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흑귀 (5)
“당가의 배상이 도착했습니다.”
삼랑이 경쾌한 투로 보고했다.
흑점에 다녀온 후부터였던가? 삼랑은 나무늘보에서 거북이로 진화한 것처럼 굴고 있었다.
“소규모긴 해도 다른 상행을 청성과 아미의 속가문파에 맡긴 걸 의식하는 눈치였어요.”
“역시 발등에 기름을 부어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예결은 흡족하다는 듯 뱀뱀이를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뱀뱀이는 예결이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그의 새끼손가락에 몸을 감아왔다.
무려 천년뇌각망의 애교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며 예결은 질문을 던졌다.
“그 산적 놈들은? 잘 챙겼어?”
사람을 무슨 표물 취급하는 예결의 말에도 삼랑은 동요 한 점 없이 답했다.
“흑점을 통해 구한 장원에 잘 넣어 두었습니다. 아직 도망치거나 할 기미도 없습니다.”
“행수는 어떻게 처리했고?”
“말씀하신 대로 승진시켜 일단 상단의 자질구레한 업무를 맡게 했습니다. 몇 달 내로 큰 실수를 했다는 게 밝혀져 스스로 물러나게 될 겁니다.”
진삼 행수와 손을 잡은 당서악이라는 자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채긴 할 테지만 이 정도면 남들은 뭐가 문제가 됐는지도 모를 터다.
“그럼 이제 흑점을 통해 팔아치운 물건의 대금만 기다리면 되겠네.”
상황이 특수하긴 했으나 무려 세 배의 이문을 남긴 셈이니 대단한 흑자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성과가 대단하군요.”
아부라도 진심으로 하는 삼랑이지만 이 감탄은 일부러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예결은 짐짓 어깨를 늘어뜨리며 답했다.
“대사형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제여야 하는데, 너무 발끈하는 바람에 요령을 잔뜩 부린 거 같아 걱정이야.”
“무얼 하든 잘했다고 하실 겁니다.”
삼랑은 진심 어린 격려를 입에 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주군은 사제가 청해상단을 풀썩 주저앉혀도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냐고 물어볼 게 분명하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우리 상단이 뭘 팔면 좋을지 고민해 봤거든.”
예결은 눈을 빛냈다.
“대추나무 좀 구해줘. 살아 있는 걸로. 돈 좀 남으면 대추나무 군락지가 있는 산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말을 하다 말고 생각에 잠긴 낯을 보며 삼랑은 떨떠름하게 물었다.
“대추……나무 말씀이십니까?”
“벼락 맞은 나무를 팔아보려고.”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가장 잘하는 걸 하면 된다.
손을 내밀자 따로 언질을 준 것도 아닌데 뱀뱀이가 몸을 세우고 혀를 날름거렸다.
분홍색 앙증맞은 혀가 움직이는 걸 보며 삼랑은 새삼 이 자그마하고 깜찍한 생명체가 산채 하나를 통으로 태워 버렸다는 걸 상기했다.
“벽조목이라니.”
삼랑이 혀를 내둘렀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인 벽조목은 도장도 파고 부적으로도 쓰이는 등 여러 사치품에 들어간다. 게다가 큰 조각을 구하기 힘들어서 부르는 게 값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내로라하는 고관대작 사이에서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여러모로 유행이었다. 부유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림사에서는 옥으로 된 염주뿐이 아니라 벽조목으로 만든 염주도 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여도 알아볼 사람은 그게 얼마나 귀한지 알아보기 때문이다.
“누가 영물로 장사를 하나 했더니……. 우리 상단주님이 하시는군요.”
아직 대단한 수완가라고 말하긴 어려우나 유일무이한 힘을 부리고 또 그걸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감각만은 알아줄 만하다.
“정말 사고방식이 유연하시군요. 보통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벽조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팔아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할 텐데.”
삼랑은 혀를 찼다.
보통 사람은 번개가 치면 하늘이 노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벼락 맞은 나무를 찾아 파는 사람은 있어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금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중원의 사고관과 좀 먼 신강에서 나고 자란 삼랑조차 께름칙함 정도는 느낀다.
“인위적이라니? 얘는 영물이잖아. 영물은 하늘이 내리는 거고.”
예결은 뻔뻔하게 답했다.
누가 봐도 천지신명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다른 이라면 불경하다고 한 소리 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삼랑이 몸담은 단체는 천지신명을 섬기지 않는다.
삼랑은 일말의 불편함을 훌훌 털어내며 답했다.
“그으런, 네. 알겠습니다. 대추나무 군락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아니면 적당한 기후의 산을 사들여서 처음부터 심는 것도 괜찮을지도…….”
분명 주군이 처음 주워 왔을 때만 해도 숨이 넘어갈 듯 간당간당하던 연약한 청년이었는데, 겪을수록 새롭다.
“둘 다 하자. 둘 다.”
“아, 벼락 맞은 감태나무도 연수목이라고 불리는데 이것도 지팡이로 만들어 팔면 꽤 인기가 좋습니다. 용 눈 같은 무늬가 생기거든요. 무당파나 곤륜파 같은 도가 계열 문파의 도사님도 자주 찾는대요.”
어차피 이미 저지른 신성모독, 화끈하게 한술 더 뜨는 삼랑의 발언에 예결은 찬성했다.
“좋아. 감태나무도 매입하지.”
돈 들어오기가 무섭게 돈 쓸 구석이 생겨났음에도 예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단 제 손에 쥐어진 상단의 규모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든 걸 생소한 수치로만 확인해서 그런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일단 완제품으로 팔아야 할 테니까, 괜찮은 목수가 있으면 그것도 알아보는 게 좋겠지? 품질 좋은 벽조목으로 살살 꾀는 거야.”
“그것도 알아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예결은 멈칫 망설이는 티를 냈다. 삼랑이 먼저 질문을 던질 때까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 흑점의 사천 분타주에게 내가 결례를 범한 거 같아서.”
“정말로 결례를 범했다면 공자님의 목과 몸통을 분리했을 사람이니 괜찮을 겁니다.”
제하량과 흑귀가 동일인이라는 걸 숨겨야 하는 삼랑이 냉큼 답했다.
“아니. 내 말은 사례를 하고 싶다고.”
“아…….”
새침해진 예결의 눈초리에 삼랑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안면 정도는 있는 사이 같던데, 혹시 흑귀 님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
“하오문 것들은 돈 귀신이라 돈을 제일 좋아할 겁니다.”
최대한 주군과 다른 인상을 주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꺼낸 말이었다. 예결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삼랑의 어깨를 다독였다.
“정말 얼굴만 아는 사이였구나. 앞으로 뭐 처리할 게 있으면 계속 흑점 사천 지부를 통하는 게 좋겠어. 계속 만나다 보면 뭘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겠지.”
“지금 제 관찰력을 의심하시는 건가요?”
“대인 관계는 좀 의심하고 있어.”
삼랑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포기했다. 예결의 안목은 비교적 정확했다. 삼랑에겐 친우라 불릴 만한 인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흑귀 님이 하오문 소속이라고?”
“아마 그럴 겁니다.”
“아마?”
“밑바닥 일 하는 치들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숨기기 마련이니까요.”
삼랑은 모호하게 웃었다. 사실 그녀는 이런 것까지 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적은 없다.
다만 삼랑은 예결에게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진짜 제하량이 무언지도 모르는 채 그를 알아본 어린 청년. 조금의 단서가 더 주어진다면 예결이 무엇을 더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말이다.
만약 진영이었다면 예결이 흑귀에게서 제하량을 읽어낸 순간 주군을 더 꽁꽁 싸매 숨기려 했으리라. 그러나 삼랑은 진영과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이 좋고, 안전한 일보다 위험한 일이 즐겁다. 이건 삼랑의 고질병 같은 거였다. 만약 제하량이 그녀에게 고삐를 채우지 않았다면 수년도 전에 죽었을 거다.
“이해했어.”
예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시하신 바를 수행하러 가보겠습니다. 외출하실 생각이라면 꼭 시비를 불러 제게 언질을 주십시오.”
“그래그래.”
예결은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삼랑은 그의 손목에 매달린 뱀을 짧게 응시한 뒤 소리 없이 방을 나섰다.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긴 마침 모퉁이를 돌던 진영과 마주쳤다.
“안녕.”
“웬일로 인간 몰골을 하고 있군.”
아닌 게 아니라 보통 검은 무복을 입고 다니던 삼랑은 가벼운 경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손바닥의 흉터 같은 것만 아니라면 평범한 일꾼처럼 보였다.
“자숙 기간이야. 주군께서 성까지 붙여서 내 이름을 부르셨거든.”
“대체 어쩌다가?”
진영이 혀를 찼다.
“문 공자를 혼자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웬 불한당이 들이닥쳤지 뭐야?”
“호위는 호위 대상을 혼자 두는 게 아니다.”
삼랑이 또 일을 설렁설렁 처리했다고 생각한 진영의 입매가 딱딱해졌다. 주군에게 찰싹 붙어 다니는 문예결이 수상한 것과 삼랑이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건 별개의 일이었다.
“아니, 그게.”
삼랑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예결을 혼자 둔 건 본능의 속삭임을 따른 거였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외에는 도무지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단순히 그 영물 때문만은 아니다.
삼랑은 무의식중에 예결을 ‘강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삶의 절반 정도는 밤이슬을 맞으며 거닐었던 삼랑은 온갖 종류의 인간을 봐왔으며 그들의 목숨을 취했다.
살행을 나설 때면 찰나의 판단이 생사를 가르기 마련이다. 하여 삼랑에게는 직업병이 하나 있었다. 암살 목표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오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직업병이 습관으로 굳어졌다는 데 있었다. 삼랑은 제가 접하는 이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특징을 머리에 담곤 했다.
예결에게서는 강자 특유의 여유가, 그 오만함이 느껴졌다. 단전도 없는 인간에게서 위험의 냄새를 맡는 일이 아주 없진 않았으나, 예결은 어느 모로 보나 일반인에 한없이 가까웠다.
까닭에 삼랑은 이 위화감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튼. 앞으로는 충실한 호위로 거듭날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아.”
본능대로 움직였다고 하면 홍여는 곧이곧대로 믿어줘도 진영의 눈은 또 세모꼴이 될 거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그녀가 실수한 건 맞았다.
그 무뢰한이 손목만 잡고 끌고 다녔기에 망정이지 만약 나쁜 마음을 품고 칼질이라도 했다면…….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한에 삼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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