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203화 (203/223)

< 마쓰라 가문의 영지 >

신묘년(1591년) 4월 20일 히라도

“6월에 마카오로 선단을 보낼 예정입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투자하시는 은을 금으로 환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은 3만 냥이다.”

“알겠습니다. 금 5000냥으로 환전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투자한 금을 가져올 때 네가 환전한 금도 가져 오너라 금을 은으로 환전하는 것은 내가 책임지고 처리해 주마.”

마쓰라 다카노부는 입을 귀에 걸칠 정도로 좋아하며 말했다. 마카오에서 환전한 금 5000냥을을 히라도에서 다시 은으로 환전하면 은 6만냥이 된다. 몇 달만에 은이 2배로 늘어나는 마법 같은 금은 거래에 드디어 숟가락을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 마쓰라 다카노부가 좋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카오가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 저희 선단이 다녀오는데 두 달 이상이 걸립니다. 6월에 출발한 선단은 8월은 되어야 돌아올 것입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8월에 선단이 돌아오면 다음 선단은 언제 마카오로 보낼 것이냐?”

마쓰라 다카노부의 질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9월에 보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투자하실 생각이 있으시면 9월에 출발하는 선단을 통해서도 은을 금으로 환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9월에 출발한다면 11월은 되어야 돌아오겠구나. 그럼 올해는 마카오에 더 이상 선단을 보내지 않을 생각이냐?”

마쓰라 다카노부는 아쉬운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내게 물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겨울에는 선단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내년의 상황을 봐서 선단을 보낼 생각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아쉬운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내년에도 선단을 보낼 생각이 있으면 미리 알려다오. 내년에도 꼭 투자할 것이니 말이다.”

“예. 아버지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마쓰라 다카노부를 금은거래에 끼워주는 것이 결정되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아까와는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래 너는 이제 무엇을 원하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지?”  

마쓰라 다카노부의 질문에 내가 당황하며 묻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눈에 빛을 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네 선단으로 내가 준 은을 마카오에 가지고 가서 금으로 환전까지 해서 다시 나에게 가져다주기 까지 하면 내게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 아니냐? 어서 말해 보거라.”

마쓰라 다카노부가 재촉하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대답했다.

“좋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말해보라고 하시니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너 답지 않게 왜 이러느냐. 어서 말해 보거라.”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하나는 8월에 철과 구리 그리고 물소 뿔을 최대한 많이 구매하려고 합니다.”

철과 구리, 물소 뿔을 구한다는 대답에 마쓰라 다카노부는 눈에서 빛을 내며 물었다.

“철과 구리에 물소 뿔이라 얼마나 필요 하느냐? 그리고 유황은 필요하지 않느냐?”

“철과 구리는 각각 5만근(30톤)씩 구매하려고 합니다. 물소 뿔은 8월까지 최대한 많이 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유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어렵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철과 구리는 당장 5만근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네가 8월까지 필요하다고 하니 그 안에는 준비해 놓도록 하겠다. 그리고 물소 뿔도 8월까지는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 볼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 외에 필요한 것은 더 없느냐?”

철과 구리를 30톤씩 구해놓겠다는 마쓰라 다카노부의 대답에 나는 속으로 놀랐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재력과 능력에 다시 한번 놀란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키 섬이 아버지의 영지인 것을 그 동안 모르고 있었다가 뒤늦게 알았습니다. 저희 선단이 히라도에 왔다가 돌아갈 때에 잠시 이키 섬에 들려서 식수를 보충하거나 파도를 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키 섬은 내 영지가 아닌 나의 또 다른 아들이자 네게는 형이 되는 시게노부가 다스리는 땅이다. 바다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이키 섬에 네 선단이 정박할 수 있다면 확실히 안전하고 편리할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자. 너는 어차피 내 아들이고 이키 섬은 나의 아들 시게노부의 영지이니. 너와 시게노부가 정식으로 형제가 되는 것은 어떻겠느냐? 결의형제가 되라는 말이다. 그럼 너는 시게노부의 형제가 되는 것이니 시게노부도 이키 섬에 네 선단이 정박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대답을 들은 나는 ‘갈수록 태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쓰라 다카노부를 아버지로 섬기고 있는데 마쓰라 시게노부를 의형제로 삼으라고 그렇지 않아도 전쟁이 벌어지면 이키 섬과 마쓰라 가문의 영지를 불바다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내가 이키 섬에 선단을 정박시킬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이키 섬의 지형과 주변 바다의 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예수회에서 작성한 지도를 보고 이키 섬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이키 섬을 점령하지 않고는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에서 조선으로 출항하는 선단을 봉쇄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임진왜란의 전초기지가 되는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에서 출발한 일본의 함대는 이키 섬과 대마도를 거쳐서 동해를 건너서 조선에 상륙했다. 특히 이키 섬은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에서 거리가 가까워 이키 섬을 점령하고 컬버린과 함대를 배치한다면 충분히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에서 출항하는 선단을 봉쇄할 수 있었다.

‘지도와 자료들을 확인해 보니 나고야 성(히젠 나고야)이 세워지는 히젠의 마쓰라 군도 마쓰라 가문의 영지던데.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미안하게 됐어. 전쟁이 발발하면 이키 섬을 점령하고 나고야를 불바다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임진왜란 때문이라고는 해도 그동안 마쓰라 다카노부와 쌓인 정도 작지 않았고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도움 받았던 일도 적지 않았으니 마쓰라 가문의 영지를 불바다로 만들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쓰라 시게노부와 결의형제가 되라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내 아들의 형제가 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날카롭게 물었고 나는 황급하게 변명을 했다.

“아닙니다. 아버지. 시게노부님과 형제가 되는 것은 저에게도 큰 영광이지만 저도 어머니가 계시고 가족들이 있으니 상의 한마디 없이 곧바로 결의형제를 맺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시게노부님의 의사도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게노부의 의사는 무슨. 그놈인 내가 하라고 하면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네 어머니와 가족과 상의하지 않는 문제는. 사내가 바깥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어떻게 일일이 가족들과 상의 한다는 말이냐? 너만 싫지 않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시게노부를 부를 테니 당장 형제의 결의를 맺고 함께 술이나 한잔 하자꾸나.”

마쓰라 다카노부가 이렇게 까지 나오니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역시 그래야. 내 아들이지.” 

마쓰라 다카노부는 기분이 좋은 듯 내 어깨를 두드렸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기분이 좋은지 마쓰라 다카노부는 하녀들에게 술상을 내오라고 외쳤고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의 맞은편에 앉아 같이 술잔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도 묻지 못했구나. 그래 보아하는 너는 그동안 잘 지낸 것 같고. 헤이메는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마쓰라 다카노부가 자신의 양녀인 헤이메의 안부를 묻자 나는 입안에 들어 있던 술을 단숨에 삼키고 대답했다.

“헤이메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죄송스러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죄송스러운 일이라니 무엇이냐? 어서 말해 보거라?”

나는 한숨을 내쉰 후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아버지. 히데코, 교코, 메구미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헤이메를 네게 보냈을 때 같이 보내지 않았느냐? 그 셋 모두 헤이메와는 친 자매와도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 셋을 이번에 저의 소실로 받아들였습니다.” 

“뭐? 셋을 동시에?”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 아이들을 네게 보냈을 때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래도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는 오래 참았구나.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소실로 삼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오래 참았어. 그런데 한 번에 셋을 소실로 삼다니 그렇게 마음이 급했느냐?” 

마쓰라 다카노부는 나를 놀리듯이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내가 그 아이들을 여자로 봐서 소실로 삼은 줄 아시나? 왕으로 모범을 보여야한다고 하니 첩으로 삼았지.’

대해국에서 국법을 공포한 후 장군들과 상의한 내용을 가지고 가족들과 의논했다. 대비마마인 어머니는 이미 혼인을 한 사내들이 혼자살고 있는 여인들을 소실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소실을 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셔서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모습을 보였다. 

“주상은 한 나라의 군주이시오. 많은 자녀를 두어 후계를 튼튼하게 하는 것도 군주의 의무이니 장군들이 말한 대로 이번 기회에 후궁을 들이도록 하시오.”

중전인 이씨 부인과 차비인 헤이메는 아직 자녀가 없으니 후궁을 들이라는 대비마마의 말에 반대하지 못했고 그렇게 결국 나는 후궁을 맞이하게 되었다. 후궁으로 맞이하게 되자 나는 한집에서 살아온 히데코, 교코, 메구미를 후궁으로 맞이할 생각을 했고 그 셋을 한 명씩 불러서 후궁이 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셋 모두 거절하지 않았고 대비마마도 그 아이들을 좋게 보셨기에 후궁을 들이는 문제는 그렇게 해결되었다.

“아무튼 축하한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이 아직까지 들리지 않아 나도 신경이 쓰였었다. 정말로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몇 잔 마신 후 마쓰라 다카노부는 취기가 도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물소 뿔이 조선에서 활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것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 철과 구리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이유도 궁금하구나.” 

마쓰라 다카노부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해도 될지 망설이다가 잠시 후 대답했다.

“물소 뿔은 아버지께서 짐작하시는 대로 각궁을 만들기 위해 구매하려는 것입니다. 조선에서는 물소가 없어서 물소 뿔을 명국이나 유구(오키나와)에서 수입해 왔습니다. 이번에 낡고 오래된 무기들을 정리하면서 무기들을 새로 채워 넣어야 하기에 물소 뿔이 필요합니다.”

“철과 구리도 무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냐?”

“예. 아버지 혹시 컬버린에 대해서 아십니까?”

“물론 알고 있다. 상당히 무겁고 강력한 대포 아니냐.”

“그 컬버린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컬버린에 들어가는 철과 구리의 양이 많아 철과 구리를 평소보다 많이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컬버린을 제작하고 있다는 것을 소문낼 생각은 없었지만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내가 적지 않은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에 컬버린을 제작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마카오에서 가져온 컬버린의 무게는 2톤에 달했으니 컬버린 1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3300근 이상의 철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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