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장군 >
임진년(1592년) 4월 22일 일기도
간몬 해협에서 돌아온 나는 일기도에 최도진이 이끌고 갔던 전선들이 돌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락선을 통해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최도진은 황급히 전선들을 몰고 일기도로 돌아왔고 내가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를 지원하기 위해 출병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우선 군사들을 쉬게 할 것을 명령했고 최도진으로 부터 대마도를 정벌한 성과를 보고 받았다.
“지난 20일 대마도의 이즈하라항을 공격해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왜선들을 불태우고 대완구로 진천뢰를 방포해 항구에 쌓여있던 화약과 쌀가마니들도 불태우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즈하라에서 불태운 왜선만 해도 300척은 넘을 것입니다. 다음날인 21에는 히타카츠를 공격했고 역시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왜선들과 항구에 쌓여있던 물품들을 불태웠습니다. 히타카츠에서 불태운 왜선도 300척은 넘을 것입니다.”
최도진의 보고대로라면 대마도에 쌓여있던 왜군의 군수품과 보급물자는 전부는 아니라도 대부분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최도진은 600척 이상의 왜선을 불태웠다고 보고했고 나는 그 보고가 과장이 아닐 것으로 보았다.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가 왜선 700척으로 왜군 18700명을 부산에 상륙시켰다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 뿐만 아니라 가토 기요마사도 이미 조선에 상륙한 것으로 보이니 대마도에 600척 이상의 왜선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수고가 많았네. 큰 전공을 세웠군. 대마도에서 보급을 받지 못하게 됐으니 이제 조선에 상륙한 왜군들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최도진은 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망극하다고 외쳤다. 나는 최도진이 진심으로 기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대해국의 장군이지만 최도진은 조선에서 태어난 조선인이다. 조선에 도움이 되는 일이고 왜군과 싸우는 일이니 주저할 필요가 없었겠지.’
최도진의 보고를 받은 나는 최도진, 사화동, 박언필이 모두 모인 앞에서 간몬 해전의 경과를 설명하고 결론적으로 히데요시를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히데요시를 놓쳤다는 말에 최도진은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고 직접 해전에 참가했었던 사화동과 박언필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좋은 기회였는데 정말로 아쉽기가 그지없네.”
“전하. 아닙니다. 이번에는 너무 무모하셨습니다.”
내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자 최도진은 내가 무모했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무모했다니?”
“전하. 아무리 우리 대해국군의 화력이 막강하다고는 하지만 수백 척의 왜선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전장에 고작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출병하시다니 이것은 너무 무모하신 출병이셨습니다.”
최도진의 대답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평소에 내가 내린 명령에 거역하는 법이 없었던 최도진이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하께서는 한낱 장수에 불과한 소장과는 다르십니다. 전하께서는 대해국의 임금이시며 대해국의 만백성이 전하만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그러하신 전하께서 고작 12척의 전선만 거느리시고 히데요시가 수백 척의 전선과 10만 이상의 왜군을 거느리고 있는 곳으로 직접 출병하시다니요. 너무 무모하셨나이다. 전하.”
최도진의 말을 들은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경솔했다. 히데요시를 잡을 욕심에 너무 성급했어. 아직 자식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죽으면 대해국은 그대로 공중 분해되고 말 것이다.’
나는 그동안 단순한 무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최도진이 그동안 보았던 모습과는 다른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과연 어느 쪽이 그의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최장군의 말이 옳도다. 과인이 너무 경솔하였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도록 하겠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최도진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망극하다고 외쳤고 나는 최도진에게 물었다.
“과인은 이번 해전에 참여하지 않은 최장군의 의견을 듣고 싶다. 장군이었다면 과인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최도진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와 같은 전장에서는 히데요시를 잡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소장이라면 히데요시를 잡을 욕심을 내기 보다는 왜선들을 최대한 많이 불태우고 왜군을 수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전을 이끌었을 것이옵니다. 총통을 방포하기에 앞서서 우선 단선에 화약이나 기름을 채워 왜선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떠내려 보낸 후 화공을 펼쳤을 것이옵니다.”
나는 최도진의 대답에 다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히데요시를 잡는 것을 포기한단 말인가? 그리고 총통과 화전이 있는데 굳이 단선들을 내려 보낼 필요가 있겠는가?”
“간몬 해협 같은 협소한 장소에서는 방어하는 편이 공격하는 편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옵니다. 게다가 왜선의 수가 훨씬 많았으니 히데요시가 왜선으로 장벽을 쌓아 시간을 벌고 전장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옵니다. 반면에 왜선들은 히데요시가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필시 왜선들은 한데 모여서 히데요시가 타고 있는 상선을 겹겹이 에워싸려고 하였을 것이옵니다. 바로 그때 왜선들이 모여 있는 곳에 화약이나 기름을 가득채운 단선을 내려 보내 단선들이 왜선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 화전을 날려 단선을 불태우면 왜선들은 불길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전하.”
최도진의 대답에 나는 물론 사화동과 박언필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간몬 해협의 폭이 좁은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히데요시가 그렇게 도망칠 것을 예상하지 못하다니 나도 아직 멀었구나.’
지금은 내가 대해국의 왕이고 최도진은 장군이었지만 확실히 최도진은 살아온 연륜이 나보다 훨씬 많았고 조선에서 무과에 급제한 군관이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수군으로 복무하면서 경험한 것도 적지 않은 사람이었다. 최도진이 무과를 준비하면서 배운 지식과 수군으로 복무하면서 겪은 경험이 오늘 이렇게 드러났다.
나는 최도진의 혜안에 감탄했고 최도진, 사화동, 박언필과 함께 밤늦게 까지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의 전략을 의논했다.
임진년(1592년) 4월 23일 규슈 부젠국 나카츠 성
나카츠 성에서 지내면서 모리 데루모토가 합류하기를 기다렸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모리 데루모토가 22일 군사들을 수습해서 합류하자 23일 아침 모리 데루모토와 함께 나카츠 성을 나섰다. 말을 타고 성문을 지나던 히데요시는 성문 앞에 100여개의 수급이 효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리시탄들과 남만인들이 자신을 헤치려고 했다고 생각한 히데요시는 구로다 요시타카에게 병사들을 빌려주며 부젠국의 기리시탄들을 토벌할 것을 명령했고 구로다 요시타카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기리시탄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습격해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마을 주민들을 잡아왔다. 성으로 끌려온 사내들은 곧바로 목이 잘려 성문 앞에 효수되었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가 되어 구로다 요시타카의 차지가 되었다.
수급들을 바라본 히데요시는 자신의 옆에서 말을 타고 있는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손짓을 했다.
“예. 다이코 전하.”
“앞으로 우리가 들리는 영지마다 기리시탄들을 토벌할 것이다. 영지의 다이묘에게는 내가 명령을 내려둘 것이니 너는 미리 군사들을 준비시켜 두도록 하라.”
히데요시가 기리시탄들을 학살할 것을 명령했지만 이시다 미쓰나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심려를 놓으십시오. 다이코 전하.”
시종으로 시작해 히데요시의 측근이 된 이시다 미쓰나리에게는 히데요시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히데요시 일행이 나고야 성이 있는 히젠으로 가는 동안 부젠과 지쿠젠, 히젠 지역의 기리시탄들은 히데요시의 군사들에게 학살당했고 마을이 불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임진년(1592년) 4월 23일 조선 경상도 상주
경상도 순변사 이일은 상주에 도착한 후 상주판관 권길로 부터 황당한 보고를 받았다.
“뭐라고 했느냐? 군사들이 도망을 쳐?”
“예. 장군. 장군께서 내려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경상좌병사 이각)영감께서 군사들을 소집해 대구에 군사들이 모여 있었지만 왜군이 밀양까지 진군했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모여 있던 군사들이 놀라서 하나둘씩 도망치기 시작하더니 모두 도망쳐 버렸다고 합니다.”
권길의 보고를 들은 이일은 머리로 피가 솟구치는 것 같았다. 이일과 함께 한성에서 내려온 군사의 수는 60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일반 병사들이 아닌 군관들로 이들 만으로는 전쟁을 할 수가 없었다. 이일은 경상좌도에서 군사들이 소집되면 경상좌병사 이각과 함께 그 군사들을 지휘해 왜군을 몰아낼 계획이었고 이일과 함께 내려온 군관들을 그 군사들의 지휘체계를 잡기 위해 소부대 지휘관 역할을 할 군관들이었다. 그런데 이일이 경상도로 내려오는 동안에 왜군이 진군소식을 들은 군사들이 놀라서 흩어져 버렸으니 이일로써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소식이었다.
귄길의 보고에 놀란 이일은 황급히 물었다.
“그러면 흩어진 군사들을 다시 모으면 되는 일 아니냐? 경상좌병사 이각은 어디에 있느냐?”
이일의 질문에 권길은 힘없이 대답했다.
“병사영감께서는 어디에 계신지 소식이 없습니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이각의 소재를 모른다는 대답에 이일은 상주에서라도 군사들을 동원하기 위해 다급히 물었다.
“그럼 상주목사는 성을 지키고 있느냐?”
“목사 나리께서도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곳은 소장이 지키고 있사옵니다.”
상주목사도 도망쳤고 판관 권길이 상주를 지키고 있다는 말에 이일은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왜구들이 쳐들어왔는데 병사가 목사가 임지를 버리고 도망치다니 내 당장 장계를 올려 전하께 경상좌병사 이각과 상주목사 김해의 죄를 아뢸 것이다.”
이일은 이때 까지만 해도 조선에 상륙한 왜군을 규모가 큰 왜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일이 분통을 터트리자 권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군. 왜군이 밀양까지 진군했다는 소문이 들리지가 이미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고 왜군이 이곳 상주까지 밀고 들어올 수 있는 일입니다.”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에 이일은 정신을 차렸다.
“걱정 말거라. 그래서 왜구들을 몰아내기 위해 본관이 이곳에 온 것이다. 본관과 함께 내려온 군관들은 본관과 함께 북방에서 야인들과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른 용사들이니 이곳 상주에서 군사들만 모을 수 있다면 왜구들은 단숨에 토벌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걱정 말거라.”
권길은 이일의 호언장담이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왜군이 진군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믿을 사람은 이일밖에 없었다. 상주에서 군사들을 소집해 왜군을 상대하기로 결정한 이일은 권길의 도움을 받아 상주와 인근 고을에게 군사들을 모집하는 한편 상주 성의 병기고를 열어 모집된 군사들을 무장시키고 성 밖에 나와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이일과 권길이 사력을 다해 군사들을 모집하고 훈련시켰지만 그 수는 불과 1000여명에 불과했다.
< 최장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