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73화 (73/203)

73화. 할 땐 하는 에스퍼 (3)

예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가 갓 태어난 새끼 양처럼 덜덜 떨렸다. 제하량이 다정한 대사형답게 손을 내밀었다.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몸도 섞은 판에 손등에 손이 닿은 걸로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대사형이 이쪽을 관찰하는 걸 알면서도 좀체 진정되지 않을 정도로 동요하고 말았다.

‘아니 근데…….’

순진한 에스퍼에게 불을 질러놓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양 바라보는 눈을 마주치니 그냥 속아주고 싶었다.

아니, 속아줘야지?

“고맙습니다. 대사형.”

예결은 잠시 머뭇거리는 척 제하량의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에스퍼의 상도덕을 지키고 겸사겸사 사심까지 충족한 예결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차라리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말지. 대사형 한 번 속여넘기기가 이렇게 힘들 일인가.

“네가 너무 연약해서 걱정이구나. 몸이 많이 상했어…….”

슬쩍 손을 빼내려 했는데 하량은 예결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손등을 가만가만 쓸어주며 걱정의 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흔적기관으로 남은 양심이 쿡쿡 찔렸다. 중원으로 넘어와 맨손으로 산채 하나를 태워 먹고, 뱀뱀이를 내세워 벽조목도 잔뜩 만들어놓지 않았던가.

“네가 사라진 동안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체질이 되어 아쉽구나. 영약과 벌모세수를 동원하면 좀 나았을 텐데.”

“벌모세수라니요. 저는 그렇게 귀한 대법을 받아도 오성이 나빠 무공을 대성하지 못할 겁니다.”

예결이 손사래를 쳤다.

현대에서는 잡초라도 정력에 좋다는 소문을 내면 씨가 마른다는 농담이 있다. 그런데 무림에서 내공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 정말로 멸종한다.

눈이 벌게진 무림인이 달려와 모조리 파먹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공을 증진해주는 효험이 있는 영약은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게다가 벌모세수라니. 그건 오대세가의 직계, 그중에서도 근골이 빼어난 일부만이 아주 어린 나이에 받는 대법이다.

혈도와 세맥에서 노폐물을 청소하기 위해 내가고수 여럿이 달라붙어야 하고 대환단까지는 아니라도 소환단 수준의 영약이 필요했다.

심지어 이 벌모세수라는 녀석은 받는 사람의 나이가 많을수록 그 효력이 떨어진다. 그러니 이미 스물을 넘은 데다가 단전도 만들 수 없는 예결에게는 비타민 주사나 수액 맞는 정도의 효과가 다일 것이다.

‘솔직히 대사형 가이딩이 산삼보다 낫지.’

예결은 애써 탐욕을 숨기며 눈을 내리깔았다.

“네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그깟 영약이나 벌모세수가 대수겠느냐.”

하량은 예결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사제가 어깨를 움츠리는 걸 알아챘음에도 모르는 척 손을 움직이는 얼굴이 그려낸 듯 완벽했다.

“오래오래 이 우형의 곁에 있어 주어야지.”

예결은 도무지 하량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다정에는 강압과 집착이 녹아 있었다.

“제가 너무…… 너무 오래 떠나 있었지요?”

속삭이듯 던진 질문에 하량이 웃었다.

“기다린 적은 없단다.”

이십 년 하고도 열 달. 그리고 아흐레.

기다린 적은 없다. 그럼에도 예결을 만나는 순간 하량은 너무도 쉽게 지난 세월을 셈할 수 있었다.

사제가 죽은 날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렴.”

저녁 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예결은 배가 부르다며 젓가락을 내려놨고 하량은 그런 사제를 거처까지 데려다주었다.

제하량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걸 들으며 예결은 숨죽여 기다렸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내 사위가 어둠에 잠겼다.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뜬 예결은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비죽이 웃었다.

‘그럼 관객도 오셨겠다.’

침상으로 꾸물꾸물 들어간 예결은 야금을 뒤집어썼다. 옷을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혼자서는 거의 만져본 적 없는 가슴을 스치고 아랫배를 지나 제 성기를 움켜쥐었다.

한국에 살 적에도 자위 같은 건 거의 해본 적 없다.

가이드를 만나기 전의 에스퍼는 보통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미쳐 날뛰는 고통을 쾌감으로 잊기 위해 절조 없는 짐승이 되어 매일 밤마실을 다니는 케이스. 다른 하나는 수도승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담백해지는 경우다.

예결은 단언컨대 후자였다.

미친놈들만 가득한 에스퍼 중에서도 예결의 정신 상태는 독보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까닭에 그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에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장기간 강제로 입원당하며 생긴 트라우마 탓에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온갖 에스퍼 군상이 다 모이는 센터 내에서도 예결이 ‘그 까칠한 꼬맹이’ 같은 별명을 달고 다닌 이유였다.

“으응…….”

어설프게 손 좀 놀린다고 해서 바로 몸이 달아오르진 않았다. 그저 평소 손을 대지 않던 부분에서 느껴지는 자극이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예결은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니 대사형과 나누어 가진 그 밤을 좀 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옷을 걷어내고 들어오던 손길은 목적에 충실했었다. 다정하고 부드럽긴 했지만, 예결이 버둥거리는 시늉을 해도 멈추는 법이 없었다.

하량의 다정은 일방적이다.

쉼 없이 몰아치는 그의 상냥함은 바다와도 같았다. 멈춰달라 호소해도 결코 멎지 않는 파도처럼 밀려와 예결을 집어삼키지 않았나.

“흣.”

한층 더 달짝지근해진 숨소리가 예결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자신을 등 뒤에서부터 억누르던 몸의 무게와 맞닿은 살갗에서 느껴지던 열기 따위가 잡힐 듯 선명해졌다.

예결은 자신의 성기를 감싼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너무 거칠지 않게, 천천히.

자신이 아는 유일한 애무를 흉내 내는 중이었다. 갈급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바짝 마른 입술을 달래려면 물이 아니라 다른 게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침상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앗, 하읏, 흐으…….”

자극의 수위가 상승할수록 제하량이 새겨넣은 쾌감을 기억하는 비부가 움찔거렸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몸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흐윽…… 읏……!”

그러나 예결은 하반신을 어루만지면서도 뒤로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새삼 그쪽에 뭘 집어넣는 일에 거부감을 느껴서는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에스퍼가 가이드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니까 깔리는 게 맞지.’

그래야 더 자주, 더 많이 할 게 아닌가.

대사형이 무림인, 그것도 손꼽히는 고수일 거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예결은 편협하기 짝이 없는 결론을 내렸다.

“아, 아……! 윽!”

야금을 입에 문 채 예결은 신음을 뭉갰다. 참아내려 애쓰고 또 애쓰는 티를 내기 위해서였다.

성감이 고조되며 예결의 성기 끝에서 애액이 질금질금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자극을 주면 절정이 눈앞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예결은 끝내 사정하지 않은 채 손을 거뒀다.

“왜…… 왜 안 되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흐느끼며 예결은 소리 내 자책했다.

“미쳤어. 미친 게 분명해.”

누가 들을지도 모른다고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그 ‘누가’ 들으라고 하는 짓이니까.

“대사형, 아흣! 대사형……!”

입으로는 서럽고 이 상황이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척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이를 불렀다.

이 순간 절대 불러서는 안 되는 단 한 명이었다.

“아, 안 돼……. 안 되는데.”

코를 훌쩍이면서도 예결의 입가에는 미소가 배어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제 흐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이었으나 그는 알았다.

이 벽 너머에 대사형이 있다는 걸.

‘무림인이 기척을 죽이면 뭘 하나.’

그간 틈틈이 삼랑을 상대로 개발해온 새 능력은 쓸모가 많았다.

본업이 의심되는 삼랑보다 조용히 돌아다니는 대사형의 존재도 알아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예결은 이 능력을 활용해서 적절한 무대에 오를 날만을 기다려왔다.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지만.’

“흣……!”

탁, 탁.

거친 소리가 나게끔 손을 놀렸다. 살이 쓸려 발갛게 일어나는 게 보였지만 예결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죄송, 죄송해요……. 대사형…….”

벽 너머의 제하량에겐 이게 어떻게 들릴까?

사내를 알게 되어 내외하는 줄 알았던 사제가 수음하며 본인의 이름을 부르는 이 상황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예결은 아랫입술을 핥았다.

‘새삼 피하진 않겠지.’

그거 하난 확실하다.

예결이 중독되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리자 그의 사형은 해독을 위해 몸을 겹치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제하량은 두 가지 금기를 범했다. 첫째로, 사제와 성적인 행위를 했으며, 둘째로 사내를 품었다. 일이 벌어진 후 후회하는 기색은커녕 일말의 동요조차 느끼지 않는 제하량을 차근히 관찰한 예결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대사형의 모럴은 상당히 엉망이었다.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뒤틀려서 예전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 거다.

오로지 예결을 살리기 위해서.

‘그러니까……. 핸들이 고장 나서 직진만 할 줄 아는 폭주 기관차 같은 거지.’

그보다는 좀 더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굴러가고 있겠지만 아무튼, 제하량은 예결을 ‘되도록 온전한 형태로’ ‘살려 두어야’겠다는 목표 의식을 기본으로 움직인다.

예결은 이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의 경로를 살짝살짝 틀어주면 되는 거다.

흑귀라는 신분이 있어서 대사형은 참 운이 좋았다. 사제와 몸을 섞은 건 흑귀이니 제하량으로서의 그는 언제나처럼 선량한 사형처럼 굴면 되니까.

하지만 흑귀를 이용할 수 있는 건 예결도 마찬가지였다.

“흑……. 흐흑…… 흑…….”

예결은 양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고 또 울었다.

‘대사형을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는 안 할게요.’

인공눈물은커녕 양파조차 없지만 독하기 짝이 없는 에스퍼는 제 눈을 찔러서라도 눈물을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형…… 나 좀 살려주세요.’

찾아보면 남궁운처럼 다른 가이드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몸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섞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

“사형…… 흑, 대사형…….”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사제가 제 귀에 독을 흘려 넣는 줄도 모르는 채, 제하량은 자리를 지켰다. 마침내 예결이 울다가 지쳐 잠든 새벽까지도.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