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219화 (219/223)

< 통제사 이순신 >

임진년(1592년) 4월 20일 조선 한성 경복궁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계가 한성에 도착하자 왜구의 침입소식에 이미 뒤숭숭하던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장계에는 이순신이 왜국의 간자를 문초하여 알아낸 정보라며 이번에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왜국의 실권자인 풍신수길이 보낸 왜국의 정규군이며 풍신수길은 20만 이상의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장계가 올라오자 조정의 대신들은 장계의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전하. 왜군이 20만에 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저 미개한 왜인들이 어떻게 20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할 수 있겠으며 20만 대군이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오기 위해서는 수천척의 배가 필요할 것인데 그 많은 배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사옵니까. 이것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런 거짓을 아뢴 것은 적의 간자에게 속았거나 헛소문을 듣고 겁에 질려 저러는 것이니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파직하고 당장 용맹한 장수를 전라좌수사로 내려 보내소서.”

“내려 보내소서.”

대신들 중에 하나가 이순신을 파직하고 다른 장수를 전라좌수영으로 내려 보내자고 하자 조정의 대신들 중 상당수가 엎드려서 선조에게 간청했다. 이순신을 파직하자는 의견에 많은 수의 대신들이 동조하자 우의정 유성룡이 나섰다.

“전하.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오직 전하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장계를 올린 것입니다. 간자에게서 들은 정보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은 이 정보가 사실이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조정에서 쉽게 믿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장계를 올린 것이오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순신은 이번 장계를 올리기 이전에도 이미 장계를 올려 부산으로 출병할 것이니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였나이다. 왜군이 이미 조선을 침범하였는데 전장으로 나가기를 원하는 장수를 파직한다면 어느 장수가 전장에 나가 왜군을 무찌르려고 하겠나이까. 전하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출병을 허락하시어 전공으로 이번 과오를 씻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허락해 주시옵소서.”

유성룡이 나서자 유성룡과 당파가 같은 대신들이 일제히 엎드려 선조에게 간청하였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믿고 있었지만 20만 이상의 왜군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장계는 유성룡도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유성룡은 자신도 믿기 어려운 이순신의 장계가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이순신을 전장으로 내보내 전공을 세우게 하자고 주장했다.

이순신의 파직을 주장하던 대신들에게도 이순신을 전장으로 내보내자는 의견에 찬성했다. 왜군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조정에서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경상좌수군과 경상우수군이 왜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와해되었고 부산진을 비롯해 동래성 까지 함락된 것만 봐도 왜군들의 규모나 전투력이 만만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순신의 파직을 주장하던 대신들은 이순신이 전장에 나가 왜군들과 싸우다가 전사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순신에게 출병을 허락하자는 유성룡의 의견에 찬성했다.

“전하. 우상대감의 의견이 지극히 합당하다 생각되옵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자진하여 출병을 요청하였고 왜군들과 싸워 물리치려고 생각하고 있사오니 하루라도 빨리 이순신에게 출병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허락하여 주옵소서.”

대신들이 일제히 엎드려 간청하자 선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유성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인이 듣기에도 우상의 의견이 옳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출병을 허락할 것이니 이순신은 하루라도 빨리 부산으로 출병하여 왜군을 몰아내야 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모든 대신들이 엎드려 망극하다고 외치자 함께 망극하다고 외쳤던 유성룡은 다시 몸을 일으켜 선조에게 말했다.

“전하. 전라우수사 이억기도 장계를 올려 출병을 요청하였나이다. 전라우수군의 규모가 전라좌수군의 두 배에 달하니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도 출병을 허락하여 좌수사 이순신과 힘을 합쳐 왜군을 몰아내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통촉하여 주옵소서.”

대신들은 이번에도 유성룡의 의견에 찬성해 선조에게 통촉해 달라고 외쳤고 유성룡과 대신들의 반응을 본 선조는 얼굴이 굳어졌다. 선조의 얼굴이 굳어진 것인 유성룡이 주장한대로 이순신과 이억기에게 모두 출병을 허락하고 부산진으로 진군할 것을 허락하면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을 지휘할 지휘관을 누구로 삼느냐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전라좌수군이 출병하는 마당에 전라우수군만 남아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군이 부산을 점령하고 있으니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이 모두 출병해 왜군을 몰아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좌수사와 우수사에게 각자 자신의 전선과 군사들을 지휘해 왜군들을 몰아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좌수군과 우수군이 모두 출병하면 좌수군과 우수군을 통합해서 지휘할 통제사를 세워야 하는데 누구를 통제사로 세운단 말인가. 이미 왜군이 부산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장수를 통제사에 제수해서 내려 보낼 수는 없는 일이고 좌수사와 우수사 중에서 하나를 통제사에 제수해야 하는데.’

선조의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억기는 왕실 종친에 나이도 젊어서 통제사로 제수해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을 모두 지휘하게 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이억기는 이순신 보다 무려 16살이나 어렸으니 이순신과 이억기가 같은 정3품 수군절도사인 상황에서 이억기를 통제사로 임명할 이유가 없었다. 

선조는 그 짧은 순간에 이순신에게 전라도 수군의 지휘권을 몰아줄 생각을 한 유성룡의 지모와 재치에 놀라면서도 대신들의 반응에 어쩔 수 없이 이억기의 출병을 허락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청을 받아들여 전라우수군의 출병을 허락한다. 그리고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이 힘을 합해 왜군을 몰아내야 할 것인데 지휘권이 분산되어 있으면 전라도 수군이 왜군과 싸우는데 지장이 많을 것이다. 왜군이 점령하고 있는 부산은 전라우수영 보다는 전라좌수영과 가까운 곳이니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전라좌수사겸 경상, 전라 양도수군통제사에 제수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수군을 지휘하도록 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대신들은 일제히 선조에게 엎드려 망극하다고 외쳤지만 이순신을 파직할 것을 주장했던 대신들은 그제 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선조는 이순신을 양도수군통제사에 제수한 후 잠시 쉬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신들은 선조를 바라보며 일제히 허리를 숙였고 선조를 보좌하던 내시들이 선조의 앞뒤에 다가와 선조를 호위했다. 대전에서 물러난 후 선조는 상선에게 조용히 말했다.

“좌상을 불러오라.”

“예. 전하.”

상선은 젊은 내시들에게 좌의정 정언신을 불러올 것을 명령했다. 대전에서 떨어진 전각 안쪽의 은밀한 방 안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선조는 정언신과 대화를 나눴다.

“전전라좌수사 이대원이 보낸 서신이라고?”

“전하. 그렇습니다. 이대원의 필적이 확실했습니다.”

“좌상은 이대원이 왜 이런 서신을 보냈다고 생각하는가?”

“전하. 이대원이 조선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보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조는 정언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술잔을 비운 후 물었다.

“이대원이 조선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좌상은 왜 이대원이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전하. 그것 까지는 소신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하. 전라좌수사가 올린 장계를 봐도 이대원이 보낸 서신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선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과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좌상이 이 서신을 가지고 왔을 때만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전라좌수사가 같은 내용을 장계로 올린 것을 보니 실제로 왜군의 수가 20만이 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말한 선조는 날카로운 눈으로 정언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좌상. 그런데 전라좌수사의 장계를 보면 이대원에 좌상에게 보낸 서신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어떤가? 재미있지 않은가?”

선조의 눈빛을 바라보며 정언신은 황급히 대답했다.

“전하 그렇기에 이대원이 보낸 서신이 사실이며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올린 장계가 사실인 것이 증명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기에 과인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대원은 왜 조정에 직접 장계를 올리지 않고 좌상에게 서신을 보냈는지 말이다. 좌상은 이대원이 상경하였을 때 이대원과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전라좌수사 이순신도 이대원이 전라좌수사였던 시절에 녹도만호로 이대원의 부하장수였다.”

정언신은 황급히 자리에서 엎드렸다.

“전하. 소신은 전하의 충직한 신하일 뿐입니다.”

“좌상은 놀라지 말라. 과인은 좌상의 충정을 믿는다.”

선조의 대답을 들은 정언신은 그제 서야 몸을 일으켰지만 선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언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인은 좌상의 충정을 믿지만 이순신은 믿을 수 없다. 과인은 이순신이 어떻게든 이대원과 내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임진년(1592년) 4월 20일 히라도 

해가 질 무렵 히라도항에 갤리온이 한척 도착했다. 사화동은 갤리온에서 내리기 무섭게 마쓰라 다카노부의 저택을 찾아갔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위독한 것으로 위장하고 있는 만큼 저택 주변에는 마쓰라 가문의 무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고 사화동과 그의 부하들은 몸수색 까지 받은 다음에야 저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무사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간 사화동이 내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다. 마쓰라 다카노부가 내실로 들어오며 사화동에게 물었다. 

“무신 일이냐? 바쁠 텐데. 무슨 일로 이곳 까지 찾아왔느냐?”

사화동은 마쓰라 다카노부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대답했다.

“어르신. 이키 섬은 저희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자신의 영지를 대해국의 군대가 점령하고 있다는 말에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내 아들놈이 주는 떡도 못 받아먹을 놈은 아니지. 그래. 그 소리를 하려고 여기까지 왔느냐?”  

사화동은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던 나무상자를 다카노부에게 내밀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화동은 상자를 내려놓고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제법 화려하게 장신된 투구가 들어있었다. 

“구로다 나가마사 투구입니다. 어르신.”

마쓰라 다카노부는 말없이 투구를 바라보다가 사화동에게 물었다.

“구로다 나가마사라니 제법이구나. 오토모 요시무네의 투구도 너희에게 있느냐?”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

“나에게 이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이냐?”

“장군님께서 아버지를 안심시키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마쓰라 다카노부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내가 요즘 웃을 일이 없었는데 아들 덕분에 웃는 구나. 내가 이 아버지가 줄을 잘 잡았다는 것이냐? 아직 본격적인 전쟁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조선에 상륙하기는 했지만 그들도 무사히 왜국으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쓰라 다카노부는 다시 날카로운 얼굴로 물었다.

“그것도 아들이 꾸민 일이냐?”

“전쟁이 너무 쉽게 끝나면 조선에서도 장군님의 활약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마쓰라 다카노부는 혀를 차며 말했다.

“조선 왕도 간파쿠도 내 아들놈의 손바닥 안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구나.”

말을 마친 마쓰라 다카노부는 잘 접은 서신을 꺼내 사화동에게 내밀었다.

“가져가거라. 아들놈이 궁금해 하고 있을 정보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사화동이 서신을 받아 품속에 넣자 마쓰라 다카노부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는 사화동에게 말했다.

“철과 구리 그리고 유황을 준비해 두었다. 전쟁을 하려면 철과 구리가 필요할 것이니 가져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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