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200화 (200/223)

< 강선과 창병 >

신묘년(1591년) 3월 27일 대해국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는가?”

“전하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소장이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전하.”

“잘했네. 잘했어. 아주 현명하게 대답했군.”

강영남의 보고를 들은 나는 강영남의 대답에 만족하며 강영남을 칭찬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아주 잘 대답했네. 이번 일은 내가 다카노부공을 만나 직접 협상할 것이니 마음 놓도록 하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강영남을 격려해서 돌려보낸 후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 제안을 생각해 보았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고? 말이 투자지 우리 선단이 마카오와 히라도를 오가며 금은거래로 이익을 보는 것을 보고 숟가락을 얻고 싶다는 말이겠지. 어차피 히라도에서 금을 은으로 환전해야하니 마쓰라 다카노부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어렵겠지만 강영남이 승낙하지 않은 덕분에 마쓰라 다카노부가 제시한 조건보다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겠구나.’

금은거래는 한번 마카오와 히라도를 왕복할 때 마다 금과 은을 2배로 불릴 수 있는 사업이었지만 나는 금은거래에 큰 욕심이 없었다. 

‘어차피 내년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할 것이니 금은거래를 할 수 있는 기간도 올해뿐이다. 올해 전선들과 군사들을 훈련시킬 것을 생각하면 금은거래도 많아야 2차례 정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내년인 임진년(1592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올해는 무역의 규모를 줄이고 무기와 화약의 생산과 군사들의 훈련을 시간과 자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부탁도 들어줘야 하고 일본의 동향도 살펴야 하니 금은거래에 마쓰라 다카노부를 끼워주자. 내가 히라도에 가서 마쓰라 다카노부를 만나봐야겠군.” 

한동안 대해국의 내정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대해국 국내에만 있었으니 히라도와의 무역을 내가 직접 지휘하는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사도에서 돌아온 후에도 지금까지 정신없이 바빴던 나는 오랜만에 마쓰라 다카노부를 만날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좋아. 4월중에 선단을 이끌고 히라도로 가기로 하고 우선은 국내의 일을 마무리 짓자.”

지난달에 벌였던 대해국의 사도 정벌은 성공적이었다. 비록 사도 전체를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전략목표였던 사와네 성과 하모치 성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했고 츠루코 은광까지 점령했으며 그 과정에서 혼마 가문, 우에스기 가문의 군사들과 전투를 치르면서 대해국의 병사들도 실전을 경험했으니 예상보다 빨리 사도에서 철수하기는 했지만 사도를 정벌한 목표는 충분히 달성한 셈이었다.  

사도에서 대해국으로 철수한 후 가장 먼저 한일은 사도를 정벌하면서 올린 전과를 확인하는 것과 사도를 정벌하는 도중 벌어진 전투에 대해 보고를 받고 전투의 진행상황과 결과를 확인한 일이었다. 사도를 정벌하면서 얻은 노획품과 이주민들의 수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남녀성인 2000명을 포함해 어린아이들 까지 4000명 이상의 주민을 대해국으로 이주시키는데 성공했고 사와네 성과 하모치 성에서 노획한 식량과 왜군들의 갑옷 그리고 병장기의 수도 적지 않았다. 

거기다가 시마즈 도시히사는 츠루코 은광에서 은 600냥을 가져왔고 최도진은 하모치 성에서도 에치고로 보내려던 은 1000냥을 노획해 가져왔으며 혼다 고로자에몬 역시 사와네 성에서 노획한 은 500냥과 귀금속들을 가져왔으니 사도를 정벌하는데 쓰인 군비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전과 보고 후 사도에서 벌어졌던 전투의 진행상황을 보고 받은 나는 하모치 성을 공격하기 위해 적군의 조총 사정거리까지 병사들이 진군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최도진에데 질문을 던졌다.

“아군의 화승총은 우에스기 군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철포보다 사정거리도 길었는데도 적군의 사정거리 안 까지 병사들이 진군해야 했단 말인가?”

“아군의 화승총이 철포보다 사정거리가 길다고는 하지만 전장에서 아군 병사들이 충분한 거리를 둬도 될 만큼의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전장은 병사들이 여유 있게 적군을 조준하고 발포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최도진의 대답에 나는 화승총을 개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적군보다 적은 수의 병력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화기의 사정거리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전투에서 승리해도 아군 병사들의 피해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전투를 치를 때마다 피로스의 승리를 거둬서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하모치 성 전투에 대한 보고가 끝난 후 츠루코 은광에서 벌어졌던 전투에 대한 보고를 받은 나는 아군 사상자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대포와 화승총을 발포한다고 해도 전투가 벌어지면 적병과 접전(接戰)이 벌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군 병사들이 총검으로 무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화승총에 총검을 달아도 적군의 창보다는 길이가 짧고 무게는 더 무겁습니다. 그리고 총검으로는 민첩하게 검을 휘두르는 적군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아군도 검술을 연마한 무장들과 장창으로 무장한 창병들이 필요합니다.”

시마즈 도시히사의 보고에 나는 머리가 아팠다.

“화승총은 위력적인 무기이지만 발포 후 재장전하기 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 화승총의 약점이다. 재장전하는 시간을 노려 적병이 검과 창을 들도 공격해 들어올 때 대처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근접전에 대비해 날쌘 병사들을 선발해 훈련시키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내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여 병사들을 훈련시키겠다고 하자 시마즈 도시히사는 허리를 숙이며 내게 인사를 올렸다.

사도 정벌 당시 직접 군사들을 지휘했던 시마즈 도시히사와 혼다 고로자에몬 그리고 최도진은 공통적으로 대해국의 병사들이 인내심이 강하고 상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했으니 대해국 소속으로는 처음 치른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의 명령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다만 기존의 화승총으로는 적군의 철포에 비해 압도적인 화력을 내기가 어려웠고 군대가 포병과 총병만으로 구성된 탓에 검과 창을 든 적군과 접근전이 벌어졌을 때 총검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접전이 벌어질 경우 총병들을 지원할 부대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사도에서 치른 전투에 대한 보고가 끝난 후 나는 내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내가 성급했다. 화승총도 개머리판과 가늠쇠 그리고 가늠좌만 설치해도 왜군의 철포에 비해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 더 이상 개량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동안 화승총을 더 개량할 시간이 있었는데 총기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으니 시간을 많이 낭비했구나. 그리고 이시대의 유럽 군대들이 대포와 화승총으로 무장하고도 창병을 비롯해 냉병기로 무장한 병사들을 양성한 이유가 있었어. 모든 병력이 소총으로 무장한 현대 아니 미래의 한국군을 생각하면서 총병과 포병만으로 전쟁을 하려고 하다니 내가 현실을 너무 몰랐다.’

내 실수를 깨달은 나는 이번에 치른 전투에 대한 진행사항과 보고된 내용을 토대로 김개동, 조천군, 최도진, 시마즈 도시히사, 혼다 고로자에몬과 함께 대책을 연구했다. 우선 화승총의 사정거리를 연장시키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화승총에 강선을 파고 구슬형태의 총탄을 원뿔형 형태로 개량할 것을 결정했다. 장군들은 총에 강선을 파고 총탄의 모양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화승총의 사정거리가 길어지고 정확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강선을 파는 것과 총탄을 개량하는데 찬성했다.

“병사들 가운데 몸이 날쌔고 체력이 좋은 병사 500명을 선발해 검술훈련을 시키도록 하겠다. 병사들에게 검술을 훈련시키는 것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김개동을 바라보았다. 김개동은 내가 자신을 바라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위장군 김개동의 검술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과인이 잘 알고 있다. 호위장군 어떤가? 병사들에게 검술을 가르칠 수 있겠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김개동은 영광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김개동에게 검술 훈련을 맡기자 시마즈 도시히사와 혼다 고로자에몬은 기대했었는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혼다 고로자에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호위장군이 병사들에게 검술을 가르쳐도 호위장군의 검술은 조선에서 배운 것이니 병사들에게 왜국의 검술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 혼다 고로자에몬 어떤가? 병사들이 왜국의 무사에게 밀리지 않도록 검술을 가르칠 수 있겠나?”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혼다 고로자에몬에게는 나의 제안이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혼다 고로자에몬은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혼다 고로자에몬을 장군에 임명한다. 병사들이 전원 백호대와 같은 수준으로 검을 쓸 수 있도록 철저하게 훈련시키도록 하라.”

“예. 전하. 소장이 알고 익힌 모든 검술을 병사들에게 가르치고 전수할 것입니다.”

장군의 반열에 오른 혼다 고로자에몬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장군들은 혼다 고로자에몬을 격려하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과인은 전쟁을 하려면 다양한 병종의 부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창병도 양성하려고 한다. 창병은 길고 무거운 창을 들고 장시간 버틸 수 있어야 하니 체력이 좋은 병사들을 500명 선발해 훈련시킬 것이며.”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시마즈 도시히사 장군은 이미 다른 업무로도 많이 바쁘겠지만 창병들의 훈련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창병들을 훈련시킬 수 있겠냐는 질문에 시마즈 도시히사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창병의 양성을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맡긴 것은 조선과 일본의 창의 길이와 대해국 창병이 상대할 적군이 왜군이기 때문이었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은 창의 길이가 3m 이상으로 길어졌고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왜인들은 조선군이 들고 있는 창의 길이가 왜군의 창 보다 짧은 것을 보고 비웃었다고 했지. 같은 창을 들고 창병들이 접전을 벌인다면 아무래도 적군보다 긴 창을 들고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일본은 내전을 겪으면서 화승총 같은 신무기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칼과 창 같은 냉병기들도 발전을 해온 것이지.’

이렇게 사도정벌의 경과를 확인하며 드러난 문제점과 부족한 부분들을 찾아내 개선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나는 강영남의 보고를 받고 4월에는 히라도 까지 방문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매일 같이 과로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에 가스파르 코엘료가 나를 찾아왔다.

“안녕하셨습니까? 전하.”

“오래간만이오. 잘 지내셨소.”

가스파르 코엘료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스파르 코엘료와 예수회를 통해서 받은 지도와 자료들은 내게 엄청난 가치가 있었고 가스파르 코엘료 덕분에 대해국에서 컬버린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가스파르 코엘료와 예수회가 대해국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번에 대승을 거두셨다고 들었습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전하.”

‘역시 찾아온 이유가 있었군.’

사도 정벌은 대해국에서 큰 비밀도 아니었고 병사들 중에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았으니 가스파르 코엘료가 사도를 정벌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맙소. 신부. 그런데 신부가 축하인사를 위해 과인을 찾아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과인을 찾아왔는지 물어도 괜찮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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