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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25화 (25/203)

25화. 사천당가 (4)

“옳지. 잘 간다. 우리 뱀뱀이 천재다. 천재.”

짝짝 박수 소리에 뱀뱀이가 스르륵 기둥을 타고 이동했다.

“그래. 그래, 그쪽.”

보기에는 아기가 첫걸음마 시도를 할 때 추임새를 넣는 보호자 같긴 했지만, 예결은 아주 극도로 집중하는 중이었다.

“아니, 아니. 거기로 들어가면 안 되고. 그보다 옆.”

문제는 뱀뱀이가 영물이라 예결의 말을 거의 알아듣긴 해도 인간의 방에 어떻게 잠입하는지는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예결은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길을 따라 이동해서 숨어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먼저 능력을 사용해서 아주 섬세하게 길을 만들어냈다. 그럼 뱀뱀이는 뇌전의 흐름을 깨닫고 그 길을 따라 움직였다. 잠입 방법을 배우자고 건물을 홀라당 태울 수는 없으니 힘을 아주 세밀하게 조절해야 했다.

몇 번 기둥을 타고 오르내리며 천장을 위주로 움직이는 뱀뱀이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는 이상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결은 작은 뱀에게 신신당부했다.

“이런 독 냄새가 나는 게 있으면 슬쩍 가져오면 돼. 알았지?”

작은 자기병의 뚜껑을 열자 뱀뱀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 독은 당가에서 자주 쓴다는 칠혼독으로 기본 독공을 수련할 때 사용되는 가성비 최고의 독이었다.

예결이 당가에서 주로 쓰는 독이 필요하다니까 채 반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그의 앞에 칠혼독이 대령되었다.

‘채 일곱 걸음을 옮기기 전에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는 칠보추혼독만큼 귀하진 않을 테지만 이것도 독은 독일 텐데……. 정말 수완이 좋단 말이야.’

충분히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한 예결은 삼랑의 야행복 소매를 싹둑 잘라서 만든 천을 뱀뱀이의 머리에 씌워졌다. 예쁘게 턱 아래에 묶고 나니 복면이라기보다는 빨간 망토의 검은 버전처럼 보였다.

“조심히 다녀와.”

예결은 애써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어차피 기분을 내기 위해서 저지른 거였다.

처음엔 저 반짝이는 비늘을 어떻게 가릴 방법이 없나 하고 빛 반사가 잘 안 된다는 삼랑의 야행복을 탐낸 거였다. 문제는 뱀이 배밀이 방식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 몸을 천으로 칭칭 감으면 움직이질 못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뱀뱀이의 패션쇼는 흥행하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머리에 두건을 하나 남긴 건 예결의 못다 핀 욕심의 흔적이었다.

“강탈당한 제 옷소매가 좋은 일에 쓰인다니 기쁘군요.”

“잠입에는 복장이 필수라고.”

“업계에 대대로 내려오는 격언도 그런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뱀에게 복면이 필요할까요? 하는 뒷말을 삼킨 삼랑은 서글픈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틈 사이로 날렵하게 사라지는 뱀 꼬리가 그녀를 약 올리듯 사라졌다.

신축성이 좋고, 통풍이 잘되는 데다가 이런저런 암기를 숨기기에 좋았던 그녀의 암행복 옷 소매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뱀뱀이를 정찰 보낸 예결은 삼랑을 거느린 채 느긋하게 장원을 거닐었다. 알리바이를 위해서였다.

‘대사형 이후로 누굴 이렇게 정성껏 속여보기는 처음이네.’

진삼 행수가 돌아오는 게 보였다. 선물 같은 건 받아오지 않았으나 질펀하게 마신 티가 났다.

[슬슬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요?]

이때다 싶었는지 삼랑은 전음을 보내 예결에게 귀환을 촉구했다. 말귀를 어느 정도 알아먹는 영물이라고 해도 천년뇌각망을 아무 데나 풀어놓은 예결이 이토록 여유롭게 구는 게 영 신기했다.

“날씨 좋다. 공기도 좋고.”

삼랑이 보낸 전음에도 예결은 느긋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뱀뱀이가 내뱉는 파장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종류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았다. 지금 뱀뱀이는 방에 안전하게 돌아온 상태였다.

“곧 밤이라 쌀쌀한데 이렇게 오래 나와 계시면 감모 드십니다.”

전음을 보내거나 눈치만 주던 삼랑이 본격적으로 채근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찬 바람 너무 오래 안 쐴 테니까.”

느긋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삼랑은 자신이 먼저 남을 닦달하는 처지가 된 게 퍽 놀라웠다.

뱀뱀이가 걱정되어서 돌아가자는 건 맞았다. 대단한 정이 들어서라기보다는 천년뇌각망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아깝기 때문이었다.

‘뭐, 귀엽긴 했지.’

[이렇게 강심장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삼랑의 말에 예결이 빙그레 웃었다. 이래 봬도 빨리빨리의 민족이다. 단지 지금은 급하게 갈 이유가 없었다.

이미 진삼이 무슨 짓을 했는지 빤히 알고 있는 데다가 당가와의 계약도 끝났다.

그 증거는 일종의 받아쓰기 만점 시험지 같은 거다. 나중에 하량에게 돌아가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을 용도일 뿐, 한두 시간 빨리 손에 쥔다고 해서 당장 대사형의 곁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역시 번개 뿜는 능력보다는 순간이동 능력 같은 걸 각성했어야 했어.’

예결은 조용히 탄식하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뚱한 낯으로 꽃구경에 골몰하던 삼랑은 예결이 정말 방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걸 깨닫고 빠르게 따라붙었다.

행수가 머무르는 방문 앞을 지나는데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예결이 이를 무시하고 방에 들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뱀뱀이가 기둥에서 스르륵 내려와 조용히 착지했다. 입에는 제 몸보다 큰 장부를 들고 있었다. 삼랑의 후각은 저 장부에서 칠혼독의 냄새를 잡아냈다.

‘이걸 진짜 해냈다고?’

감탄과 경악 서린 눈으로 쳐다보자 뱀뱀이가 제법 우쭐한 양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삼랑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비볐다.

“수고하셨습니다.”

예결이 한 손을 척 들어 눈가에 붙이고 장난스레 경례하자 뱀뱀이가 갸우뚱했다. 그러나 매정한 주인님은 뱀뱀이의 의문을 해소해주지 않은 채 제 손에 들어온 장부를 확인했다.

“완전 결정적이다! 하고 말하긴 어려운데 자기 선상에서 당가의 편의를 엄청나게 봐줬네. 어디 보자……. 삼 년 전부터인가?”

“원래는 청성파도 우리랑 일하려고 했었는데 당가로 최종 낙점한 것도 진 행수인 모양이고. 보아하니 당가가 간발의 차로 청성보다 저렴한 가격을 불렀나 봐.”

그때의 당가 측 책임자도 당서악이라 적혀 있었다.

“아주 죽마고우가 따로 없네.”

예결은 혀를 끌끌 차며 이를 삼랑에게 건넸다.

“계약 파투 낼까요?”

그녀는 어제 했던 제안을 또다시 건넸다.

“일 배우러 왔는데 뭐 하러 깽판을 놔.”

“상단 주인이 문 공자신데요, 뭐.”

사천당가와 척지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일이 잘못 돌아갈 경우를 대비해 주군은 그녀를 문예결의 곁에 붙였다.

행여 유혈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예결 한 몸 빼돌리고 뒷정리를 한 뒤에 돌아가면 그만이다.

“아니, 내가 좀 말을 이상하게 했네. 깽판을 안 놓겠다는 게 아니라, 좀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는 거지.”

예결은 그냥 깽판보다 더한 걸 하고 싶었다.

“이쪽이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할 생각은 없는데. 어찌 됐건 진 행수가 내 대리인으로 나섰던 거잖아. 명백한 증좌도 없는데 어떻게 계약을 엎어? 아무리 우리가 갑이어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굴면 안 되는 거야.”

예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삼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증좌는 거기 상단주님 손에…….”

예결은 이미 진삼 행수의 장부를 뱀뱀이 입에 물려주고 있었다.

“증거가 어디 있다고?”

뭐라 제대로 된 명령을 들은 것도 아닌데 뱀뱀이는 꾸물꾸물 기둥을 타고 천장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천년뇌각망이라면 진삼이 거하게 코를 고는 사이 남몰래 장부를 원위치에 돌려놓고도 남는다.

이를 올려다보던 삼랑은 주체하기 힘든 질투심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저게 파는 거였으면 주군한테 사달라고 바닥에 드러눕는 건데……!’

살수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도 남을 영물, 아니. 뱀뱀이었다.

“음. 제가 잘못 봤나 봐요. 아무것도 없네요.”

삼랑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평소 느릿느릿한 행동을 보면 이렇게 눈치가 빠를 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제 좀 대화가 통한다는 생각에 예결이 배시시 웃었다.

“사천당가에서 이렇게 큰돈을 받는 대신 일을 아주 잘하기로 했잖아. 요새 기승이라는 녹림이 만나서 상행이 싹 털리기라도 하면 아주 큰 일 나겠어. 그렇지?”

예결이 여 들으라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삼랑의 눈썹이 움찔했다.

본인이 상인이라고 주장한 주군이나, 상단주로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다는 일이 자기 상단 털어먹는 예결이나…….

“어떻게 생각해? 당가 기둥 하나 정도는 해먹을 수 있을까?”

“사천당가의 기둥은 깊게 뿌리내리는 편이긴 하지만, 뭐 한 개 정도라면 쥐고 흔들어 볼 수는 있겠지요.”

둘 다 삼랑의 마음에 쏙 들었다.

“좋아. 그럼 가자.”

드디어 제 할 일을 찾은 예결의 눈이 반짝반짝 빛냈다.

“산채 접수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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