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격진천뢰 >
마쓰라 다카노부가 보낸 서신을 모두 읽은 나는 시마즈 도시히사가 보낸 서신을 펼쳤다.
“히데요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빨라야 4월 말에야 나고야에 도착할 것 같다니 다행히 시간은 충분하구나.”
나는 히데요시가 나고야 성에 머물고 있을 때 나고야 성을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아직 2주의 시간이 있었고 2주라면 이키 섬을 점령하고 거점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신을 읽어가던 나는 히데요시가 10만에 가까운 대군을 거느리고 나고야에 입성할 것 같다는 보고에 두통이 생기는 것 같았다.
“역시.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세상에 쉬운 전쟁은 없는 법이구나. 나고야에 10만 명 이상의 왜군이 주둔하고 있다면 시마즈군이 이를 갈고 있다고 해도 히데요시의 목을 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나고야 성에 왜군 10만 명이 주둔하고 있다면 히젠국에 우리 군사들을 상륙시키는 것도 위험한 일이야.”
우리 대해국의 군대가 왜군들 보다 화력이 강하고 화약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지만 왜군이 10만 명이나 모여 있다면 가볍게 여길 수는 없었다.
“나고야 성은 섬이 아닌 규슈에 있는 성이니 고립시킬 수도 없고 어떻게 한다.”
나고야 성을 공격할 방법을 생각하던 나는 도시히사가 보낸 지도와 성의 도면을 살펴보던 중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충분히 가능하겠어. 가능성이 있어.”
나고야 성을 공격할 방법을 찾은 나는 지도와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있던 그때 선실 문 밖에서 지키고 있던 호위병이 내게 보고했다.
“전하. 최도진 장군께서 전하를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들어와도 좋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최도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전하. 왜선들을 모조리 침몰시켰습니다.”
최도진의 보고를 받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생각보다 빠르군. 좋아 섬에 병사들을 상륙시킬 것이다. 단선을 준비하도록 하라.”
“예. 전하. 명을 따르겠습니다.”
한편 마쓰라 가문이 제공한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구로다 나가마사는 공격을 받고 있다는 부하 무사의 외침에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소란이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남만선입니다. 남만선들이 나타났습니다.”
“뭐야 남만선이라고.”
“남만선들이 우리 전선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전선들이 공격받고 있단 소리에 구로다 나가마사는 황급히 갑옷을 입고 항구로 뛰어나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항구로 나온 구로다 나가마사의 눈앞에는 처참한 광경에 펼쳐져 있었다. 대부분의 전선들은 이미 파손되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불길에 휩싸여 불타고 있는 전선들도 있었다. 항구 인근의 해변에는 전선 안에서 잠을 자다가 황급히 탈출한 병사들이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훈도시 차림으로 맨땅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남만선들이 우리 전선을 공격하다니. 도대체 왜?”
대해국의 전선들을 유럽의 전선으로 착각한 구로다 나가마사는 포르투갈의 배들이 자신들의 전선을 공격한 사실에 놀라고 당황했다.
“적입니다. 적군이 다가옵니다.”
해변에 나와 있던 무사들 중에 하나가 해변으로 다가오는 전선들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적군이라고 어디냐?”
무사의 외침에 놀란 구로다 나가마사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고 무사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에서 다가오는 단선들을 발견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무기를 들지 않고.”
단선들을 발견한 구로다 나가마사는 주변의 무사들에게 외쳤다.
“적군이 다가오고 있다. 적군이 섬에 상륙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 어서 철포와 활을 가져오너라.”
구로다 나가마사가 소리 높여 외치자 무사들은 황급히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전투를 준비했고 구로다 나가마사는 아직도 거치 숨을 몰아쉬고 있는 병사들을 잡아 일으키며 외쳤다.
“너희도 어서 가서 무기를 가져오너라. 활과 철포가 없다면 창이라고 들고 오고 창도 없으면 와키자시(전국시대 보조무기로 사용되던 일본도 칼날의 길이가 40~50cm 정도였다.)나 단도라도 들고 오란 말이다. 적군이 너희의 목을 자르러 오고 있는데 언제까지 주저앉아 있을 것이냐.”
구로다 나가마사가 고함을 지르자 병사들을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해 구로다 가문과 오토모 가문의 고위 무사들은 마쓰라 가문이 제공한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고 병사들도 전선을 지키기 위해 전선에 남아있었던
병사들 외에는 대부분 섬 안의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잠시 후 항구와 해변에는 무사들과 병사들로 가득 채워졌다.
무사들은 병사들을 지휘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고 철포를 든 철포병들과 활을 든 궁수들은 해변으로 다가오는 단선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철포병과 궁수들 뒤에는 창을 든 병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단단하게 잡고 있었다.
해변으로 다가오던 단선들은 왜병들이 항구와 해변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해변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전선의 갑판 위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천리경(망원경)으로 해변에 나와 있는 무장들과 왜병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화려한 투구를 쓴 놈들이 제법 많은 것을 보니 지위가 높은 무사들은 대부분 섬에 있었던 것 같군. 저 정도 거리면 단선에서 강선총으로 충분히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눈대중으로 단선의 위치와 왜병들과의 거리를 계산하던 나는 왜병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충격을 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최도진에게 포격을 명령했다.
“대완구에 진천뢰를 장전하라. 왜병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
“예. 전하.”
“단선에게도 명령을 내리겠다. 발포를 준비하라고 전하라.”
내 명령이 떨어지자 전선의 수병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화포장과 포수들은 대완구에 화약과 진천뢰를 장전했고 신호수들은 깃발로 단선에 명령을 전달했다. 내 명령을 전달 받은 총병들은 단선에서 이미 화약과 탄환을 장전해 놓은 강선총을 들고 화약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총구를 막고 있었던 종이 마개를 벗겨냈다.
“전하. 대완구가 준비되었습니다.”
최도진의 보고를 받은 나는 해변에 진을 치고 있는 왜병들을 가리키며 방포명령을 내렸다.
“목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뜨거운 맛을 보여주어라.”
“예. 전하. 방포하라.”
최도진이 방포명령을 내리자 전선에서 대완구가 불을 뿜었다.
“펑” “펑” “펑” “펑” “펑”
전면에 나와 있던 전선들이 일제히 대완구를 발사하자 100여발의 진천뢰가 해변으로 정확히는 해변에 진을 치고 있는 왜변들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대완구의 포성에 놀란 왜병들은 시커먼 것이 하늘에서 떨어지자 당황하며 피하려고 했지만 전국시대를 살아온 무사들은 자리를 이탈하려는 병사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무네나쓰는 움직이란 명령이 없었는데도 병사들이 몸을 피하려고 하자 즉시 일본도를 뽑아들고 눈앞에 있는 병사의 목을 쳤다. 무네나쓰의 일격에 몸을 움직이던 병사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무네나쓰는 물론 주변 병사들의 몸을 붉게 물들였다. 무네나쓰는 병사의 피가 묻은 일본도를 휘두르며 병사들에게 외쳤다.
“누가 몸을 움직이라고 하였느냐? 명령이 없었는데도 대열을 이탈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목을 칠 것이다.”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일본도를 휘두르며 외치는 무네나쓰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무네나쓰와 같이 무사들은 대열을 이탈하려는 병사들에게 일본도를 휘둘렀고 병사들이 모여 있는 대열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울렸다. 무사들이 병사들을 즉결처분한 효과는 확실했다. 진천뢰가 하늘에서 떨어져도 병사들은 비명만 지를 뿐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떨어지는 진천뢰에 맞아 쓰러진 운 나쁜 병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천리경으로 왜병들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진천뢰가 철포병들과 궁수들의 대열 사이에 떨어지자 나이스를 외치고 싶은 기분을 참으며 최도진에게 명령을 내렸다.
“왜병들이 밀집해 있으니 좋은 기회다. 대완구를 연이어서 방포하라. 그만 방포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 까지 적들에게 진천뢰를 날려라.”
“예. 전하.”
“펑” “펑” “펑” “펑” “펑” “펑”
각 전선들에게 다시 한번 대완구가 불을 뿜었고 진천뢰가 왜병들의 머리위로 날아갔다. 대완구가 불을 뿜고 있었을 때도 왜병들 사이에 떨어진 진천뢰는 아직 폭발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 진천뢰가 날아올 때는 두려워했던 왜병들도 땅에 떨어진 진천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두려움 보다는 호기심을 보이며 창으로 진천뢰를 건드려 보았고 무사들도 마찬가지로 일본도로 진천뢰를 건드려 보았다. 진천뢰는 장난감 삼에 건드려보고 있던 왜병들은 다시 대완구가 불을 뿜고 진천뢰가 날아왔지만 아까처럼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 날아온다. 쇳덩이에 맞지 않도록 잘 피해라.”
무사들도 진천뢰가 날아오는 것을 보며 병사들에게 농담하듯 주의를 주었고 왜병들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진천뢰를 바라보았다. 두 번째로 날아오는 진천뢰는 이전에 날아온 진천뢰보다 더 멀리 날아가 사수와 철포병의 뒤편에 떨어졌다. 창병들은 자신의 눈 앞에 떨어진 진천뢰를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펑” “펑” “펑” “펑” “펑” “펑”
두 번째 진천뢰가 땅에 떨어질 무렵 대완구는 세 번째로 불을 뿜었지만 왜병들은 대완구의 포성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구로다 나가마사가 까지도 대해국의 전선들을 바라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남만인들의 철포가 크기만 하지 쓸모가 없구나. 저런 쇳덩이에 몇 명이나 맞아 쓰러질까.”
구로다 나가마사가 비웃자 구로다 가문의 무사들은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 쇳덩이를 넣고 쏘고 있으니 화약만 많이 쓰지 실속은 없는 무기 같습니다.”
구로다 나가마사와 무사들이 웃고 떠들고 있던 바로 그때 땅에 떨어져 있던 진천뢰가 폭발했다.
“쾅~” “쾅~” “쾅~” “쾅~” “쾅~”
왜병들 사이에 떨어져 있었던 진천뢰가 연이어서 폭발하자 왜병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폭발에 휘말려 그 자리에서 즉사한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진천뢰가 폭발하며 사방에 쇠구슬을 뿌리자 진천뢰 주위에 있던 자들은 쇠구슬에 맞아 쓰러졌다. 비격진천뢰는 파편효과를 노리고 안에 화약과 쇳조각을 넣고 제작하지만 나는 단순한 쇳조각 대신 총탄 보다 작은 크기의 쇠구슬을 넣고 제작할 것을 명령했다. 진천뢰가 폭발하자 안에 들어있던 쇠구슬들은 사방으로 튀어나가며 왜병들에게 명중했고 쇠구슬에 맞은 왜병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구슬에 맞지 않은 자들고 폭발에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폭발에 놀라기는 구로다 나가마사도 마찬가지였다. 구로다 나가마사가 무사들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호통을 치고 있었을 때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쾅~” “쾅~” “쾅~” “쾅~”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