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법 제정 >
신묘년(1591년) 4월 05일 대해국 함관
함관의 요새 안 공터에 함관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아침밥을 먹은 후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모이라는 지시를 받은 주민들은 아침 일찍 공터에 모여들었고 주민들이 모이자 나는 준비되어 있던 단상에 올라가 주민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과인이 나라를 세울 것을 선포하고 대해국을 세웠지만 그동안 국법을 제정하지 않아 대해국의 백성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소견(所見)에 옳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과인은 이에 나라의 법률을 바로 세워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도록 하고 국법을 어기는 자는 엄하게 처벌하여 나라의 기강을 세우려고 하니 대해국의 모든 백성들은 대해국의 국법을 잘 듣고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말을 마친 나는 호위병에게 손을 내밀며 외쳤다.
“물.”
호위병은 물이 들어있는 그릇을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단숨에 물그릇을 비우고 빈 그릇을 다시 호위병에게 내밀었다. 물을 마신 나는 준비해 놓은 두루마리를 펼쳐 그 안에 적힌 대해국의 국법을 주민들에게 외쳤다.
“이제 대해국의 국법을 발표할 것이니 모두 잘 듣고 지키도록 하여라. 첫째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 둘째 여인을 겁탈한자 역시 사형에 처할 것이다. 셋째 반란을 일으킨 자 역시 사형에 처할 것이다. 넷째 도둑질을 한 자는 곤장을 친 후 훔친 물건의 10배를 배상하게 할 것이며 10배로 배상하지 못 할 시에는 그의 가족과 함께 노예로 만들 것이다. 다섯째 함부로 소나 말을 죽인 자는 곤장을 치고 죽은 가축을 배상하게 할 것이다. 여섯째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장수와 병사는 그 신분에 상관없이 포상할 것이다. 일곱째 전쟁에서 사망한 장수와 병사의 부인과 자녀들은 나라에서 책임지고 부양할 것이다. 여덟째 사내든 여인이든 상대방에게 혼인을 강요하거나 상대방의 허락을 받지 않고 강제로 혼인을 올릴수 없다. 아홉째 16세 이하의 소년과 소녀는 혼인할 수 없다. 열 번째 혼인을 한 사내는 부인과 가족의 동의를 얻었을 때에만 다른 여인을 부인이나 첩으로 맞이할 수 있다.”
주민들에게 국법을 제정했음을 선포한 나는 단상에서 내려와 요새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해국에 국법을 제정하는 일은 작년부터 생각했던 일이었다. 드디어 국법을 제정하는데 성공했고 주민들에게 공포했지만 준비했던 일을 마쳤다는 개운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번에 제정한 국법은 고구려의 법률을 참고해 내가 만든 것이었다. 정식으로 국법을 제정하기 위해 정옥남에게 국법의 제정을 부탁했었지만 국법이 제정하는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옥남을 찾아간 나는 정옥남과 대화를 나눈 후 정옥남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부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진척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국법의 제정을 부탁한지가 반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국법의 기초도 만들지 못하고 변명하기에만 급급한 정옥남의 모습에 나는 실망감을 넘어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정옥남이 원하는 대로 조선과 명국의 법률에 대한 서적도 구해주었으니 자료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그동안 시간도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것은 정옥남에게 일을 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정옥남에게 실망한 나는 한국에서 역사책을 본 기억을 떠올려 고구려의 법률을 참고해 대해국의 국법을 제정했고 장군들과 의논한 끝에 정식으로 국법을 공포했다. 국법을 제정하는 일을 장군들과 의논하던 자리에서 나는 대해국의 남녀 성비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이 문제의 대안을 물었다. 장군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당황했는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장군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나는 장군들에게 일부다처제를 제안했다.
“대해국에 사내들 보다 여인들의 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오. 특히 왜국 출신 사내들은 요바이라는 풍습에 익숙하다고 하고 혼자 사는 여인들은 언제라도 요바이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과인은 국법으로 여인을 겁탈한 자들을 처벌하여 요바이를 금지시킬 생각이오. 하지만 세상일이 법대로만 이뤄지지는 않지 않겠소. 특히 대해국은 영토는 넓고 주민들의 수는 적어 관아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지역도 적지 않으니 국법과 처벌로 요바이를 금지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오. 그래서 과인은 여인들의 보호와 안정을 홀로 지내는 여인들을 혼인시키는 것을 장려하려 하는데 제장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아주 좋으신 생각이십니다. 전하. 여인들도 혼인을 하고 남편과 함께 생활한다면 요바이를 당하거나 사내들에게 다른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최도진은 내말에 찬성하고 좋은 생각이라고 대답했지만 조천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하오나 대해국에 홀로 사는 여인들의 수가 많은 것은 대해국에 사내들의 수가 적어서 여인들이 아직 혼인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어떻게 여인들을 혼인 시킬 수 있겠사옵니까?”
조천군의 질문에 나는 장군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소. 당장 조선이나 왜국에서 대해국으로 사내들을 데려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오. 그래서 말인데 생각해보니 대해국에는 아직 국법이 제정되지 않았소. 그것은 이미 혼인을 한 사내가 첩을 두거나 두 번째 부인과 혼인을 한다고 해도 법을 어기는 일은 아니라는 말이오.”
조천군을 비롯한 대해국의 장군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특히 조선 출신인 조천군, 최도진, 강영남, 박언필은 그게 말이 되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곳은 조선이 아닌 대해국이었고 나는 대해국의 왕이었다.
“조선이라면 정실부인이 두 명이상 있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곳은 조선이 아닌 대해국이오. 두 명 이상의 정실부인과 혼인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겠소. 그렇다고 첩을 두거나 여러 부인과 혼인을 하라고 권장하는 것은 아니오. 그리고 혼인을 한 사람도 부인과 두 번째 부인과 혼인을 하는 것이나 첩을 두는 것은 정실부인과 가족들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게 법률로 제정할 생각이오.”
내 대답을 들은 장군들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장군들의 눈빛을 느끼며 변명하듯이 말했다.
“물론 이 방법이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다른 방법이 없으니 우선 실행하도록 하겠소. 특히 대소호수 인근의 마을은 일손이 많이 필요한 곳이니 한 집에 부인이 두셋 정도 있다고 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소.”
내말이 끝나자 시마즈 도시히사가 의외라는 듯이 내게 말했다.
“전하. 송구하옵니다만 전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시마즈 도시히사의 말에 다른 장군들도 동의한다는 표정을 짓자 나는 도시히사에게 물었다.
“도시히사 장군. 왜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대답하실 수 있겠소?”
“전하께서는 곁에 많은 여인들이 아니 미녀들이 있지만 중전마마[이대원의 정실부인 이씨] 와 차비(次妃)마마(둘째 왕비)[헤이메]만을 사랑하시지 않으십니까? 전하께서 시녀들과 마카오의 상인이 보낸 노예들과 동침하셨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토록 마마분들을 사랑하시는 전하께서 사내들이 첩을 두고 본부인 외에 다른 부인들 두시는 것을 허락하시다니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옵니다. 전하.”
시마즈 도시히사의 대답을 들은 난 쑥스러운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도시히사와 장군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내가 이런 계획을 생각한 목적을 설명했다.
“과인은 사내들이 여색을 즐기라는 의도(意圖)로 혼인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오. 다만 홀로 살고 있는 여인들의 안정을 위해서도 혼인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어 부인이 있는 사내들의 혼인을 금지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전하. 전하께서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에 이번 계획을 생각하신 것은 소장들도 알겠으나 미천한 백성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단순히 축첩(蓄妾) 금지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여인들을 보호하는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조천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조장군은 축첩(蓄妾)을 금지하지 않는 것 외에 어떤 방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오?”
조천군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전하께서 먼저 본을 보이시는 것이 백성들이 전하의 의도를 이해하고 따르게 하는 데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여 지나이다. 전하.”
“본을 보이라니 그것이 무슨 말이오. 장군?”
“전하께서 먼저 후궁을 들이시면 백성들도 축첩(蓄妾)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것이옵니다. 전하.”
‘후궁을 들이라.“
조천군의 대답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하자 시마즈 도시히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전하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전하께서 먼저 본을 보이셔야 하옵니다. 전하께서 먼저 정식으로 후궁을 들이시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셔야 백성들에게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후궁으로 들이라는 제안에 나는 장군들에게 한방 맞은 기분이 들었지만 장군들의 말을 들어보니 틀린 말이 없었다. 대해국의 사내들이 이미 대부분 혼인을 했고 부인이 있는 사람들이니. 국법으로 첩을 두는 것이나 두 번째 정실부인과 혼인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갑자기 나서서 혼인을 하고 첩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한국은 지금과 정 반대의 상황이지 성비불균형이 같은 또래의 남자가 부족한 상황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국제결혼도 많이 하는 상황이니 한국이든 대해국이든 여러 부인과 혼인을 할 수 있다면 좋아할 사내들은 많겠지만 갑자기 그러라고 하면 쉽지 않을 거야.’
고민 끝에 나는 장군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소. 과인이 먼저 후궁을 들이기로 하겠소. 물론 대비마마[이대원의 친모 전씨 부인]와 중전과 차비와 의논하여야겠지만 대비마마와 중전, 차비도 과인의 뜻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소. 과인은 후궁들을 들인 후 그것을 대해국의 백성들에게 알릴 것이오, 그러니 과인이 후궁을 들인 후에는 장군들도 백성들 앞에서 본을 보여주시오.”
장군들도 본일 보이라는 말에 장군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장군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만 당할 수는 없지.’
“이 자리에 있는 장군들은 대해국을 대표하는 용사들이니 한두 명씩으로는 안 되실 것이오. 각자 셋 이상의 여인들과 혼인을 맺으실 것을 믿겠소.”
조천군을 비롯해 조선 출신장군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시마즈 도시히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저희 같은 장군들도 백성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전하.”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시히사에게서 전국시대를 살아온 무장이자 정치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았다.
‘전국시대 일본의 영주들은 대부분 정략적인 이유로 혼인을 했지. 역시 시마즈 가문의 당주 시마즈 요시히로의 동생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