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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되었다-222화 (222/223)

< 아쉬운 결과 >

갑판 위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던 나는 왜선들이 격침되면서도 속도를 높여서 달려들자 전선들의 대열을 넓히고 선두의 뒤에 있던 전선들을 앞으로 불러들였다. 

“네놈들이 전선으로 뛰어들어 육박전을 벌일 생각인가 본데. 어림도 없다.”

“쾅~”  “쾅~”  “쾅~”  “쾅~”  “쾅~”  “쾅~” 

왜선이 달려들자 포수들은 주저하지 않고 현자총통을 발사했다. 포성이 울리며 철환이 날아갔고 철환이 명중한 왜선은 선체가 부셔지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전선을 향해 달려들던 왜선들이 침몰하면서 그 뒤를 따르던 왜선들은 침몰하고 있는 왜선을 피하기 위해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달려오던 왜선들이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방향을 돌리면서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후미에 있던 전선들이 앞으로 나왔다. 

나는 12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있었고 대해국의 전선들은 3척이 선두에 또 다른 3척이 그 뒤에 서 있었다. 선두에 앞장서고 있던 3척의 전선이 전선간의 간격을 넓히자 그 간격으로 2열의 전선들이 들어왔고 6척의 전선이 횡대를 이루게 되었다. 

“좋아. 전투는 기세 싸움이다. 쉬지 말고 방포하라. 사부들은 화전을 날려라.” 

“쾅~”  “쾅~”  “쾅~”  “쾅~”  “쾅~”  “쾅~”  

6척의 전선은 일제히 현자총통을 발사했고 사부들은 왜선들을 향해 불화살을 날렸다. 철환과 불화살 세례에 왜선들은 부셔지거나 불탔고 왜선에 불이 붙자 총병들은 일제히 사격을 가해 왜병들이 불길을 진화하는 것을 방해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요란한 총성이 울릴 때 마다 왜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전투를 지휘하던 나는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 뭔가 이상하다. 일본의 영주나 무사들이 아무리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알고 병사들을 소모품 취급한다고 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왜선들이 침몰하고 불타고 있는데 계속 달려들다니 뭔가 이상한데. 무슨 작전이나 계획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아니 간몬 해협에서는 작전을 세우기도 어렵지. 해협의 폭이 좁아서 우회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그래도 이상한데 간몬 해협이 우회하기 어려운 지역이라고 해도 정면으로 공격해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 배후를 공격하거나 측면을 공격하려는 시도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전선을 향해 달려들었던 왜선들이 침몰하는 것을 보고도 또 다른 왜선들이 전선들을 향해 겁도 없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던 나는 히데요시가 탑승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선이 방향을 돌리는 것을 보고는 왜선들이 달려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히데요시가 도망칠 생각이구나. 그래서 왜선들이 계속 달려든 거야. 히데요시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나는 히데요시를 잡지 못하는 것이 분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히데요시를 추격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런. 정면에는 왜선들이 계속 죽어라고 달려들고 있고 간몬 해협 안에서는 왜선들을 피해서 추격하는 것도 불가능하니 오늘 히데요시를 잡는 것은 힘들겠구나.’

나는 분한 마음에 방포명령을 힘껏 외쳤고 포수들은 다시 현자총통을 발사했다. 다시 한번 연이어서 포성이 울렸고 왜선들에게 철환이 날아들었다. 정면으로 들려들었던 왜선들이 침몰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히데요시를 추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지만 간몬 해협 안에서는 쉽지 않아 보였다.

‘우회하기 어려운 해협 안에서의 전투가 우리 대해국 수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폭이 좁고 유속이 빠른 간몬 해협의 환경은 히데요시가 도망치기에도 유리하구나. 당장 눈앞에 수백 척의 왜선들이 버티고 있고. 해협의 폭이 좁아 우회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오늘은 히데요시를 추격할 수 없겠다.’

나는 분한 마음에 연신 방포명령을 내렸고 그때마다 대해국의 전선에서는 포성이 울리며 철환이 날아갔다. 전선을 향해 끈질기게 달려들던 왜선들은 히데요시가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상선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그제 서야 전선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그동안 100척이 넘는 왜선들이 침몰했고 바다에 빠진 왜병들도 1만 여명에 달했다. 

나는 왜선들이 대해국 전선을 향해 달려들지 않고 자신들끼리 뭉쳐서 뒤로 물러서려는 모습을 보이자 기가 찼다.

‘이제는 충분히 시간을 끌었으니 이만 하자 이거냐? 누구 마음대로.’

이미 침몰한 왜선들의 수도 적지 않았고 히데요시의 상선을 호위해 함께 도망친 왜선들도 있었지만 해협에 남아있는 왜선들도 적지 않았다. 대강 봐도 300척에 가까운 왜선들이 남아있었고 나는 그 왜선들에게 히데요시를 잡지 못해 아쉽고 분통터지는 감정을 폭발시킬 생각이었다. 왜선들을 가리키며 방포명령을 내리려던 나에게 박언필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전선에 철환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벌써 철환이 떨어졌어? 일기도에서 출항할 때 넉넉히 준비해오지 않았느냐?”

“오늘 상선에서 발사한 철환만 해도 150발이 넘는다고 합니다. 아직 30발 정도의 철환이 상선에 남아있다고 하지만 일기도로 돌아가는 길에 왜선과 마주 치거나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그 정도는 남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언필의 대답을 들은 나는 그제 서야 오늘 100여척 이상의 왜선을 침몰시켰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상선에서만 150발 이상을 발사했으니 다른 전선에서 발사한 것 까지 합하면 수백 발을 발사한 셈이구나. 내가 보기에도 오늘 잡은 왜선의 수가 100척은 넘을 것 같으니 그 정도 철환을 발사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잠시 갑판을 걸으며 현자총통 옆에 붙어있는 포수들과 화승총을 들고 왜선을 조준하고 있는 총병들 그리고 각궁을 들고 있는 사부들을 바라보았다. 포수들은 연이어서 총통을 발사한 흔적인지 얼굴에 검은색 그을음이 묻어있었고 화전을 날리기 위해 횃불을 옆에 두고 활시위를 당겼던 사부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병사들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이들이 오늘 아침에 갑자기 출병명령을 받고 아침밥을 먹자마자 전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 병사들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침밥도 먹기 전에 갑자기 출병소식을 들었으니 아침밥이나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을까. 점심도 주먹밥과 감자로 때우고 수백 척의 왜선을 상대로 이제까지 용감히 싸웠으니 정말 장하다. 장해.’

왜선들을 공격하면 전과를 더 올릴 수 있겠지만 이미 히데요시는 도망쳤으니 가장 큰 목표는 이미 놓친 후였다. 전선에 남아있는 철환도 병사들의 상태도 전투를 계속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나는 철수 명령을 내렸다.

“오늘은 이만 일기도로 돌아갈 것이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다.”

“예. 전하.”

일기도로 돌아간다는 말에 박언필과 병사들은 좋아하기 보다는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두에 나섰던 전선들이 왜선들과 대치하는 동안 후미에 있던 전선들은 뱃머리를 돌려 간몬 해협을 빠져나갔고 후미의 전선들이 해협을 빠져 나가자 선두에 섰던 전선들은 2척씩 교대로 뱃머리를 돌려 해협을 빠져나왔다. 왜선들은 오늘 크게 당한 때문인지 전선들이 방향을 돌리는 것을 보고도 공격하거나 추격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전선들이 무사히 해협을 빠져 나오자 일기도로 돌아가는 길은 박언필에게 전선의 지휘를 맡기고 선실로 내려갔다. 선실에 들어와 자리에 누운 나는 머릿속에서 오늘 전투를 생각해봤다. 100척 이상의 왜선을 격침시켰으니 오늘 죽은 왜병도 1만 명에서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나. 12척의 전선으로 수백 척의 왜선을 공격해서 이정도 전과를 올렸으면 대승을 거둔 것이 확실했지만 히데요시를 잡는데 실패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언제까지 아쉬워 할 수만은 없었다.

“히데요시는 분명히 규슈에 상륙했을 것이다. 위치로 봐서 부젠에 상륙했겠지. 히데요시는 부젠에서 나고야 성이 있는 히젠으로 이동할 것이다. 오늘 우리 함대에게 혼이 났으니 해상으로는 이동하지 못할 것이고 육로로 그것도 최소 1만 명 이상의 군사와 군량과 화약 등의 물자를 가지고 이동하려면 나고야에 도착하기 까지 며칠은 걸릴 것이 분명해. 일기도로 돌아가서 병사들을 쉬게 하고 전선에 무기와 화약을 보충할 시간은 충분하다. 최도진이 이끌고 갔던 전선들 까지 동원해서 나고야 성을 공격하자.” 

조선 침공의 거점으로 건설된 나고야 성은 반드시 공격해야할 전략목표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쓰라 다카노부와 시마즈 요시히사에게 보낼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한편 간몬 해협을 빠져나온 히데요시는 부젠에 상륙해 나카츠 성으로 들어갔다. 나가츠 성의 성주는 히데요시에게서 부젠의 영지를 하사받아 다이묘가 된 구로다 요시타카였다. 부젠의 영지를 받아 다이묘다 되기 전 까지 구로다 요시타카는 히데요시의 참모로 활약했었다.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였을 당시 히데요시는 모리가문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는 중이었고 노부나가의 사망 소식을 들은 히데요시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을 때 교토로 진군해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할 것을 주장한 것이 바로 구로다 요시타카였다.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할 것을 결정하자 히데요시와 대치 중인 모리가문과의 강화 협상을 맺은 것도 구로다 요시타카였다. 

구로다 요시타카와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한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모리 가문과 강화 협상을 맺었고 모리 가문과 강화를 맺는데 성공하자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교토로 진군해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했다. 구로다 요시타카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 이후에도 여러 가지 책략으로 히데요시가 일본제일의 권력자가 되도록 도왔고 그 공로로 부젠의 영지를 하사받아 다이묘가 될 수 있었다.

나카츠 성에 입성한 히데요시는 구로다 요시타카에게 간몬 해협에서 공격당한 사실을 말하고 자신을 공격한 전선들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분명히 남만선이었네. 나가사키에 드나들던 남만선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였지만 분명히 남만선이었어. 혹시 누가 이런 일을 벌였을지 짐작 가는 곳이 있나?”

구로다 요시타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이코 전하를 노리고 공격한 것이라면 단순한 상인들은 아닐 것입니다. 남만선을 몰고 오는 상인들이 다이코 전하께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남만의 종교를 퍼트리기 위해 일본을 찾아왔던 남만인들이라면 다이코 전하께 불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규슈정벌 이후 히데요시는 일본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을 추방했다. 일본에서는 예수회 중심으로 기독교 선교사들이 20년 이상 활동하고 있었지만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선교사들은 일본을 떠나야 했으니 선교사들이나 일본의 기독교 신자들 기리시탄들이 히데요시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군. 그들이 있었어. 예수회라고 했었나? 그들은 커다란 남만선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남만선에는 대포도 설치되어 있었어. 맞아 그들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감히 이 히데요시를 노리겠나.”

구로다 요시타카의 대답을 들은 히데요시는 자신을 공격한 전선들이 예수회의 남만선들이라고 확신했다. 히데요시가 예수회와 기독교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었을 때. 이시다 미쓰나리가 기름을 끼얹었다.

“남만선들은 다이코 전하께서 해협을 건너시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누군가 남만선에 전하께서 해협을 건너신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분명합니다.”

히데요시가 봤을 때 예수회의 남만선에 자신의 움직임을 알려줄 사람들의 정체는 하나뿐이었다. 히데요시는 눈에서 불꽃이 튈 것 같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

“기리시탄들이 남만인들과 손을 잡고 이 히데요시를 죽일 작정을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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