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궁지에 몰린 쥐는 (7)
“아…….”
흐느낌 같은 것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목소리를 최대한 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입 안이 바싹바싹 타고 갈증이 일었다.
예결은 헛웃음을 흘렸다. 몸이 이렇게 야단을 부리는 이유야 뻔했다.
‘대체 언제 독에 당한 거람?’
목소리를 바꾸는 환은 약간의 졸음만 수반했을 뿐, 금방 기운을 다했다. 그러니 검문받고 나온 후에 중독된 게 분명했다.
‘일부러 흑점 사천지부를 통해 몸값을 옮기기로 한 건데…….’
청해상단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위험을 감수한 건 아니었다.
이동 과정 전반에는 삼랑뿐이 아니라 흑점 사천지부를 손에 쥔 대사형의 손도 닿아 있다. 그러니 흑점 측에서 헛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다면 제삼자가 끼어들었다는 건데.
사고를 전개하려 해도 머리가 뜨거워서 쉽지 않았다.
‘독을 대체 몇 개를 쓴 거야?’
예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말 중원 무림 방심하기 힘드네…….’
손을 더듬더듬 뻗은 예결은 가마의 벽에 가져다 댔다. 최대한 빨리 여기에서 나가 치료받는 척을 해야 한다.
죽을 거 같아서는 아니었다.
‘체질을 숨겨야 해.’
짝퉁 만독불침이 알려지면 곤란했다. 누가 목숨을 노릴 때 직접 목을 따러 오는 살수를 보내는 것보단 독을 쓰는 게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강호인은 실력의 삼 할은 숨긴다.
똑똑똑. 똑. 쾅!
독에 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까, 힘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선량하고 연약한 일반인인 척하는 것도 쉽지 않네.’
사인교의 창에 드리워 있던 살이 부러지는 게 보였다.
예결은 가마의 문이 벌컥 열리자 옆으로 휘청이는 척 옆으로 머리를 기대 자신이 부숴버린 창문을 숨겼다.
삼랑이 눈앞에 서 있었다.
“따라오지…… 말라니까.”
예결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따로 이동하기로 해놓고 몰래몰래 쫓아온 모양이다.
정말 말을 안 듣는다. 예결의 수하라기보다는 대사형의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독이군요.”
삼랑의 어깨 너머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도 없고 전부 어찌 죽는지도 모르는 채 고꾸라진 티가 났다.
‘암살당한 건가? 대체 언제?’
“눈을 감으시면 안 됩니다. 잠들지 마세요.”
예결의 상념을 가르고 들어온 삼랑의 음성은 여느 때보다도 차갑고, 침착했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 예결은 일부러 앞으로 쓰러졌다.
모르긴 몰라도 무시무시한 극독에 당했을 테니 좀 더 아픈 티를 내야 했다. 무슨 독이든 간에 다른 이들이라면 예결이 지금 느끼는 것보단 더 아플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혀도 좀 깨물어서 피도 내고…….
앞으로 고꾸라진 예결의 몸을 일으킨 삼랑은 그의 입을 열더니 무언가를 꽂아 넣었다. 미적지근한 액체가 입 안으로 넘어왔다.
“삼키세요. 삼키셔야 합니다…….”
‘맛이 이상한데, 중화제인가?’
반쯤 삼키자 갑자기 속이 뒤틀렸다. 치밀어오른 것을 토해내자 입 안에서 쇠 맛이 나고 코끝에 피 냄새가 느껴졌다.
삼랑의 검은 야행복에 남은 자국을 보아하니 녹아내린 내장 조각을 토한 모양이었다.
‘참을 만했는데?’
예결은 삼랑을 안심시키려 입을 열었다.
“괘, 괜찮…….”
정색한 삼랑이 예결의 혈도 몇 군데를 짚더니 그를 둘러업으며 쏘아붙였다.
“입 다무십시오.”
***
쾅!
잘 쓰지 않던 통로가 열리며 그 앞을 막아놓은 서가가 무너졌다.
“흑귀 님!”
어두운 방의 그림자에서 불쑥 일어난 사람의 형상이 불청객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예기치 못한 방문이로군. 제아무리 그림자라고 해도 흑점의 담을 함부로 넘나들다간 타죽고 말 텐데.”
거칠고 탁한 음성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예결과 함께 장강으로 향했을 삼랑이 굳이 흑귀라는 이름을 외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혈향과 더불어 매캐한 냄새를 뒤집어쓴 채 나타난 수하가 이토록 다급할 이유는 하나뿐이다.
“저희 상단주님께서 독에 당하셨습니다!”
“한번 보지.”
차분한 말과 달리 하량은 이미 손을 뻗은 후였다. 삼랑의 어깨에 팔만 걸친 채 매달려 있던 예결의 몸이 힘없이 사내의 품으로 굴러떨어졌다.
피처럼 붉은 혼례복과 대비된 창백한 낯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독에 당한 거지?”
사제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 하량의 음성이 차가워졌다.
“일단은 월루와 만혼독, 그리고 칠채칠양독을 확인했습니다.”
“해독제를 찾으러 예까지 온 건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방 한쪽으로 다가간 하량은 휘장을 걷고 침상 위에 예결의 몸을 눕혔다.
달궈진 돌을 만지는 양 뜨거웠다.
“급한 대로 중화제는 먹인 상태입니다. 몸이 해독 작용 때문에 계속 열을 발산하고 있는 모양이니 이를 억누를 차가운 기운의 독이 필요합니다. 또…….”
말꼬리를 흐린 삼랑은 조심스레 덧붙였다.
“제 식견으로는 세 가지 독을 찾아내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제하량은 무표정한 얼굴로 붉게 달아올라 끙끙거리는 예결을 굽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알고 있는 독을 먼저 해결하지. 해독제를 가져올 테니 여기에서 대기하도록.”
“예.”
삼랑은 초조하게 예결을 확인했다. 처음 주군이 그를 데려왔을 때처럼 창백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다.
“여긴…….”
예결이 갈라진 입술로 말을 내뱉다가 쿨럭쿨럭 기침을 내뱉었다. 삼랑은 황급히 물을 가져와 그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힘없이 눈을 내리깐 채 물을 받아마신 예결은 삼랑의 손을 밀쳤다. 그의 입에서 붉은 핏덩이가 흘러나왔다.
“옷이 붉어서 다행이네.”
예결은 나름 농이랍시고 건넨 말이었으나 쩍쩍 갈라지는 음성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삼랑은 이를 악물었다.
“입을 다물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곧 해독제가 올 겁니다.”
신부 옷을 입히며 장난질을 칠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삼랑의 낯은 그녀답지 않게 일그러졌다.
“흑귀 님?”
예결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둠의 일부인 양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 흑귀는 여느 때보다도 묵직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여기까지 삼랑의 어깨에 실려 오느라 기억이 거의 나질 않는다. 그러나 대사형이 화난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머리가 뜨거운 중에도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는데 하량은 무어라 말하지도 않고 들고 온 목함을 열었다. 그 안에서 검은 환단을 꺼낸 하량은 이를 예결의 입술로 가져갔다.
색도 색이지만 고약한 향까지 더해지니 약이라기보다는 독 같았다. 그러나 예결은 일말의 주저 없이 대사형이 준 것을 받아 삼켰다.
“윽.”
끔찍한 맛이 났다.
“그게 무언 줄 알고…….”
하량이 두르고 있던 흑귀의 가면이 한순간 무너진 듯했다.
서늘한 비난에 예결은 여전히 정신이 혼미한 척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흑점을 통해 이동하다가 독에 당하셨으면서 잘도 받아드시는군요.”
“하지만, 저는 아직 흑귀 님의 손님이니까요.”
새액새액 내뱉는 숨소리 사이로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소곤대는 음성이 들렸다.
“……추궁과혈을 돕겠습니다.”
하량은 손을 뻗었다. 눈을 깜빡깜빡하다가 숨소리조차 없이 기절하는 사제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댄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잃을 수는 없었다.
흑점이 뒤집혔다.
온갖 해약과 몸을 보하는 약이 심처의 문지방을 몇 번이고 넘었다. 일꾼도 아니라 지부장인 흑귀가 직접 움직이는, 참으로 희귀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들이는 정성이 무색하게도, ‘특별한 손님’은 쉬이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 열이 내리질 않지?”
해독약을 쓰고 추궁과혈을 통해 번 시간 동안 삼랑은 가까스로 마지막 독의 정체를 밝혀냈다. 새로 배합한 환단을 예결에게 먹인 삼랑은 그가 몇 시진 내로 깨어날 거라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환자는 까무룩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말이라도 내뱉을 수 있던 예결은 이제 온전한 정신조차 차리질 못했다.
반나절이 지나고도 열이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삼랑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의원을 찾아오겠습니다.”
냉정한 시선으로 예결을 내려다보던 하량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언가 놓친 게 있다.”
“의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건 압니다. 하지만-”
듣는 귀가 없음에도 하량을 흑귀라 부르던 삼랑의 철저함이 처음으로 무너진 순간이었다.
경고를 할 법도 하건만 하량은 발갛게 달아오른 예결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생각해내라.’
아무런 이유 없이 기시감을 느꼈을 리는 없다.
‘독의 정체를 알아내 해독했음에도 열이 내리지 않는 상황…….’
삼랑이 먹였다는 중화제의 성분과 해독제가 충돌했을까?
아니면 예결의 체질과 약이 맞지 않아서?
‘차라리 내가 중독당했다면 편했을 텐데.’
하량은 오래전, 인위적으로 만독불침의 신체를 얻었던 일을 떠올렸다.
정순한 내공을 익힌 무인의 몸에 갖은 독을 주입하며 균형을 잡는 실험이 있었다. 식도가 타들어 가고 살이 녹아내려도 모진 숨만은 끊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이 턱 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목이 상한 뒤로는 음성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하량은 독을 먹은 후에도 아무런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재미있었는데, 아쉽게 됐군.’
마의가 혀를 차며 내뱉은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당시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에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주변 사람이 쓰러지거나 임무에서 마주친 독공의 고수에게 동료가 당해도 자신만은 중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를 살아 돌아오게 한 만독불침의 신체는 참으로 지독한 저주나 다름없었다.
난공불락의 성이 된 하량의 몸은 그에게 죽음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딱 한 번 빼고는.
“이러니 찾지 못했지.”
하량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흑귀…… 님?”
삼랑이 그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진영은 사제를 되찾은 주군이 걱정된다는 말을 종종 꺼내곤 했다. 주군의 수하 셋 중 가장 온건하고 걱정 많은 인간답다고 생각하고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보낸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삼랑의 눈앞에 선 주군의 얼굴에는 인피면구로도 숨겨지지 않는 격랑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미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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