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좌수사 이순신 >
신묘년(1591년) 10월 26일 조선 전라도 순천부 전라좌수영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선들의 상태를 점검한 후 좌수영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순신이 좌수영에 들어서자 좌수영의 아전 중의 하나가 이순신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좌수사 영감께 앞으로 온 서신이라고 이옵니다.”
“서신이라니 누가 보낸 것이냐?”
“그것이 정언신 대감께서 좌수사 영감께 보내신 서신이라고 하옵니다.”
“뭐. 좌상 대감께서.”
본래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정언신은 기축옥사 당시 정여립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유배형에 처해졌고 유배지에서 병에 걸려 사망했지만 이번 세계에서는 아직까지 무사했다. 정여립이 의금부에서 고문을 당하고 곤장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고 역모사건을 조사하던 정철도 정여립이 역모를 준비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자 정여립은 석방되었고 기축옥사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기축옥사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정언신, 이발등 기축옥사 당시 처형되거나 유배지에서 숨을 거둔 동인들도 건재했고 선조의 신임을 받고 있었던 정언신은 좌의정의 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좌의정인 정언신이 보낸 서신이라는 대답에 이순신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아 서신을 열어보았다. 서신을 읽던 이순신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이것은 이대원 영감이 보내신 서신이 아닌가.”
이순신이 읽고 있는 서신은 정언신 대감이 아닌 전라좌수영을 떠난 이대원 영감이 보낸 서신이었고 그 내용은 아주 놀라웠다.
“풍신수길이 왜국에서 군사들을 동원하고 있고 곧 조선을 침략할 것이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이순신은 서신을 끝까지 읽고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신을 내려놓았다.
“이대원 영감께서 왜군의 자세한 계획을 알려주시고 유황까지 보내주시겠다니 정말 다행이다. 전쟁을 앞두고 큰 도움이 되겠다.”
서신을 다시 천천히 읽어가며 서신의 내용을 꼼꼼하게 파악한 이순신은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급히 종이를 펼쳐놓고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보내는 글을 썼다.
신묘년(1591년) 11월 05일 대해국 함관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사화동이 지휘하는 선단이 무사히 마카오에 다녀오면서 마쓰라 다카노부와 시마즈 도시히사의 서신을 가져온 것이다. 사화동의 선단이 히라도에 들렸을 때 마쓰라 다카노부가 사화동에게 내게 보내는 서신을 맡겼고 사쓰마로 돌아간 시마즈 도시히사도 사화동의 선단이 히라도에 들릴 것을 예상하고 부하를 보내 내게 보내는 서신을 전달한 것이다. 나는 우선 사화동에게서 마카오에서 거래한 성과부터 보고를 받았다.
사화동은 이번에도 마카오에 은을 가져가 금으로 환전했고 대해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금을 히라도로 가져가 은으로 환전해 왔다. 이렇게 근은 거래로 그동안 대해국이 벌어들인 은이 50만 냥이 넘었다. 전쟁을 앞두고 적지 않은 액수의 군자금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나는 기분이 좋았다.
“수고했네. 염초는 얼마나 구매하였는가?”
“염초는 5만근(30톤)을 구매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전하.”
대해국에서 염초 밭을 만들어 염초를 제조하고 있었지만 전쟁을 앞두고 화약을 대량으로 소비할 것을 염려해 사화동에게 초석을 구매해 올 것을 명령했었다. 초석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상인들이 왜국에 수출하는 주요 수출품이었으니 마카오에서 초석을 구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화동은 동해도의 특산품인 모피를 판매하면서 그 대금을 초석으로 받았고 사화동이 가져온 모피의 가치를 알고 있던 상인들은 앞 다투어 초석을 가져왔다고 한다.
“정말 수고 많았네. 이제 화약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사화동의 수고를 치하한 나는 사화동과 함께 마카오에 다녀온 선원과 수병전원에게 한 달 간 휴가를 허락하도 그동안 재정비와 휴식을 취할 것을 명령한 후 집무실로 돌아와 마쓰라 다카노부와 시마즈 도시히사가 보낸 서신을 펼쳐 보았다.
“예상대로군. 다카노부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는 없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자는 것을 보니. 나와 협상할 생각이 있다는 뜻이겠지.”
히데요시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면서 일본의 영도인 히라도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마쓰라 다카노부가 나를 헤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와 거래한 것은 마쓰라 다카노부에게도 큰 이익이 됐을 테니 나를 사위에 양자로 삼은 것이겠지. 다카노부 같은 상인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쉽게 가르지는 못할 거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방법이 나오겠지.”
나는 상황을 봐서 히라도를 방문할 결심을 하고 시마즈 도시히사가 보낸 서신을 펼쳤다. 예상대로 도시히사는 시마즈 요시히사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는 보고였다. 서신을 읽던 나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좋은 생각이다. 시마즈가의 무사들을 인부로 위장시켜 나고야 성 건설 현장에 투입했다니.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직도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이가의 닌자들을 나고야에 투입시켜야겠다. 성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항구의 위치와 구조도 파악해야지 빨리 손을 써야겠다.”
시마즈 도시히사가 보낸 서신을 모두 읽은 나는 시마즈 가문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든든한 우군이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규슈정벌로 히데요시를 두려워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는데 도시히사가 설득한 덕분인지 시마즈 가문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구나. 히젠에서 히데요시를 사살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는 선단의 포격과 시마즈군의 협공으로 나고야 성을 공격할 것을 계획했지만 나고야 성에서 히데요시를 사로잡거나 사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히데요시 정도의 위치에 있다면 무사들이 빈틈없이 경호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고 아무리 포탄을 퍼붓는 다고해도 히데요시 같은 권력자라면 위기의 순간에서도 호위무사들과 함께 몸을 피할 비상 탈출 계획을 세워놓는 것이 상식이었다. 나고야 성을 불태울 수는 있어도 히데요시를 잡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시마즈군이 나고야 성에서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히데요시를 잡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다.
“시마즈 가문이 움직이는 것을 봐서 강선총을 100정 정도 넘겨줘야겠다. 강선총이라면 히데요시를 저격하는 것도 가능해.”
기대했던 것보다 시마즈 가문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시마즈 가문에 추가로 무기를 지원할 생각까지 했다.
신묘년(1591년) 11월 10일 조선 전라도 순천부 전라좌수영 돌산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바다 쪽에서 불빛이 보이자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서 불을 붙여라.”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좌수군 병사들은 미리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기름을 뿌리고 손에 들고 있던 횃불을 던졌다. 잠시 후 장작더미에 불이 붙으면서 장작더미 주변이 환하게 밝아질 정도로 큰 불길이 일어났다. 화톳불의 불길과 병사들이 손에 들고 있는 횃불로 이순신 일행이 있는 해변 일대가 대낮같이 밝아 보이자 바다에서도 불빛이 좌우로 움직였다. 불빛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한 이억기는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순신에게 말했다.
“우리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정말 다행이오.”
이순신도 이제는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대해국의 전선이 천천히 이순신과 이억기 일행이 있는 해변으로 다가왔다. 해변과 1km 이상의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정지한 전선에서 단선들이 내려왔다. 단선들이 해변으로 다가오자 이순신을 호위하면 송희립은 병사들에게 외쳤다.
“어서 병장기를 들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좌수사 영감과 우수사 영감을 호위하라.”
송희립의 고함소리를 들은 좌수군 병사들은 황급히 단선을 향해 화승총과 활을 겨눴고 방패를 지닌 병사들은 이순신과 이억기의 앞을 가렸다.
“잠시 뒤로 물러서라. 상대방이 나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느냐.”
다가오고 있는 사람들이 병사들을 보고 오해할 것을 염려한 이순신이 병사들 앞으로 나오려고 하자 송희립은 이순신을 말렸다.
“영감. 아직 저자들의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송군관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영감.”
송희립에 이어서 이억기도 자신을 말리자 이순신은 어쩔 수 없이 병사들의 방패 뒤로 몸을 숨겼다. 해변으로 다가오던 단선들은 화승총과 활을 들고 있는 병사들을 발견하고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단선에 타고 있던 무장 하나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전라좌수사 영감께서는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내가 전라좌수사 이순신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이순신의 목소리를 들은 무장은 반갑다는 듯이 대답했다.
“영감.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녹도진 수군이었던 강영남입니다.”
이순신은 이대원이 전라좌수사로 있었을 때 녹도만호였다. 녹도진 수군이라는 말에 반갑게 대답했다.
“자네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름은 기억나는 것 같군. 가까이 오게 병사들은 물러서게 하겠네.”
반가운 목소리로 강영남에게 대답한 이순신은 송희립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송군관 병사들을 뒤로 물리게.”
송희립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순신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병사들을 물러서게 했다. 하지만 자신은 환도를 손에 쥐고 이순신의 옆에 꼭 붙어있었다. 죄수군 병사들이 약간이나마 뒤로 물러서자 단선은 다시 해변으로 접근해 왔다. 단선이 해변가에 도착하자 두정갑 차림의 장수 하나다 단선에서 일어나 해변으로 걸어왔다. 해변에 도착한 강영남은 이순인을 발견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갑주차림이라 절을 올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십시오. 영감.”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네.”
이순신은 강영남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순신에 이어서 이억기에게도 인사를 올린 강영남은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이순신에게 내밀었다.
“왜국의 풍신수길은 이미 왜국 모든 영주들에게 군사를 동원할 것을 명령한 상태이고 조선을 침략하는 거점으로 삼기위해 구주의 해안가에 큰 성을 짓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늦어도 내년 4월에는 왜군이 조선으로 출병할 것으로 예상하고 계십니다. 전하께서도 왜군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계시지만 왜군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지라 왜군의 선봉이 조선에 상륙하는 것은 저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계십니다, 서신은 전하께서 영감께 보내시는 것이니 천천히 읽어보시고 전쟁에 대비하라 하셨습니다.”
히데요시가 동원령을 내린 것은 이미 서신에 쓰여 있었지만 거점으로 쓸 성까지 쌓고 있다는 말에 이순신과 이억기는 크게 놀랐다. 이순신과 이억기는 왜군 소식에 놀라는 한편 강영남이 이대원을 전하라도 부른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대원 영감이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신 것인가? 이대원 영감이나 영감을 따르는 사람들은 조선으로 돌아오실 생각이 없는 것이구나.’
“왜군의 수는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이억기의 질문에 강영남은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
“왜국 전역에서 최소한 30만이 넘는 군사들이 소집되고 있으며 전하께서는 20만 이상의 왜군이 조선에 상륙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계십니다.”
20만 이상의 대군이 조선에 상륙하려 할 것이라는 말에 이순신과 이억기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랐다.
“20만 지금 20만이라고 하였느냐?”
이순신이 확인하듯이 묻자 강영남은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
“풍신수길은 이미 2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5년 전에는 구주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20만이 넘는 군사를 일으켰었고 작년에는 호조가문을 정벌하기 위해 20만이 넘는 군사를 출병시켰었습니다. 왜국의 모든 영주들의 군사들을 동원한다면 30만 이상의 군사를 동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