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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204화 (204/223)

< 노장의 원한 >

내가 컬버린과 각궁을 제작하기 위해 철과 물소 뿔을 구매한다고 대답했지만 마쓰라 다카노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것은 마쓰라 다카노부가 그만큼 나를 믿고 있다는 증거였고 마쓰라 다카노부는 이때까지만 해도 왜국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태연하게 나와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붙잡혀 저녁 늦게 까지 술을 마신 나는 다음날 히라도에 가져온 백자와 청자를 판매했고 그날 저녁 다카노부와 마쓰라 가문의 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쓰라 시게노부와 결의형제를 맺게 되었다. 결의형제를 맺는 의식으로 시게노부가 마시던 술잔을 받아 잔에 남아있는 술을 마신 나는 시게노부를 바라보았다.

‘다카노부도 대단하지만 시게노부도 만만치 않은 인물인 것 같군.’ 

1549년생으로 올해 42세인 마쓰라 시게노부는 아무리 아버지의 뜻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보다 17살이나 어린 나와 순순하게 결의형제를 맺었다. 17살 차이라면 지금 기준으로는 동생이 아닌 아들에 가까운 나이였다.

“오늘은 아주 기쁜 날이다. 시게노부는 물론 이대원 너도 나는 진작부터 내 아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드디어 오늘 너희 둘이 형제가 되기로 맹세했으니 그 맹세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 아버지.”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나와 시게노부가 다카노부에게 대답하자 다카노부는 껄껄거리며 나와 시게노부의 어깨를 손으로 집고 좋아했다. 그렇게 마쓰라 시게노부와 형제가 된 나는 이키 섬에 선단을 정박시킬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고 시게노부는 흔쾌히 허락했다. 히라도에서 쌀과 철, 구리, 유황 등의 상품을 구매한 나는 마쓰라 시게노부와 함께 선단을 이끌고 이키 섬으로 향했고 이키 섬에 선단을 정박시키고 하루 동안 머물렀다. 

그날 밤 마쓰라 시게노부와 함께 늦게 까지 술을 마신 나는 다음날 아침 선단을 이끌고 출항했고 조선으로 향하는 척 북쪽으로 항진하다가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대해국으로 향했다. 내가 선단을 이끌고 이키 섬을 떠나자 마쓰라 시게노부는 배를 타고 히라도로 향했다.

“이대원과 결의형제를 맺은 기분이 어떠냐?”

마쓰라 다카노부의 질문에 시게노부는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직접 만나보니 아버지께서 그자를 왜 그렇게 신경 쓰시는지 알겠습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어린 나이에 그 정도 선단을 이끌고 있다니. 그뿐만이 아니라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보통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자의 부하들도 하나같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일부러 가신들을 시켜 술을 권하고 하녀들을 붙여주었는데도 하녀들을 잠자리에 불러들인 놈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게노부의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만족한 표정으로 지으면서도 시게노부에게 주의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대원을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말거라. 이제는 네 동생이니 동생이라고 불러라.”

“예. 정말 이대원을 아들로 삼으실 생각이십니까?”

시게노부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마쓰라 다카노부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내가 이미 알아듣게 이야기 했을 텐데.”

“그래도 아버지.”

시게노부가 다카노부를 바라보자 다카노부는 시게노부의 입을 막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대원이 무슨 일을 벌일지는 모르겠지만 곧 실행을 앞두고 있는 것 같다. 철과 구리를 대량을 주문했을 뿐만 아니라 물소 뿔을 구하고 이키 섬까지 사용하려는 것을 보니 조만간에 무엇인가 일을 벌일 속셈이 분명해. 내가 볼 때 그놈은 승산이 없는 일을 벌일 놈이 아니다. 그 놈은 아니 이대원은 이번에도 크게 성공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더 큰 부를 차지하겠지. 그것은 우리 마쓰라 가문에게도 기회가 될 것이다.”

시게노부는 그제 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아버지.”

“이대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주거라 이키 섬에 전선들을 숨겨두고 싶다고 하면 숨겨둘 수 있도록 장소를 비워주고 물이냐 식량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것도 주거라. 우리는 차후에 이대원에서 이자까지 쳐서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니 아끼지 말고 퍼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마쓰라 시게노부가 힘차게 대답하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시게노부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알았으면 그만 나가거라.”

“예 아버지.”

마쓰라 시게노부가 다카노부에게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가자 다카노부는 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크게 투자할수록 크게 먹는 법이지.”

신묘년(1591년) 5월 나는 히라도를 방문해 컬버린과 각궁이 제작하는데 필요한 철과 구리 그리고 물소 뿔을 주문하는데 성공한 것에 만족하고 대해국으로 돌아왔다. 마쓰라 시게노부가 결의형제가 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내 의지라기보다는 마쓰라 다카노부의 강요에 가까운 일이었고 어차피 전쟁이 벌어지면 이키 섬은 물론 히젠국의 마쓰라 가문의 영지도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결의형제를 맺은 것에 그리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5월 히라도에서 구매한 상품들을 가지고 무사히 대해국에 돌아온 나는 군사들의 훈련상태를 점검하고 전선과 무기 제작을 독려하며 대동계 조직과 이가 닌자들을 동원해 조선과 왜국의 동향을 살폈다.

한편 조선에서 온 통신사가 다녀가면서 소통의 통로가 열리는 것 같았던 조선과 왜국의 사이는 점차 험악해져 가고 있었다. 통신사가 왜국에 도착했을 바로 그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간토의 호조가문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하고 난 다음이었다. 조선에서 온 통신사 일행은 히데요시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히데요시의 행방도 모른 체 히데요시를 기다려야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끝내고 오사카 성으로 돌아와 통신사 일행을 만났을 때는 간토는 물론 오우(奥羽) 지방까지 평정하는데 성공한 히데요시가 자신감이 넘쳐 있는 상황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통신사 일행이 자신이 일본을 통일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온 사절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히데요시는 통신사 일행을 대면하는 자리에서 자심감에 넘쳐 무례하게 보일 정도로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그런 히데요시의 모습을 본 통신사 일행은 히데요시에게 실망했고 히데요시가 명국으로 진군할 것이니 조선 왕은 길을 안내하라고 한 소리를 허풍으로 받아들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신묘년(1591년) 6월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를 조선으로 보내 자시 한번 자신이 명국으로 진군할 것이니 조선은 명국으로 가는 길을 열고 길을 안내하라고 요청했지만 명국을 상국으로 모시고 있던 조선에서 히데요시의 이런 요청을 받아들 일리는 없었다. 조선은 명국에 왜국의 풍신수길이 명국을 공격하려고 한다고 보고하는 한편 경상도 지역의 성들의 성벽을 보수하려고 했지만 명국에서는 이런 조선의 보고 받고도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성벽의 보수 역시 부역에 동원되는 주민들의 반발과 재정문제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신묘년(1591년) 9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공격할 것을 결정하고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총 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규슈의 히젠국에 전초기지 역할을 할 성을 쌓을 것을 명령했다. 이가의 닌자들을 통해 히데요시가 총동원령을 내렸다는 보고를 받은 나는 조천군과 최도진 그리고 시마즈 도시히사를 호출했다.

“히데요시가 다이묘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고 한다. 결국 조선을 공격하려는 것 같다.”

대해국이 어떤 목적으로 건국됐는지 잘 알고 있었던 대해국의 장군들은 히데요시가 총동원령을 내렸다는 소식에도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 아니었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전하.”

“그렇습니다. 전하. 저희는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해오지 않았습니까? 심려를 놓으십시오.”

“저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소장과 대해국의 용맹스러운 군사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명령만 내려 주시옵소서. 전하.”  

조천군과 최도진은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시마즈 도시히사는 내가 명령만 내리면 당장이라도 출병할 기세였다. 나는 일본과의 전면전을 앞두고도 장군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덕분에 긴장을 풀린 나는 장군들에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대들이야 말로 너무 앞선 것 같다. 히데요시가 동원령을 내렸어도 당장 조선으로 출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다를 건널 전선의 수가 충분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우선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계산하고 전선을 건조할 것이다. 그리고 규슈의 히젠에 조선 공격의 거점이 될 성을 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규슈에 히데시가 성을 쌓는다고 하자 시마즈 도시히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공격할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도 전쟁을 준비해야겠지. 그리고 이번 전쟁은 조선을 구원하기 위한 전쟁이기도 하지만 대해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히데요시가 대해국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상관없었지만 우리 대해국은 왜국과의 거리가 가깝다. 당장 몇 년간은 이대로 안전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난다면 왜국에서 우리 대해국에 대해 알아차릴 것이고 히데요시 같은 자가 왜국의 전력을 동원해 공격해 온다면 대해국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이번 전쟁을 기회로 히데요시를 몰락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혼슈 지역은 다시 전국시대가 펼쳐질 것이고 혼슈를 다시 통일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까지 대해국의 안전은 보장될 것이다.”

히데요시를 몰락시키겠다고 하자 시마즈 도시히사는 눈에서 빛을 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도시히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가? 시마즈 가문이 우리 대해국과 동맹을 맺도록 설득할 수 있겠나? 시마즈 가문이 대해국과 동맹을 맺고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한다면 시마즈 가문이 규슈 전체를 점령할 수 있도록 지원할 생각이네.“

시마즈 도시히사는 눈에서 빛을 내며 대답했다.

“전하. 소장을 사쓰마로 보내주십시오. 형님을 설득해 시마즈가 대해국과 동맹을 맺도록 설득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히데요시는 규슈의 히젠에 성을 쌓고 조선을 공격할 거점으로 삼으려고 한다. 내 생각에 히데요시가 규슈에서 주둔하는 것은 대해국과 시마즈 가문에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대해국의 전선들이 바다에서 히젠을 향해 포격을 퍼붓는 사이에 시마즈의 군사들이 기회를 봐서 히데요시를 목을 노린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데 도시히사 장군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말을 들은 시마즈 도시히사는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 소장이 직접 히데요시의 목을 칠 것입니다.”

시마즈 도시히사는 1537년생으로 이미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직접 히데요시의 목을 치겠다며 허락을 구했다. 히데요시로 인해 시마즈 가문이 규슈 통일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어렵게 차지한 규슈 중부지역의 영토까지 상실하고 규슈 남부의 영토들만 유지했고 자신은 히데요시의 원한을 사 고향을 떠나 피신해야 했으니 시마즈 도시히사가 히데요시의 목을 치겠다고 나서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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