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화대 (5)
잇자국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댄 하량은 그의 손을 위로 잡아 야금으로 묶어버렸다.
헐거워 손목을 죄진 않지만 벗어나려 하면 팽팽해졌다.
교묘한 매듭이었다. 번갯불로 태우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사형은 이런 건 대체 어떻게 배운 거야?’
중원무림에 스카우트 캠프 같은 건 없을 텐데?
“겨, 결박, 흐응! 어떻게, 이런?”
당황한 예결은 흑귀를 비난했다.
“푸, 풀어…… 풀어 주세요.”
그러나 상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자상한 대사형이 아니라 무도하기 짝이 없는 사파의 낭인이었으니까.
“제가 일찍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디에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뒷골목 낭인 따위보다는 번듯한 오대세가의 공자를 찾아가는 게 나을 거라고.”
낮게 속삭이는 음성은 더할 나위 없이 악당 같았다.
“흑점에서, 사내를 구하려 했으니 이렇게 험한 꼴을 당하시는 겁니다.”
예결은 뺨을 적신 채 속삭였다.
“흐읏, 하지만…… 흑귀 님은 여기에. 흑점에, 계시잖아요.”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이 하량을 충동질했다.
“여기밖에, 갈 수 있는 곳이…… 없는데.”
하량은 웃었다.
애지중지 품에 가둔 채 아껴준 사제가 흑점밖에 갈 곳이 없었다는 말에 속이 뒤틀렸다. 정작 욕망한 것은 제하량이면서 흑귀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파악했음에도 그랬다.
이런 건 이성이 내리는 판단이 아니다.
질투심을 갈무리한 하량은 사제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곳에서 당신의 비밀은 안전합니다.”
귓가를 깨물며, 그는 흑귀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원하는 이를 불러보세요.”
아까 그랬던 것처럼.
예결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려도 신음을 내뱉지 않았다.
허리를 움직이기에 여념이 없던 제하량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무는 사제의 모습에 픽 웃었다.
몇 번이고 내뱉은 그 이름이 다 무어라고, 이다지도 내리누른단 말인가.
짐승처럼 제 사제를 속여 붙어먹는 사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어서.”
하량은 채근했다. 예결은 말없이 도리질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버티려 해도, 하량에겐 다 방법이 있었다.
“시, 시르, 흐앗!”
대사형의 손이 예결의 성기를 지긋이 쥐며 힘을 가했다. 예결은 가려진 시야가 하얗게 물드는 걸 느꼈다.
절정이었다.
“아! 아……! 사형, 대사형……!”
예결의 입에서 진심 어린 애원이 흘러나왔다.
“그으, 그만, 그만…… 제발, 대사형. 네에?”
망가지기라도 한 양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발음이 잔뜩 뭉개졌다.
“잘하셨습니다.”
흐느낌을 가르고 들리는 흑귀의 음성은 사뭇 다정했다.
“하, 하으…… 흐흐흑…….”
“흑점이 문 공자를 위해 팔지도 않는 물건을 내놓았으니…….”
땀에 젖어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준 하량이 입술을 달싹였다.
“문 공자도 밑바닥을 보여주셔야 수지가 맞지 않겠습니까?”
거래는 동등해야 하니까요.
그게 예결이 까무룩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속삭임이었다.
***
[주군.]
여린 속살을 헤집고 그 안 깊은 곳까지 몸을 파묻던 하량은 천천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주군!]
잠시, 아주 잠시 동안 이성이 온전치 않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그는 차근히 금일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사천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삼랑이 다급히 그를 찾았다. 사제가 술에 취한 채 말 등에 실려 왔다는 것이었다. 하량은 열 일을 제쳐놓고 달려왔다.
술기운이 깬 후에도 괴로움에 취한 사제가 고백했다. 욕정 해서는 안 되는 상대에게, 그의 대사형에게 발정하고 있노라고.
끔찍하고 무작스럽게 느껴야 할 고백에 하량은 무심코 희열했다.
‘네가 그토록 경애하는 대사형은 여기 있는데.’
남의 살가죽을 뒤집어쓴 본인 앞에서 고해한 사제는 벌벌 떨고 있었다.
남이라 생각한 흑귀가 대사형이라는 말을 내뱉은 것만으로도 저렇게 겁을 집어먹었는데, 당사자 앞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바닥없는 가학심이 치밀어 올랐다. 차마 닿지도 못하고 그렇게 도망을 다녔던 사제가 손아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하량은 탐스럽게 영글어 벌건 속살을 드러낸 사제의 비밀을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을, 예결의 바닥까지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사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느 신부의 초야를 거뒀던 바로 그 방에서, 긴장을 감춘 채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제가 보였다.
‘어여쁘기도 하지.’
하량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로 예결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덕분에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실감이 났다.
손아귀에 사제를 붙든 순간부터, 하량은 오로지 한 가지 목적으로 움직였다.
지고한 열락을 저 몸에 새기기 위해 하량은 공들여 사제를 품었다.
예결이 저를 피해 다니던 이유를 알게 된 이상, 하량은 이를 배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작정이었다.
욕망이라곤 한 점도 남지 않을 때까지 쥐어짜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러나 하량은 다시금 자제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축골공이 풀린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한 번 대성한 이후 온갖 암살 임무를 다닐 때도 그는 체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첫 번째는 실수라 해도 두 번째는 그렇게 포장할 수 없었다.
하량은 제 이성이 사제의 앞에서는 아주 못 쓸 물건이 된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예결의 몸은 품을수록 더 달았다. 활짝 벌어진 다리에 울긋불긋 남은 손자국은 그의 눈에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이 모든 게 오래지 않아 사라진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끈질기고 집요한 애무에도 예결은 온 힘을 다해 응했다. 언제부터인가 봉사는 봉사가 아니게 되었고, 하량은 본인의 쾌락을 추구하고 말았다.
사제가 까무러친 후에도, 하량은 허릿짓을 멈추지 않았다.
예결이 욕망을 해결하려 흑귀를 찾은 게 아니라, 그 반대가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더어……. 더.”
섬어가 예결의 입에서 샜다. 그 조름에 하량의 시야가 한순간 벌겋게 물들었다.
쾌락에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도 색사를 조르는 예결은 하량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요물 같았다.
하량은 망설임 없이 정으로 흠뻑 적셔 길을 내고, 그렇게 낸 길로 더 깊이 몸을 파묻었다.
제 몸을 올라탄 짐승이 경애해 마지않는 대사형인 줄도 모르고 한량없이 몸을 열어주는 사제가 가여웠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쾌락이야말로 이 가증스러운 위선자가 사제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유일한 괴로움이었으니까.
본인의 행적을 전부 되짚은 하량은 문 너머의 삼랑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래. 뭐지?]
밀월을 방해받았음에도 하량의 낯은 평온했다. 그는 삼랑이 아무 때나 저를 찾을 수하가 아님을 알았다.
[마의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디지?]
마의라는 말에 사제를 쥔 하량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항주입니다.]
항주라.
하량은 흘러내리는 예결의 몸을 제 품에 추스르며 답했다.
[평소보다 오래 신강을 비우게 되겠군. 준비하도록.]
[존명.]
자리에서 일어난 하량은 바닥에 던져 놓은 인피면구를 확인했다.
아무렇게나 잡아 뜯은 탓에 못 쓰게 되었다. 하량은 삼매진화를 일으켜 인피면구를 태웠다.
진짜 인간의 얼굴 가죽을 쓰지 않을 경우 들어가는 재료가 무척이나 비싼 데다가 제작자도 드문 물건이었으나 하량의 눈에는 아쉬움이 없었다.
재까지 처리한 하량은 예결의 곁으로 돌아와 그의 가슴 위에 가만히 귀를 가져다 댔다.
혼절한 사제의 심장 소리는 멀쩡했고 그 호흡에도 문제가 없었다.
하량은 예결을 끌어안았다. 아이를 어르듯 다정하게 등을 토닥이며 현 상황을 재점검했다.
모든 게 그럭저럭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삶이란 대체로 마음먹은 것과 전혀 다르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순항 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량의 평온한 낯은 폭풍 전의 고요에 가까웠다.
수년 만에 듣는 마의의 이름보다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고개 숙인 하량은 예결의 어깨를 그악스레 물었다. 울혈이 잡힌 어깨는 머잖아 시퍼런 멍이 들 게 분명해 보였다.
하량은 동요 없이 그 위로 자신의 손을 미끄러뜨렸다. 그의 잇자국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곤륜의 하얀 만년설처럼 말간 살갗만이 남았다.
상궤에서 벗어나는 회복력이다.
천천히 손을 뗀 하량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이런 인간을 몇 본 적 있었다.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개체는 드물었다. 이만한 재생 능력은 인간의 몸에 담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뿐더러, 지독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정도를 넘어선 재생 능력 때문에 몸이 뒤틀린 채 죽어가던 사람들…….
이제는 뒤로했다고 생각한 과거를 떠올리던 그의 코끝에 혈향이 스쳤다. 지나치게 힘을 주는 바람에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에서 피가 몇 방울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응, 대사형?”
혼몽한 가운데 색색 신음만 내뱉던 예결은 하량이 저를 놓기가 무섭게 그를 불렀다.
사제의 눈이 가려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하량은 제 손바닥을 옷소매 아래로 숨겼다.
“쉬이…….”
익숙한 호칭에 습관적으로 사제를 어르던 하량은 능숙하게 흑귀의 말투로 갈아 끼웠다.
“더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인제 그만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겁니다.”
예결의 어깨가 움찔했다. 비몽사몽간에도 진저리를 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래서야, 자칫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량은 픽 웃어버렸다.
무심코 아쉬운 까닭이다.
불현듯, 첫정이 무섭다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 하량은 자신이 그에 얽매일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제 꼬락서니를 보면 퍽 심취한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사제도 그럴까?
얄궂은 호기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고민은 짧았고, 하량의 심려는 깊지 않았다. 그는 이대로 예결이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대도 상관없었다.
‘네 첫 사내는 흑귀일지라도.’
하량의 손가락이 눈 감은 예결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나는 영원히 너의 사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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