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해국에서 보낸 서신 >
한편 왜군이 조선에 상륙했다는 소식은 전라좌수영에도 전해졌다.
임진년(1592년) 4월 15일 경상우수사 원균으로 부터 왜선 90여척의 부산 앞 절영도에 정박해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이대원이 경고했던 대로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출병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5관5포에 전령을 보내 대규모의 왜선이 절영도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5관5포의 모든 장수들은 모든 전선과 병력을 이끌고 좌수영으로 집결하라고 전하라.”
전라좌수군의 모든 장수들에게 좌수군 본영으로 집결할 것을 명령한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도 전령을 보내 왜군이 부산에 도착한 사실을 알리고 출병할 준비를 할 것을 요청하는 한편 전라도 순찰사와 전라병사에게도 공문을 보내 왜군이 부산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조정에 장계를 올려 경상우수사가 부산에 90여척의 왜선이 도착했다고 전라좌수영에 알린 사실을 보고하고 전라좌수군의 출병을 요청했다.
전라좌수군은 전라도의 동쪽 바다를 지키는 것이 임무였고 부산은 경상우수군이 관할하는 지역이었으니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이 부산이나 경상우수군이 관할하는 지역으로 출동하기 위해서는 조정의 허락이 필요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라좌수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이었지만 조정의 허락도 없이 전선과 군사를 이끌고 전라좌수군이 관할하는 지역을 벗어난다면 역적으로 몰릴 수 있는 일이었으니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이 부산으로 출병하기 위해서는 조정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했다.
5관5포의 장수들과 전라우수영, 순찰사, 병사에게 공문을 보내고 조정에 장계까지 올린 이순신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강영남이 가져온 서신을 펼쳐보았다. 서신에는 히데요시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20만 명이 넘는 다는 것과 왜군이 조선에 상륙하는데 성공하면 한성으로 진군을 시도할 것이라는 정보와 함께 왜군은 조총 사격과 단병접전에 능하니 왜군을 상대할 때는 총통과 활로써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적혀있었다.
이순신은 대해국에서 보낸 서신을 읽은 후 고민한 끝에 붓을 들었다.
“이대원 영감은 자신이 서신을 보낸 것을 조정에 알리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이런 사실을 나와 우수사(이억기)만 알고 있을 수는 없다. 이대원 영감이 보냈다는 사실은 숨기고 왜국의 간자를 심문해 알게 된 사실로 조정에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
이 정보를 조정에서도 알고 있는 것이 왜군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이순신은 마음을 먹고 붓을 들어 조정에 올리는 장계를 작성했다.
한편 조정에는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선조는 북병사와 전라병사를 역임했었던 이일을 경상도 순변사로 임명해 경상도로 내려 보냈고 신립을 삼도 순변사로 임명해 선조가 직접 보검까지 하사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선조와 조정은 이번 전쟁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일과 신립을 보내면 왜군을 토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일이 군관 60명을 거느리고 경상도로 내려간 날 밤. 좌의정 정언신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촛불을 밝힌 정언신은 서책 속에 숨겨놓았던 서신을 꺼내 천천히 읽어보았다.
“왜군 20만 명이 조선에 상륙하려고 할 것이고 이일을 일으킨 자는 왜국의 관백 풍신수길이라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작년 겨울 정옥남의 이름으로 서신이 집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정언신은 별다른 의심 없이 서신을 열어보았다. 정여립이 비록 의금부의 고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결과적으로 역적이라는 누명을 벗었고 정언신과는 친척관계였으니 정언신이 정옥남의 서신을 받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서신을 꺼내 읽은 정언신은 깜짝 놀랐다. 서신에는 믿을수 없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20만의 왜군이 조선에 상륙하려 할 것이라는 글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누가 장난을 치나 싶어서 필적을 살펴보고는 다시 한번 놀랐지.”
서신에 적힌 글자를 자세히 살펴본 정언신은 누가 서신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전라좌수사였던 이대원 그의 필적을 내가 모를 리는 없지. 이대원이 좌수영에서 장계를 올릴 때마다 내가 먼저 확인하고 전하께 보고를 드렸으니 말이야.”
그 서신이 이대원이 보낸 서신이라는 알게 된 정언신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대원 그가 살아있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왜 나타나지 않고 있을까?”
사라지기 직전 이대원은 전라좌수사였고 전라좌수사는 정3품의 당상관이었다. 불과 22세의 젊은 나이에 당상관에 올랐으니 조선에서 그만한 출세는 없었다. 정언신이 이대원이 당상관의 자리를 버리고 사라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언신은 이대원이 정체를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궁금했지만 서신을 보낸 사람이 이대원이라는 알게 되자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내가 알고 있는 이대원은 헛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럼 이 서신에 적인 글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말인가? 풍신수길이 정말로 조선을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고 20만 이상의 대군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인가?”
정언신은 서신에 적힌 내용을 믿기 어려웠지만 서신의 내용이 사실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대원이 풍신수길의 계획을 조선에 알리기 위해 자신에게 서신을 보냈다면 충분히 말이 될 것 같았다.
“이대원은 전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으니 바다를 표류하다가 왜국에 까지 도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고. 이대원은 전라좌수사로 오도의 왜구들을 토벌하고 정해왜변 당시 왜구들에게 끌려간 조선인들을 구해왔었으니 그 일로 왜구들의 원한을 사서 감금되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여간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왜국에서 풍신수길의 음모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든 그 사실을 조선에 알리기 위해 내게 서신을 보냈다.”
정언신이 생각해 보기에 지금 상황에게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가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이대원이 보낸 서신을 다시 한번 읽은 정언신은 어느새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이거 큰일이로구나. 풍신수길이 20만 대군을 출병시켰다면 선봉으로 나선 왜군의 수만 해도 1만 명은 넘을 것이다. 경상도 순변사와 삼도 순변사가 경상도까지 진군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니 그동안 왜군이 더 상륙한다면 경상도 순변사와 삼도 순변사는 최소 1만에서 그 이상의 왜군을 상대해야 한다. 경상도 순변사와 삼도 순변사가 맹장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북방의 정예병도 아닌 남부지방의 군사들로 수만 명의 왜군을 토벌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군사들은 소수의 직업군인들 외에는 대부분이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순번에 따라 1년에 한, 두 번씩 군사로 복무를 하는 형식이었으니 정예병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나만 북방의 군사들은 여진족들과의 전투가 수시로 벌어지는 지역이다 보니 실전경험도 풍부했고 전투가 없을 때에도 늘 여진족과 대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보니 군사들도 군기가 잡혀있었지만 남부지역의 군사들은 실전경험도 그런 군기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지금이라도 전하를 뵙고 사실을 고해야겠다.”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언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궐로 향했다.
임진년(1592년) 4월 20일 대마도 이즈하라항
대마도의 대표적인 항구인 이즈하라항에는 왜선들이 가득히 정박해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지휘를 받는 왜군들을 부산에 상륙시킨 후 대마도로 돌아온 왜선들이었다. 이들 중의 일부는 군량과 화약 그리고 화살과 탄환을 싣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고 일부는 이키 섬을 가서 구로다 나가마사가 지휘하는 왜군을 대마도로 수송할 예정이었다.
항구 한쪽에 정박한 왜선에 쌀가마니를 싣고 있던 사다타케는 갑판에 쌀가마니를 내려놓고 허리를 펴면서 배에서 내렸다. 배에서 내린 후 좌우로 고개를 돌리던 그의 눈에 돛을 올리고 다가오는 전선들이 보였다.
“이키 섬에서 오는 배들인가? 여기에 도착한 배들이 출발하기도 전에 추가로 배들이 들어온단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사다타케는 대마도로 다가오는 전선들이 왜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전선들이 대해국의 전선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좋아 아주 풍성하게 상이 차려져 있구나. 차려진 상은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예의인 법이지. 화포장은 어서 대완구를 장전하여라. 사부들은 화전(火箭)[불화살]을 준비하도록 하고.”
최도진은 이즈하라의 항구와 주변 해안가에 왜선들이 가득히 정박해 있는 것을 보고는 입맛이 도는 표정을 지었고 최도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화포장과 사부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예. 장군.”
전선들은 대완구에 화약과 진천뢰를 장전했고 사부들은 화전을 준비했다. 잠시 후 전선들은 전선 간의 간격을 넓히며 이즈하라항 일대를 에워싸는 형태로 이즈하라항에 다가갔고 전선들이 대완구의 사정거리 까지 이즈하라항에 접근하자 최도진은 공격명령을 내렸다.
“사부들은 왜선을 향해 화전을 날리고 화포장은 항구를 향해 방포하라. 특히 항구에 쌓여있는 군량과 화약통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모조리 불태워버려라.”
“예. 장군.”
방포명령에 화포장들은 씩씩하게 대답한 후 항구에 쌓여 있는 군량과 무기들을 향해 진천뢰를 발사했다.
“펑” “펑” “펑” “펑” “펑”
대완구가 폭음을 내며 불을 뿜자 진천뢰가 이즈하라항을 향해 날아갔고 진천뢰가 항구에 떨어지는 동안 사부들은 각궁에 화전을 메기고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
“발사하라~”
사부들이 일제히 시위를 놓자 화전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항구에 정박해 있는 왜선을 향해 날아갔다. 대해국의 전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왜인들은 전선에서 대완구가 불을 뿜고 갑판위에서 사부들이 화전을 날리자 그제 서야 대해국의 전선들이 적선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진천뢰는 항구에 떨어졌고 화전은 왜선에 명중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빨리 물을 떠와라. 빨리.”
“어서 서둘러라 서둘러.”
당장 눈앞에서 왜선이 불이 붙자 왜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바가지와 물통을 들고 바닷물을 퍼 올렸다. 왜인들은 왜선에 물을 뿌려서 불길을 잡으려고 했지만 기름을 먹인 천으로 감싼 화전의 불길은 물을 뿌린다고 해도 쉽게 꺼지지 않았다. 왜인들이 화전에 물을 뿌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대해국의 사부들은 얄밉게도 왜선을 향해 계속 화전을 날렸고 화전이 명중할
수록 왜선에 불길은 점점 커져갔다.
왜인들이 왜선에 붙은 불길을 잡기 위해 항구에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바로 그 순간 항구에 떨어졌던 진천뢰들이 순서대로 폭발했다.
“콰앙~” “콰앙~”
왜선이 적재하기 위해 항구에 쌓여 있었던 쌀가마니가 불탔고 화약통이 폭발하면서 이즈하라항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