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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58화 (58/203)

58화. 궁지에 몰린 쥐는 (3)

아뿔싸!

당언보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금룡채와 사천당가가 연합해서 교룡채를 치기로 했는데 이 상황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당했군.”

당서악이 이를 악물었다.

남궁세가가 코앞에 있는데 금룡채와 협력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교룡왕을 치기 위해서라지만 같은 오대세가에게 언질조차 없이 수적 무리와 손을 잡은 게 들켰다가는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교룡왕 직속 금룡채가 왔다!”

“우리는 이제 살았다!”

그들이 쫓던 배 위의 산적들이 얼싸안고 외쳤다. 수적이 일러준 대로 ‘교룡왕 직속’이라는 말에 힘을 주는 산적의 목소리가 당서악의 머리를 징징 울렸다.

원래 남궁세가가 대기하는 장소는 여기가 아니었다. 까닭에 당가는 마음 놓고 교룡선과 산적을 추적했던 것이다.

“금룡채 어르신들이 오셨으니 너희는 다 장강의 물고기 밥이 될 것이다!”

은근히 거리가 좁혀져 있던 탓에 녹림채주의 외침은 당가의 귀로 쏙쏙 들어왔다. 시키는 대사는 다 했음에도 보너스를 갈망하는 산적의 도발이었다.

가까스로 평정을 가다듬은 당언보가 외쳤다.

“저 산적 놈들 배를 나포하라! 이 배가 가라앉고 있으니 놈들의 배로 옮겨간다!”

당서악이 세운 계획이 뒤틀렸으니 하다못해 두 번이나 훼방 놓은 저 산적 놈들이라도 잡아야 했다.

그사이 당가의 배에 올라탄 금룡채의 수적들이 교룡선을 향해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던졌다.

여태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던 교룡선은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멀어졌다.

산적들의 외침이 아련한 메아리처럼 장강에 퍼져 나갔다.

“그럼 계획대로 금룡채주님께 뒤를 맡기겠습니다!”

“사천당가와 남궁세가의 발목을 잡아 주십시오!”

당서악의 눈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저 썩을 것들이…….”

당언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돌아본 사촌누이는 고개를 천천히 내젓는 당서악의 모습에 한 걸음 물러났다.

“당가는 전원 금룡선을 공격한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가의 배에 올라타 있던 금룡채의 부채주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물었다.

“일이 곤란하게 되었소. 보시다시피, 남궁세가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우리의 협력을 드러낼 수 없게 됐소.”

“그렇다면 최소한 금룡선이 물러날 시간을!”

“그건 곤란하지.”

당서악의 손이 부채주의 가슴을 꿰뚫었다. 온화한 척 둘러쓰고 있는 미소가 갈라지고 난 자리에 남은 것은 비정하기 짝이 없는 악당의 얼굴이었다.

“이 배가 가라앉고 있으니 말이야……. 갈아탈 게 필요하지 않겠소?”

그 속삭임을 들었음에도 당언보는 슬쩍 몸을 움직여 사촌 오라버니의 모습을 숨겼다.

“사후의 악명은 후하게 쳐줄 테니 편히 눈을 감으시오. 내 강호에 금룡채의 수적이 당가의 배에 구멍을 내고 올라타서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고 알리지.”

금룡채 부채주의 입에서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당서악이 손을 거두며 암기를 쏘아 보내자 부채주를 향해 다가오던 금룡채의 수적 셋이 비틀거렸다.

“이놈!”

그중 하나가 가까스로 암기를 피해 당서악에게로 몸을 던졌으나 그 수적마저 사천당가의 무인이 등을 향해 날린 비수에 뒤통수가 꿰뚫리고 말았다.

제 앞에 쓰러진 수적의 몸을 걷어찬 당서악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긴 밤이 되겠군.”

***

“인질은 어디에 있지?”

금룡선에 올라탄 남궁운은 곧장 금룡채주 만악을 찾아내 백 합을 겨뤘다. 후기지수 중에는 손꼽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남궁운이 산전수전 다 겪은 사복패도 만악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늙은 수적은 검은 피를 토해내며 결국 무릎을 꿇었다.

당가의 독에 중독된 탓이다.

선상 위에서는 그야말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금룡채의 수적들은 악착같이 전투에 임했다.

그러나 채 아침 해가 오기도 전에 금룡채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남궁세가와 사천당가의 무인이 한꺼번에 달려든 탓에 금룡선은 궁지에 몰렸다.

체계적으로 수련해온 오대세가의 무인과 달리 그들은 어깨 너머로 무공을 배운 수적들이었다. 자맥질이나 배를 다루는 것에는 능해도 이렇게 정면으로 맞붙은 이상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질이라니. 모른다.”

“그가 쉬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도와드리지요.”

남궁운의 추궁에도 만악이 시치미를 떼자 당서악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네 이……!”

금룡채주의 눈이 벌겋게 뒤집혔다. 일이 이 지경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 사천당가의 배신이었다.

‘내게 장강수로맹의 맹주 자리를 약속한 놈들이……!’

사복패도의 눈에 핏발이 섰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 당서악 그놈이 피를 흘리는 부채주를 업고 접근했다. 교룡채 놈들이 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었다고 했다. 그 혼란을 틈타 놈들이 부채주를 찔렀다고 말하는 당서악의 절박한 음성에 금룡채주는 깜빡 속았다.

금룡선에 올라탄 당서악과 그 수하는 금룡채주가 반응할 겨를조차 없이 배 위에 독을 풀고 수적에게 비수를 찔러넣으며 외쳤다.

‘사천당가의 저력을 보여라!’

‘남궁세가를 위해 길을 열어라!’

아군이어야 할 당서악의 배신이었다.

금룡채 소속의 수적이 달아나기 위해 물로 뛰어들었으나 사천당가가 미리 뿌려놓은 독에 중독당해 시체가 되어 수면에 떠올랐다.

교룡채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되었을 당가의 독과 암기가 전부 금룡채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당서악 네놈이 가암히!”

금룡채주는 당서악을 믿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교룡왕이 당서악에게 품은 증오를 믿었다. 당서악은 교룡왕을 해치우지 않는 이상 이 장강의 물결에 오를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충심이 참 대단하시군요. 교룡왕은 교룡채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데 사복패도 당신은 예까지 노구를 이끌고 나와 적을 막아서니 말입니다.”

비아냥거리는 음성에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여기 남궁세가의 공자가 하는 질문에 순순히 답한다면 당신의 목숨만은 살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인질은 어디에 있습니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당서악도 인질로 잡힌 청해상단주를 되찾으려고 시늉해야 했다. 그와 남궁운의 다른 점이라면 금룡채주 만악이 문예결의 행방을 알 리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이건 금룡채주에게 내미는 나름의 제안이었다.

은밀히 사천당가와 손을 잡았다는 게 밝혀지면 불리한 건 당서악뿐이 아니다. 사복패도가 교룡왕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그 한 몸이야 죽으면 그만이라지만 만악에게는 처자식이 있었다. 교룡왕은 배신자의 가족을 살려둘 인간이 아니었다.

“내 한평생 수적의 길을 걸었으나 네놈처럼 신의 없는 배신자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

퉤, 하고 금룡채주가 뱉은 침이 당서악의 뺨에 달라붙었다.

“배신자라. 내가 교룡왕에게서 돌아선 것이 벌써 십수 년도 전의 일이거늘.”

당서악은 재빨리 만악의 말에 비아냥거렸다.

“남궁세가의 젊은 용이여……! 내 자네에게만 진실을 말해주지.”

“사복패도 만악은 사십 년 동안 장강에서 활동한 수적입니다. 그의 혓바닥은 매서우니 남궁 공자께서는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당서악은 재빨리 끼어들었다. 만악이 남궁운의 귀에 의심을 불어넣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관찰하던 남궁운은 서늘한 음성으로 답했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잡혀간 인질의 안위입니다. 당 대주께서는 잠시 물러나 주시지요.”

당서악은 이를 악물고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당서악은 옷소매를 살짝 움직였다. 독을 정제해서 만든 모래가 흘러나왔다. 아주 교묘한 용독술이었다.

당서악은 손가락 사이에 암기를 숨겨 자신의 옷소매를 찢어버렸다.

방금의 수로 만악은 곧 죽을 것이다.

중독 자체를 숨기는 건 불가능하니 남궁운은 의심을 품을 것이다. 그때 전투 중 천이 찢어져서 독이 흘러나왔다고 둘러댈 작정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뒤처리며 온 사방에 의혹이 질질 새고 있었다. 하나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남궁세가의 직계가 금룡채주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만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손을 쓴 뒤 걸음을 뗀 당서악은 멀찍이 선 채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때 장강의 패권을 두고 교룡왕과 겨뤘던 사복패도 만악의 신형이 무릎을 꿇은 채로 천천히 무너지는 게 보였다.

‘아직 말하지 못했겠지?’

조바심에 당서악은 계속 남궁운 쪽을 힐끗거렸다.

죽은 이가 수적의 우두머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정중히 눕히고 부릅뜬 눈을 감긴 남궁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창궁비연대의 일 조와 이 조는 금룡선을 샅샅이 수색하라! 나머지는 당가의 무인이 제압한 수적을 필두로 금룡채에 진입할 준비를 한다!”

당서악은 슬그머니 남궁운에게 다가가 물었다.

“금룡채주가 무어라 했습니까?”

“아무 말도.”

남궁운은 무표정한 낯으로 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

한편, 남궁운이 간절히 찾는 예결은 장강 기슭에서 아주 특별한 이와 재회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적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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