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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213화 (213/223)

< 복수 >

임진년(1592년) 3월 28일 대해국 함관

함관 북쪽의 벌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던 부대들이 함관으로 속속 귀환했다. 함관으로 복귀한 부대들은 군영에 돌아가기 전에 대대별로 집결했다. 

“매일같이 계속된 훈련에 수고가 많았다. 오늘부터 당분간은 훈련이 없을 것이니 군영으로 돌아가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도록 하라. 곧 저녁밥이 준비될 것이다.”

대대장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예”

열흘 이상을 허허벌판에 세워진 막사에서 지내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훈련을 받았던 병사들은 모두 흙투성이 상태였다. 훈련이 없다는 말과 몸을 씻을 수 있다는 말에 병사들은 힘차게 대답하며 군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군영에 도착한 병사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몸을 씻기 위해 목욕탕으로 이동했다. 목욕탕 앞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병사들이 몸을 씻고 있었고 물을 끓이는 커다란 가마솥 안에서는 뜨거운 물이 하얀 김을 내뿜고 있었다. 병사들은 대야를 들고 우물에서 물을 떠서 대야가 반쯤 잠기도록 물을 부은 후 바가지로 가마솥 안에서 끓고 있는 물을 떠서 찬물이 들어있는 대야에 부었다. 그렇게 물의 온도를 조절해 대야의 물이 따듯해지자 대야 안의 물로 세수를 하고 바가지로 따듯한 물을 몸에 끼얹어 가며 몸을 씻었다. 

수백 명의 병사들이 모여서 몸을 씻는 통에 목욕탕 주변은 소란스러웠고 뜨거운 물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가마솥과 아궁이를 살피던 병사는 불길이 약해지기 전에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가마솥에 물이 줄면 가마솥에 물을 부었다. 가마솥의 아궁이에는 계속 장작이 불타면서 가마솥에 찬물을 부어도 곧 물이 끓어올랐다. 서둘러서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병사들은 저녁밥이 준비됐다는 소리에 중대별로 집결해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밥은 병사들이 흔하게 먹던 쌀과 보리가 섞인 보리밥이었지만 국은 사슴고기로 끓인 고깃국에 자반구이가 반찬으로 나왔다. 

그동안 야외에서 주먹밥과 삶은 감자로 끼니를 때우며 훈련으로 받았던 병사들은 고기 건더기가 듬뿍 들어있는 고깃국에 감격했다. 병사들은 국에 밥을 말기 무섭게 열심히 숟가락질을 했고 그릇 가득히 담겨 있었던 밥과 국은 순식간에 병사들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정신없이 국밥을 먹어치운 병사들은 아쉬운 눈빛으로 그릇을 바라보자 기적이 일어났다. 화병(취사병)들이 나무로 된 밥통과 국통을 들고 병사들 사이에 나타난 것이다.

“아직 양이 덜 찬 사람은 앞으로 나와라 오늘은 특별히 한 그릇 더 주겠다.”

밥을 더 준다는 말에 아쉬운 마음으로 빈 그릇을 바라보고 있던 병사들은 그릇을 들고 재빨리 달려갔고 화병들은 정말 빈 그릇에 밥을 채워주었다.

“많이 먹고 힘내라고 주는 것이니. 많이 먹어라.”

“정말로 고맙소.”

오쿠라 다로는 화병이 자신의 그릇에 밥과 고깃국을 담아주자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릇이 가득히 밥과 국이 담기자 오쿠라 다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밥을 먹었다. 고기가 잔뜩 들어간 국밥을 곱빼기로 먹은 병사들은 포만감을 느끼며 천천히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식사 후에는 취침시간 까지 휴식시간이었기에 병사들은 자리에 누워서 쉬거나 모여서 잡담을 나누었다. 오쿠라 다로가 자리에 눕자 다른 병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오사라기 히로타다가 오쿠라 다로에게 다가왔다. 

“밥은 잘 먹었냐?”

“잘 먹었지. 두 그릇이나 먹었더니 아주 행복하다.”

오쿠라 다로와 오사라기 히로타다는 둘 다 고즈케 출신으로 같은 마을에서 살던 소꿉친구였다. 대해국으로 올 때도 같이 왔고 같은 소대로 편성된 덕분에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오늘 이상하지 않냐?” 

히로타다의 질문에 쉬고 싶은 기분이었던 오쿠라 다로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뭐가 이상해?”

“갑자기 군영으로 돌아온 것도 그렇고 밥도 평소보다 많이 주는 것도 이상하지 않냐?”

히로타다의 말을 들은 오쿠라 다로는 실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난 또 뭐라고. 언제는 우리한테 일일이 말해 주고 끌고 다녔냐. 이번에 훈련 나갈 때도 그날 아침에 알려주고 점심밥 먹고 나갔던 거잖아. 그리고 밥이야 원래 훈련 마치고 돌아오면 많이 줬잖아 수고했으니 많이 먹으라고.”

다로의 대답에도 히로타다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아까 대대장님께서 하신 말도 그렇고.”

“무슨 말? 당분간 훈련은 없다는 말?”

대대장이 했던 말을 생각해보니 오쿠라 다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대해국의 병사가 된 다음부터 지금까지 6일간 훈련을 받고 하루는 쉬는 일정이 반복되었다. 물론 훈련이 없는 날도 있었지만 훈련이 없는 날에는 성벽을 쌓거나 나무를 자르는 등 작업에 동원됐었지. 며칠간이나 훈련이나 작업이 없는 날은 없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하루나 이틀 정도 쉬는 날은 있었어도 며칠간이나 훈련이 없었던 적은 없었는데.”

오쿠라 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자 오사라기 히로타다가 한층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무래도 이상해.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오쿠라 다로는 히로타다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진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전쟁.”

전쟁이라는 말에 오쿠라 다로의 눈에서 빛이 났다.

“전쟁을 한다면 누구와 싸우게 될까?”

오쿠라 다로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히로타다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듣기로는 주상전하께서는 간파쿠 아니 히데요시를 싫어하신다고 하더라. 우리를 구해주신 것도 히데요시를 싫어하셔서 구해주신 것이라고 하더라.”

“히데요시.”

오쿠라 다로의 눈에서는 불길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오쿠라 다로는 자신의 집이 불타던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오쿠라 다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터에 보내만 주신다면 히데요시의 목을 베서 허리에 달고 다닐 테다.”

히로타다는 오쿠라 다로의 말을 들으며 섬뜩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너나 나나 히데요시 그 죽일 놈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냐.”

오쿠라 다로와 오사라기 히로타다를 비롯해 그들이 속한 대대의 병사들 모두가 간토지방 출신이었고 히라도에서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이었다. 평범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그들은 간토지역이 전쟁터로 변하면서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호조가문을 토벌하기 위해 시나노를 거쳐 고즈케로 출병한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마에다 도시이에의 연합군은 고즈케를 거쳐서 무사시로 진군했고 그렇게 고즈케는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마에다 도시이에 연합군에게 점령당했다. 

호조 우지나오와 호조 우지마사가 오다와라 성에서 농성을 하며 전쟁이 길어지자 히데요시와 히데요시를 따르는 다이묘들은 간토지역의 성들을 공격해 함락시켰고 그 과정에서 많은 마을들이 병사들에게 약탈당했다. 오쿠라 다로와 오사라기 히로타다가 살던 마을에도 어느 날 한 무리의 군사들이 나타났다. 말을 탄 무사의 지휘를 받던 군사들은 마을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후 창과 칼을 휘두르며 마을 사람들을 위협해 상품가치가 있는 젊은이들을 밧줄로 묶었고 저항하는 사람들이나 상품 가치가 없는 노약자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죽였다.

그렇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죽인 병사들은 무사의 명령에 따라 마을의 집집마다 뒤져서 돈이나 곡식 그리고 키우고 있던 가축을 끌어 왔고 마을에 불까지 질렀다. 오쿠라 다로는 눈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병사들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지켜보고도 두 손이 묶여있어서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고 오사라기 히로타다 역시 병사들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여동생은 병사들에게 겁탈까지 당했다. 그렇게 병사들에게 끌려가 노예로 히라도에 까지 팔려간 그들은 노예 신분으로 대해국에 팔려오게 되었다.

처음에 대해국에 도착한 후 그들에게 병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자 당황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쿠라 다로와 오사라기 히로타다 그리고 함께 팔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잘됐다고 생각했다.  간토지역에 살았던 그들은 대부분 비슷한 일을 겪었고 기회만 된다면 자신들의 마을을 불태운 병사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대해국에서 정식으로 군에 입대한 후 히데요시의 호조정벌과 정벌에 참전한 다이묘들에 대해 알게 되자, 그들은 비로소 복수해야 할 대상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전쟁을 일으킨 히데요와 고즈케로 진군한 우에스기 카게카츠와 마에다 도시이에가 그들이 복수할 대상이었다.

병사들이 훈련을 받다가 갑자기 함관으로 귀환하자 병사들 사이에서는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함관으로 돌아온 첫날 저녁부터 돌았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에도 두려워하거나 긴장하는 병사들의 그렇게 많지 않았다. 병사들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노예로 팔려왔거나 조선에서 노비로 팔려온 사내들이었다. 

조선에서 온 노비출신 병사들을 대해국으로 온 덕분에 노비 신분에서 해방되었고 그동안의 지속적으로 주입해온 세뇌식 교육으로 인해 자신을 노비신세에서 해방시켜 준 대해국에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었고 대해국에서 도망친다면 다시 노비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기에 대해국의 명령을 따르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 노예로 팔려온 사내들 역시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것에 만족하고 있었고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노예로 지내면서 온갖 굴욕과 고통을 당한 곳이기에 일본에 대한 충성심은 전혀 없었다. 더구나 간토지역 출신 병사들은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자신들이 노예로 팔려왔고 자신들을 노예로 만든 것도 히데요시의 요청으로 참전한 다이묘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전쟁을 복수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임진년(1592년) 3월 29일 규슈 히젠국 나고야성

나고야 성은 조선 침공의 거점으로 세워진 성 답게 군사를 이끌고 도착한 다이묘들이 머물 수 있도록 다이묘들의 숙소가 준비되어 있었다. 시마즈가의 군사를 이끌고 나고야에 도착한 시마즈 요시히로는 가신들과 함께 자신의 숙소로 배정된 건물로 들어갔고 숙소 주위에는 시마즈 가문의 무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시마즈 요시히로 숙소 안의 내실에서 승려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히데요시가 지난 26일 교토에서 천황폐하를 뵙고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군량과 군수품들은 선박으로 수송하고 있지만 정작 히데요시 본인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육로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니 이곳에 도착하기 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하는구나.”

시마즈 요시히로의 말을 들은 승려는 찻잔을 움켜쥐며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히데요시가 어떻게 우리 가문을 이토록 멸시한다는 말입니까. 서둘러 출병하라는 명령을 내려놓고는 정작 본인은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니 정말 건방진 놈이 아닙니까.”

시마즈 요시히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승려는 바로 시마즈 도시히사였다. 히데요시의 원한을 샀던 도시히사는 승려로 위장해 요시히로와 함께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고야 성에 입성했다. 도시히사는 직접 히데요시의 목을 칠 욕심으로 신분을 위장해 나고야 성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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