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215화 (215/223)

< 이번에도 북진할 수 있을까 >

임진년(1592년) 4월 13일 조선 부산진 

부산진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이미 왜군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가 이끄는 왜군 1만8700명이 조선에 상륙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부산진을 포위한 후 조선말을 할 줄 아는 대마도의 출신들을 내세워 부산진에 항복을 권고했다. 명으로 진군하기 할 수 있도록 길만 열어 준다면 살려주겠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입장에서는 아주 너그러운 조건을 제시했지만 부산진 첨사 정발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안을 거절했다. 조선군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보고를 받은 고니시 유키나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공격명령을 내렸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성을 공격하라.”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성을 포위하고 있던 왜군은 성벽위에 올라가 있는 조선군을 향해 조총을 발사하고 화살을 날렸다.

“탕” “탕” “탕” “탕” “탕”

총성이 울리고 탄환과 화살이 날아오자 성벽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은 총탄과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성벽위에 올라가 있는 조선군 화승총과 활로 왜군에게 응사했지만 병력에서 워낙 큰 차이가 나는 전투라 왜군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왜군의 수는 1만 명이 넘는 대군이었는데 반해 부산진을 방어하고 있는 조선군은 600여명에 불과했으니 병사들의 전투력은 고사하고 병력의 숫자에서부터 워낙 큰 차이가 나는 전투였다. 

왜군의 총탄에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쓰러지자 왜군들은 재빨리 성벽에 사다리를 걸고 성벽 위로 올라왔고 왜군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부산진 첨사 정발은 직접 검을 뽑아들고 왜군들과 전투를 벌였다.   

“공격하라. 왜군에게 활을 쏴라.”

부산진 첨사 정발은 직접 검을 휘두르며 군사들을 독려해 왜군과 싸웠지만 결국 왜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병사들을 독려하던 정발이 쓰러지자 왜군에 맞서 싸우던 조선군은 오래 버티지 못했고 결국 부산진은 왜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임진년(1592년) 4월 16일 이키 섬 

아직 안개도 걷히지 않은 새벽 거대한 전선들이 이키 섬으로 다가왔다. 횃불을 휘둘러 가며 서로 신호를 주고받던 전선들은 잠시 후 대열을 정비하더니 이키 섬을 향해 포문을 들이댔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전하. 모든 전선들이 전하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도진의 보고를 받은 나는 갑판으로 올라와 이키 섬을 바라보았다. 아직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아 흐릿하게 보였지만 확실히 이키 섬의 항구와 인근 해변에 많은 수의 왜선들이 정박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우선 적선을 침몰시킨다. 적선을 조준해 방포하라.”

"예. 전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방포하라~”

내가 방포명령을 내리자 최도진은 화포장들에게 방포할 것을 명령한 후 다른 전선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쾅” “쾅” “쾅” “쾅” “쾅” “쾅”

대해국의 전선들이 일제히 함포를 발사하자 포성이 울리며 철환이 왜선들 향해 날아갔다. 정박해 있다 철환을 맞은 왜선들은 선체가 부셔지며 바다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왜선 안에서 자고 있던 왜병들은 포성과 선체가 부셔지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갑판위로 올라왔다. 갑판위에서 전선들이 왜선을 공격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대완구를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적선에 대완구를 방포한다. 진천뢰(비격진천뢰)를 준비하라.”

“예. 전하.”  “대완구와 진천뢰를 준비하라.” 

내 명령이 떨어지자 포수들은 대완구에 화약을 장전했고 진천뢰의 심지(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심지에 불을 붙은 진천뢰는 폭발할 수 있으니 신속하게 발사해야 했다. 포수들이 진진천뢰는 대완구에 장전하자 나는 곧바로 방포 명령을 내렸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펑”  “펑”  “펑”

이전과는 다른 포성이 울리며 진천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포물선을 그리며 그대로 왜선의 갑판에 떨어진 진천뢰는 잠시 후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쾅~” “쾅~”  “쾅~”

진천뢰가 폭발하자 갑판위에 올라와 있던 왜병들은 폭발에 휘말리거나 파편을 뒤집어쓰고 그 자리에 쓰러졌고 진천뢰가 폭발한 왜선은 갑판 한쪽이 완전히 사라진데다가 불까지 붙어서 공격을 받고 있는 다른 왜선들 보다 더 처참한 형태가 되었다. 진천뢰가 성공적으로 폭발하자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전선들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다른 전선들도 일방적으로 왜선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철환과 진천뢰에 맞은 왜선들을 폭발하거나 파괴되어 침몰하고 있었다. 왜선에 승선하고 있던 왜군들은 공격이 시작되자 갑판으로 올라왔지만 포격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혼란 중에 지휘체계가 붕괴된 것인지 반격도 하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들거나 섬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전선의 포수들은 훈련받은 대로 대포에 화약과 철환을 장전하고 방포했고 방포 후에는 포구를 청소하고 다시 화약과 철환을 장전하는 모습이 전투를 치르고 있다기보다는 기계적으로 반복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굳이 내가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최도진에게 함대의 지휘를 맡겼다.   

“왜선을 모두 침몰시킨 후 상륙할 것이다. 왜선들은 한척도 남김없이 침몰시키도록 하고

병사들을 이키 섬에 상륙시킬 때도 다시 한번 대완구와 진천뢰로 지원할 것이니 준비하도록 하라.”

“예. 전하 명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잠시 선실에 내려가 있을 것이다. 최장군이 전투를 지휘하도록 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내게 보고하라.”

“예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최도진에게 명령을 내린 나는 선실로 내려와 마쓰라 다카노부와 시마즈 도시히사가 보낸 서신들을 펼쳐놓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이 서신들은 대해국에서 출병한 후 이키 섬으로 내려오면서 받은 서신들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내게 도착한 서신들이었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이번 전쟁에서 나를 돕기로 협의한 후 나는 히라도에 갤리온 1척을 연락선으로 남겨 놓았고 그 연락선 덕분에 나는 히데요시가 다이묘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신속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히데요시로 부터 군사를 동원하라는 명령을 받은 마쓰라 다카노부와 시마즈 도시히사는 그 즉시 각각 내게 서신을 보내 그 사실을 알려왔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서신을 확인한 그날 마쓰라 다카노부와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각각 서신을 작성해서 히라도로 보냈다. 사화동에게서 내가 보낸 서신을 받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곧바로 내게 답장을 작성했고 그 서신을 받은 사화동에게 주며 최대한 빨리 내게 전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미 심각한 상황인 것을 알고 있었던 사화동은 다카노부의 서신을 나에게 전달하기 위해 황급히 히라도를 출발하려고 했지만 내가 시마즈 도시히사에게 보내는 서신을 도시히사에게 전달하지 못해 히라도를 출발하지 못했다. 사화동은 궁리 끝에 왜국 출신 수병에게 서신을 맡겨 사쓰마로 보내려고 했을 때 우메키타 구니카네가 갤리온으로 찾아왔다. 우메키타 구니카네를 만나 도시히사가 내게 보내는 서신을 받은 사화동은 잘됐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도시히사에게 보내는 서신을 우메키타 구니카네에게 맡긴 후 도시히사에게 전달할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마쓰라 다카노부와 시마즈 도시히사가 내게 보내는 서신을 확보한 사화동은 전속력으로 갤리온을 몰았고 이키 섬을 향해 내려오고 있는 함대를 만나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이키 섬으로 오면서 급하게 서신을 읽은 나는 시간이 나자 다시 한번 서신을 꺼내 자세히 읽어 보았다.

“히데요시의 출병 요청을 거절하기 위해 마쓰라 다카노부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니 정말 잔머리가 대단한 양반이야.”

다카노부의 아들은 마쓰라 시게노부는 고니시 유키나가 지휘하는 1군에 편제된 다이묘였다. 나는 다카노부와 회담을 하면서 꾀병을 부려서라도 시게노부다 조선을 출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카노부는 고민 끝에 시게노부를 출병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이 중병에 걸렸다고 소문을 냈다.

“시게노부가 병이 걸렸다고 소문을 내고 출병하지 않았으면 히데요시가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다카노부가 병이 들었다는 소문이 돌고 아들인 시게노부가 고령인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히라도에 갔다고 하면 아무리 히데요시라도 출병을 강요하기가 어렵겠지 더구나 시게노부는 나서지 않았지만 히데요시가 출병요청에 맞춰서 3000명의 병사들을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보냈다고 하니 히데요시의 명령을 거역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다카노부가 꾀병을 부리자 시게노부는 아버지의 간호를 핑계로 자신의 가족들은 물론 심복부하들과 그들의 가족들 까지 모두 데리고 히라도로 건너갔다. 즉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마음껏 이키 섬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키 섬에 구로다 나가마사와 오토모 요시무네 군사 1만1000명을 거느리고 주둔하고 있고 가토 기요마사가 이키 섬에 주둔하고 있다가 대마도로 이동했다니. 정말 아깝게 됐다.” 

나는 히데요시의 칠본 창 중 하나이자 히데요시의 부하들 중에서 맹장으로 유명한 가토 기요마사를 이키 섬에서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정말 아쉬웠다.

“가토 기요마사와 2만 명이 넘는 왜군을 이키 섬에 가둬넣고 간단히 제거할 수 있었는데 정말 아깝게 됐다.”

가토 기요마사를 놓친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구로다 나가마사 역시 기회가 될 때 반드시 제거해야할 인물이었다. 

“기요마사를 놓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구로다 나가마사는 반드시 제거한다. 용맹하기로 유명한 무장이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모습을 보면 지략도 겸비한 놈이다.”

나가마사의 아버지는 히데요시의 참모이자 지략가로 유명한 구로다 요시타카였다. 구로다 나가마사가 지략보다는 용맹함으로 유명한 무장이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요시타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용을 겸비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앙숙인 기요마사가 대마도로 이동했다는 것은 대마도에 주둔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미 조선에 상륙했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기요마사도 곧 조선에 상륙하겠지. 이키 섬에 남아있는 왜군과 나고야 성에 집결해 있는 왜군은 더 이상 조선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겠지만 이미 조선에 상륙한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마도에 가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조선군을 믿어 볼 수밖에.” 

임진왜란을 생각해보면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하는 왜군만으로도 한성까지 진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내가 이키 섬을 점령하고 왜군의 보급을 차단할 계획이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조선에 상륙한지 20일 만에 한성까지 진군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한성까지는 진군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한성을 함락시킨 그 다음이었다.

“한성이 위험해지면 선조는 평양으로 파천을 떠나겠지. 한성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는 조선의 수도를 점령했으니 전쟁에서 승전한 기분이었겠지만 선조가 한성을 버리고 떠난 사실을 알면 황당하게 생각할 것이고 내가 알고 있던 임진왜란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는 개성을 거쳐서 평양으로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로 진군했지만 과연 이번에도 한성에서 북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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