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복종-10화 (10/23)

10. 회귀 본능

“으음……?”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열감에 레인디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풍부한 속눈썹 아래 감추어진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어디선가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인디아는 귀를 기울인 끝에 소리의 발생지를 찾아냈다. 제 다리 사이였다.

‘오늘도…….’

레인디아는 작게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다시 잠들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아. 디아. 디아.”

오늘도 어김없이 에이든이 제 밑을 빨고 있었으니까.

에이든은 아침마다 레인디아의 다리를 잡아 벌리고 그 사이에 웅크린 채 질구를 빨아 댔다. 갓난아이가 어미의 젖을 무는 것처럼, 에이든은 허기가 지면 레인디아의 보지를 물었다. 이토록 음란한 비일상이 일상으로 탈바꿈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동안 레인디아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에, 에이든 님…….”

밑에서 올라오는 자극을 참지 못한 레인디아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일어났어?”

에이든이 고개를 들으며 방긋 웃었다. 그의 유려한 입술선 아래로 애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안. 디아가 자는 동안 끝내려고 했는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변명에 레인디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다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질구가 짝 벌어졌다.

“……너, 넣어주세요.”

“아침부터?”

“……안 되나요?”

레인디아는 시선을 떨군 채 물었다.

이것이 레인디아의 첫 번째 변화였다.

레인디아는 침대에서 에이든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하루빨리 제게 질리길 바라는 의도와, 긴장을 풀게 만들어 도망갈 계획을 짜기 위해서였다. 사실 전자는 그저 레인디아의 바람일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야릇한 기분이 들어 눈을 뜨니 잠든 제 밑을 빨아 대는 에이든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적어도 한두 달 정도론 제게 질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는 늘 상상도 못 할 다양한 방식으로 레인디아의 육체를 맛봤다.

“안 될 거야 없지. 오히려 기쁜걸. 디아가 먼저 날 원하다니.”

에이든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런 에이든을 유혹해야 한다. 그렇게 그의 의심을 거두고 방심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에이든이 좋아졌단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불난 데 기름을 끼얹는 꼴이었다.

레인디아는 철저히 몸만을 이용해 에이든의 욕구를 풀어주고자 했다. 감정이 얽혀선 안 된다. 이 비루한 몸뚱이만을 혹사한 뒤, 그를 떠나야 했다.

“요즘 디아가 먼저 요구하는 게 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무엇이든 말만 해. 디아가 원하는 건 전부 구해 줄 테니.”

“저야말로 늘 감사해요, 에이든 님.”

레인디아는 어색하게 눈을 휘어 웃었다. 에이든은 그런 레인디아의 가슴에 뺨을 기대더니 아이처럼 얼굴을 비벼댔다. 이토록 큰 몸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게 어색할 법도 한데 에이든은 무척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하마터면 아이를 대하듯 그를 꼭 안아줄 뻔했다. 레인디아는 반쯤 올린 손을 황급히 바로 했다.

감정이 얽히면 안 된다.

레인디아는 세뇌하듯 머릿속으로 되풀이했다.

“오, 오늘은.”

“응?”

“제가……, 올라가고 싶, 어요. 괜찮으시다면요.”

레인디아는 더듬더듬 말하다 꾹 눈을 감았다.

그저 에이든의 경계를 풀기 위한 연기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사심이 섞인 걸까. 레인디아 본인도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황족과 몸을 섞는 비일상이 일상으로 변모한 순간 그녀의 모든 판단은 절대 이성(理性)에 뿌리를 내릴 수 없게 된 건지도 몰랐다.

“좋아, 디아.”

에이든은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새하얀 실크로 만들어진 상의를 벗어젖히자 탄력 있는 몸매가 드러났다. 그의 복근에는 오랜 세월 단련된 여섯 개의 근육층이 잘 짜여 있었다. 창밖에서 들어온 햇살이 그 유려한 근육들을 쓰다듬으며 흘러내렸다. 단단하게 짜인 만큼 옴폭 팬 부분의 음영도 유난히 짙었다.

에이든은 한 손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팔근육이 뼈와 함께 역동적으로 돌아갔다. 두툼한 몸을 마주하니 레인디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 굵은 팔 안에 갇힐 생각을 하자 불씨를 삼킨 것처럼 목울대가 후끈거렸다.

“아.”

그때 옆으로 누운 에이든이 레인디아의 몸을 번쩍 안았다. 레인디아는 잘 짜인 복근 위에 앉은 채 그를 내려다봤다. 붉은 눈이 호선으로 휘었다. 저런 미소 뒤엔 늘 상상도 못 한 난잡한 요구가 이어졌다. 그래서 레인디아는 불안해졌다.

“디아, 내 몸에 비벼볼래?”

“……비, 비비다니요?”

에이든은 말없이 레인디아의 손목을 잡아 복근 위를 쓰다듬었다. 큼지막한 주먹이 박힌 것처럼 올록볼록한 살가죽에 레인디아의 손바닥이 드득드득 밀렸다. 곧 그의 말뜻을 이해한 레인디아는 철렁했다. 그녀가 믿을 수 없단 시선을 보내자 에이든이 싱긋 웃었다.

“내 몸 위에 앉아서 자위해 봐. 보지 비비면서. 응?”

“……그, 그런 짓을…….”

“오늘은 직접 위에 올라가고 싶다고 도발까지 해놓고서?”

“그건……!”

에이든이 슥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레인디아의 몸을 감쌌다. 차갑게 가라앉은 숨결이 송곳처럼 피부에 달라붙었다. 에이든은 단단한 두 팔 안에 레인디아를 가두고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스스로 올라타서 허리를 흔드는 건 되지만, 내 복근에 앉아서 보지 비비는 건 싫어?”

에이든의 손끝에서 레인디아의 머리카락이 사라락 흘러내렸다. 레인디아는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팽팽하게 부푼 자지가 엉덩이를 찌르고 있었다.

“저는……, 에이든 님의 욕구를 풀어드려야…….”

“쉬. 디아는 내 암컷이지 시침녀가 아니잖아. 나는 디아도 똑같이 기분 좋았으면 좋겠어. 내가 디아의 모든 구멍으로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레인디아의 입술 위로 엄지가 내려앉았다.

“어차피 마지막엔 꽂아 넣을 건데 조금 미룬다고 죽진 않잖아.”

에이든은 여름밤 호수처럼 청량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이 슬립에 닿았다. 투둑, 투둑 박음질이 뜯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슬립이 순식간에 찢어졌다. 너덜너덜해진 실크가 봉긋한 가슴 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렸다. 그 사이에서 분홍빛 젖꼭지가 슬쩍 드러났다.

“예쁜 가슴.”

“……읏.”

“후후. 정말 예뻐.”

에이든은 젖꼭지에 쪽 입을 맞췄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슬립을 한 손으로 뭉쳐 저 멀리 던져버렸다. 레인디아의 투명한 피부엔 빨간 자국이 무성히 찍혀 있었다. 에이든은 몹시 만족스러운 눈으로 지난밤 자신이 남긴 흔적을 더듬었다.

“으음.”

“아……!”

에이든은 그중 가장 옅어진 자국에 입을 맞춰 빨아 당겼다. 다른 자국과 비슷하게 짙어지자 그 위를 살살 쓰다듬었다. 내 것이란 흔적을 남기는 데 키스 마크만 한 것이 없었다. 레인디아의 피부는 여려서 조금만 힘을 주어도 흔적이 남는 게 기특했다.

“디아가 내 배에 비빌 거 상상하니까 벌써 좆이 터질 것 같아.”

“왜, 그런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레인디아가 혼란스러워하자 에이든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 줬다.

“음핵을 문지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여자들은 손바닥이나 모서리에 음핵을 문질러 압박을 줘서 자위하기도 해. 단지 여성의 욕망은 터부시되어 낯설게 느껴질 뿐이야. 전혀 이상할 게 없단 뜻이지.”

“하지만, 왜……, 제가 에이든 님의 배에…….”

“그야 내 배는 근육이 잘 짜여서 손바닥이나 모서리에 비비는 것보다 기분 좋을 테고.”

그가 슥 레인디아의 귀에 속삭였다.

“내가 보고 싶으니까. 디아가 내 배 위에 보지 문대는 모습.”

이윽고 에이든의 입술이 멀어졌다. 레인디아는 마치 귀 안에 사정 당한 것처럼 귓속이 끈적거렸다.

“어서?”

바르게 누운 에이든이 한 손으로 레인디아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레인디아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살짝 하체를 들어 올렸다. 에이든의 위에 올라탄 채 속옷을 벗었다. 그의 앞에서 전라가 된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훤히 드러난 음부가 수치스러웠다. 에이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익숙했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는 건 낯설었다. 무엇보다 이어질 행위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라서.

“디아가 잘 느끼게 계속 힘주고 있을게.”

에이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근의 음영이 짙어졌다. 레인디아는 그의 숨결을 따라 꿀렁이는 근육들을 보자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눈앞이 아득해졌다.

“……흣.”

레인디아는 살며시 에이든의 복근에 내려앉았다. 그녀의 하얀 다리가 에이든의 두툼한 허리만큼 활짝 벌어졌다. 레인디아는 허공에서 꼼질거리던 두 손을 에이든의 가슴 중앙에 살며시 내려놨다. 가죽처럼 두꺼운 피부를 통해 그의 심장 박동이 전해졌다. 속도는 느릿했지만 한 번 뛸 때마다 마치 주먹으로 두드리는 것처럼 손바닥이 떨렸다.

“못, 하겠어요.”

“이렇게 천천히 엉덩이를 문지르면 돼. 디아의 손바닥으로 내 좆을 문질러준 것처럼.”

에이든은 친히 레인디아의 작은 엉덩이를 움켜잡아 앞뒤로 움직였다. 있는 듯 없는 듯 가는 음모가 사내의 복근을 쓸어댔다. 그때마다 에이든의 좆이 용솟음쳤다.

“아, 아……!”

“기분 좋아, 디아?”

“아, 흐읏, 저, 저는……. 모르겠, 으……!”

레인디아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번졌다. 에이든을 어설프게 유혹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만 역력했다. 보지가 복근에 쓸릴 때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런데도 역시 기분이 좋아서 질구가 벌름대며 입을 맞추듯 복근을 빨아 댔다.

“음핵은 좀 더 앞에 있으니까 내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도록 해.”

에이든이 엄지로 레인디아의 음핵을 살살 문질렀다. 그 순간 레인디아는 골반을 뒤틀며 신음했다. 발정이 난 암고양이처럼 엉덩이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아아……!”

따갑고 찌릿한, 그러나 기분 좋은 통증이 내밀한 육신을 관통했다. 아직 좆을 품지 않아 잘록한 아랫배가 덜덜 떨렸다. 레인디아는 그렁그렁해진 눈꺼풀을 연신 깜박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에이든의 조언대로 젖가슴을 앞으로 기울며 볼록한 엉덩이를 뒤로 빼서 무게 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했다. 자세는 어색했으나 음핵은 확실히 복근 사이로 쏙 파묻혔다. 무게에 눌려 느껴지는 압박감도 대단했다.

“으, 으응…….”

생소한 자극에 레인디아는 콧소리를 내며 신음했다.

‘좀 더, 좀 더.’

좀 더 기분 좋아지고 싶어.

레인디아는 자력에 이끌리듯 보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 으응, 아.”

처음 자위를 해 보는 아이처럼 레인디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손도 대지 않은 유두가 딱딱하게 굳으며 솟아오르자, 에이든은 두 팔을 들어 양쪽 젖꼭지를 꼬집어줬다.

“아앙……!”

레인디아는 어깨를 비틀면서도 허리를 흔드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목이 탔다. 온몸이 뜨겁게 타들어 가는 듯했다. 비벼진 보지가 얼얼했다. 이미 아득한 쾌감이 이성을 잠식해 도중에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에이든은 그런 레인디아의 모습을 즐겁게 관찰하며 손톱을 세워 동그란 유두 꼭지를 긁어줬다.

“흐으, 하아. 아아. 아……!”

레인디아의 몸이 앞으로 기우는 만큼 복근에 쏠리는 무게가 더해졌다. 에이든은 배 근육에 힘을 주었다가 풀길 반복하며 복근을 실룩였다. 그 위에서 레인디아의 음부가 유연하게 미끄러졌다. 복근 틈에 껴서 포피가 벗겨진 음핵은 탱글탱글 어여쁜 모양으로 부풀어 있었다. 알갱이는 작아도 속이 달콤한 과즙으로 가득 찬 과실을 보는 듯했다.

사내의 좆은 길이와 두께, 강직도가 크면 클수록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으나 여인의 몸은 크기와 상관없이 극상의 쾌감을 만들어 냈다. 에이든은 신의 존재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여성이 남성의 부속품으로 창조된 게 아닌, 남성이 여성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완전한 존재인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레인디아가 제 밑에서 자지러질 때뿐 아니라, 지금처럼 제 위에서 허덕일 때, 그리고 자신이 선사한 오르가슴에 벌벌 떨 때, 사정하는 것과 비교조차 안 되는 정신적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좋아, 디아?”

“아, 아아. 좋아. 좋아요……, 흐윽……!”

주륵. 주르륵.

어느새 레인디아는 에이든과 손깍지를 낀 채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질액이 줄줄 흘렀고 어색했던 움직임은 매끄럽게 변했다. 올록볼록한 복근 사이를 주륵주륵 미끄러질 때마다 추붓추붓 난잡한 소리가 뒤따라왔다.

보지가 음탕하게 앞뒤로 비벼졌다. 그녀가 흘린 애액으로 에이든의 복근은 기름을 부은 것처럼 번들거렸다.

‘좋아. 너무 좋아.’

레인디아는 온몸이 클리토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에이든과 깍지를 낀 손가락 사이사이의 감각까지 예리하게 되살아났다. 그러나 가장 기분이 좋은 곳은 밀착한 하반신이었다. 흠뻑 젖은 가랑이에서 짜릿한 자극이 쉴 새 없이 방류됐다. 마치 아낙들이 쓰는 빨래판에 보지를 문지르는 것 같았다.

“아, 아!”

레인디아는 복근의 가장 도드라진 부위에 음핵을 쿡 처박은 채 부르르 허리를 떨었다. 목이 곡선으로 휘었다. 이윽고 낭창한 허리도 유연하게 휘어져 덜덜 떨렸다. 속이 비쳐 보일 만큼 투명한 피부는 불볕 하늘 아래를 뛰어다닌 것처럼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레인디아는 풍부한 속눈썹을 연신 파들대며 흐느꼈다.

“하으으……!”

“예뻐, 디아.”

절정에 달한 레인디아를 바라보는 에이든의 두 눈은 황홀함에 취해 있었다.

에이든은 슥 상체를 일으켰다. 동시에 레인디아의 보지가 복근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선액을 질질 흘리다 못해 흠뻑 젖은 좆이 레인디아의 엉덩이에 짓눌렸다. 에이든은 발기한 좆이 꺾이는 고통조차 쾌감으로 느껴졌다.

“디아, 기분 좋았어? 내 위에서 간 거야?”

에이든은 연신 레인디아의 뺨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레인디아는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겨우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디아. 나의 디아.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지.”

“하아, 하…….”

“내 몸 위에서 가줘서 고마워.”

에이든은 레인디아에게 입을 맞췄다. 도망가지도 못할 만큼 지친 붉은 혓바닥을 날름 집어삼켜 쪽쪽 빨아 댔다. 키스가 짙어질수록 레인디아의 육신은 얼음이 녹듯 흐물거리며 흘러내렸다.

에이든은 한 손으로 그런 레인디아의 엉덩이를 잡아 올렸다. 그 틈 사이로 눌려 있던 좆이 꼿꼿하게 솟아올랐다.

“읏, 아, 드, 들어와요…….”

“응. 내가 넣고 있으니까. 기분 좋지? 배 꽉 채워 줄게.”

에이든은 한껏 예민해진 소음순을 살살 벌리며 귀두를 삽입했다. 레인디아는 본능적으로 에이든의 목덜미에 팔을 감았다. 말캉한 젖가슴이 에이든의 단단한 육신에 납작해질 정도로 짓눌렸다. 배 안이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게 차올랐다.

“흐읏……!”

레인디아는 두 다리마저 에이든의 허리에 휘감았다. 에이든은 마치 새끼 코알라처럼 제게 매달린 레인디아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바빴다.

“얼마만큼 들어온 거 같아?”

“모, 모르겠, 어요. 흐윽. 너무 깊어요. 배가, 벌써 가득 차서…….”

레인디아는 덜덜 떨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에이든은 바깥에 남아 있는 불그죽죽한 좆대를 보며 싱긋 웃었다.

“디아의 보지는 아직 더 먹을 수 있다는데?”

“아앙……!”

철퍽!

에이든이 퍽 허리를 쳐올려 남은 좆을 욱여넣었다. 레인디아는 욱 소리를 내며 에이든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격렬한 반동으로 뱃가죽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배, 배, 찢어져요……, 흐윽……!”

“안 찢어져, 디아. 보지라면 몰라도.”

에이든은 다정히 레인디아의 등을 다독였다.

“내가 쑤시는 건, 보지인데, 왜, 배가 찢어지겠어?”

에이든이 쑤컥쑤컥 좆을 쑤시며 속삭였다.

“하지만 보지도 멀쩡할 거야. 그러라고 있는 길이니까. 좆이 들어오라고 있는 길. 찢어지지 말라고 내가 잘 길들여주고 있잖아.”

에이든은 좆을 깊숙이 박은 채 속삭였다.

이윽고 빠르게 안을 쑤셔주자 질구 주변에 애액이 거품처럼 바글바글 묻어났다. 배 안에서도 애액이 질척하게 비벼지고 있었다. 질벽은 쑤실수록 부드럽고 쫄깃하게 변했다.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목덜미에 강박적으로 흔적을 남겼다.

“하아. 디아가 허리를 흔드는 것도, 보고 싶었지만……, 역시 직접 흔들지 않고는 못 참겠어.”

“아, 아아……!”

이제는 온몸이 에이든의 빨판 같은 복근에 비벼지고 있었다.

“옳지, 디아. 다음번엔 디아가 스스로 흔들게 해 줄 테니까. 오늘은 나한테 양보해.”

붉은 좆이 새하얀 보지 속을 거칠게 드나들었다. 그렇게 마찰이 격해지는 만큼 레인디아의 살갗도 붉게 물들었다. 모든 핏기가 가랑이에 몰린 것처럼 퉁퉁 부어오른 보지가 새빨갰다. 에이든의 좆대도 색이 한층 짙어졌다. 색뿐 아니라 경도도 단단해졌다. 마치 철심이라도 박힌 것처럼 굳건히 서서 자궁을 쳐올렸다.

“으으응……!”

고개를 젖힌 채 신음하던 레인디아는 에이든의 목덜미에 풀썩 얼굴을 처박았다.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가 득득 갈렸다. 가물거리는 눈앞에 새하얀 빛이 번졌다.

“아앙……!”

레인디아는 손톱을 세워 에이든의 등을 할퀴었다. 손톱이 살가죽에 팍팍 박혔다. 에이든의 좆은 시들긴커녕 고통을 빨아들이며 무럭무럭 자랐다.

“디아, 기분 좋아? 보지가 엄청나게 떨리고 있네.”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뺨에 입술을 꾹 찍어눌렀다.

“더 세게 할퀴어도 돼. 내 몸에도 디아의 흔적을 잔뜩 남겨줘.”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목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손톱이 더욱 깊이 살을 파고들었다. 붉은 페니스는 고통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으응, 아, 아아……, 그, 그만. 그만, 흐읏…….”

강렬한 쾌감이 휩쓸고 간 배 속엔 여전히 붉은 좆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거기다 배 안에서 더욱 커지고 있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레인디아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바둥거렸다. 그러나 에이든은 아직 좆을 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그만하고 싶어?”

“하으으……, 이제, 더는……, 못 해요…….”

“아니야, 디아. 충분히 더 갈 수 있어. 나는 디아의 몸을 잘 알아. 가고 나서도 계속 보지 안쪽을 깊숙이 찔러주면 기뻐서 몸부림친단 사실도.”

“으, 아……!”

에이든이 다시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푹푹! 퍽! 철퍽!

울룩불룩한 핏줄로 휘감긴 붉은 좆대가 부르튼 질구를 쑥쑥 드나들었다. 주먹으로 자궁을 퍽퍽 쳐올리는 듯했다. 온몸의 장기가 위아래로 거칠게 격동했다.

레인디아의 눈이 뒤로 까뒤집혔다. 시야가 빙그르르 돌았다. 한계치를 넘어선 쾌감이 도주 본능을 불러일으켰다. 레인디아는 두 손으로 에이든의 어깨를 꾹꾹 밀며 그의 품을 벗어나려 했다.

“아아, 아아앙! 그만, 으으응!”

“밀어내는 만큼, 하아……, 기쁜 거지, 디아?”

에이든은 황홀한 말투로 속삭였다.

바둥거리는 상체와 달리 밑구멍은 기쁘게 그의 좆을 빨아당기고 있었다. 늘 그렇듯 레인디아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배 속을 꽉 채워주고, 좋아하는 곳을 꾸준히 문질러주면, 결국 짙은 쾌락이 여인의 몸을 함락시킬 것이다.

푹, 푸욱, 푹푹!

질벽은 좆 모양으로 벌어졌다가 오므라들길 반복하며 수축했다. 에이든의 두툼한 귀두갓은 예리하게 레인디아의 스폿을 긁어내렸다.

“큭. 하아. 읏.”

“아아, 아, 으응……!”

에이든의 짙은 눈썹 사이가 좁아졌다. 사내의 묵직한 신음과 레인디아의 간드러진 교성이 조화를 이뤘다. 에이든이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레인디아의 몸이 펄쩍 뛰어올랐다. 보드라운 젖가슴으로 제 몸을 연신 쓰다듬으며. 에이든은 더욱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아, 디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를 빼앗길 순 없어. 내가 널 이곳에 가둬두는 이유. 그건 네가 이토록 아름답기 때문이야. 다른 놈들도 나와 같겠지. 좆이 달린 수캐라면 나처럼 미친 듯이 너를 탐하겠지. 그러면 너는, 지금 내게 안기는 것처럼 순순히 복종할까?

“디아. 다른 새끼들한테도 다리 벌릴 거야?”

“으으응, 아, 아니요, 안, 해요, 아아……!”

“옳지. 다른 새끼가 디아의 예쁜 입에 좆을 물리려고 하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응?”

“으, 흐읏…….”

“좆대를 물어뜯어. 불알을 씹어버리라고 했잖아.”

“흐윽, 네. 부, 불알을, 씹어, 버릴, 흐윽……!”

이성이 마비된 레인디아는 그저 본능적으로 에이든이 시키는 말을 고분고분 따라 했다.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제야 에이든은 흡족해졌다.

“착하다.”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입술에 엄지를 밀어 넣었다. 반강제로 그녀의 입술을 크게 벌리고 까딱이는 혓바닥을 냉큼 물어 쯥쯥 소리를 내며 빨았다. 품위 없는 질척하고 농밀한 입맞춤이 길게 이어졌다.

“겁먹지 마, 디아. 내 곁에만 있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내가 더 빨리 디아를 발견해서 구해 줄게.”

“흐읏, 네, 네……, 저, 전에, 가르쳐주신, 것처럼, 위험하면……, 에이든 님을, 흐윽, 부를게요.”

레인디아는 지난 기억을 상기하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머루처럼 검은 눈동자 아래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아아, 디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를, 하아……, 어쩌면 좋을까.”

에이든은 코끝으로 가슴골을 문지르며 올라가 입을 맞췄다. 다시 혓바닥이 부드럽게 뒤엉켰다. 그렇게 난잡한 교접은 오후가 될 때까지 이어졌다.

* * *

탈출의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레인디아는 침대 위에서만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었다. 침대에선 에이든을 안심시키고, 평소엔 하녀들과 살갑게 지내며 탈출할 기회를 노렸다. 첨탑 위에서 발견한 희망이 그 첫걸음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저택의 하녀 중 한 명이 외출했다. 이곳에 레인디아가 사용할 물품은 충분했으나 하녀의 생필품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적어두고 집사장에게 승인을 받은 뒤 외출을 해서 구해 오는 식이었다.

외출하는 하녀는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고 들었다. 이번 주는 몬테나란 하녀의 차례였다. 그런데 몬테나는 부모님이 병상에 누워 며칠 전 급하게 고향으로 돌아갔다.

‘몬테나가 빠졌는데 누가 물건을 사러 나간담? 다음 차례로 넘어가려나?’

‘이번 주는 들고 올 물건이 많아서 가고 싶지 않은데.’

‘물건은 마차에 실으면 그만이잖니?’

‘하지만 괜히 잘못 사 오면 눈치 보이고. 또 실수로 하나라도 빼먹으면 어떡해?’

‘그렇긴 하지. 에휴, 두 명이서 가면 좀 좋아?’

‘당분간 경비가 삼엄해서 어쩔 수 없다 들었어.’

‘당분간이란 건 레인디아 아가씨께서 이곳에 적응할 때까지겠지? 그래도 요즘은 주인님과 사이가 좋아 보이셔. 어제도 함께 팔짱을 끼고 정원을 걸으셨다니까?’

하녀들은 이번 주 차례를 서로 미루기 바빴다. 그러다 결국 이본느란 하녀로 결정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본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저택을 떠나 일주일 뒤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워낙 저택의 하녀가 많기도 했고 이본느는 1인실 기숙사에서 혼자 생활해서 그녀의 행방을 자세히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집사장도 까맣게 잊고 이본느의 이름이 적힌 외출증에 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이 사실을 아는 건 레인디아뿐이었다.

이본느가 레인디아의 시중을 들면서 일주일간 자리를 비울 거라 말해 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으나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곧 이곳을 벗어날 수 있어.’

처음으로 행운의 여신이 저에게 방긋 미소 지어준 듯했다.

그날 밤.

침실은 자욱한 밤꽃 냄새로 가득했다.

에이든은 따뜻한 물에 담근 천으로 레인디아의 몸에 묻은 정사의 흔적을 꼼꼼히 닦아줬다. 이번에도 발로 좆을 문질러줘서 발가락 사이에 정액이 가득 껴 있었다.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앙증맞은 발가락 틈 사이사이를 깨끗이 훔쳐냈다. 이윽고 깨끗해진 발등에 쪽쪽 입을 맞추며 올라왔다.

“……에이든 님.”

레인디아는 살며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목덜미를 빨던 에이든이 슥 고개를 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붉은 시선이 유난히 상기되어 있었다.

“내일부터 2시간 정도……, 혼자 있을 수 없을까요?”

“어째서?”

“……늘 에이든 님에게 과분하게 받는 것 같아서, 선물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별건 아니지만.”

레인디아는 살며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됐어. 마음만으로도 충분해.”

에이든은 다시 레인디아의 목덜미에 입술을 파묻었다. 가녀린 목덜미에 붉은 꽃이 한 송이씩 피어났다.

“읏, 제가…… 불편해요.”

“나는 디아에게 무언가를 줄 때가 가장 즐거워. 그러니 디아는 편안히 받기만 하면 돼.”

레인디아는 꾹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야 했다. 곧 외출 일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쁜 몸으로 늘 나를 즐겁게 해 주잖아. 디아의 존재만으로도 큰 선물이야.”

에이든은 자신이 남긴 자국을 싹싹 핥아 반들거리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후후 웃으며 쪽쪽 버드 키스를 해댔다. 그때마다 레인디아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릿했다. 이토록 맹목적인 타인의 온기를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비틀린 감정이다. 제 것이 아니다. 이런 감정에 익숙해져선 안 됐다.

“에이든 님.”

“디아?”

레인디아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살며시 에이든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의 다리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에이든의 좆은 여전히 발기해 있었다. 마치 무성한 검은 수풀 위에 우뚝 선 붉은 첨탑 같았다.

“하압…….”

레인디아는 두 손으로 기둥을 붙잡고 벌름대는 요도 위를 입술로 덮었다. 조금 전까지 제 밑을 들쑤시던 그것이 이제는 입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순전히 레인디아 스스로 벌인 행위였다. 에이든은 조금 놀랐으나 저지하지 않았다.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으음.”

레인디아는 꾹 눈을 감은 채 혀를 내밀었다. 긴장한 혓바닥으로 요도에서 흐르는 정액을 훔쳐냈다. 그렇게 번들대는 귀두를 싹싹 핥아 묻어 있던 정액과 애액을 빨아들였다. 한입에 품고 빠는 건 여전히 힘들어서 입술을 떼어내고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 귀두갓 아래에 낀 정액도 구석구석 핥았다.

“봉사해 주는 거야?”

에이든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그는 레인디아의 손에서 좆을 빼앗아갔다. 굵은 귀두가 입 안에서 뽁 빠져나갔다. 에이든이 페니스를 잡아 올리자 늘어져 있던 고환이 쑥 올라왔다.

“여기도 깨끗이 빨아줘.”

레인디아는 에이든과 고환을 번갈아 보다가 납작 엎드렸다. 묵직한 고환이 레인디아의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 그녀는 살며시 불알 한쪽을 입에 물었다. 고환의 표면은 아주 얇은 살로 덮여 있었다. 안에는 탱글탱글한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할짝, 할짝.

레인디아는 혓바닥으로 정자가 찬 알을 싹싹 핥았다. 둥근 형체를 더듬으며 반대쪽 고환도 혓바닥으로 감쌌다. 오랫동안 살을 치대 고환 사이에도 정액과 애액이 껴 있었다. 레인디아는 혀를 세워 어색하게 골 사이를 문질렀다.

“으음.”

에이든이 나른한 숨을 토하며 허벅지를 떨었다. 살며시 그의 허벅지에 손을 얹자 근육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지금 싸는 거 입으로 먹어줘.”

기둥을 타고 정액처럼 진한 쿠퍼액이 주르륵 흘렀다. 레인디아는 군말 없이 밑에서부터 그것을 핥으며 올라가 귀두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대로 혓바닥에 담긴 선액을 꿀꺽 집어삼켰다. 덩어리가 식도를 타고 묵직하게 흘렀다. 레인디아는 왠지 모르게 배 속이 후끈거렸다.

“우응, 하아…….”

귀두를 물어 둥글게 벌어진 잇새로 숨이 흘러나왔다. 그때마다 에이든의 좆이 꿀럭꿀럭 부풀었다. 에이든이 좆을 쥐던 손을 바로 하자 레인디아가 좆대를 이어 잡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우아하게 좆대를 휘감았다. 레인디아는 쭙쭙 귀두를 물고 빨았다.

“하아, 디아.”

에이든이 억지로 욱여넣을 때와 달리 귀두만 겨우겨우 입에 머금은 상태였다. 그러나 에이든은 억지로 레인디아의 머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허리도 가만히 멈춘 채, 레인디아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흔치 않은 절경을 감상했다.

“그렇게 내 좆이 빨고 싶었어?”

레인디아는 쪽쪽 빠는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핏줄과 귀두갓 아래의 틈에 정액이 가득 껴서 뿌옇던 페니스는 어느새 본연의 붉은 색감을 뽐내며 위용 차게 솟아 있었다. 생살의 비릿한 맛이 혀를 휘감았다. 동시에 귀두갓이 기분 좋게 레인디아의 입천장을 긁어댔다.

“후우-.”

아랫도리에서 올라오는 열감에 에이든은 미간을 모았다. 레인디아의 머리를 감싸 쥔 손바닥에도 힘이 실렸다. 이윽고 농익은 향이 레인디아의 입 안 가득 번졌다. 프리컴보다 무거운 정액이 가득 쏟아져 레인디아의 볼이 빵빵해졌다. 레인디아는 목을 움직여 정액을 꿀꺽 집어삼켰다.

“하윽, 흐읏.”

귀두를 뱉어낸 레인디아는 쿨럭 기침을 하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입 안 가득 비릿한 향이 맴돌았다. 레인디아는 손가락으로 입 주변에 묻은 정액을 슥슥 닦아냈다. 그리고 에이든의 고간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려요, 에이든 님. 하루에 딱 한 시간만이라도…….”

레인디아는 여전히 빨갛게 부푼 페니스에 뺨을 비비며 에이든을 올려다봤다. 그의 거대하고 굵은 페니스가 레인디아의 얼굴을 반이나 가렸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입 안에 남은 정액이 쭉쭉 늘어났다.

에이든은 뿌연 정액으로 범벅이 된 입 동굴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 부탁을 하고 싶어서 내 좆을 빨아준 거야?”

“……네.”

“어쩔 수 없네.”

에이든은 레인디아를 번쩍 들어 안아 제 품에 앉혔다.

“나 디아의 애교에 약한가 봐. 이런 식으로 부탁하면 사람 목이라도 따올 수 있을 것 같아.”

“그, 그런, 부탁은 안 해요.”

“알아. 농담이었어. 아, 하지만 디아한테 손대는 놈은 산 채로 살을 바를 거니까.”

쪽.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물었다.

“좋아, 하루에 두 시간. 장소는 어디가 좋겠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면 상관없어요. 아. 꽃밭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어요. 저, 본관의 정원 근처에 작은 건물이 있던데.”

레인디아는 곰곰이 생각하는 척, 에이든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에이든은 흔쾌히 승낙했다.

“온실로 쓰던 건물이야. 사람을 시켜 치워두라 이를게. 더 필요한 건?”

“음. 공예 도구가 필요해요.”

“그거면 돼? 집사장에게 말하면 전부 구해 줄 거야.”

“네. 감사해요.”

“천만에. 디아가 어떤 선물을 만들어줄지 기대되는걸.”

레인디아의 이마 위로 에이든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슬며시 바라보자 그의 입꼬리가 눈에 띄게 올라가 있었다. 감긴 눈꺼풀의 풍부한 속눈썹이 아름다웠다. 조각품처럼 섬세한 우아함이 묻어나는 사내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가시가 있기 마련이다. 레인디아는 에이든의 비틀린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곧. 곧이야.’

조금만 더 참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어.

레인디아는 자신을 다독이며 에이든의 가슴에 뺨을 파묻었다.

* * *

그날 이후.

“아가씨, 이 꽃은 어떠세요?”

“예뻐라. 고마워요.”

“후후, 천만에요.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네.”

레인디아는 점심 식사를 끝낸 뒤 정원에서 하녀들과 꽃을 꺾었다. 오늘도 바구니 가득 꽃을 담은 레인디아는 홀로 온실에 들어갔다. 둥근 돔 모양의 온실은 지붕 전면이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온실 안에서도 따사로운 오후의 일광을 즐길 수 있었다.

드르륵.

레인디아는 작업대 위에 바구니를 내려두고 의자를 빼 앉았다. 작업대는 그녀의 성격처럼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레인디아는 건조를 위한 압판과 유리로 덮인 고풍스러운 브로치, 작은 송곳, 집게 등등을 차곡차곡 꺼냈다.

하루에 두 시간.

레인디아는 온실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때만큼은 에이든도 다른 사용인도 그녀를 감시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론 에이든을 위한 선물을 만들겠단 목적이었으나 사실은 도망칠 틈을 만든 것뿐이다.

그러나 레인디아는 성실하게 에이든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그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한편으론 그를 속인다는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저를 납치한 남자인데도, 그 애정 어린 붉은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큰 죄를 저지른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쨌거나, 자신은 에이든의 진심을 농락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이곳은 건조해서 꽃이 빨리 마르는구나.”

레인디아는 어제 말린 꽃들을 확인했다. 모두 고르게 잘 말라 있었다. 밤에는 침대에서 에이든에게 봉사하고, 낮에는 그를 위한 압화를 만들었다. 제국에선 꽃을 브로치에 담아 부적처럼 사용하곤 했다.

압화 작업은 처음이었으나 레인디아는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벌써 완성품을 다섯 개나 만들었다. 집사장이 준비해 준 재료가 하나같이 고가의 제품이라 완성된 브로치의 품질은 자연히 훌륭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레인디아의 센스까지 더해지니 장인이 파는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꽃은 리빌리언이 좋겠지.’

레인디아는 가장 예쁘게 마른 꽃을 조심스럽게 종이 위로 옮겼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새하얀 꽃잎이 달린 꽃이었다. 리빌리언은 북부에서만 자라는 꽃으로, 꽃말은 망각의 기쁨이었다. 리빌리언에는 소량의 망각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를 처음 발견한 과학자가 남긴 ‘망각은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란 말에서 유래한 꽃말이었다.

레인디아는 에이든이 자신을 잊길 바랐다.

진짜를 닮은 가짜가 눈앞에 있어 그의 이성을 혼탁하게 만드는 건지도 몰랐다. 만약 가짜가 사라진다면, 그는 정신을 차리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건, 날 위한 삶이 아니니까.’

레인디아는 브로치 안에 조심스럽게 접착제를 발랐다. 그 위에 살며시 리빌리언을 한 송이 놓아둔 뒤 마르기를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푸른 빛이 도는 반투명한 유리 덮개를 씌워 브로치를 완성했다. 레인디아는 그것을 천에 감싸 서랍 안에 보관했다.

* * *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레인디아는 평소처럼 차분히 오전 활동을 마친 뒤 온실로 향했다. 아직까지는 그녀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 식사 전에 에이든과 정사를 보내 아랫도리에 열감이 남아 있었다. 레인디아는 그 통증을 애써 외면하며 작업대에 앉았다.

‘장미는 꽃잎을 하나씩 떼어서 만들면 예쁠 것 같아.’

이미 에이든에게 줄 선물은 완성했다. 지금 만드는 건 떠나기 전 하녀들에게 남길 선물이었다. 재료가 남아 아깝기도 했고, 시간도 여유로웠다. 무엇보다 이토록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헌신해 준 그녀들을 향한 작은 감사의 표시였다.

“다 했다.”

괘종시계를 확인한 레인디아는 이제껏 완성한 브로치들을 일렬로 늘어놨다. 햇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났다. 마치 에이든이 그녀를 위해 구해 온 보석들 같았다.

‘이제 떠날 시간이야.’

레인디아는 에이든의 브로치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둔 뒤 등을 돌렸다. 그리고 상자 안에서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그녀가 원래 사용하던 낡은 코르셋과 하녀복, 그리고 백작 부인에게 선물 받은 책이 들어 있었다. 새하얀 프릴이 달린 앞치마는 이곳의 하녀가 사용하는 것이었다. 얼굴을 가릴 외출용 망토도 준비해뒀다. 꽃바구니 아래에 숨겨 매일 하나씩 챙겨왔다.

레인디아는 서둘러 드레스와 코르셋까지 전부 벗은 뒤 제 옷으로 갈아입었다. 낡았지만 오랜 세월 함께 한 옷이라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제 탈출이 눈앞이었다. 망토를 머리에 두르고 밖으로 나서려는데 돌연 다리가 우뚝 멈추었다.

레인디아는 슥 뒤를 돌아봤다. 에이든을 위해 만든 브로치가 유난히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돌아가 살며시 브로치를 쓰다듬었다.

‘가여운 사람.’

에이든은 분명 제 육신을 착취한 남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제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만난 여자를 잊지 못해 그녀를 닮은 자신에게 집착한 사내. 그를 향한 원망만큼 희미한 동정심도 싹텄다. 원체 타인을 깊이 증오해 본 적 없는 그녀였기에 자연스레 피어난 감정이었다.

에이든의 강한 집착은 그만큼 강한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당신이 이 꽃말의 의미를 이해해 주면 좋겠어요.”

왜인지 이 순간 에이든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다. 리빌리언의 꽃말처럼 망각을 통해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길. 부디 나약해진 영혼이 육신만큼 건강한 활기를 되찾길. 레인디아는 에이든이 브로치를 바로 발견할 수 있도록 손수건에 달기로 했다.

“읏……!”

그때, 새하얀 손수건이 붉게 물들었다. 날카로운 옷핀이 손가락을 파고든 것이다. 레인디아는 황급히 핀을 빼내고 브로치에 묻은 피를 벅벅 문질러 닦았다.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다. 피도 두세 방울 떨어트린 게 전부였다.

그런데 손끝부터 핏기가 가시며 어깨가 벌벌 떨렸다.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행복을 바란다고?

“거짓말.”

탁.

레인디아는 깨끗이 닦인 브로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전부 거짓말이다.

자신을 잊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바람은 에이든의 입장에선 기만일 것이다. 에이든이 얼마나 미친 남자인지, 감정이 뒤틀렸는지, 지난 수십여 일간 이곳에 갇힌 채 몸서리치게 겪어온 바였다. 진짜 본심은 저에게 관심을 끊고 그대로 잊어버리길 바랐다. 그 붉은 눈의 괴물이 더는 쫓아오지 않길, 사냥개를 풀어 추격하지 않기만을 바란 것이다.

‘저도 잊을게요.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선 입도 벙긋 안 할 테니까…….’

제발 나를 놓아주란 말이에요!

레인디아는 속으로 힘껏 소리쳤다. 그리고 떨리는 발걸음을 겨우 떼어냈다. 에이든의 마수를 벗어날 마지막 기회였다.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레인디아 아가씨를 태운 마차가 출발했습니다.”

집사장이 집무실로 찾아와 보고했다.

에이든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마른 수건으로 소총을 닦고 있었다. 소총은 새 조준경을 달고 나무 몸체도 매끄럽게 다듬어 새것처럼 우아한 윤기가 흘렀다.

“그리고 이건 아가씨께서 온실에 남기고 가신 물건입니다.”

집사장은 책상 위에 브로치를 올려뒀다. 에이든은 총을 옆으로 치우고 브로치를 들어 올렸다.

“매일 꽃을 꺾어서 뭘 그리 열심히 만드나 했더니.”

창밖에서 들어온 햇살이 브로치의 표면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리빌리언에는 망각 성분이 있지. 또 꽃말은 망각의 기쁨이라지?”

반투명한 브로치 표면에 에이든의 붉은 눈동자가 비쳤다. 에이든은 브로치를 가슴주머니에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디아도 참 잔인하다니까.”

그는 소총을 들고 실탄을 장전했다. 금색 노리쇠를 잡아당기자 찰카닥 소리가 났다. 조준경으로 바깥을 둘러본 에이든은 씩 미소를 지었다.

“음. 완벽해.”

이윽고 거대한 그림자가 복도를 쓸며 밖으로 향했다.

* * *

‘꿈만 같아.’

레인디아는 덜커덩 흔들리는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아직도 그 저택을 빠져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망토로 얼굴을 가린 채 일부러 작게 기침을 하고 다니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사용인의 대부분이 추운 북부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바깥에선 망토를 두르고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떠한 검문도 받지 않고 마차에 올라탔다.

“잠시만 멈춰도 되겠소?”

“……네?”

“변소가 급해서.”

“괜찮아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레인디아는 푹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마차는 숲속에서 멈춰 섰다. 백작가의 마차가 탈선한 곳과 비슷했지만, 명백히 다른 숲이었다. 레인디아는 조심스럽게 지도를 꺼냈다.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북쪽으로 반나절을 걸어야 했다. 이윽고 결심을 마친 레인디아는 마부가 서 있는 반대편 문을 열고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날씨도 맑고 눈도 전부 녹아서 걷더라도 해가 지기 전까지 도착할 수 있어.’

레인디아는 천천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챈 마부가 뭐라 소리쳤다. 레인디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랬다간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저를 끌고 가 저택에 다시 가둘 것 같았으니까.

“허억. 헉…….”

어느덧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레인디아의 표정은 창백해졌다.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라왔는데,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아니야. 틀림없이 제대로 온 게 맞아.’

긴장한 나머지 방향을 착각한 건지도 몰랐다. 레인디아는 놀란 가슴을 다독였다. 그리고 다시 지도를 보며 따라 걸었다.

“읏. 차가워.”

뺨 위로 물이 떨어졌다. 레인디아는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렸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이토록 얌전히 내리는 눈이 언제 눈보라로 변할지 몰랐다.

불현듯 불안함이 엄습했다. 레인디아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다.

‘돌아갈까……?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레인디아는 다시 앞을 보며 휘휘 고개를 저었다. 이 숲만 벗어나면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역마차를 타고 노스빌리움으로 가 하루빨리 아가씨를 만나야 했다.

‘약해지면 안 돼.’

레인디아는 자신을 다독이며 계속, 계속 걸었다.

“표지판이다.”

저 멀리 이정표가 보였다.

레인디아는 치마를 걷어 올린 채 달렸다. 그런데 표지판이 가리키는 길은 수풀이 무성했다. 마치 오랫동안 방치된 것처럼. 또다시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레인디아는 바닥에 떨어진 막대기로 수풀을 치우며 나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텅 빈 공터였다.

레인디아의 검은 눈동자가 허공을 방황했다.

분명, 마을의 흔적은 있었다. 민가로 추정되는 골조가 곳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랬다. 무너진, 아니, 오랫동안 버려진 마을이었다. 레인디아는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 지도는 틀림없이 최근에 만들어진 지도야. 그런데 왜…….’

왜 몰락한 마을이 표시된 거지?

“아우우우-!”

그 순간, 늑대 울음이 허공을 갈랐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멀쩡한 건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몸을 숨길 곳도 없었다. 기어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희망을 품고 도착한 곳이 공터라니. 이토록 끔찍한 악몽이 있을까? 아니야, 아니야. 부정하던 레인디아는 털썩 무너졌다. 바닥에 짓눌린 무릎이 아릿했다.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흐윽, 늑대가……, 이제, 끄, 끝이야.”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죄송해요, 백작 부인. 이렇게 가버리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아직 갚아야 할 죗값이 남아 있는데…….’

레인디아는 꾹 두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타앙-!

살벌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레인디아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사냥꾼인가? 레인디아는 웅크린 채 주변을 둘러봤다. 다시 저 멀리서 탕, 탕, 총 쏘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총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으니까.

“디아-.”

익숙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어디 있어, 디아-.”

에이든이었다.

“술래잡기하는 거야?”

탕탕!

“이 숲은 아직 늑대가 남아 있어서 위험해. 어서 내 쪽으로 와.”

탕탕!

에이든의 부드러운 부름이 끝나면 하늘로 향하는 총소리가 두 번씩 이어졌다. 총이 에이든을 대신해 분노하는 것 같았다. 레인디아는 가슴을 움켜쥔 채 헉헉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 찾았다.”

부스럭.

덤불 사이에서 곰처럼 거대한 몸집이 튀어나왔다. 에이든은 기다란 총 끝으로 앞을 가로막는 덤불을 밀쳐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에이든은 마치 레인디아가 여기 있을 거라 예상한 얼굴이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는 레인디아의 밑에 버려진 지도를 슥 주워들었다. 그가 지도를 흔들며 싱긋 웃었다.

“그럴싸하지? 내가 만든 지도야. 디아가 계속 같은 길을 빙글빙글 돌다 이곳에 도착하도록.”

그럴 수가. 이 남자는 대체…….

레인디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에이든의 손에 들려 있던 지도가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갔다.

“그거 알아, 디아? 방금 쏜 총알이 마지막이었어. 늑대가 나타나면 우린 둘 다 죽을 거야.”

에이든은 소총으로 바닥을 푹 내리찍었다. 그가 손을 놓자 소총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에이든은 두 팔을 벌려 레인디아를 감싸 안았다. 그의 숨결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즉, 우리는 죽는 순간도 함께란 거지. 낭만적이지 않아?”

소름 끼치는 속삭임이 레인디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걱정 마. 아직 죽기는 이르지. 디아도 여기서 늑대 밥이 되긴 싫잖아?”

“제, 제발…….”

“응?”

“저를 그냥 보내주세요. 제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다, 당신이 제게 한 짓,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에이든은 레인디아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하하. 말해도 딱히 상관없는데?”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는 소리에 레인디아는 목이 콱 막혔다. 저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엔 무한한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아아, 그랬다. 고작 백작가의 하녀 하나를 가뒀다고 해서 누가 황족인 그를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또 누가 제 말을 믿어줄까? 자신은 먼지만도 못한 존재였다. 레인디아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무력해. 이 남자의 앞에서 나는 너무나 무력해.

“내 평판을 걱정해 주다니 기쁜걸.”

또다시 레인디아의 말을 좋을 대로 해석한 에이든은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하지만 디아에게 화가 난 것도 진심이야.”

그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일단 돌아가자. 가까운 곳에 사냥용 별장이 있어. 물론 지도에는 그려두지 않았고.”

그가 레인디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 * *

- 공금 by Jira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붉은빛이 도는 나무로 만든 별장이었다.

레인디아는 텅 빈 눈으로 에이든의 품에 안겨 있었다. 에이든은 얼음처럼 굳은 레인디아를 소파에 앉혀 놓고 다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의 거대한 손안에서 열쇠가 구부러졌다.

“춥지?”

에이든이 구부러진 열쇠를 쥔 채 물었다. 레인디아는 황망한 눈으로 열쇠를 보다 푹 고개를 숙였다. 저벅저벅. 묵직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아직 난로를 고치지 않아서 사용할 수가 없어. 기둥이 막혀서 불을 피우면 별장 안에 유독 가스가 차거든.”

에이든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며 레인디아의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곤 두 팔로 소파 등받이를 붙잡은 채 레인디아를 내려다봤다. 레인디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무거운 침묵을 가른 것은 에이든이었다.

“우리가 제법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내게 거짓말을 했어. 왜 도망친 거야, 디아?”

레인디아의 입술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에 압도당해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던 에이든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가 재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레인디아가 남기고 간 압화 브로치였다.

“회귀 본능 같은 걸까? 짐승들은 성장한 뒤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습성이 있거든. 문제는 그 본능이 산란을 위해서란 거야.”

압화 브로치를 매만지는 에이든의 손등에 핏발이 섰다.

“나한테 도망쳐서 다른 새끼 애라도 배려고?”

에이든의 질문에 레인디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그녀는 충격으로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왜? 내가 디아를 괴롭게 했어? 처음에 죽이려고 했던 건 미안해. 그땐 디아가 수컷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오해가 풀린 뒤엔 쭉 다정하게 대해 줬잖아?”

“다, 다정하게, 라니, 저, 저를. 저를…… 범하셨잖아요……?”

레인디아는 가슴을 꽉 움켜쥔 채 대답했다.

“아. 강간 말하는 거야? 뭐, 처음엔 그랬지.”

에이든은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다.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뻔뻔하게 덧붙였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다른 새끼한테 당하느니 나한테 당하는 쪽이 나아. 무엇보다 결국엔 디아도 좋아졌잖아? 내가 만지기만 해도 달아오르는 음란한 몸이 돼버렸는걸.”

에이든은 눈을 휘어 웃으며 브로치에 입을 맞췄다. 마치 그의 혓바닥이 입 안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레인디아는 어깨를 움츠렸다. 다시 에이든이 입을 열자 브로치 표면에 뿌연 입김이 꼈다. 곧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날 내가 너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말이야. 그 새끼들한테 강간당했을지도 모르겠네. 그놈들의 씨를 받아서 지금쯤 배가 불렀을까? 자유롭게 풀어줘도 마찬가지야. 너는 사랑스럽고 네 몸은 너무나 아름다워. 노리는 놈들이 많다고.”

브로치를 짓누른 입술 틈새로 으드득 이가 갈렸다. 에이든은 슥 고개를 들었다. 그는 위압적인 자세로 레인디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단언컨대, 디아는 나와 있는 쪽이 여러모로 나아. 바깥은 위험해.”

“저, 저는…… 가짜잖아요. 그 여자의 대신일 뿐이잖아요. 저를, 죽이진 않을 건가요? 질려서, 그래서…….”

레인디아는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불안감을 내비쳤다. 에이든의 눈이 가늘어졌다. 격양된 표정이 느슨해졌다. 에이든은 기가 막히단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디아도 참. 나를 얼마나 미친놈으로 보는 거야? 내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디아와 내가 전에 말한 여자는 이제 완전히 별개의 존재야. 나는 널 사랑하는 거야, 디아. 모르겠어?”

그 뻔뻔한 태도에 미친 소리를 하는 건 자신이고 정상은 에이든인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 이 선물 마음에 안 들어.”

에이든은 토라진 얼굴로 브로치를 바라보다 툭 바닥에 떨어트렸다. 사뿐히 그 위를 밟자 구두 굽 아래에서 우지끈 유리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레인디아의 영혼도 함께 뭉그러졌다. 처절한 무력감이 그녀의 목을 졸랐다.

“나는 꽃말처럼 디아를 잊을 생각이 없거든. 네가 나를 잊어도, 난 잊을 마음이 없다고.”

에이든이 목에 힘을 줘 말했다.

에이든의 그림자가 레인디아의 유약한 육신 위로 내려앉았다. 에이든은 천천히 몸을 숙여 두 팔로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귓바퀴에 그의 유려한 입술이 내려앉았다.

“내게 있어 망각이 기쁨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러니 디아. 오늘 일을 똑똑히 기억해. 디아는 말이야, 나한테서 절대 못 도망친단 사실을. 이참에 몸과 머리에 각인시키는 게 어떨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