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안포대 >
신묘년(1591년) 10월 10일 규슈 하젠국 나고야
10월 10일 나고야에 성을 건설하는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번에 세워질 성은 조선 출병의 거점이 될 성으로써 히데요시는 전쟁기간 동안 나고야성에서 거주하면서 출병한 다이묘들을 지휘하다가 직접 조선으로 건너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으므로 성의 규모는 크고 웅장했다.
이런 대규모 성을 건설하는 일이다 보니 규슈 전역에서 동원된 5만 명이 넘는 인부들이 나고야에 모여들었고 인부들 중에서는 시마즈 가문이 통치하는 사쓰마와 오스미에서 동원된 인부들도 있었다. 공사가 시작된 첫날 현장에 한 무리의 인부들이 도착하자 공사현장을 감독하던 가토 가문의 무사는 인부들을 불러 세우고 정체를 물었다.
“너희는 어디에서 온 누구냐?”
가토 가문의 무사의 질문에 인부들을 인솔하던 무사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저희는 오스미에서 왔습니다. 이들은 성의 건설에 동원된 인부들입니다.”
오스미에서 왔다는 대답에 가토 가문의 무사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오스미에서 왔다고? 시마즈가에서 보낸 인부들은 이미 도착하였을 것인데.”
“그들도 오스미에서 보낸 인부들이고 이들도 오스미의 인부들입니다. 인부들을 소집하는데 시간이 걸린 탓에 주군께서는 일정에 늦어질 것을 염려하셔서 준비가 된 자들부터 서둘러 출발시키셨습니다.”
시마즈가의 무사의 대답에 가토가의 무사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긴 겨울이니 인부들을 모아서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 인부들이 더 왔으니 결과적으로 잘된 일 아닌가.’
인부들을 더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가토가의 무사는 시마즈가의 무사에게 물었다.
“오스미는 먼 곳으로 알고 있는데 먼 길을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네. 인부들은 전부 몇 명인가?”
“전부 150명입니다. 인부들을 호송하기 위해 저를 비롯해 무사 5명과 병사 40명이 함께 왔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막사가 쳐져 있고 막사 안에 기요마사님께서 계실 것이네. 막사로 찾아가 도착했다고 보고 드리게.”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래 수고하시게.”
가토가의 무사와 인사를 나눈 시마즈가의 무사는 현장 안으로 들어가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인부들을 호송하는 무사와 병사들은 다들 갓 20살을 넘긴 젊은이들이었지만 그들이 호송하고 있는 인부들은 다들 무사와 병사들 보다 나이도 많아 보였고 팔과 다리에는 탄탄하게 근육이 붙어 있었다. 가토가의 검문을 통과해 현장으로 들어서자 시마즈가에서 동원된 인부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현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들은 나고야 성의 위치와 성 내부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시마즈가에서 보낸 무사들로 전원이 5년 전에 있었던 규슈정벌 당시 실전을 치른 용사들이었다.
이들은 시마즈 가문의 전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사의 명을 받고 무사의 자존심도 참고 나고야 성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며 성의 구조를 파악할 임무를 띠고 나고야에 파견됐다. 일반 인부들처럼 거친 옷차림에 짚신을 신은 무사들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묘년(1591년) 10월 11일 대해국 함관.
“함관산(하고다테 산)에 산성을 세우고 항구 인근 바다를 감사할 수 있도록 병력을 배치하였습니다. 포대는 함관산 남동부의 해안가에 설치했으며 컬버린 6문과 현자총통 18문을 배치하였습니다. 전하.”
조천군으로부터 해안 포대와 함관항의 방어태세를 보고받은 나는 지도에 나와 있는 산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산성에도 포병을 배치했겠지?”
“그렇사옵니다. 전하. 산성에는 불랑기 18문과 대완구 6문을 배치하였습니다. 포병 외에도 보병 1개 대대가 산성에 주둔하고 있으며 항구의 방어와 해안포대의 엄호를 위해서 항구에도 보병 1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내년 4월에는 전쟁이 시작될 것이 확실한 만큼 나는 대해국의 방어태세를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동해도에 대해국이 건국된 사실을 아는 것은 대해국의 주민들뿐이었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대해국의 모든 전선과 대부분이 병력이 출병해야 하니 혹시나 왜선이 대해국으로 접근해올 경우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병력과 준비는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컬버린 6문과 현자총통 18문이라면 함관항을 방어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군.”
“왜선은 물론 갤리온이라도 해도 입항 허가를 받지 않고 항구에 접근한다면 항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포격을 받고 침몰할 것입니다. 만에 하나 침몰하기 전에 항구에 도착해 상륙한다고 해도 항구를 지키고 있는 병력과 함관산성에 배치된 포대의 공격을 받을 것이니 항구를 벗어나기 전에 전멸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전하.”
직접 해안포대를 구성하고 대포들을 배치한 조천군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나도 조천군의 생각에 동의했다.
“항구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오. 히데요시가 대해국에 대해 알아낸다고 해도 항구만 철저하게 지킨다면 히데요시도 우리 대해국으로 어쩌지는 못할 것이오.”
“항상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나는 동해도의 지도에서 ㅅ 형태의 도도반도(渡島半島)[오시마반도]에서 서쪽 반도 지역인 송전반도(松前半島)[마쓰마에반도]를 가리키며 조천군에게 물었다.
“송전반도(松前半島)[마쓰마에반도]의 해안포대 건설은 얼마나 진행되었소?”
“송전항구에는 이미 포대를 완성되었습니다. 포대의 규모는 함관항과 동일한 규모이며 포대는 물론 대포의 배치도 모두 끝난 상태입니다. 현재는 항구의 배후에 성을 쌓고 있으며 성이 완성되면 함관산성과 동일한 규모의 포대와 병력을 배치할 예정입니다. 전하.”
“성을 완성하고 포대와 병력을 배치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소?”
“한 달 안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포대와 병력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전하.”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조천군의 수고를 치하했다.
“정말 장하오. 수고가 많으셨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나는 함관항에 포대와 방어시설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면서 함관항의 해안포대가 완성되면 송전반도에도 같은 규모의 해안포대와 방어시설을 건설할 것을 조천군에게 명령했다. 조천군은 지금은 병사들의 훈련 장소와 목재를 구하기 위한 벌목장으로 쓰이는 송전반도에 해안포대와 방어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시간과 병력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대답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조장군은 우리가 처음 동해도에 상륙한 지점을 기억하시오?”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하.”
“그곳이 바로 송전반도의 송전항이오. 물론 송전반도는 우리가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은 지역이오. 그러나 우리가 손쉽게 상륙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손쉽게 상륙할 수 있지 않겠소. 만약에 왜군이나 왜인들이 동해도에 상륙한다면 항구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고 해도 육로를 통해 북쪽이나 서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수고스럽지만 서쪽의 송전반도에도 포대를 설치해 동해도에 아니 대해국에 왜인이나 대해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외국인들이 상륙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오.”
내 명령을 들은 조천군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전하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그 뒤 조천군은 항관항항과 함관산성의 포대를 완성하기가 무섭게 송전반도에 해안포대와 방어시설을 건설해야 했다. 몇 달간 쉬지도 못하고 함관항과 송전항을 오가며 작업을 지휘했고 훈련 중이던 병력은 물론 농민들까지 동원한 대규모 공사였기에 조천군은 물론 나도 신경 쓸 일이 많았다. 다행히 곧 모든 작업이 끝난다고 하니 이제는 안심할 수 있었다.
조천군을 치하한 후 밖으로 내보낸 후 나는 지도를 살펴보았다.
“함관항과 송전반도에 포대를 설치하고 병력을 배치한다면 대해국의 전선들이 출항한 후에도 안심할 수 있다. 왜선들은 보이는 족족 침몰시킬 것이니 혼슈에 남아있는 배는 고기 잡는 배 정도일 것이고 그 정도 목선은 해안포대에서 충분히 침몰시킬 수 있다.”
전군을 동원하는 대규모 전쟁을 준비하면서 본국을 방어할 수단을 세워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후방이 안전해야 포탄과 식량 등의 보급이 원활하게 지원될 수 있는 법이고 100만 대군이 있다고 해도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오소의 보급창이 조조에게 털리면서 패배했고 번성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관우도 여몽이 남군을 공격해 함락시키면서 결국 오군에게 패배했다. 나에게 대해국은 본국이자 보급기지다. 대해국이 안전하지 못하면 안심하고 전장에 나갈 수가 없어.”
이렇게 대해국의 방어태세를 갖추게 한 후 내가 그 다음으로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외교전이었다. 이번 전쟁은 나와 히데요시만의 전쟁이 아닌 조선과 왜국의 전쟁이었고 다행히 조선에는 이번 전쟁에서 활약할 유능한 장군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왜국의 다이묘들 중에도 히데요시를 증오하는 다이묘들도 있었고 야심을 품고 있는 다이묘들도 있었으니 나는 가능하다면 이들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조선에는 지금쯤 유황이 도착했겠지. 좌수영을 떠나기 전에 조정에 화승총의 견본과 염초밭을 조성하는 방법을 전해주고 왔으니 염초를 만드는 일은 예전처럼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유황까지 전해줬으니 조선군도 최소한 화약걱정은 안하겠지. 시마즈 가문은 도시히사가 직접 갔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고 마쓰라 다카노부가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왜 아무런 소식이 없을까?”
나는 시마즈 가문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시마즈 요시히사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확신했지만 마쓰라 다카노부가 아직까지 나를 찾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공격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렸으니 처음에는 마쓰라 다카노부도 당황했을 거야. 그동안 나에게 판매한 노예들의 수가 적지 않고 무기를 제작하는 사용할 것을 알고도 구리와 철, 유황을 판매했으니 한동안은 머릿속이 복잡했겠지 그런데 전쟁은 상인들에게도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야. 마쓰라 다카노부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어떻게든 나를 한번은 만나려고 할 것 같은데.”
나는 가능하다면 마쓰라 다카노부와 적대관계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마쓰라 다카노부와 쌓은 정도 있었고 현실적으로도 마쓰라 다카노부와 손을 잡는 다면 이키 섬을 점령하기도 쉬워지고 마쓰라 다카노부를 통해 왜국 내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니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쉬워진다.
“마쓰라 다카노부와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기는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해서는 안 돼 마쓰라 다카노부는 영주라기보다 상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내가 먼저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판단하면 자신의 값어치를 최대한 올릴 사람이야. 다카노부가 먼저 연락을 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화동이 지휘하는 선단이 지난 9월에 마카오를 향해 출발했다. 선단은 히라도를 거쳐 마쓰라 다카노부로 부터 은을 받았고 그 은을 마카오에서 금으로 환전해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돌려줄 계획이었으니 마카오를 향해 출발한 선단은 대해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히라도에 들려야 한다. 나는 그 선단을 통해 마쓰라 다카노부가 연락해 올 것을 예상했다.
“사화동의 선단이 11월에는 귀국할 때니 그때 까지는 기다려 보자. 11월 까지 소식이 없으면 그때는 다른 대책을 세워보기로 하고.”
마쓰라 다카노부와 손을 잡으면 좋겠지만 그와 손을 잡지 않는다고 해도 전쟁을 치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에 따른 대책은 따로 세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