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2화 (2/203)

2화. 거자필반(去者必返) (1)

“창문 닫아라.”

운전 중인 모친의 말에 예결은 손잡이의 창문 개폐 버튼을 눌렀다. 멀미 때문에 속이 메슥거렸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꾼 꿈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안 돼!’

머릿속을 맴도는 한 사내의 목소리에 예결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 꿈을 꾸는 날이면 항상 나쁜 일이 일어났다. 굳이 따지자면 재수 없는 꿈인 셈이다.

그럼에도 예결은 이 꿈을 싫어하진 않았다.

“동해는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간 게 반년 전이던가.”

조수석의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대화에 낄 수 없었던 예결은 그냥 침묵을 유지했다. 부부는 어디 시장에서 먹은 닭강정과 오징어순대가 맛있었고 밤바다가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눴다.

어차피 잠들 순 없을 테지만 눈 감는 시늉이라도 할까 싶어 예결은 숨을 골랐다. 자신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가족 여행을 나온 참이니 분위기를 깨고 싶진 않았다.

“음? 여기 도로 공사 중이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체가 쿵! 하고 거칠게 흔들렸다. 연이어 소음이 예결의 귀청을 두드렸다. 무언가 둔중한 것이 이리저리 부딪히다가 꺾이는 소리, 과열된 엔진의 으르렁거림.

“악!”

곧이어 들린 단말마와 함께 전신에 고통이 엄습했다. 잔뜩 곤두선 예결의 감각이 주변의 정보를 주워 담았다.

살과 가죽이 타는 냄새, 아주 오래전에 맡아본 적 있는 비릿한 혈향과 그 위를 덮어씌우는 매캐한 탄내.

가슴이 무언가에 짓눌려 숨을 쉬기 힘들었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운전석 쪽에 꺾인 손이 보였다.

기울어진 시야가 벌겋게 물들어 보였다.

그 모든 혼란과 소요를 뚫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무 세게 밀치지 말랬잖아. 타깃이 죽었으면 어쩌려고.”

“그걸 농담이라고 하나? 에스퍼 내구도가 인간처럼 형편없는 줄 알아?”

안 그래? 하는 질문과 함께 문틈으로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철이 아니라 마치 찰흙이라도 다루듯 차 문이 뭉개지는 모습이 기괴했다.

콰직하고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과 함께 저편의 에스퍼가 모습을 드러냈다.

“봐, 살아 있잖아.”

이 정도는 해 줘야 얌전하다며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는 모습이 역했다.

“꺼……져…….”

상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쑥 안으로 들어온 손이 예결의 머리채를 휘어 감았다. 차 문을 뜯어낼 정도의 어마어마한 악력에 몸이 끌려갔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두피가 당겨지는 감각보다도 손목이 저릿저릿했다. 어릴 적, 처음 힘을 각성했을 때 새겨진 봉인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모든 미성년자 에스퍼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봉인을 통해 능력을 억제한다.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에스퍼의 등장 후 통과된 각성자 인권 조례도 이에 한몫했다.

예결은 성인이 되긴 했으나 아직까진 봉인을 남겨둔 상태였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가이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음에도 매칭 파트너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비실비실한 게 S급이라는 첩보가 확실해?”

“만약 아니면 알려준 놈 목을 날려버림 되지, 뭐가 문제야. 그리고 요새 인력난이 얼마나 심한데 S급이 아니라 A급이어도 감지덕지하지.”

마치 마트에서 장이라도 보듯 재잘재잘 떠드는 저들의 음성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누가…… 그쪽 마음대로…….”

예결은 입술을 달싹였다.

제 부모를 죽인 자들이다. 원수에게 협력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의 연한 갈색 눈이 서서히 노란색으로 변해갔다. 손목, 정확히는 능력 봉인이 존재하는 자리에서 샛노란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폭주의 조짐이다.

지금이라면 언제나 억눌려 있던 힘을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제로 끌어 올린 힘이 통제에서 벗어날 것만은 확실했다. 매칭된 가이드 한 명 없이 폭주한 에스퍼의 말로는 뻔하다.

열에 아홉은 죽고, 한 명은 폐인이 된다. 그나마도 추가 폭주의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폐기당하겠지.

하나 예결의 분노가 그의 이성을 압도했다.

“뒈지고 싶은 게 아니면 능력을 조절하는 게 좋을 텐데.”

협박을 읊는 이는 특수한 재질로 이루어진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예결이 S급이라는 정보 외에도 그의 능력이 전격계라는 것까지 새어나간 모양이다.

갓 성인이 된 시점이라 가이드 매칭 전까진 능력이 봉인된 예결을 상대하러 왔으면서도 준비가 철저했다.

“잘 생각해. 계속 반항하면 이 자리에서 지워버릴 거니까. 너 같은 새끼들이 살아서 정부의 개가 되면 이쪽은 못 해도 수십이 죽어 나가거든.”

부모님의 피인지 제 피인지 모를 붉은 액체가 뺨에 튀어 있는 여자가 씨익 웃었다.

그 웃음에서 예결은 애초에 저들의 목적이 납치와 사살 중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말했잖아. 인력난이라고.”

운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부모님과 가는 첫 여행이었다. 어린 나이에 괴물로 각성한 아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사이였음에도 예결이 처음으로 가져본 가족이었다.

그런데 하필 반정부 연합 소속 에스퍼의 타깃이 되어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줄은 몰랐다.

“사람은 너무 쉽게 죽는데. 그걸 잊고 있었네.”

예결은 웅얼거렸다. 비통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혼잣말은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게 들렸다.

이 세계는 그에게 너무도 평화로웠다. 에스퍼로 각성하긴 했으나 아직 미성년자인 그에게 게이트며 괴물, 그리고 반정부 연합 에스퍼의 테러 따위는 너무도 먼일로 느껴졌다. 철저히 보호받고 있었으니까.

손목의 검은 띠를 따라 전류가 일어나며 화상이라도 입은 양 살갗이 타들어 갔다. 그의 멱살을 쥔 여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뭐라 뭐라 욕을 지껄이는 게 들렸다.

시야가 희게 타들어가며 벼락이 그들이 선 자리에 내리꽂혔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몇 번이고 거듭하며.

“폭주다!”

포로의 이변을 알아챈 습격자가 예결의 몸을 내던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차체에 부딪혔다.

예결 대신 차의 엔진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온몸으로 번져 나간 전류 때문이었다.

불길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나며 예결의 시야를 가렸다. 심지어 무언가 끈적거리는 게 흘러내려 눈꺼풀 위를 적셨다. 그럼에도 예결은 집요하게 습격자들의 그림자를 시선으로 쫓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팔을 뻗은 그의 손끝에서부터 벼락이 일었다.

“큭!”

흐릿하게 고통스러운 신음 같은 게 들렸다. 예결의 입꼬리가 느릿느릿하게 올라갔다.

놈들의 뒤를 쫓는 전류는 예결의 피와 살도 함께 태우고 있었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고통보다도 아주 오랜 잠을 약속받은 눈이 가물가물 감기려는 것을 버티는 게 더 중요했다.

이도 그렇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엔진이 터질 때 그를 포위한 화마가 살금살금 가까워지고 있었다.

죽음은 어느새 턱 끝까지 닥쳐왔다.

‘전생보다 좀 오래 살아보나 했더니.’

우습게도, 예결이 마지막 순간에 떠올린 건 부모님의 얼굴이 아니었다.

언제나 꿈에 나오던 한 남자가 보였다. 찢어진 곤륜파 도복 차림에 손에는 검을 쥔 이가 예결을 부른다.

‘안 돼! 사제, 사제!’

죽으면 이번에도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까무룩 잠들기 전, 예결이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

‘허억.’

깨어난 예결은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어두운 바닷속에 파묻혀 있다가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호흡이 힘들었다. 성대가 망가지기라도 한 건지 비명과 신음 모두가 한 몸처럼 고요하다.

바닥을 짚고 고개를 들어 올린 그는 주변을 살폈다.

분명 고속도로에서 절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안개 낀 강가였다. 아니, 안개가 낀 건 제 시야인가?

온통 흐릿하기만 한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시각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고통만은 선명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예결의 살을 조각칼로 찬찬히 그어 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 순간 살갗이 들쑤셔진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불길은 엔진이 폭발하던 순간 그의 몸 안으로 옮겨온 게 분명했다.

연달아 그를 찾아온 것은 이명이었다. 차가 미끄러지며 나던 소음, 부모님의 비명과 여상한 대화가 뒤섞이고 또 그에게 찾아든 자들의 협박이 온통 뒤섞여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게 바로 폭주의 후유증이라면 살아남은 에스퍼에 대한 정부의 ‘처분’은 차라리 인도적인 절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새끼들, 살아 있겠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예결은 입술을 깨물었다. 능력을 써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살상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제힘으로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예결은 기이하리만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예결이 생각하기에도 제 도덕성은 21세기 한국인의 것이라기엔 참으로 얄팍했다. 센터에서 만난 강사가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은 몰라도 사람은 해쳐서는 안 된다고 교육했지만 전부 허사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결에게는 한국보다 무법천지였던 세상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보던 풍경이랑 비슷하긴 하네.’

고통을 잊기 위해 애써 희끄무레한 주변으로 신경을 돌리려 한 예결은 멈칫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곳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홀연히 나타난 까닭이다.

‘습격자?’

무심코 떠올린 생각에 예결은 고개를 내저었다. 실루엣이 지나치게 치렁치렁하다.

무엇보다도, 주변 풍광이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처럼 이 인영도 어쩐지 낯익었다.

“누, 누구?”

마치 개구리를 잡아먹은 마녀처럼 기괴한 목소리다. 제가 듣기에도 끔찍한데 상대의 귀에는 어떨까 싶었다.

폐에 물이 찬 것처럼 점점 호흡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기침을 내뱉던 예결은 어느 순간, 왈칵 피를 토해냈다. 거푸집으로 찍어낸 듯 꼭 같은 고통이 수십, 수백 번을 반복했다. 예결은 자신이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습격당할 때 겪은 건 일반적인 폭주가 아니었다. 봉인을 억지로 찢어발기고 능력을 사용한 후유증까지 더해져 예결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윽.”

연거푸 가슴을 틀어쥔 채 헐떡이자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시력을 잃은 건 아니었다. 조금 멀찍이 떨어져 서 있던 인영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나를 죽, 죽여.”

가까스로 그 옷자락을 붙든 예결이 애원했다. 상대가 누구든 이 고통을 끝내준다면 평생의 은인으로 삼으리라.

가이딩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만, 각성한 순간부터 십 년도 넘게 찾아다녔음에도 만나지 못한 매칭 가이드가 이 허허벌판에서 나타날 턱이 없다.

“제발……. 자비를.”

피 칠갑을 한 사람이 죽여달라고 애원하면 보통은 도망가기 마련인데, 상대는 예결의 참혹한 상태에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예결?”

서늘한 음성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상대의 손이 예결의 얼굴을 감싸며 들어 올렸다. 타인의 접촉에 저항할 기력조차 없었던 예결의 뿌연 두 눈이 커졌다.

머릿속을 두들기던 이명이 멈추고, 살갗을 저미던 고통이 사그라든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불길마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그건 성난 파도를 어루만지는 바람이었다. 황폐한 대지에 내리는 비 한줄기였으며 동시에 가장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닿은 기적이었다.

피와 먼지로 얼룩덜룩한 예결의 뺨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이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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