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복종 1권
1. 순종적인 아이
아이는 성(姓)도 이름도 없었다.
성이 없다는 건 아버지의 핏줄을 물려받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또 이름이 없다는 건 태어난 순간부터 버려진 자식임을 뜻했다. 아이의 기억이 시작된 곳은 신성 솔레디온 제국의 어두운 이면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캄캄했다.
조심스럽게 바닥을 더듬으니 뾰족한 무언가가 살가죽에 박혔다.
“아야!”
아이는 황급히 몸을 쭈그려 앉았다. 찔린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손가락을 찌른 지푸라기를 송곳으로 탈바꿈시키기 충분했다.
‘여긴 어딜까…….’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탁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작은 무릎을 부둥켜안은 채 숨을 죽였다. 덜컹. 덜커덩. 밖에서 바퀴 소리가 났다. 그제야 아이는 자신이 마차의 짐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끼익!
“아……!”
마차가 급정거하자 쌓여 있던 밀짚이 아이의 몸을 덮쳤다. 옷 안으로 지푸라기가 들어왔다. 아파, 아파. 피가 날 거야. 날카로운 송곳이 쏟아졌다고 생각한 아이는 덫에 걸린 새끼 짐승처럼 몸부림쳤다.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눈 부신 빛이 아이를 감쌌다.
햇빛, 인가?
고개를 들고 나서야 그 빛이 가스등임을 알았다. 등갓의 유리가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아이에겐 너무도 밝게 느껴졌다. 마차 밖은 캄캄했고 스산한 안개만이 자욱했다. 그러니 이런 조잡한 빛도 눈에 부실 수밖에.
“내려.”
누군가 우악스레 팔을 잡아당겼다. 두껍게 기운 베레모를 쓴 남자였다.
“시, 싫어요……!”
아이는 저항했다. 본능이었다. 이윽고 아이는 또 다른 본능에 굴복해 입을 닫아야 했다.
철썩!
남자는 있는 힘껏 아이의 뺨을 내리쳤다. 후려쳐진 얼굴이 반쯤 돌아갔다. 뺨이 화끈거렸다. 작은 심장이 살가죽을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입 닥치고 있어.”
남자는 아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주먹 쥔 손을 높이 흔들며 으름장을 놨다. 남자의 손등엔 엑스 자 모양의 깊은 흉터가 있었다. 또 그 주변에 솟아오른 핏줄이 터질 것처럼 팽팽했다. 아이는 끕 입을 닫았다.
“이제 좀 얌전해졌군.”
남자는 비죽 웃더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름 끼치는 손길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묵묵히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따라와.”
그렇게 남자의 손에 붙잡혀 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다.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꼬여 있었다. 계속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헤매는 것 같았다. 방황하는 아이와 달리 남자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뚜렷이 아는 눈치였다. 그런데도 아이는 남자가 믿음직스럽긴커녕 두렵기만 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헐벗은 여자와 가래 섞인 침을 뱉어내는 무서운 남자들이 가득했다. 제 또래의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누군가 속삭였다.
그럼? 내가 있을 곳은 어디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이의 까만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그러나 또다시 뺨을 맞을까 봐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서둘러 눈물을 훔쳐 닦았다.
“여기다.”
남자는 붉은 조명이 달린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그가 쾅쾅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어깨에 기다란 숄을 걸친 중년의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담뱃대를 입에 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200데르크.”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여자가 팍 인상을 구겼다.
“가슴도 안 나온 어린애를 데려와서 200데르크나 받겠다고?”
여자가 버럭 소리치더니 불이 붙은 담뱃대로 아이를 삿대질했다. 아이는 한껏 어깨를 움츠렸다. 뜨거운 담뱃불이 제 몸에 닿지 않기만을 바랐다.
“조금만 키워서 팔아. 크면 반반하겠구먼. 봐, 꼬질꼬질해서 그렇지 백금발이라고. 최상품이야.”
남자가 아이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 흔들었다. 여자는 아이의 머리 뿌리 쪽을 유심히 보다 담뱃대를 물었다. 이윽고 깊이 들이마신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물었다.
“너. 몇 살?”
모른다. 아이는 나이도, 살던 곳도, 하다못해 자신의 이름마저, 어느 것 하나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은 여자가 뿜어낸 담배 연기처럼 희뿌연 안개로 들어차 있었다. 대답을 못 하면 맞을지도 모른단 두려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이는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아무런 고통이 없어 힐끔 눈을 뜨자 여자와 남자가 저를 무시한 채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연거푸 비비던 손을 바로 했다.
“순종적이긴 하네. 보아하니 많이 먹을 것 같지도 않고.”
“최상품이라니까.”
남자가 거듭 강조했다.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게 안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누군가 나와 남자에게 대신 돈을 건넸다.
“200데르크. 거기에 30 더 얹어줬어. 당신 말대로 최상품 같으니. 얘. 나 좀 보자.”
여자는 대뜸 아이의 턱을 붙잡아 휙휙 돌려댔다.
인간이 아닌 물건을 품평하는 눈빛이었다. 작은 몸집의 아이는 도살장에 끌려온 무녀리와 비슷했다. 단지 새끼 돼지의 꾸액꾸액거리는 비명 대신 겁먹은 숨소리만 색색 흘려댈 뿐.
“넌 앞으로 여기서 살 거야. 도망가면 다리를 분지를 줄 알아. 그대로 두 손이 묶인 채 손님을 받게 될 거고. 무슨 뜻인지 이해해?”
“도, 도망치지 않아요. 도망치지 않을게요.”
다리를 부러뜨리고 두 손을 묶어 손님을 받게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여자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착하구나. 앞으로도 그렇게 쭉 착하게 있으렴. 넌 아직 어리니 당분간 청소와 잡일을 하도록 해. 여기 애들이 시키는 심부름이나 하면서. 일은 더 큰 뒤에 시키도록 하마.”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는 연신 고개를 주억였다.
그저 때리지 않아 감사했고, 화를 내지 않아 감사했다.
“나는 마담이야. 앞으로 마담이라 부르렴.”
“네, 마담…….”
그렇게 아이는 마담의 가게에서 살게 됐다.
마담의 가게가 있는 곳은 신성 솔레디온 제국의 무저갱(無底坑)이라 불리는 사창가였다. 법, 도덕, 일말의 양심조차 사라진, 오직 사내들의 추악한 욕구를 풀기 위해 존재하는 악의 구렁텅이.
아이의 기억은 그곳에서 시작됐다.
* * *
아이는 소녀가 됐다.
“야! 내 옷 어디 갔어? 레이스 달린 보라색 드레스!”
“여기 있어요, 언니.”
“얘, 내 장갑은?”
“서랍장에 넣어뒀어요, 언니.”
가게의 창부들이 번갈아 소리쳤다.
소녀는 삐걱대는 계단을 타고 열심히 가게 안을 오갔다.
주말 밤이면 마담의 집은 특히나 바빠졌다. 손님이 쉴 새 없이 밀려들어 왔다. 소녀는 정사가 끝난 방에 들어가 서둘러 환기를 시키고 여기저기 튄 분비물을 닦아내 새 방처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지금처럼 창부들의 심부름을 했다.
“아, 못 찾겠어. 네가 와서 찾아봐.”
“네.”
소녀는 서랍 안을 뒤져 장갑을 찾아냈다. 찬물에 설거지해서 소녀의 손끝은 하얗게 갈라져 있었다.
“여기 있…….”
“느려터졌지!”
장갑을 낚아챈 여자는 소녀의 몸을 위아래로 흘기며 중얼거렸다.
“이런 허드렛일 하면서 식충이처럼 살지 말고 같이 손님 받으면 좀 좋아? 가뜩이나 상대하는 손님이 늘어나서 죽겠는데.”
“…….”
“너는 여기서 지낸 게 몇 년인데 아직도 가슴이 안 나왔어? 너 여자애 맞니?”
소녀가 시선을 떨궜다. 창부가 사라지자 소녀는 등을 돌리더니 조심스럽게 가슴 주변을 더듬었다.
‘……더 자랐네.’
언제부턴가 가슴에 몽우리가 지더니 살이 붙기 시작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 같던 허리는 잘록해지고 반대로 골반은 넓어졌다. 가슴뿐 아니라 엉덩이에도 조금 살이 붙었다. 가게를 들락날락하는 남자들의 눈빛도 변했다. 대부분 헐벗은 창부들을 보기 바빴는데, 열에 하나는 소녀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저년은 언제부터 파는 거냐, 누군가 마담에게 묻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는 날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붕대로 가슴을 감싸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성장을 멈출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아이처럼 보인다면 손님을 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
이제 소녀는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문이 잠긴 좁은 방 안에선 비명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날이던가. 빈방인 줄 알고 청소를 하러 문을 열었다가, 전라의 창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져 이마가 살짝 찢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 흘리는 소녀를 보고도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사창가에서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도덕성이 희미해진다. 당연한 일을 당연시하지 않게 되고, 당연하지 않은 일은 당연시했다. 소녀는 가축이나 다름없었다. 저라는 인간의 가치를 부정당한 채, 훗날 타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육당하는 신세였다.
늘 남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었다. 또 버려진 옷을 기워입으며 살았다. 영양실조에 시달려 빌빌대는 몸으로 밤낮없이 일했다. 그러나 누구도 소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 덕분에 편하게 사는 거라며 괴롭히기 바빴다.
‘입 닥치고 있어.’
이따금 저를 이곳에 판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날의 폭력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 충격은 몸을 넘어서 정신까지 지배해 소녀의 영혼을 짓눌렀다. 마음 깊은 곳에 공포가 자리 잡았다. 마차 안에서 본 환영의 송곳과도 같은 공포였다. 두려운 마음에 소녀는 늘 자신을 억압하며 순종적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인생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그런데도 순종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벗어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사납게 뺨을 내리친 손바닥에 고개가 회까닥 돌아간 순간, 희망 같은 건 모두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소녀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불행이 찾아오는 때를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해, 봉긋한 가슴을 붕대로 동여맨 채 몸을 움츠리고 지내는 것뿐이었다.
원망, 분노, 슬픔. 그러한 사사로운 감정은 당장의 생존 욕구 앞에서 좌절된다. 그랬다. 소녀는 그저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도 어려웠다.
* * *
불행이란 것은 늘 예고도 없이 찾아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법인데, 소녀에겐 이러한 방문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불행을 피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미친년! 어린 게 아주 영악하기 그지없어! 먹여주고 재워준 게 얼만데! 감히 날 속여?”
기어코 가슴을 감춰온 사실이 마담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여태 가슴을 숨긴 거야? 너 피는 흘렸니? 생리는 했냐고!”
마담은 소녀의 옷을 벗기더니 담뱃대로 철썩철썩 내리치기 시작했다. 살갗 위로 붉은 자국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혈색 없던 피부에 피가 돌아 몸이 뜨거워졌다.
“자, 잘못했어요, 잘못, 잘못했어요.”
소녀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었다.
“너한텐 제일 지독한 손님을 붙여주지.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도망가기만 해 봐. 다리몽둥이를 분질러다가…….”
마담의 씩씩대는 목소리가 이명처럼 울렸다. 너무 많이 맞은 탓에 의식이 희미해졌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마담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감히 예상됐다.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 제일 무서운 손님에게……, 나를…….’
소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않기만 기도하며.
* * *
소녀는 꿈을 꾸었다.
한 여인이 안락의자에 앉아 난롯불을 쬐고 있었다. 난로의 불빛에 사금 같은 머리칼이 붉게 물들었다. 여인의 품에는 새하얀 보자기로 감싼 아기가 안겨 있었다.
“아가.”
여인이 보자기를 내렸다.
“네 이름은 레인디아란다. 왜 그렇게 지어줬는지 아니?”
여자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속삭였다.
“어느 날 꿈속에서 새하얀 순록을 만났어. 순록이 나를 태우더니 초원을 가로지르더구나. 우리는 검은 머루 앞에서 우뚝 멈추었단다. 나는 그 머루를 따서 순록과 나누어 먹었지. 그렇게 널 만난 거란다. 레인디아(reindeer).”
여인은 장밋빛으로 물든 아이의 뺨에 입을 맞췄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녀는 살그머니 손을 뻗었다. 난로의 불빛이 소녀의, 아니, 레인디아의 손끝을 따사로이 물들였다. 이윽고 가느다란 팔뚝을 쓸고 올라온 빛에 머리카락이 물들었다. 눈앞의 여인과 똑같은 색이었다.
레인디아는 소리 없이 입술을 빠끔거렸다.
엄마.
목을 긁으며 나온 엄마란 단어가 그리운 향수를 자극해, 레인디아의 머루 같은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 * *
“레인, 디아.”
기억이 났다. 제 이름은 레인디아였다. 레인디아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이름을 되찾은 소녀의 눈에 총기가 돌았다. 그렇게 주변을 슥 둘러보자 빈 술병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윽고 퀴퀴한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생기가 돌던 까만 눈동자는 다시 초점을 잃고 탁하게 가라앉았다.
‘너한텐 제일 지독한 손님을 붙여주지.’
불현듯 마담의 말이 생각났다.
밤 동안 레인디아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준 꿈은 하얗게 휘발됐다. 마담에게 맞은 부위가 욱신거렸다. 그 통증을 시작으로 레인디아의 의식은 이 끔찍한 현실에 뿌리를 내렸다.
“……추워.”
문득, 자신이 속옷만 입고 있단 사실을 자각한 레인디아는 주섬주섬 누더기를 주워 입었다. 그때, 벌컥 방문이 열렸다. 레인디아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감싸며 몸을 구겼다.
“나와.”
마담이었다.
이상했다.
마담은 제일 지독한 손님을 붙여주겠다고 했는데, 레인디아의 앞에 서 있는 건 사창가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의 여성이었다. 나이는 마담과 비슷해 보였으나 반질반질 윤이 나는 피부에선 좀처럼 세월의 그늘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이런 여자들이 사창가를 찾을 때가 있었다. 남편을 잡으러 온 부인들이었다. 눈앞의 여자도 그런 부류로 보였다.
그런데 남편이 아닌 자신을 찾고 있다.
대체 왜?
설마 하는 마음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혹시, 이분이 잃어버린 내 어머니는 아닐까?
레인디아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었다. 지금보다 어릴 적엔 종종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두통만 심해져서 더 생각하길 관두었다. 설령 떠올린다 해도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무력감도 한몫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질지도 몰랐다.
“이 아이인가?”
“그걸 저한테 물으면 어떻게 알아요? 부인께서 알아야지.”
레인디아를 보며 묻는 귀부인의 질문에 마담이 날카롭게 받아쳤다. 싸가지하고는. 귀부인이 마담을 째려보며 중얼거렸다.
“부인의 남편분이 아랫도리 간수 못 해서 태어난 아이를 내가 어찌 구별하겠어요?”
마담이 빈정댔다. 그러자 귀부인은 경멸을 가득 담아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사생아를 앞세워 날 협박하러 온 것도 당신 같은 여자였지.”
“뭐야?”
마담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그 이상 화를 내진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레인디아가 보기에 귀부인은 상당히 신분이 높은 여성 같았다. 레인디아는 두 여인의 눈치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머리카락과 눈 색을 보아하니 맞겠지.”
귀부인이 레인디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레인디아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녀는 레인디아를 처음 봤을 때의 마담처럼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더러운 것을 털어내듯 손을 물렸다.
“널 여기 데려왔다는 남자에게 확인도 끝마쳤단다.”
레인디아는 제게 하는 말인 줄 모르고 멍하니 서 있다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데리고 온 남자. 손등에 엑스 자 모양의 흉터가 있는 사내. 절로 고개가 고꾸라지고 몸이 벌벌 떨렸다. 몇 년이 지난 일인데도 그에게 맞은 뺨이 욱신거렸다.
“벙어리니?”
“아니요…….”
“흠. 그래, 말은 할 줄 아는구나? 일단 나와 가자꾸나.”
귀부인은 도도하게 등을 돌렸다. 그러다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는지, 짐승의 모피로 만든 손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소문 돌아서 피차 좋을 거 없으니 이 정도로 입 닫지? 부족하진 않을 거야.”
귀부인은 쓰레기를 던지듯이 무언가를 뿌렸다.
“에구머니!”
그러자 마담이 털썩 엎드렸다. 마담은 고작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를 황금 보듯이 주웠다. 레인디아가 실수로 한 장을 밟고 있자 그녀를 밀쳐내고 소중히 털어 가슴 안에 꾹꾹 집어넣기까지 했다. 레인디아는 훗날에야 그것이 수표란 사실을 깨달았다. 돈 앞에서 수치와 존엄을 잃은 인간의 민낯은 생생한 충격으로 각인되었다.
* * *
“…….”
“…….”
쌍두마차 안에서 레인디아와 귀부인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레인디아는 어디에 손을 두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두 손을 포개 올려두었다. 그것도 모자라 제 더러운 몸이 마차에 흠집이라도 낼까 봐 한껏 어깨를 움츠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귀부인은 흡족스러운 표정이 됐다.
“너, 이름이 뭐니?”
“……레, 레인디아예요.”
오늘 불현듯이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러나 사창가의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려줬다 해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레인디아는 ‘야’, ‘너’, ‘거기 꼬맹이’, ‘저거’ 정도로 불렸으니까.
“그래, 레인디아.”
귀부인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마치 처음부터 이름을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그것을 눈치챌 리 없는 레인디아는 가슴이 울컥 차오르기만 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단 사실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고작 이름 정도겠지만, 레인디아에겐 죽어 있던 존엄성이 살아난 순간이었다. 결국 이름이란 건 타인이 불러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니까. 타인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들어서 알겠지? 넌 그레제 백작의 딸이야. 그리고 나는 비릴리안이라 한단다. 비릴리안 그레제.”
귀부인은 자신을 비릴리안이라 소개했다.
비릴리안 그레제.
달리 부르자면 그레제 백작 부인.
‘내가 백작의 딸이라고?’
레인디아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다는 건 눈앞의 여자가 자신의 어머니란 뜻이었다. 그러나 레인디아가 상상해 온 어머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년간 잃어버린 친딸을 찾은 여인으론 안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담과 나눈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앞으로 네가 레인디아 그레제라 불릴 일은 없을 거야. 왠지 아니?”
그레제 백작 부인이 물었다.
레인디아는 그녀와 마담이 나누던 대화를 떠올렸다. 남편이 아랫도리 간수를 못 해서 태어난 아이……. 이윽고 자신의 처지를 완전히 이해한 레인디아는 순종적인 눈을 하고 백작 부인을 바라봤다.
“저는…… 첩의 자식이었나요?”
“제법 똑똑하구나? 첩. 하! 차라리 첩이었으면 이 고생은 안 했지.”
백작 부인은 코웃음을 치다가 차르륵 부채를 펼쳐 입을 가렸다. 마치 자신만 아는 비밀을 속삭여줄 것처럼 은밀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옛날에, 아주 지독한 여자가 있었단다.”
백작 부인의 눈이 뱀처럼 휘었다.
“신분은 천한 하녀였어. 그런데 주인을 유혹해 아이를 배더니 그대로 도망쳐 버렸지. 주인의 아내가 제 배 속의 아이를 죽이기라도 할 줄 알았는지.”
레인디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그 일을 잊을 때쯤 그 여자가 다시 돌아왔지 뭐니? 옆에는 다섯 살도 안 돼 보이는 아이를 낀 채 말이야. 여자는 대뜸 당신의 아이니 책임지라 주인에게 소리쳤어. 친딸과 다름없는 생활을 누리게 해 주고, 교양 있는 숙녀로 길러 훗날 지참금까지 내달라 협박을 해댔단다.”
백작 부인은 기울인 몸을 바로 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직도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열이 오르는지 입술을 악물기까지 했다.
“미친 여자였지. 주인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 생각해서 쫓아냈어. 그런데, 부인은 조금 달랐어. 그 여자를 쫓아내고 나서도 계속 아른대는 거야. 그 미친 여자의 옆에 붙어 있던 작은 아이가. 하필 내가 그때 임신을 하고 있어서.”
백작 부인은 푹 한숨을 쉬며 밋밋한 제 배를 어루만졌다. 마치 다시 임신이라도 한 것처럼. 레인디아는 갈빗대 아래에서 번지는 통증에 꾹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제 심장을 쥐고 비트는 듯했다. 더 듣지 않아도 그 미친 여자와 데리고 있던 아이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여자는 죽었어.”
백작 부인은 죄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판사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인과응보라는 거지. 결국, 사창가에서 몸을 팔다 병으로 죽었다나?”
레인디아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어쩌면, 내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여자의 죽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혈연이란 게 그런 것일까. 홀로 쓸쓸히 죽어갔을 어머니를 떠올리자 가슴이 미어졌다. 동시에 세상에 홀로 버려졌단 사실을 확인받아 서글픔이 휘몰아쳤다.
“어린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내가 오늘 도착하지 않았다면 넌 처녀를 잃을 뻔했다면서? 헤아려 보니 네 나이가 겨우 열네 살이지 뭐야. 세월도 무심해. 하여간, 그런 소릴 듣고 거기 내버려 둘 수가 있었어야지. 도무지.”
백작 부인은 푹 한숨을 쉬더니 주먹으로 제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아휴. 내 정신 좀 봐. 너에게 줄 선물이 있단다.”
그러다 앞을 휘휘 저으며 가방 안에서 책 한 권을 꺼내 건넸다. 레인디아가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자 어서 가져가란 듯 책을 흔들었다. 레인디아는 살그머니 책을 받아들었다.
책의 제목은 <죄의 아이>였다.
물론 레인디아는,
“저, 글을 읽을 줄 몰라요…….”
부끄러움에 레인디아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기대도 안 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말렴. 곧 읽을 수 있게 될 거야.”
백작 부인은 방긋 웃었다.
“그 책,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지 않니?”
레인디아는 책을 품에 안은 채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책의 제목은 ‘죄의 아이’란다.”
백작 부인은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어느 작은 마을에 사내들을 유혹하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유부남과 총각을 가리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가 누군지 모를 사생아를 임신하고 만다. 여자는 출산과 동시에 죽었으나 태어난 아이는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괴로운 나날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태초의 신이 말했다.
마을 사람들의 몸종이 되어 죄를 뉘우치거라.
그렇게 아이는 자진해서 마을의 몸종이 되고 죽는 날까지 선행을 베풀며 살아간다.
“그 아이는,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나요……?”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갔지.”
“……천국.”
레인디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죄의 아이. 그래, 자신 또한 죄의 아이였다.
어미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한 가족을 괴롭혀온 존재.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존재였다. 태어난 뒤에는 협박의 무기로 사용되었고, 쓸모가 없어지자 사창가에 버려진 아이.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갔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검은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흉측했다. 레인디아의 삶은 배덕(背德)의 결실이었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단 사실에 서러워할 때가 아니었다.
레인디아의 작은 몸집이 파들파들 떨렸다.
이제 나는 어쩌면 좋을까.
“널 거둘 생각이야.”
“……네?”
레인디아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레인디아는 어떤 빛을 보았다. 짐칸이 열리며 제 여린 몸을 감싸던 가스등보다 찬란한 빛은, 마치 전능하신 신이 내린 광명의 줄기와도 같았다.
불행한 너의 삶에 은총이 있으리라.
레인디아는 하늘의 계시라도 받은 것 같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네가 그레제의 성을 쓸 일은 없어. 하녀로서 우리 가문에 봉사하는 건 어떻겠니?”
레인디아는 언젠가 생각한 적이 있다.
내 삶은 왜 이리 불행할까. 내 인생은 어째서 이토록 기구할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불행의 연쇄. 그것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그날에야 레인디아는 자신의 삶이 불행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인과응보야. 그래, 나는 어머니의 죄를 물려받은 거야.
‘그러니 평생 속죄하며 살아야 해.’
인간이 오랜 세월 불행에 노출되면, 그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는 법이다. 자신의 불행엔 틀림없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애타게 찾던 이유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내가 죄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네 어미처럼 주인을 유혹하는 요사스러운 요부가 되지 말고, 성실하고 근면한 몸종이 되란 말이야. 알겠니? 그리하면 훗날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단다.”
“네, 부인. 그럴게요. 또…, 가, 감사합니다. 저를 그, 지옥에서, 구, 구해 주셔서, 흐윽, 정말로, 정말, 감사합니다, 부인. 흐으윽……!”
레인디아는 책을 붙잡은 채 꺽꺽 눈물을 흘렸다.
죄의 아이란 제목 위로 눈물이 스며들었다.
레인디아의 잘못된 믿음은 그 눈물을 양분 삼아 신념이 되어 영혼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속죄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은 계속 불행할 것이다. 레인디아는 무의식이 만들어 낸 허상의 신 앞에 납작 엎드렸다.
감히 자비를 구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평생 속죄하며 살겠습니다. 더는 그레제 백작 부인을, 이분의 가족을 욕보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전능하신 신이시여, 부디, 이 죄의 아이를 구원하소서.
“감사합니다, 부인……, 감사합니다…….”
비릴리안 그레제.
그녀는 레인디아를 지옥에서 꺼내준 여인이었다. 레인디아의 불행한 삶에 종지부를 찍어 준 구원자였다.
절대적인 복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