸다.
“전하께서 어명을 내리셨다. 오늘 중으로 모든 막사를 걷고 군영으로 돌아갈 것이다. 광부들과 광산의 주민들도 모두 데려갈 것이니 빈틈없이 준비하도록 하라.”
“예.”
장수들은 힘차게 대답했고 장수들이 부하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는 동안 시마즈 도시히사는 노지마 마치오를 찾아갔다.
“나리.”
“짐은 싸놓았느냐?”
“예. 나리. 모두들 나리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잘했다. 어명이 내려왔다. 오늘 오후 출발한 것이니. 모두에게 떠날 준비를 하라고 전하도록 하여라.”
“예. 나리 모두에게 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신묘년(1591년) 3월 04일 오후 츠루코 은광으로 출병했던 시마즈 도시히사가 지휘하는 군사들과 은광에서 거주하던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들 까지 1000여명 주민들이 츠루코 은광을 떠나 대해국 군대가 상륙한 지점인 마노만으로 향했다.
신묘년(1591년) 3월 12일 히라도
강영남이 지휘하는 선단의 전선들은 사도 섬에 병사들과 군수품을 내려놓은 히라도로 향했다. 이들은 이전처럼 히라도에 도자기와 찻잔을 내려놓고 철과 구리, 유황 그리고 곡식과 노예들을 구매할 예정이었다.
“안녕하셨습니까. 다카노부공.”
히라도에 도착한 강영남은 마쓰라 다카노부를 찾아가 인사부터 드렸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강영남을 반가워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박대하지도 않았다.
“그래.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네 녀석도 잘 지냈느냐?”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카노부공.”
“어울리지 않는 아첨은 그만 두어라. 네놈은 아무리 봐도 아첨하고 사람의 비위를 맞출 놈은 아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카노부공.”
강영남의 대답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말을 칭찬으로 들었느냐? 상인이 비위를 맞추지 못할 놈이라고 말했다면 그만큼 무능한 놈이라는 뜻이다. 이 곰 같은 놈아.’
마쓰라 다카노부는 울화가 치미는 눈으로 강영남을 바라보았지만 강영남은 칭찬을 들은 것이 기분 좋았는지 웃는 얼굴로 마쓰라 다카노부를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는 없었던 마쓰라 다카노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대원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 내 아들은 잘 지내고 있느냐?”
“예. 장군님께서는 늘 건강하십니다.”
헤이메를 떠올린 마쓰라 다카노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아들에게 좋은 소식은 없느냐?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는 소식 말이다.”
강영남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그런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강영남의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도 헤이메도 둘 다 젊은데 왜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인지.”
한탄을 하듯이 한숨을 내쉬던 마쓰라 다카노부는 생각을 떨쳐버리듯이 좌우로 고개를 돌린 후 강영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자기와 다완을 가져왔느냐?”
“예 자기와 다완 그리고 황금을 가져왔습니다.”
황금을 가져왔다는 대답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번에도 금을 은으로 환전할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아들의 부탁이니 환전해 줘야지. 이번에는 얼마나 가지고 왔느냐?”
“금 1만 냥입니다.”
“1만 냥?”
금을 1만 냥이나 가져왔다는 대답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놀라서 다시 물었다.
“예 다카노부공 금 1만 냥입니다. 은 12만 냥으로 환전해 가려고합니다.”
금 1만 냥은 370kg이 넘는 무게이고 은 12만 냥은 4.5톤이 넘어간다. 아무리 마쓰라 다카노부라도 무시할 수 없는 거액이었다. 강영남의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은 2가지 알려줄 것이 있다.”
“말씀하시지요. 다카노부공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이번에 자기는 몰라도 다완은 판매하기 어려울 것이다.”
찻잔은 왜국 상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상품이었다. 그런데 찻잔을 판매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에 강영남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마쓰라 다카노부를 바라보았다.
“야마토 다이나곤이 돌아가신 것은 알고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야마토 다이나곤이 누구십니까?”
“겨울 동안 아들의 영지에만 처박혀 있었으니 알 리가 없지. 야마토 다이나곤은 간파쿠의 친동생인 도요토미 히데나가의 관직명이 다이나곤이기에 그의 영지인 야마토를 붙여서 야마토 다이나곤이라 부른다. 지난달에 야마토 다이나곤이 돌아가셨다.”
“그것이 이번 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강영남의 질문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했다.
‘아들놈은 상인으로 나서도 대성할 정도로 판단이 빠르고 저놈 이전에 왔던 사화동이라는 놈도 눈치가 빠르고 상품을 보는 눈이 있었는데. 아들과 사화동은 어디에 가고 왜 저런 곰 같은 놈을 보냈는지.’
“간파쿠의 친동생이자 간파쿠의 심복인 도요토미 히데나가가 형인 간파쿠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간파쿠께서는 기분이 좋으시겠느냐?”
“아닙니다. 매우 슬퍼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고관대작이신 야마토 다이나곤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다른 고관대작 분들이 마음껏 사치를 부리며 즐거워 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한동안은 애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렇다. 간파쿠께서 심기가 불편하시고 고관대작들도 한동안은 사치를 부릴 수 없는 형편인데 다완이 잘 팔릴 리가 있겠느냐?”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강영남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지으며 대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찻잔을 이전과 같은 가격에 판매하기 어렵다면 이번에는 찻잔을 판매하지 않고 가지고 돌아가겠습니다.”
강영남이 찻잔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역시 이대원의 부하라고 생각했다.
‘이것 역시 아들이 가르친 것일 것이다. 제값을 받지 못하면 가지고 돌아오라고 명령한 것이 분명해.’
“역시 아들이 믿고 맡긴 심복답다. 아들에게서 제대로 배웠구나.”
“장군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강영남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속으로 다완의 가격과 가치를 계산했다.
‘한동안은 다완이 제값을 받지 못하겠지만 다이묘들이 다시 다완을 찾으면 그동안 제값을 받지 못했던 다완의 가치가 다시 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다완을 확보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음 달이라도 다이묘들이 다시 다완을 찾을 수 있으니.’
여기까지 계산한 마쓰라 다카노부는 강영남에게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찻잔을 여기까지 가져왔는데 다시 가져가겠다니 그것도 아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아들이 나를 믿고 보낸 상품이니 내가 대완을 모두 구매하도록 하겠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찻잔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강영남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카노부공 찻잔의 가격은 아실 줄 믿습니다. 가격은 이전에 받던 그대로 받겠습니다.”
“좋다. 나도 아들의 상품으로 이익을 볼 생각은 없으니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다카노부공.”
강영남이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하자 인사를 받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강영남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네게 말해줄 것은 이번에 가져온 금을 은으로 환전해 주는 것은 특별히 수수료를 받지 않고 해주겠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이 있다는 말에 강영남은 마쓰라 다카노부를 바라보았다.
“나도 아들이 하는 금은 거래에 동참하고 싶다. 은 3만 냥을 투자할 것이니 금으로 환전해 줄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