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210화 (210/223)

< 히라도 회담 >

이순신은 히데요시가 2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왜군이 20만 대군을 출병시킨다고 해도 그들 모두를 한 번에 상륙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왜군이 조선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바다에서 저지해야 한다.’

왜군을 바다에서 저지할 것을 결심한 이순신은 차분한 목소리로 강영남에게 물었다.

“중요한 정보를 전해줘서 정말 고맙네. 그런데 지난번에 받은 서신에서 유황을 가져 올 것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유황은 물론 가져왔사옵니다. 전선에 실려 있으니 지금이라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유황을 가져왔다는 대답에 이순신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정말 수고했네. 유황은 얼마나 가져왔는가?”

“5000근을 가져왔습니다. 모두 돌산도에 내려놓고 갈 것이니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에서 나눠서 사용하십시오.”

5000근이나 가져왔다는 말에 이순신과 이억기는 다시 한번 놀랐다.

“5000근이나 정말 대답하군.”

이억기가 감탄하자 강영남은 진지한 얼굴로 이순신과 이억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가 가져온 유황은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두 분께 드릴 것입니다. 단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저희가 가져온 유황을 다른 수영이나 병영에는 나눠주지는 마시고 저희가 돌산도에 왔다간 것도 비밀로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저희가 왔었던 것을 조정이나 다른 장군들이 알면 두 분께서 무슨 모함을 당하실지 알 수 없습니다.” 

강영남의 부탁을 들은 이순신과 이억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네. 이대원 영감께서 서신을 보내신 것도 비밀로 하도록 하지.”

“왜국에 대한 정보에 유황까지 보내주셨으니 이대원 영감께 은혜를 입었네. 비밀은 지키도록 하지.”

이순신과 이억기의 대답을 들은 강영남은 고개를 숙여 감사표시를 한 후 말했다.

“그럼 전선에서 유황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날이 밝기 전에 모두 내려놓도록 하겠습니다.”

강영남의 말을 들은 이순신은 강영남을 말렸다.

“아니야. 아직 날이 어둡지 않은가? 전선에서 작업을 하는 것을 밝은 낮에 해도 위험한 일인데 어두운 밤에 할 필요는 없네. 곧 동이 틀 것이니 잠시 쉬다가 날이 밝거든 시작하도록 하게.”

“그렇게 하지. 자네들도 먼 길을 왔는데 술 한 잔 해야 하지 않겠나. 돌산도에 탁주와 국밥을 준비해놨으니 국밥을 안주 삼아 따뜻한 탁주 한잔 마시며 이야기나 더 나누세.”

이순신에 이이서 이억기도 술을 권하자 강영남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11월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던 대해국의 수병들도 국밥과 따뜻한 탁주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에 간절한 눈빛으로 강영남을 바라보자. 수병들의 눈치를 살핀 강영남은 이순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날이 밝을 때 까지만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해가 뜨면 작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잘 생각했네. 어서 들어가세.”

강영남은 이순신과 이억기의 뒤를 따라 마을로 들어갔고 강영남과 함께 상륙한 대해국의 수병들도 송희립과 좌수군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술과 국밥이 준비되어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신묘년(1591년) 11월 20일 히라도 히라도항

마쓰라 다카노부의 초대를 받은 나는 선단을 몰고 히라도에 도착했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나를 헤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앞두고 있는 만큼 안전을 위한 대비는 철저하게 하고 왔다. 대완구를 비롯해 각종 대포로 무장한 전선을 7척이나 몰고 왔고 전선 안에는 수병들 외에도 무장한 병사들이 600명이나 탑승하고 있었으다.

선단이 히라도항에 도착하자 나는 박언필에게 선단의 지휘를 맡긴 후 김개동을 비롯해 호위병 30명의 경호를 받으며 마쓰라 다카노부의 저택으로 향했다. 다카노부의 저택으로 향하는 일행 중에는 나와 호위병들 외에 차비 헤이메와 이제는 후궁이 된 히데코, 교코, 메구미가 병사들이 끌고 있는 가마를 타고 있었다.

마쓰라 다카노부의 저택에 도착한 나는 다카노부를 발견하자마자 큰 절부터 올렸다.

“안녕하셨습니까. 아버지. 소자(小子) 아버지께 인사드리겠습니다.”

내 뒤를 이어 헤이메와 히데코, 교코, 메구미도 다카노부에게 조선식으로 큰절을 올렸고 김개동과 호위병들도 다카노부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절을 한 후 다카노부를 바라보자 다카노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카노부가 입을 열기 전에 준비해간 선물을 꺼내 놓았다.

“이것은 소자(小子)가 아버지께 드리는 예물들입니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준비한 것이니 웃으시며 받아 주십시오.”

호위병들이 나무상자들을 다카노부 앞으로 가져와 열어놓자 상자 안에는 청자는 물론 백자 도자기와 찻잔 그리고 비단과 모피가 빼곡히 들어있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선물들을 바라본 다카노부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는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겠다. 반주로 술도 한잔 할 것이니 준비하도록 하고 며느리들은 어미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해라. 그리고 아들의 부하들에게도 상을 차려주고 실컷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밥과 술을 넉넉하게 주거라.”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다카노부는 나에게 말했다. 

“상이 준비되기 전에 차나 한잔 같이 하자. 나를 따라 오거라.”

나는 헤이메와 김개동에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주고는 다카노부를 따라 내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다카노부는 시종과 하녀들 까지 모두 내보낸 후 나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무서웠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지.”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자 다카노부는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속마음도 모를까봐? 헤이메에 히데코, 교코, 메구미 까지 끌고 온 것이며 평소에 인색한 정도는 아니었어도 계산이 철저하던 녀석이 자기며, 비단이며 모피까지 가져온 것을 보면 네가 이 아버지를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알겠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이렇게 까지 나오는데 구차하게 변명을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예. 아버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상황이 소자가 마음 놓고 왜국에 들어올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리를 좀 했습니다.”

내 대답에 다카노부는 비웃으며 물었다.

“그런 놈이 조용히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전선을 7척이나 몰고 왔느냐. 보아하니 전선 안에는 병사들도 잔뜩 태우고 온 것 같던데. 이번 기회에 히라도를 점령할 생각이었느냐?”

“아닙니다. 다만 저와 부인들의 안전을 위해 병사들을 데려왔을 뿐입니다. 준비가 과해서 나쁠 일은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

‘방금 입항했는데 언제 전선을 살펴봤지? 부하들의 보고를 받은 것인가? 하여간 대단하다.’

당황해 하는 내 모습을 본 다카노부는 그제 서야 한결 풀린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이제 서야. 본래 네놈의 모습이 보이는구나. 하긴. 네놈이 정말로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곳 까지 왔을 리가 없지. 더구나 헤이메 까지 데리고 말이다.”

헤이메를 언급하자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 늙은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을 것 같으냐? 네가 헤이메를 바라보는 표정이나 헤이메가 너를 바라보는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말을 마친 후 잔에 끓는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낸 다카노부는 내게 찻잔을 내밀었다. 내가 잔을 받자 다카노부는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잔을 들어 차를 마셨고 나도 천천히 차를 마셨다. 아직 식지 않은 따뜻한 찻물이 목을 넘어가면서 식도를 거쳐 위장으로 흐르면서 내 안에서 따뜻한 기운이 돌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차를 마신 후 다카노부는 이전과는 다른 진지한 표정과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이제 마음이 진정 되었느냐? 마음이 가라앉았으면 차분히 대화를 나눠보자.”

나는 다카노부에게 고개를 숙여 다시 인사를 올린 후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저를 헤치지 않으시리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믿음만 가지고 아무런 대비 없이 이곳에 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되어 나름대로 준비를 해온 것입니다.”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거라. 나는 너를 이미 아들로 삼았다. 아비가 자식의 목숨을 노리겠느냐? 자식이 아비의 목숨을 노릴 수는 있어도 아비가 자식의 목숨을 노리는 법은 없는 법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간파쿠가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나고야에 성을 쌓고 있는 것은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너는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냐?”

마쓰라 다카노부의 질문에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는 조선의 장수입니다. 아버지. 간파쿠의 군대가 조선을 침략한다면 최선을 다해 싸울 뿐입니다.” 

“배짱도 좋구나. 여기가 어디인지 잊은 것이냐? 아니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냐?”

“소자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아버지께서는 저의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그리고 간파쿠가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아버지와 형님께 좋을 일이 있겠습니까?”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 전쟁에서 소자가 간파쿠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한다면 소자는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와 형님께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카노부는 나를 바라보며 제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번 전쟁에서 히데요시가 승리하고 조선을 점령한다고 해도 과연 마쓰라 다카노부와 마쓰라 가문에 무슨 이득이 있을까? 다카노부는 단순한 전국시대 다이묘가 아닌 상인이다. 승패에 관한 이해득실을 따져 볼 것이 분명해 그래서 다카노부 나를 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안심하고 히라도에 올수 있었지.’ 

“네가 전공을 세운다면 조선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는 아니지만 지금보다 더 큰 권력과 많은 부를 누리게 될 것은 확실한 일입니다. 아버지.”

“네가 지금보다 높은 자리에 오른다면 나에게는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느냐?”

마쓰라 다카노부는 눈에 빛을 내며 물었다. 나는 히라도에 도착하기 전에 수도 없이 고민을 해가며 다카노부의 마음에 들 대답을 생각해 봤다.

“아버지께서 조선과 왜국의 무역을 독점하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순간 다카노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 쓰시마 섬의 소씨 가문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소씨 가문의 당주 소 요시토시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이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간파쿠의 직속 부하가 아닙니까? 아버지.”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전장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법입니다. 천하에 둘도 없을 명장도 전장에서는 빗나간 화살에 목숨을 잃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내 대답을 들은 다카노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전국이 다시 전란에 휩싸이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전란의 시기는 상인에게도 어려운 시기이니 말이다.”

“이미 왜국은 통일 되었습니다. 우다이진(右大臣)[오다 노부나가]과 간파쿠의 선례가 있으니 간파쿠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왜국을 통일하고 통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듣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말이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실제 임진왜란 당시에도 전황이 불리했지만 히데요시는 조선에 상륙한 다이묘들과 무장들에게 철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명군이 참전했고 명량해전 이후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을 재건해 왜군이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말이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재한 이상 조선 침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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