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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63화 (63/203)

63화. 신부는 잠 못 이루고 (1)

“미약이라니요?”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사인을 위조하기 위해 미약과 독을 같이 쓸 때도 있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릅니다. 독살을 시도한 자는 반드시 죽일 작정으로 사용되는 극독 여럿을 동시에 사용하면서도 단숨에 절명하지 않고 최대한 오래 고통을 느끼게끔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독약의 효과를 변질시킬지도 모를 미약을 사용하겠습니까?”

삼랑이 태어난 가문은 사천당가만큼은 아니어도 독에 조예가 깊었다.

요리보다 까다로운 게 바로 독의 배합이었다. 극독과 극독을 더한다고 해서 더 지독해진단 법이 없고, 약한 독이라도 배합에 따라 그 효능이 전혀 달라진다.

건축만큼이나 설계가 중요한 것이 바로 독이다. 섬세하게 다뤄야 할뿐더러 비싸기 짝이 없는 독에 미약을 더하는 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짓이다.

“독을 배합할 때 미약을 치사량까지 섞는 거다. 보통 음독 사실을 알게 되면 해독에만 집중하지, 미약에 당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하니까.”

“그런.”

사람의 사고가 가진 허점을 노리는 방식이다.

“제때 해소되지 않은 열기는 내장을 녹이고 머리에 미치면 사람을 광인으로 만든다……. 그 후에도 손을 쓰지 않으면 심장이 멈춰서 죽겠지.”

“지독하군요.”

해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안심하면 환자가 죽어버리는 거다.

“몸에서 독 기운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열이 나기도 하니 미약 때문에 오른 체온을 숨기기에도 안성맞춤 아니겠나.”

지독하리만치 효율적이다.

“미약을 치사량까지 썼다면 발정이 나야 하지 않습니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이가 어찌 몸을 가눌 수 있겠어. 그저 앓는 수밖에.”

“일단 열을 내리눌러야 할 테니 음기나 냉기를 품은 약이 필요하겠군요.”

“흑점의 보고에 백년빙정이 있다.”

삼랑은 하량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빙정은 너무 정순하고 강력합니다. 문 공자의 몸이 버티지 못할 거에요. 차라리 한독을 쓰는 게……. 일단 사람부터 데려오겠습니다.”

“무공을 익힌 자여야 한다. 추궁과혈도 할 줄 알아야 할 테고.”

추궁과혈은 막대한 내공이 드는 일이다. 그만한 고수를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상대의 몸에 내력을 흘려보내는 동안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어떻게든 찾아오겠습니다.”

삼랑의 시선은 하량에게로 향했다.

주군은 문 공자의 침상 곁에 우두커니 앉아 사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독하느라 여념이 없어 여전히 붉은 혼례복을 입은 예결의 뺨에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었다.

안타까워 보이는 모습이었음에도 이를 주시하는 하량의 낯은 무표정하기만 했다.

그러나 삼랑에게는 오히려 이쪽이 더 익숙했다.

“……시간이 없어.”

하량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돌리지조차 않은 채 명했다.

“사람은 됐다. 한독을 가져와라.”

“그렇다면 누가 문 공자를……?”

하량은 예결의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그의 귀 뒤로 넘길 뿐,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하나 이미 주군의 의사를 알아챈 삼랑은 눈을 내리깔고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이미 그가 말했듯, 시간이 없었다.

***

“미약…….”

“사람부터…… 데려오겠…….”

“시간이…….”

예결은 열과 잠기운 사이에서 허우적거렸다.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두 사람은 흑점의 사천 지부장과 고객 사이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귀에 흘러들어 오는 삼랑과 흑귀의 대화는 마치 꿈을 훔쳐본 듯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돌아가는 상황을 얼추 파악할 수는 있었다.

제 몸에 들어온 것은 독뿐이 아니라 미약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삼랑이 사람을 데려온다는 것 같았다.

대사형은 시간이 없다며 삼랑을 재촉한 눈치다.

‘싫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나 솜처럼 축축 늘어지는 예결의 몸은 도통 주인의 의사를 따르지 않았다.

누굴 탓하겠는가. 가이드를 만나자마자 회복 모드에 들어가 셔터를 내려버리는 에스퍼의 본능을 탓해야지.

“조금만 참으렴.”

커튼을 하나 걷은 것처럼 대사형의 음성이 조금 전보다 더 선명하게 들렸다. 이번에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언젠가 부탁했던 것처럼 예결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다.

가이딩이 그 손길을 타고 흘러들어 오는 중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버티면 몸 상태가 나아질 것이다.

‘내부 장기가 재생 중이라 좀 더 오래 걸리는 거 같은데.’

눈을 감은 채 본인의 상태를 관조하던 예결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흠칫했다. 하량이 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일어난 까닭에 불안감이 성큼 자라났다.

‘삼랑이 온 걸까?’

눈을 뜬 예결은 부연 시야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예결의 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량을 놓치고 옷자락을 움켜쥔 예결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회복될 테니 일단 기절시키자.’

그러나 예결의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삼랑도, 그녀가 어디선가에서 데려왔을 밤 상대도 아니었다.

“이리 주고 나가게.”

흰 상아 단지를 든 흑귀가 예결을 굽어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그의 생각을 읽기는 어려웠다. 침상의 머리맡에 단지를 내려놓은 하량은 손을 뻗어 예결이 입은 옷의 허리끈을 풀어냈다.

한참 단장을 할 때 몇 번인가 만져봤던 부드러운 비단이 예결의 눈을 가렸다.

“으…….”

눈을 떠도 붉은빛이 어른거리는 어둠뿐이다. 예결은 하량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단호하면서도 정중한 손길이 예결의 어깨를 짚고 그를 눕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량이 다시 예결의 위로 몸을 기울였다.

‘사람을 데려온다더니, 일단 약부터 가져온 건가?’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바들바들 떠는데 다음 순간, 입술에 그릇 같은 게 와 닿았다. 예결은 그 안에서 흘려보낸 액체를 제대로 삼키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열을 내리기 위해 무언갈 한 모양인데, 이를 받아마실 기력이 없었다.

다시 한번, 예결의 입술에 무언가가 접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맞닿은 것은 살갗이었다.

‘가이딩……!’

얼음물 같은 무언가와 함께 전에 없이 농밀한 가이딩이 예결에게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의심할 도리 없이 하량 본인의 입술이다.

용암이 들끓던 속에 갑자기 빙하가 나타났다. 여태 느끼는 것보다 미미하긴 했으나 고통이 느껴지는 걸 보면 독 같았다.

‘독?’

예결은 혼란스러워졌다.

이 관계에서 누군가가 기사멸조를 저지른다면 그 주체가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약을 먹이기 위해서라지만 대사형이 먼저 입을 맞추다니?

‘설레발치지 말자. 이건 인공호흡 같은 거다. 혼자 들뜨지 말자.’

예결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중얼중얼 스스로를 세뇌했다. 가이드가 가이딩 좀 했다고 마음까지 섞은 줄 아는 멍청이가 되어선 곤란하다.

하지만 고작 입술로 충격받기에는 아직 일러도 한참 일렀다.

“봉사하겠습니다.”

거칠고 탁한 음성은 둔탁한 쇠붙이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오싹한 감각에 몸을 움츠리는데, 옷의 앞섶이 벌어지는 느낌이 났다.

목소리와 달리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예결의 체온보다 한참이나 차가운 손이 놀라서 빳빳하게 곤두선 유두를 살짝 비비며 눌렀다.

가이드의 능숙하기 짝이 없는 애무에 순진한 에스퍼는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채 얼어붙고 말았다.

기쁨보다도 앞서는 당혹을 읽은 하량은 손을 더 아래로 내려갔다.

거부감을 느낀다면 어중간한 쾌락보다 훨씬 강렬한 것을 주면 그만이다.

“흑.”

치마 속을 파고들어 아랫도리를 틀어쥐는 손길에 예결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망할 눈가리개!

“힘을 빼고 몸을 맡기십시오. 분명 좋을 겁니다.”

이미 좋았다.

하량에게 조금이라도 더 닿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마음과 달리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덜덜 떨리기만 한다.

내장을 녹이던 독이 내뿜던 열기도 예결의 사고를 마비시키진 못했는데, 명백한 목적을 지닌 하량의 손길은 그걸 너무도 쉽게 해냈다.

아니, 가이드를 만나면 좋다는 말을 듣긴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적나라한 감각이 몸을 쑤석거린다는 걸 알려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온몸이 조금이라도 더 만져달라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고통이 아닌 열망으로 이렇게 아플 거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는데.

“아……!”

예결의 성기를 휘감은 하량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한데 그 자극에 신음을 참느라 입 안이 다 헐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량이 제 눈을 가린 이유는 몰라도 예결은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귀두 끝을 비비고 살기둥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집요했다.

하량은 예결이 어디를 건드려야 더 좋아하는지 귀신같이 찾아냈다. 도무지 참아낼 수 없어 내뱉은 흐느낌과 허리를 뒤채는 반응을 확인할 때마다 한층 정교해지는 애무에 예결의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참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보다 낮아진 음성에 예결은 도리질을 했다.

당혹스러우면서도 자극이 지나친 상황에서 달아나고 싶은데, 차마 그만두라는 말이 입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 말도 안 되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악으로 깡으로 이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씹어 삼켜야 한다.

제 가이드에 대한 사나운 욕심이 예결의 정신을 현실에 붙들어놓았다.

“후으…… 하아…….”

쌔액쌔액 내뱉는 숨에 점차 열기가 더해갔다. 하량의 손이 예결의 양물을 집요하게 감싸고 비비고 흔들었다.

목적이 분명한 애무는 날것 그대로의 쾌감을 동반했다. 롤러코스터라도 타는 양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예결은 저도 모르게 그의 손바닥에 대고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발정 난 개새끼처럼 보일 걸 알고 있음에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

마침내 비통한 울음처럼 들리는 신음이 예결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그의 성기 끝에서 정액이 쏘아져 나왔다.

하량은 붉은 비단옷을 적시고 제 가슴팍과 얼굴까지 튄 희끄무레한 액체를 덤덤하게 닦아냈다. 정사의 한중간이라 할 수 있음에도 그의 숨은 여전히 고르고 차분했다.

흥분이라곤 한 자락도 찾아볼 수 없는 낯에는 염려만이 존재했다.

여태 하량이 한 것은 말 그대로의 ‘봉사’일 뿐이었다.

“대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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