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신부는 잠 못 이루고 (7)
“예. 그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사촌 오라버니가 항상 입에 담던 이상은 원하는 일이 무엇이든 저지르기 위해 둘러대던 변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군요.”
당서악은 흠칫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가 붉게 물들고, 허옇게 뜨기를 반복했다.
옳은 길로 가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잘못을 저지르고 그때그때 스스로가 버러지만도 못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더 높은 이상이 존재하는 척 말해왔던 것이다.
“부족하게 태어나 발버둥 치던 것이 아니라 그저 못난 사람이었던 것을. 제가 당신을 조금만 덜 우러러봤다면 좋았을 텐데.”
당언보는 당서악의 이상을 믿고 나쁜 짓을 저질러왔다.
그만큼 강렬하게 감화되었기 때문에 후회하진 않았다. 그러니 죄의 대가는 치를 것이다.
그저 당서악을 삶의 길잡이로 여겨왔던 만큼, 그가 내심 품고 있을 자기혐오가 안타까웠다.
“제가 믿었던 사람을 위해 증언하겠습니다. 당 공자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 저 같은 건 들여다보지 마시고 그 한 몸 구명하기 위해 뛰어다니십시오.”
당언보는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았다.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저를 외면하는 행동에 당서악은 창살을 꽉 움켜쥐었다가 비틀비틀 물러났다.
저를 봐준다는 양, 그렇게 지껄이는 당언보를 영원히 닥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당언보가 죽으면 자신의 죄 절반을 뒤집어쓸 공범이 사라진다…….
최선을 다해 이성을 끌어올리며 밖으로 나가던 당서악은 한 여인과 마주쳤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한없이 늙어버린 얼굴에는 혐오와 분노가 가득했다.
“언보는…….”
“닥쳐라.”
주먹을 꽉 움켜쥔 당언보의 모친이 일갈했다.
“네가 미친 게 아니고서야 내 딸을 건드려? 내 비록 출가외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당가의 여식이라는 걸 잊은 모양이구나.”
은혜는 갑절로, 원한은 열 배로 갚는다. 그건 당가의 노인에서부터 아이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가르침이었다.
“이 일은 잊지 않겠다.”
당서악은 입을 꾹 다문 채 그녀가 지나가게끔 길을 내주었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계단 위로 빛이 보였다.
갇힌 건 당언보일진대 어쩐지 자신이야말로 저 지하에 갇힌 기분이었다.
당서악은 본인의 치졸함을 애써 외면하며 그간의 공적을 핑계로 구명을 위해 움직였다.
가주에게 읍소도 해보고 청해상단에도 몇 번이나 만나 달라는 청을 넣었다. 하지만 당언보의 모친이 움직인 후부터 가주는 당서악을 외면했으며 상단 측 인물은 지금 문 공자가 출타 중이라는 답으로 거절을 내뱉을 뿐이었다.
명분과 증인을 가진 남궁세가는 당서악의 예상처럼 본격적으로 움직이진 않았다. 이리저리 꼬리를 자르며 발버둥 치는 당서악을 구경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날이 계속되자 목에 칼을 댄 채로 잠들고 또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당서악은 차라리 자신의 사촌누이가 훨씬 마음 편히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그때, 청해상단에서 추가 증거를 보내왔다.
“진삼 행수와 주고받은 서한이라니?”
당서악은 쉰 목소리로 되물었다.
분명 그런 게 있긴 했다.
하지만 서신으로 보내는 이상 내용을 모호하게 적어두었다. 게다가 진삼이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상단 내부 사정을 털어놓는 편지는 폐기했어야 한다.
하지만 당서악은 몰랐다.
그가 아는 진삼은 오래전부터 예결의 감시하에서 당서악의 편지를 뜯어보고 답장을 보내왔다는 사실을.
당서악이 진 행수에게 몸이 멀어졌어도 계속 교류를 나누자며 보낸 서신의 행간에는 청해상단의 내부 사정을 떠보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상단주가 아니라 관계자인 척 돌아다니던 예결의 정체를 떠보는 서신도 있었고 옥형문과 익선문을 언급하며 은근한 불쾌감을 내비치는 문장도 더러 발견되었다.
‘벗어날 길이 없다.’
위조된 거라 주장하거나 다른 이가 보낸 것을 착각한 거라 주장하기도 어렵다.
당서악이 진삼과 거의 호형호제할 기세로 사천의 홍루를 드나든 걸 본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젠 죄를 대신 뒤집어쓸 당언보도 없지 않나.
허탈한 와중, 가주 당문길이 그를 불렀다.
당서악이 가주의 부름을 받아 방에 들자, 그의 머리로 죽간이 날아왔다.
“가라! 가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결해라!”
가주는 장강에서의 사건 이후 기어코 명을 어기고 뛰쳐나간 당서악이 가문의 이름에 먹칠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상태긴 했으나 오늘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진 않았다.
남궁세가에 당가가 숙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은 당언보를 처벌하고 일을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당서악처럼 저열한 인간은 어디에든 쓸만한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다. 까닭에 이번 일로 약점을 쥐고 당가의 직계를 위한 개로 만들 작정이었다.
문제는 이 멍청한 것이 증거를 질질 흘리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이건…….”
죽간을 확인한 당서악의 두 눈이 커졌다.
당서악이 금룡채주를 대신해 낭인을 고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가 비밀리에 입수한 증거다. 남궁세가도 늦든 빠르든 진실에 닿을 거다.”
이를 으득 가는 당문길이 당서악에게 삿대질했다.
“이런 짓을 저지를 거라면 증거와 증인을 제대로 없앴어야지!”
악문 잇새로 새어 나오는 비난이 뱀의 쉭쉭거리는 소리 같았다. 당서악은 눈을 질끈 감았다.
“네놈 때문에 당가의 명예가 땅으로 떨어졌구나! 산에나 처박혀 있던 아미파와 청성파가 슬금슬금 기어 내려오기 시작했으니 네가 이 죄를 어찌 갚을 테냐?”
만검독수 당문길의 손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그가 책상을 내리치자 원목이 반으로 쪼개졌다. 숨을 몇 번 고른 가주가 말했다.
“썩 나가라.”
당서악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가주를 향해 예를 갖추려 했으나 이번엔 찻잔이 날아왔다.
“나가!”
죄를 부정할수록 수렁에 빠져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당서악은 남궁운에게 달려갔다.
“내 모든 걸 고백하겠소.”
“아직 밝혀내지 못한 여죄가 있을 것은 예상했지만, 당 공자가 이리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희생양을 내민 채 당가주의 뒤에 숨어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려 한 게 아니었습니까?”
말씨야 정중해도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멸이 서려 있었다.
당서악은 흐흐 웃었다. 저건 남궁운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진 자이기에 보일 수 있는 결벽증이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그리 스스로를 위안하며 당서악은 가증을 둘러썼다.
“당가의 영광을 위해 그 숱한 일을 저질렀으나 돌아보니 후회가 되어 그렇소.”
“후회라…….”
“전부 말할 테니 내가 무림맹에서 죄의 시시비비를 가리게 해주시오. 청해상단의 문 공자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하리다.”
사천에 남아 있으면 분노한 당가주가 뿌린 독무에 한 줌 혈수가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
당문길을 마지막으로 만난 날, 그의 눈에서 살기를 읽었다. 당가의 이름에 누가 되는 방계 따위, 죽여서 이 일을 덮는 게 그에겐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만검독수 당문길은 혈족에 대한 애착이 큰 사람이다. 그러나 당서악은 자신이 가주의 테두리 밖으로 쫓겨났음을 확신했다.
“결국 그게 목적이었군요.”
당서악은 부정하지 않은 채 눈을 내리깔았다.
당문의 방식대로 처리당하느니 무림맹의 규율에 처벌받는 게 낫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나 당서악은 살고 싶었다. 구차하게라도 살아 있어야 무엇이든 도모할 수 있었다.
남궁운은 제 발로 걸어들어온 당서악을 데리고 사천을 떠났다. 당가에서 보낸 무인이 위협하듯 창궁비연대를 따랐으나 남궁운은 의연하게 성도를 벗어났다.
목적지가 무림맹이 있는 호북의 무한성이었기에 남궁운 일행은 장강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점혈 당한 채로 붉은 포승줄에 묶인 당서악은 갈대밭에 피어오른 물안개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그가 뒤로한 모든 선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평판을 어떻게 회복할지, 당가로 돌아갈 수나 있을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숨이 텁텁 막혔다.
그의 상념은 필연적으로 이 장강에서 만난 여인에게 닿았다. 당가의 일개 무사였을 시절엔 그것이 행운인 줄로만 알았다.
하나 지금 와 생각해보면 평생을 질질 끌 저주였던 것이다.
‘그때……. 제대로 죽였어야 했다.’
마음이 약해져 고작 팔만 잘라낸 것이 천추의 통한이었다.
당서악은 실패의 이유가 외부에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여태 해온 선택의 무게에 짓눌려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후회다가 망가지고 말 것이다.
아주 조금씩, 당서악은 한때 번듯한 인간이었던 제 일부를 도려냈다.
“소가주님.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대주가 말을 멈추고 조심스레 보고했다. 남궁운의 시선은 이미 그 인기척이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토록 야심한 시간엔 어울리지 않는 흥겨운 음악이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렸다.
한둘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윽고 물안개 사이로 떠들썩한 혼례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고 화사한 천으로 꾸미고 있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괴담의 일부가 툭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신부는 가마가 아니라 말에 타고 있었다. 상대가 낯이 익다는 생각에 가만히 바라본 남궁운은 그녀가 누군지 알아챘다.
문 공자의 몸값을 치르러 가던 날 만난 그 신부였다.
남궁운을 발견한 신부가 고삐를 움직여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직 신랑을 만나지 못했습니까?”
남궁운의 질문에 신부가 목패를 내밀며 웃었다.
“예. 그래서 신랑을 데리러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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