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리던 소식 >
임진년(1592년) 3월 18일 조선 남해안 바다
“둥~” “둥~” “둥~”
“영차~” “영차~” “영차~”
북소리가 울리자 격군들은 북소리에 맞춰 열심히 노를 저었다. 돛을 펼치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던 전선은 격군들이 노까지 젓자 더욱 힘차게 달렸다. 바다 위에는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탑승하고 있는 좌수군 상선을 비롯해 12척의 전선이 바람과 같이 달리고 있었다. 상선에서 함대를 지휘하고 있던 이순신은 전선들의 속도가 빨라지자 송희립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든 전선에 명을 내린다. 화포을 장전하라.”
“예 장군.”
이순신에게 정중하게 대답한 송희립은 갑판에 서서 힘차게 외쳤다.
“화포를 장전하라~”
“예. 화포를 장전하라.”
송희립이 외침을 들은 화포장들은 포수들과 함께 총통에 화약과 포탄을 장전했고 상선에서 깃발을 올려 좌수군의 전선들에게 명령을 전달하자 전라좌수사의 명령을 확인한 전선들은 일제히 총통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화포장과 포수들이 총통에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자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정면의 적선을 공격할 것이다. 깃발을 올리고 키를 우측으로 돌려라.”
“깃발을 올리고 키를 우측으로 돌려라.”
좌수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상선에서는 다시 깃발을 올려 좌수군의 전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선이 우측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것을 시작으로 좌수군의 전선들은 속도를 조절하며 차례대로 우측으로 뱃머리를 돌렸고 정면을 바라보면서 1열종대로 전진하던 전선들이 순식간에 전선의 좌측면을 전면으로 드러내고 1열 횡대로 늘어섰다.
전선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좌수사 이순신은 전선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법대로 움직인 것에 만족하며 방포 명령을 내렸다.
“방포를 준비하라.”
“방포를 준비하라~”
상선에서 방포 준비를 명령하는 깃발이 올라가자 좌수군의 화포장과 포수들은 다시 한번 총통을 점검하며 정면을 향해 총통을 조준했다. 잠시 후 방포명령을 뜻하는 깃발이 상선에서 올라오자 전선의 총통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펑~” “펑~” “펑~”
훈련인 탓에 총통에 장전된 포탄은 철환이 아닌 나무를 깎아서 만든 연습탄이었지만 화약은 진짜 화약에 실제로 방포하는 양과 동일한 양을 넣어서 장전했기에 총통을 방포하자 화약연기가 자욱하게 퍼졌고 나무 포탄들은 힘차게 날아갔다.
방포가 끝난 후 시야를 가리고 있던 연기가 사라지자 좌수사 이순신은 송희립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도주하는 적선을 추격할 것이다. 전선들에게 적선의 추격을 명령하고 첨저선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려라.”
“예 장군.”
상선에서 다시 깃발로 신호를 보내자 좌수군 전선들은 다시 키를 돌리고 노를 저어 다시 뱃머리를 돌렸고 좌수군 전선들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3척의 첨저형 전선들과 한 무리의 전선들이 앞으로 달려 나왔다. 첨저선을 선두로 달려 나온 전선들은 뱃머리를 돌리고 있는 전선들 사이의 틈을 지나서 앞으로 달려 나갔고 전선들 틈을 지나기 무섭게 우측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달려 나간 첨저형 전선들은 잠시 후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 가상 적선의 측면으로 접근해 가면서 일제히 총통을 방포했다.
“펑~” “펑~” “펑~”
다시 한번 포성이 울리면서 포탄들이 날아올랐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군은 전선(판옥선) 24척과 비슷한 수의 협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원이 전라좌수사로 재임하던 기간 동안 좌수영에서는 포르투갈 상인에게서 노획한 갤리온을 참고해 첨저형 전선을 건조했고 전선을 건조하는 데 좌수영의 장인들과 좌수군 병사들을 동원했기에 이대원이 좌수영을 떠난 후에도 좌수영에서 첨저선을 건조하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대원의 후임으로 전라좌수시에 제수된 김시민은 3척의 첨저선을 건조했고 조정에 장계를 올려 좌수영에서 첨저선을 전선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다. 김시민이 좌수영을 떠나고 다른 장수가 좌수사로 오면서 첨저선은 더 이상 건조하지는 못했지만 김시민이 건조해 놓은 첨저형 전선들은 좌수군의 전력으로 남아있었다.
상선에서 전선들이 훈련을 받는 모습을 살펴보던 이순신은 첨저선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과연 빠르구나. 달리는 모습만 봐도 아주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이순신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송희립도 첨저선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장군. 비록 해변에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고 암초도 피해 다녀야 하지만 이렇게 넓은 바다에서 달리는 속도만큼은 첨저선이 최고입니다.”
“정말 빠른 전선이지 달리는 속도만 따지면 판옥선은 첨저선에 미치지 못해 판옥선은 돛을 펴고 격군들이 힘껏 노를 저어야 첨저선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야. 첨저선은 격군들이 노를 젓지 않아도 되니 격군들을 전선에 태울 필요가 없고 격군들이 타는 만큼 포수와 사부를 더 태울 수 있으니 전투에 아주 유용한 전선이야.”
이순신도 송희립의 말에 공감하며 첨저선을 바라보았다. 이날의 훈련은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서야 끝났다. 좌수사 이순신은 훈련을 끝내고 좌수군의 모든 전선을 좌수영으로 귀환시켰고 하루 종일 훈련을 받느라 피곤했던 병사들은 좌수영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따듯한 국밥을 먹고는 자리에 누워 그대로 코를 골았다. 병사들이 저녁을 먹고 쉴 때에도 이순신과 좌수군의 장수들은 쉴 수가 없었다.
저녁밥을 먹은 후 좌수군의 장수들을 소집한 이순신은 오늘 훈련의 결과를 놓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부분들과 미흡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지적했다. 이순신의 지적사항을 들은 장수들은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고 회의는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임진년(1592년) 3월 27일 대해국 함관
시마즈 도시히사와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서신을 받은 나는 서신을 모두 읽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전쟁이로구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일이라서 그런지 전쟁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는 두려움 보다는 기다렸던 일이 시작된다는 기대감과 결과에 상관없이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시대에 떨어지고 나서부터 생각했고 계획해온 일이니 벌써 몇 년 째인가.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니 빨리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나는 장군들을 소집할 것을 명령했다. 잠시 후 김개동, 조천군, 최도진, 혼다 고로자에몬, 사화동, 강영남, 박언필 까지 사쓰마에 있는 시마즈 도시히사를 제외한 대해국의 장군들이 모두 모이자 나는 그 자리에서 히데요시가 다이묘 들에게 출병을 명령한 사실을 발표했다.
“방금 히라도에 대기 중이던 연락선이 대해국으로 귀환했다. 재미있는 것은 연락선이 시마즈 도시히사가 보낸 서신과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서신을 동시에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다시 설명해 주겠지만 두 장의 서신 모두 같은 사건을 보고해왔다.”
나는 잠시 말을 마치고 장군들을 천천히 바라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히데요시가 드디어 군사를 일으킬 생각이다. 영주들에게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고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내 말을 들은 조천군은 심각한 표정을 물었다.
“히라도에서 대해국까지 오는데 13일 이상이 소요되니 벌써 14일 전에는 영주들에게 히데요시의 명령이 전달된 것이 아닙니까? 전하.”
“그렇다. 시마즈 도시히사와 마쓰라 다카노부는 히데요시가 내린 명령을 확인한 후 곧바로 서신을 보냈겠지만 대해국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미 나고야에는 왜군이 집결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조천군을 비롯한 장군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히라도에서 대해국까지 연락선이 도착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대해국에서 출발한 함대가 나고야 성이 있는 규슈까지 도착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함대가 규슈의 히젠 지역까지 도착하는데 14일에서 15일이 걸리니 내일 당장 출발한다고 해도 대해국의 함대가 나고야 성에 인근 바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내린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히데요시가 보름 전에 명령을 내렸다고는 하지만 영주들이 군사를 이끌고 나고야 성에 도착하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고야 성에 군사들이 집결한다고 해도 20만 대군을 조선으로 한 번에 수송하지는 못할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전하. 곧바로 나고야 성을 공격하려 하십니까?”
혼다 고로자에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고야 성을 공격해야겠지만. 곧장 나고야로 진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어디로 진군하시려 하십니까? 전하.”
최도진의 질문에 나는 탁자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이키 섬을 가리켰다.
“이키 섬이다. 우선 이키 섬을 점령한 후 나고야 성을 공격할 것이다.”
장군들은 내 말이 끝난 다음에도 나를 바라보면서 자세히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키 섬을 공격하는 이유는 첫째 이키 섬을 점령하면 왜선들이 조선으로 향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이키 섬까지 진군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조선으로 출병한 왜군의 선봉대는 저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함대가 이키 섬을 점령하고 이키 섬에 컬버린과 전선들을 배치하면 조선으로 후속병력이 이동하는 것과 왜국의 수송선단이 조선으로 향하는 것을 차단할 수 보급이 차단되면 조선에 상륙한 왜군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전쟁에서 보급이 차단당한 군대가 승리한 적은 없었다. 조천군과 최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계획에 동의했다.
“두 번째는 이키 섬을 점령해 나고야 성을 공격하는 거점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함대를 둘로 나누어 교대로 나고야성과 히젠을 공격하는 한편 대해국에서 이키 섬으로 식량과 포탄, 화약들의 보급품을 수송해 이키 섬을 보급기지를 겸한 거점으로 사용할 생각이다.”
대해국에서 규슈의 히젠 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규슈 인근지역에 보급기지로 삼을 거점이 필요했다. 전선에 적재할 수 있는 포탄과 화약의 양은 한계가 있었고 전쟁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었으니 무기와 화약을 소모한 전선들은 보급을 받을 수 있는 거점이 필요했다.
“히데요시가 거점으로 삼기 위해 건설했고 10만 명 이상의 왜군들이 주둔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고야 성을 하루 이틀 만에 함락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키 섬을 거점으로 삼아 전선들은 교대로 나고야와 히젠 지역에 포격을 퍼붓고 화공을 펼친 후 이키 섬으로 돌아와 보급을 받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의 공격 목표는 나고야 성 뿐만이 아니다. 히데요시의 돈줄이나 이번 전쟁의 전비를 감당하고 있는 이와미 은광 역시 반드시 공격해서 붕괴시켜야 하며 나고야에서 히데요시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오사카 성까지 진군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오사카 까지 진군할 각오를 하라고 말하자 장군들은 한층 더 긴장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