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황과 감자 >
무장은 단선에 실려 있던 자루를 어부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이 자루 안에는 감자가 들어 있소. 감자는 구워먹거나 삶아 먹을 수 있고 거친 땅에도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작물이니 가져가서 식구들과 나눠먹고 몇 개 남겨 두었다가 텃밭이나 산에 심어보시오. 심어놓고 몇 번 물만 주면 알아서 자라는 작물이니 군것질 거리로는 괜찮을 것이오.”
먹을 수 있는 작물이라는 말에 어부는 머뭇거리면서도 자루를 받았다.
“감자에 싹이 나면 싹이 난 부분을 칼로 잘라내어 봄에 땅에 심고 장마 비가 내리기 전에 땅을 파보시오. 감자는 땅속에서 자라는 작물이니.”
말을 마친 무장이 단선에 단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자 무장의 부하들은 힘껏 노를 저었고 단선은 점차 멀어졌다. 얼떨결에 자루를 받은 어부는 먹을 수 있고 심기만 하면 알아서 작물이라는 말에 자루를 열어 보았다. 자루 안에는 동글동글한 감자가 가득히 들어있었다. 어부가 자루를 열자 어부의 동료들이 다가와 자루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엇인가?”
“먹을 수 있는 작물이라던데 어서 구워먹자.”
동료들이 다가오자 감자가 든 자루를 받은 어부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 이럴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나눠가지기로 하지. 먹을 수 있는 작물이라니까. 각자 집에 가서 구워먹던지 삶아 먹든지 알아서들 하게.”
어부들은 그 자리에서 자루 안에든 감자를 나눠가졌다. 어부에게 감자가 가득 들어있는 자루를 넘겨주고 전선으로 돌아온 박언필은 선장실로 들어가 느긋하게 자리에 누웠다.
“이렇게 큰 전선이 나타났으니 강릉부사는 나와 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강릉 부사가 나오면 나는 배짱을 부리며 유황을 팔면 그만이다. 조선에서는 유황 광산이 없으니 거절하지는 못하겠지.”
박언필은 오랜만에 쉰다고 생각하고 자리에 누워있던 바로 그 시간 강릉부사 김홍미는 정체불명의 괴선박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황급히 군사들을 소집했다.
“저들이 조선말을 했다고 했느냐? 해국에서 왔다고 말했고?”
“예 그렇습니다. 부사 나리.”
강릉부사는 괴선박이 나타났다고 관아에 고한 어부들에게 선박의 정체에 대해 물었고 어부들은 자신들이 보고들은 대로 대답했다.
“현감을 불러오라고 했단 말이지? 저들이 조선말을 할 줄 알고 현감이라는 지위를 아는 것을 보니 저들은 조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그런데 해국이라는 나라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황급히 갑주를 챙겨 입은 강릉부사는 괴선박의 전체를 궁금해 하며 군사들을 거느리고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으로 나온 그는 바다에 떠 있는 대해국의 전선을 보고 그 크기와 형태를 보고 놀랐다.
“수군의 전선과는 다르게 생겼구나. 왜선도 아닌 것 같은데 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선의 갑판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해변에 조선의 군사들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선장인 박언필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고 갑판 위로 올라온 박언필은 천리경으로 조선군과 두정갑 차림의 무장을 발견했다.
“어서 단선을 내려 보내도록 하라. 저들 중에 갑주차림의 장수만 전선에 탑승 시킬 것이다.”
박언필이 명령을 내리자 전선에서 단선이 내려졌다. 단선이 해변으로 다가오자 조선군은 황급히 단선에 화승총과 활을 겨눴다. 단선에 탑승하고 있던 수병들도 조선군에게 화승총을 겨눴다.
“우리는 해국에서 온 사람들이오. 조선에 유황을 팔려고 왔으니 고을의 수령은 나와 배에 오르시오.”
단선에 탑승하고 있던 대해국의 수병 중 한명이 외치자 강릉부사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수병에게 대답했다.
“본관은 강릉부사 김홍미다. 본관이 어찌 너희의 전선에 올라야 한다는 말이냐. 이곳은 조선의 땅이니 어서 물러가도록 하라.”
“조선에 유황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소. 유황이 없이 어찌 화약을 만든단 말이오. 우리는 유황을 1만근이나 가져왔으니 배에 오르시오.”
수병의 대답을 들은 강릉부사는 유황을 1만근이나 가져왔다는 말에 놀랐다. 유황 1만근이면 화약 10만근을 제조할 수 있는 양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릉부사는 일단 저들과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도 대화를 해야겠다고 판단하고 수병에게 대답했다.
“알겠다. 본관이 너희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그러나 너희와 같은 배를 타고 갈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려라.”
강릉부사는 어부들의 어선 중에서 가장 큰 배를 바다에 띄울 것을 명령한 후 강릉도호부의 군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 해가 질 무렵까지 본관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즉시 감사 영감께 이일을 보고하도록 하게.”
“예. 나리.”
강릉부사는 강릉도호부의 아전과 군사 3명을 거느리고 어선에 올랐고 어부는 키를 잡았다. 잠시 후 어선이 전선 가까이에 도착하자 전선에서 줄사다리가 내려왔고 강릉부사와 그의 일행은 줄사다리를 잡고 전선위로 올라 왔다. 갑판위에 자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던 박언필은 강릉부사의 일행이 갑판위로 올라오자 큰 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시오. 반갑소. 나는 나가마사라 하오.”
박언필은 대해국을 출발하기 전에 이대원에게 대해국의 정체와 그들이 조선인 출신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숨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강릉부사는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박언필에게 물었다.
“본관은 강릉부사 김홍미라 한다. 너희는 어디에서 왔느냐?”
“나는 해국에서 온 사람이오.”
박언필의 대답을 들은 강릉부사는 다시 물었다.
“해국이라는 나라는 어디에 있는 나라냐? 해국이라는 곳은 오늘 처음 들어보았다.”
“해국은 이곳에서부터 동쪽에 있소. 이 배를 타고 보름정도 동쪽으로 바다를 헤치며 나가면 도착할 수 있소.”
박언필의 대답을 들은 강릉부사는 그 정도 거리라면 조선에 알려지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조선에서도 해국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겠구나.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조선에 대해 알고 찾아왔느냐? 그리고 조선말은 어디에서 배웠느냐?”
“우리 해국은 이전부터 조선에 대해 알고 있었소. 조선인들 중에 바다에 나왔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떠다니다가 해국의 상선을 만나 구조된 조선인들이 해국에 여럿 살고 있소. 그들 덕분에 조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소. 또 해국은 많은 나라들과 무역을 하고 있소. 우리 해국은 왜국과도 무역을 하고 있고 조선에는 유황이 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왜국에서 듣게 되었소.”
“그래서 유황을 가져온 것이냐?”
“그렇소.”
장사를 하러 왔다는 박언필의 대답에 강릉부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우리 조선은 사사로이 외국과 교역하는 것을 금하고 있으니. 본관이 너희에게 유황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조정에 장계를 올리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조정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말에 박언필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허락을 받기 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것이오?”
“한 달은 걸릴 것이다.”
“그렇게 오래는 기다릴 수 없소.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해국으로 돌아가야 한단 말이오.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유황을 가지고 해국으로 돌아가겠소.”
박언필이 이대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강릉부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얼마나 기다릴 수 있겠느냐?”
“사흘이오. 사흘 안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나는 해국으로 돌아갈 것이오.”
박언필의 대답을 들은 강릉부사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유황 1만근을 모두 본관이 구매하도록 하겠다. 유황의 대금으로 너희는 무엇을 원하느냐?”
“쌀과 면포 그리고 소와 돼지, 닭이 필요하오.”
박언필이 쌀과 면포 그리고 가축으로 유황 대금을 받기를 원하자 강릉부사는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본관에게 이번 일을 해결할 좋은 생각이 있다.”
그때부터 강릉부사는 박언필과 함께 얼마만큼의 쌀과 면포를 지불할 것인지를 두고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사흘 후 조선의 조운선들이 전선에 다가오자 대해국의 수병들은 주변을 경계했고 조운선에서 전선으로 올라온 인부들은 갑판위에 놓여있던 나무통들을 조운선으로 운반했다. 수병들과 조선군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에 유황이 들어있는 나무통을 모두 조운선으로 옮기자 유황을 실은 조운선은 전선에서 멀어졌고 잠시 후 쌀과 면포를 가득 실은 조운선이 전선으로 다가와 인부들은 쌀과 면포를 전선으로 운반했다. 전선에 쌀과 면포를 싣는 장면을 바라보던 박언필은 강릉부사의 계획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라 그런지 확실히 머리가 좋군. 공식적으로는 무역을 하지 못하니 우선은 해국이 조선에 유황을 공물로 바치기 위해 찾아온 것으로 위장하고 해국의 사신들이 해국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식량을 지원하고 공물에 대한 답례품을 지급하는 형태로 유황의 대금을 치르다니. 이렇게 하면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니 문제도 생기지 않을 테고 조선에서는 유황을 가져가니 정말 좋은 방법이다.”
박언필은 강릉부사의 요청에 따라 조선의 조정에 보내는 서신을 한 장 썼고 서신을 쓰면서 왜국에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군사들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내용을 적었다. 조선에 화약의 원료인 유황을 대량으로 판매했고 서신을 통해 히데요시가 군사들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으니 박언필은 자신의 임무는 무사히 수행했다고 생각했다.
임무를 완수했을 뿐만 아니라 유황의 대금으로 받은 가축들도 박언필을 즐겁게 만들었다.
“쌀과 면포뿐만 아니라 소와 돼지를 10마리씩 그리고 닭을 20마리나 보내주다니 강릉부사도 인심이 후한 사람이군.”
인부들이 쌀과 면포를 절반 정도 전선으로 운반했을 때 인부들 중에 한명이 갑자기 쓰러졌다. 갑자기 사람이 쓰러지자 함께 일하던 인부들과 주변을 경계하던 수병들이 그에게 달려와서 쓰러진 인부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은가?”
“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나는 괜찮소. 발을 헛디딘 것 같소.”
쓰러졌던 인부는 괜찮다고 했지만 일어나려고 하다가 다시 쓰러지려고 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인부를 붙잡았다. 그 광경을 본 박언필은 수병들에게 말했다.
“저자는 아무래도 다리를 다친 것 같다. 의원에게 진료를 받게 하라.”
박언필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병들은 쓰러졌던 인부를 부축해 선실로 데려갔다. 박언필은 다른 인부들에게 작업을 계속 할 것을 명령했다.
“우리 배에는 의원이 타고 있다. 부상을 당한 자는 잘 치료해서 돌려보낼 것이니 너희는 안심하고 하던 일을 계속 하도록 하여라.”
그 말을 들은 인부들은 다시 조운선에 쌓여있는 쌀섬과 면포 다발을 전선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인부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던 박언필은 조용히 선실로 내려갔다. 선실 안에는 갑판위에서 쓰러졌던 인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박언필이 선실로 들어오자 인부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소인 정두관이라 하옵니다.”
정두관은 대동계원으로 정여립이 대동계주였던 시절 정여립을 호위했던 호위출신이었다. 박언필은 정두관의 인사를 받은 후 품속에서 서신 2통을 꺼내 정두관에게 주었다.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어명이다. 반드시 전하께서 명하신 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예.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부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감자를 나눠줄 것이다. 이곳에도 감자를 많이 심도록 해라 내년 봄에는 전쟁이 발발할 것이니 식량이 많이 부족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고 많았다. 그럼 돌아가 보도록 하여라.”
서신을 품속에 넣은 정두관은 다시 한번 박언필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