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조짐 >
“전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말해보시오. 신부께서 직접 찾아오셨으니 들어 보겠소.”
“전하께 직접 아뢸 기회를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가스파르 코엘료는 감사인사를 한 후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대해국으로 이주한 주민들의 사정을 전하께 말씀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가스파르 코엘료가 사도를 정벌하면서 대해국으로 이주시킨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계속 말해보라는 뜻으로 가스파르 코엘료를 바라보았다.
“전하. 간단히 말씀드리면 주민들은 지금 몹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자신들을 이곳 대해국으로 이주시키신 의도를 알지 못하고 있으니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보시오. 지금도 식사와 숙소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불안해하고 있다니 무슨 뜻이오?”
“전하. 이주민들은 자신들이 대해국에 노예로 잡혀온 것인지 아니면 이미 대해국에 살고 있는 다른 주민들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 숙소는 배정 받았고 매일 식사도 부족하지 않게 제공되고 있지만 마음속에 불안감을 품고 있는데 마음 편히 지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음. 확실히 사도의 주민들이 대해국에서 받고 있는 대우가 대해국에서 구매한 노예들과 다를 것이 없기는 하지. 귀국한 이후 바빠서 주민들을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있고 대해국에 이주한지 얼마 안 된 주민들을 그냥 국내에 풀어줄 수도 없어서 우선은 노예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지내게 하고 식사만 제공했으니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군. 확실히 주민들에 대한 문제는 그동안 과인이 신경 쓰지 못했었소. 우선은 주민들에게 그들은 노예가 아니며 대해국의 일반 백성으로 대우받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공포하도록 하고 그들에게 집과 일자리를 주는 문제도 곧 해결하도록 하겠소. 그 밖에 과인에게 할 말이 더 있으시오?”
할 말이 더 있냐는 질문에 가스파르 코엘료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감히 전하께 부탁을 드리자면 혼자 살고 있는 여인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하.”
“그것은 무슨 말이오? 혼자 살고 있는 여인들에 대해 신경 써 달라니?”
“전하. 대해국에는 남편이 없이 혼자서 지내고 있는 여인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에 대해국으로 이주한 주민들 중에도 남편이 없는 여인의 수가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왜인들 사이에는 요바이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남편이 없는 여인들은 언제라도 요바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스파르 코엘료의 대답을 들은 나는 혀를 찼다.
‘요바이를 모를 리가 있나. 대해국에서 요바이를 저지른 놈들을 처형하기까지 했는데. 그런데 아직도 요바이를 시도하는 놈들이 있단 말이지. 지난번에 그놈들을 처형하면서 분명히 경고했었는데 여인을 겁탈한 놈들은 사형에 처한다고.’
그 사건으로 대해국에 국법을 제정할 생각까지 했었다. 대해국에 국법을 만들 인재가 부족해 정옥남에게 국법의 제정을 부탁했지만 정옥남은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고 자연히 국법을 제정하는 일도 아직까지 진척이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여인을 겁탈한 자들은 사형에 처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주민들에게 공포할 것이고 곧 대해국에 국법을 제정해 법률로써 요바이를 비롯해 여인을 겁탈하는 행위를 정식으로 금지시킬 것이니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가스파르 코엘료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전하. 요바이는 왜인들이 풍습으로 여기며 지난 날 부터 지금까지 행했던 관습입니다. 처벌과 법률로써 억압하는 것은 한계가 있사옵니다. 여인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알겠다고 하지 않았소. 국법을 제정하는 것 외에도 남편이 없는 여인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오.”
가스파르 코엘료는 무엇인가 더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가스파르 코엘료에게 손짓으로 나가라고 하자 가스파르 코엘료의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방을 나갔다. 가스파르 코엘료를 내보냈지만 그가 한 이야기들은 충분히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우선 법률부터 만들고 강간범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야겠지만. 가스파르 코엘료의 말한 대로 처형하겠다고 공포했어도 요바이를 시도할 간 큰 놈들이 있을 수는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야.’
대해국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내들 보다 여인들의 수가 더 많았고 그것도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수가 적지 않았다.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지금까지 대해국의 남녀 성비 균형을 맞추는데 실패했고 이번에 사도에서 대해국으로 이주한 주민들 중에서 여인의 수가 사내들 보다 많았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인들이 주로 요바이의 대상이 된다고 했지? 그럼 여인들이 남편과 함께 생활하면 해결되는 문제잖아. 대해국의 국력을 위해서도 여인들이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아.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아이들도 더 낳고 대해국의 주민들 수도 증가할 테니. 문제는 대해국에 사내들의 수는 적고 여인들의 수는 많다는 것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
요바이로 부터 여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은 여인들에게 남편을 구해주면 해결된다고 판단한 나는 고민 끝에 일부다처제를 생각해냈다.
‘그래. 사내들의 수는 적고 여인들의 수는 많으니 단순하게 생각하자 대해국의 현실을 감안해 일부일처제를 강요하지 않고 첩을 두는 것을 아니지. 사내가 여인과 강제로 혼인을 올리는 것만 아니라면 부인을 여러 명 두는 것을 금지하지만 않아도 성비 불균형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
일부다처제로 성비 불균형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단순무식한 방법이었고 성비 불균형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당장 국법 문제부터 해결하자 정옥남을 만나보고 일할 생각이 없어 보이면 내가 직접 국법을 만들어서 공포하자. 그리고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문제는 아니 일부다처제를 금지하지 않는 문제는 장군들과 함께 의논한 후에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결정을 내린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정옥남을 만나보고 국법문제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같은 시간 조선 전라좌수영 돌산도
지난 2월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돌산도의 둔전과 염전 그리고 염초밭을 돌아보며 시설들을 확인했다. 이순신과 이억기는 녹도만호와 순천부사로 좌수영에서 복무했었을 당시 전라좌수사 이대원이 돌산도에 염전과 염초밭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똑똑히 잘 보았었다. 염전과 염초밭이 전라좌수영의 군비와 화약의 생산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시설인지 잘 알고 있었던 이순신과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부터 돌산도의 시설들을 보수하고 관리했고 오늘은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돌산도를 견학하기를 요청해 이억기와 함께 돌산도를 돌아보고 있었다.
“돌산도는 여전하군요.”
이억기는 바닷물을 퍼 올려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염전을 바라보며 감탄하듯이 말했다.
“한때는 좌수영의 군사들을 소금을 생산했었지만 지금은 인근 지역의 유랑민들을 염전의 인부로 고용해 소금을 생산하고 있소이다. 유랑민들도 구제할 수 있고 군사들도 염전에서 해방 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지.”
이순신은 이억기를 바라보며 염전에 대해 설명했다. 이순신과 이억기는 지금은 같은 품계의 수군절도사지만 16세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만큼 이억기는 이순신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정말 든든하시겠습니다. 돌산도에서 이렇게 소금과 곡식 그리고 염초까지 생산할 수 있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우수사도 우수영에서도 염전과 염초밭을 만들 생각이 아니시오? 그래서 돌산도에 견학을 온 것을 짐작했소이다.”
“그렇습니다. 진도에 돌산도와 같은 염전과 염초밭을 만들어 소금과 염초를 생산할 생각입니다. 물론 둔전도 일구고 말입니다.”
이순신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억기를 따라온 전라우수영의 장수들과 아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돌산도의 시설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하나라도 더 알아가겠다는 열정을 보이며 좌수영의 장수와 아전들에게 염전과 염초밭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순신은 좌우를 둘러본 후 이억기에게 말을 건넸다.
“장수들이 천천히 염전을 둘러보도록 놔두고 우리는 술이나 한잔 합시다. 우수사와 오랜만 에 만났으니 술 한 잔이 없어서야 되겠소.”
“예. 앞장서시지요.”
이순신의 안내로 이억기는 항왜들이 살던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이미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고 이억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이순신은 송희립에게 엄명을 내렸다.
“우수사와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아무도 집안으로 들이지 말라.”
“예. 영감 소장이 문 앞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송희립이 씩씩하게 대답하고 방문을 닫자 이순신은 술병을 들어 이억기에게 권했다.
“우수사 한잔 드시오.”
이억기는 이순신의 잔을 받았고 둘은 동시에 잔을 비웠다.
“우수사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곳으로 모시었소. 대접이 시원치 않아도 이해해 주시오.”
“아닙니다. 좌수사 영감. 이렇게 불러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순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억기에게 물었다.
“녹도만호로 있다가 좌수영을 떠난 본관이 다시 좌수사로 부임한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소?”
“순천부사로 있었던 제가 전라우수사로 부임한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왜국과의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겠지요.”
이순신은 이억기의 대답에 동의하면 입을 열었다.
“그렇지. 듣자하니 왜국으로 통신사 일행이 다녀왔다고 하네. 왜국의 요청으로 통신사가 다녀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왜국으로 다녀온 통신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조정에서 본관을 좌수사로 임명한 것을 보면 조정에서도 왜국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좌수사 영감과 저 뿐만이 아니라 이번에 북방에 있던 무관들 중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으로 부임한 자들의 수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더구나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주요 성들의 성벽을 보수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하니 왜국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지난날 녹도만호로 좌수영에 있었을 때는 좌수사 영감께서 왜국을 경계하시는 것을 보고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틀린 말씀은 없으셨지. 좌수사 영감의 염려가 단순한 기우(杞憂)이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군. 왜국은 실제로 조선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부유하며 왜인들은 거칠고 사납기가 그지없으니 왜군이 조선을 침략한다면 큰 피해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네.”
“다행히도 왜국이 조선을 침략할 것을 예상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대비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전라좌수군은 병력의 수와 병장기의 수도 장부와 일치하고 염전과 염초밭 덕분에 군비도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전라우수군을 좌수군 못지않게 정비하고 훈련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억기의 각오를 들은 이순신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랫동안 염전과 염초밭의 일을 맡아왔던 병사들과 유랑민들을 우수영으로 보내도록 하겠네. 염전과 염초밭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네. 앞으로 할 일이 많으니 염전과 염초밭을 만드는 일은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할 것이네.”
“좌수사 영감.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