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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80화 (80/203)

80화. 화대 (3)

밀지를 눌러오는 손가락은 사뭇 강압적이기까지 했다.

예결은 도무지 싫다고 답할 수 없었다. 하량은 예결의 한쪽 다리를 붙들고 끌어당겼다.

‘이대로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군.’

얼마나 얇은지 사제의 발목이 한 손아귀에 전부 들어온다. 이를 잠시 만지작거린 하량은 예결을 쥔 채 다른 손을 뻗어 향유병을 꺼냈다.

입으로 뚜껑을 연 그는 내용물을 발갛게 익은 과일처럼 벌어진 둔부 사이로 흘려보냈다.

예결은 반사적으로 몸을 옹송그렸으나 하량은 그의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받아먹지 않으려 애써도 소용없습니다.”

무릎에 대사형의 더운 숨이 닿았다. 예결은 보이지도 않는 사내의 입술이 어떤 윤곽을 그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오로지 느낌으로만 알게 된다는 건 정말 기묘했다. 대사형이 제 비밀을 쥐었듯, 예결 역시도 흑귀가 숨기고자 하는 정체를 알고 있는데 말이다.

이 한 겹의 안대는 두 사람이 나누어 가진 기만이었다.

“향유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비부가 젖어 드는 감각 자체는 미미했다. 그러나 둔부 사이로 향유가 흐르는 감각만은 자극적일 정도로 선명했다.

아직 시작조차 않았는데 정사의 한중간인 양 질척해졌다. 지난 정사에서 아래를 적셨던 걸 떠올린 예결은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기분 좋을 정도로 열이 오른 머릿속에서는 그마저도 제멋대로 해석해서 자극으로 받아들였다.

“큰일입니다. 벌써 이렇게 흘러넘치는데, 문 공자의 손은 놀고 있군요.”

대사형이 조곤조곤 귓가에 흘려 넣는 음성이 예결을 채근했다.

“호위에게 변명할 말을 미리 찾아놓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알, 읏, 잘할게요…….”

할딱이는 숨소리를 내는 예결의 혀가 붉었다.

가슴 위에 올린 손가락이 어설프게 본인의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기분이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애쓰는 태가 났다.

“으응…….”

하량은 그게 흙을 가지고 소꿉장난하는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사제가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향유병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버린 흑귀는 젖어서 번들거리는 밀지의 입구에 손을 밀어 넣었다.

속살은 부드럽고 뜨거웠다. 약간의 윤활제만으로도 길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을 꼴딱꼴딱 삼켰다. 고작 두 번째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량은 이게 가이딩 탓인 줄 전혀 몰랐다. 까닭에 그는 사제가 타고나길 민감한 신체를 가졌다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고작 한 번의 정사로 쾌감을 깨우치는 바람에 예결의 세상은 뒤집혔다.

대사형에게 욕정을 느끼고 어떻게든 숨겨보고자 피해 다니다가 뒷골목에 똬리를 튼 암시장의 주인을 찾아왔다. 곤륜의 제자는 상종조차 하지 않을 무도할 사파의 낭인 따위에게 몸을 열어주며 갖은 희롱에도 순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제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건 그들의 관계였다.

동정심 따위는 예전에 잃었음에도 하량은 사제가 가엾었다.

정작 제하량은 뒤집어쓴 거죽 외의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예결이 목숨 바쳐 구하고자 한 곤륜의 협객은 오래전에 저물었다. 이 자리에 있는 건 속 시커먼 괴물일 뿐이다.

‘그러니 네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일러주어야 할 텐데.’

하지만 하량이 잃은 건 동정심뿐이 아니었다.

“어때요? 제대로 키워놨습니까?”

양심 없는 사내의 채근에 예결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더, 흣! 큰 거…… 큰 거 같아요.”

딱히 확신은 없었기에 그의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보이지도 않으니 그저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부푼 정도를 가늠할 뿐이다.

문제는 머릿속을 들쑤셔 놓는 쾌감이, 대사형으로부터 전해지는 가이딩 에너지가 그의 감각을 교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사형 들으라고 수음하는 척 낑낑거릴 때는 시늉만 했는데, 이렇게까지 의식하며 가슴을 문지르게 될 줄이야.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반대편이 더 작아졌는데.”

흑귀의 목소리였으나 이 웃음 자체는 낯익다.

평소 제하량이 예결을 귀여워할 때 낮게 목울대를 울리며 내던, 바로 그 웃음이었다.

“큰일이군요. 이래서야…… 술에 취한 난봉꾼이 밤새 무얼 했는지 들킬 겁니다.”

가이딩과는 별개로, 예결은 새삼 자신이 제하량의 밑에서 흐느끼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러다가 진심으로 대사형을 불러 버릴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감각에 예결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대사형이라는 자가 그 무인을 호위로 붙여 주었다고 하셨지요? 행여 문 공자의 음행이 그분께 전해지면 어쩌려고 이렇게 안일하십니까?”

안으로 파고든 손가락이 세 개로 늘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한 진퇴가 점점 속도를 더해가자 예결은 아랫배에서부터 뭉근하게 차오르던 쾌감이 야단을 부리는 것을 느꼈다.

“하읏, 응!”

이런 심술이라면 백 년, 만 년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며 예결은 울먹거렸다.

“아니에요. 삼랑은…… 흣,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어요. 으응……. 저, 저번 일도.”

흐트러진 숨소리 사이로 뭉개진 단어가 하량의 귀에 닿았다.

“숨겨줬다고?”

하량은 웃어버렸다.

사제의 비밀 중 온전히 그의 것인 게 얼마나 된다고.

예결이 가는 곳, 먹고 입는 것, 만나는 사람까지 전부 하량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었다.

하량이 의식적으로 저지른 일은 아니라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까닭에 사제를 곤륜으로 보내려 했던 것이다.

그가 예상치 못했던 건 사제를 범하고 있는 이 순간뿐이다.

“진정 문 공자의 사람도 아닌데, 그리 믿으십니까?”

“대사형이, 대사형이…… 그녀에게 절 믿고 맡겼으니까요.”

쾌감과 수치심에 젖어 온전한 문장 하나 구사하질 못하면서 대사형을 믿는다는 그 말만은 참으로 말갛고 분명하다.

하량은 질척하게 젖은 손가락을 비부에서 뽑아냈다. 예결은 황급히 아래를 조였다. 아래가 잔뜩 젖어들 때까지 쑤셔주던 손가락이 아쉬워서가 아니었다.

“그리 음탕하게 조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뭉툭한 것이 하문에 와 닿았다.

“아, 안 돼!”

예결이 비명처럼 내뱉었으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아, 아, 흐윽!”

삽입은 한순간이었다.

예결은 가슴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줬다. 유두에서 선명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예결은 입을 벌린 채 어깨를 벌벌 떨 뿐, 손을 풀어내지 못했다.

“크윽…….”

신음에 가깝게 들리는 탄성이 귓전을 때렸다. 나쁜 저주에 걸렸다가 풀려난 왕자님처럼 예결은 서럽게 뇌까렸다.

“아직, 가슴이…… 흑…….”

안을 완전히 열어놓기 전까지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 놓으라고 했는데, 지금은 잘 봐준다 해도 짝짝이다.

훌쩍일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열락으로 짓무른 머릿속에서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가이딩의 탓도 컸다. 보이지 않는 무게에 짓눌린 채, 예결은 반쯤 생각하는 대로 내뱉고 있었다.

“예쁩니다.”

흑귀가 예결의 손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저항 없이 끌려온 예결의 손 아래로 툭 터지기 전의 꽃망울처럼 부은 유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숙인 하량은 이를 깨물었다.

“아!”

요란하게 아우성을 쳐도 예결의 숨소리의 한 귀퉁이는 달큰하게 젖어 있었다.

아직 가슴으로 느끼게 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사제는 참으로 민감한 몸을 타고난 모양이었다. 그 사실이 못내 만족스러우면서도 마냥 유쾌하진 않았다.

‘이런 아이를 호위 하나만 붙여놓고 밖으로 내돌렸다니.’

하량은 허리를 움직여 흑귀의 몸으로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이 정도 크기의 양물을 받으면서도 안은 빠듯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몸이 커지면 커지는 대로 잘 받아먹는다는 걸, 그는 지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흐흑, 흑…….”

“아프, 윽. 십니까?”

참기 어려운 충동을 참아내느라 앙다문 하량의 잇새 사이로 신음이 샜다. 예결은 도리질했다. 그러나 어느새 뺨이 젖어 들고 입술이 번들거리는 게 보였다.

예결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은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미치겠는데, 저 사내는 예결을 살필 여유가 있었다.

아니, 여유라기보다는 그의 천성적 다정함에 가까우리라.

이미 정사의 한중간임에도 하량의 몸이 그립다. 아무리 취해도 그의 향에는 온전히 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중원의 온갖 명주를 가져다 놓아도, 황제가 쓴다는 향을 가져다 놓아도 예결은 만족을 알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대사형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 아나, 안아주세요…….”

예결은 두 팔을 벌려 사내의 목을 끌어안은 채 음탕하게 졸랐다.

하문이 뻐근하게 벌어져서 더는 받아먹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예결은 아직도 부족했다. 아랫배가 터질 때까지 대사형의 정을 받아도 갈증을 느낄 거다.

꿀에 빠져 죽는 벌레의 기분이 이런 걸까.

“아…….”

쇠를 긁는 듯, 거친 목소리가 탄식을 내뱉었다. 마지막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예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직까진 다정했던 사내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고작 하룻밤으로 예결의 몸 구석구석까지 파악한 짐승이 그의 위에서 맥동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이딩을 받는 중이라곤 하나 묵직하게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움직임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미약의 어설픈 도움조차 없지 않나.

그럼에도 예결은 안간힘을 다해 하량을 끌어안았다.

“흐윽, 흣!!”

터럭 한 올, 땀 한 방울이라도 그것이 대사형의 것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았다.

쿵, 쿵. 하고 침상이 거칠게 울렸다. 몸이 거꾸로 세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에 피가 몰렸다. 아랫배를 둔중하게 치받는 움직임이 예결의 호흡을 마구 갈취했다.

가장 은밀한 곳에서부터 지펴진 열기는 도무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되어 예결을 덮쳤다.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아흣, 핫! 하으응……!”

찢어질 듯 달콤한 신음에 하량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하아…….”

하반신이 지나치게 조여드는 감각에 그는 나직이 신음했다.

또다시 축골공이 풀리고 있었다.

온몸에 열이 펄펄 끓는 듯 뜨거운데 진기를 조절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지난번 정사 때 미쳐 날뛰었던 게 우연이 아니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 하량은 형편없는 제 이성을 질타했다.

얼굴에 뒤집어쓴 가죽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하량은 천천히 예결의 안에서 빠져나왔다. 사제의 입이 벌어져 벙긋거렸다.

‘왜?’

입술을 읽어낸 하량은 웃어버렸다. 압박감에 자신이 괴로웠던 만큼 사제 역시도 만만찮게 힘들었을 텐데, 그 잠깐의 허전함이 아쉬워 무심코 조른다.

주인의 생각일랑 모르는지 욕심껏 벌려놓았던 밀지는 다시 좁아지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새침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둔부를 타고 질금질금 흘러내린 애액이 아니었다면 조금 전까지 사내의 것을 품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직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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