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상유천당 하유소항 (2)
항주의 뒷골목에서도 은밀하게 숨겨진 곳이 있었다. 연원을 알 수 없는 시신도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걸로 알음알음 알려진 자가 살았다. 은밀하게 장사를 한다지만 하루도 손님이 끊긴 적은 없었다.
하나뿐인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은 흐렸다. 이를 대신하기 위해 불붙인 초는 너울너울 춤추며 반대편 벽에 길고도 불길한 그림자를 그려냈다.
산 자가 둘, 죽은 자는 하나.
그들의 그림자는 전부 한 몸처럼 뒤엉킨 채 긴 밤을 지새웠다.
더벅머리 남자는 마지막 시신에 거적을 덮은 뒤 이마에 가득한 땀을 훔쳤다.
“진팔, 오늘도 불러줘서 고맙소.”
철전 세 푼이면 물건을 운반해주는 지게꾼이 거적을 챙기는 것까지 지켜본 사내는 포렴을 걷고 뒷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일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내부는 창이 없어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맴돌았다. 어쩌면 그 냄새의 근원은 조금 전까지 시체를 만지던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습관처럼 술병을 꺼내 입으로 가져간 남자는 벽에 기대앉았다. 예전이었다면 입에 대지도 않았을 싸구려 독주가 목구멍을 지졌다.
진팔이 항주의 뒷골목에 숨어들어 시체를 염하는 일을 맡은 것도 벌써 십 년은 된 일이다.
평생 다뤄온 것이 인간의 몸이지만 고치는 법은 모르니 의원 노릇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승에게 배운 지식을 활용했다가는 꼬리가 밟혀 살해당했으리라.
하여 남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다루기로 했다.
처음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나 사파 사이의 싸움에 휘말려 뭉개진 사람의 몸도 깔끔하게 수습하는 실력이 알려진 후에는 싸구려 독주나마 매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게 어디인가.’
쉬이 잠들지 못해 벌겋게 충혈된 눈을 몇 번 끔벅였다. 아직 살아 있다는 현실이 진팔을 불면으로 몰아넣었다. 매일같이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쯤 잠들 수 있을지 가늠하던 더벅머리 남자는 까무룩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기이할 정도로 머리가 맑았다. 어째서인가, 하고 생각하던 진팔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 허, 허어억.”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하얀 옷을 입은, 청수한 미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만약 장소가 항주의 뒷골목만 아니었다면 어디 높은 곳에서 내려온 선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풍아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이런 게 환상일 리가 없다. 진팔의 환상 속에서 상대는 바닥을 기는 비천한 벌레거나, 아니면 눈이 벌건 악귀로만 등장했으니까.
“오랜만이군.”
거칠고 쇳소리 섞인 음성이 아니라 깊고 그윽한 음성이었다.
그마저도 더벅머리 사내에게 공포를 불어넣었다. 이 강호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존재가 이토록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뜻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환골탈태.
“본좌를 기억하는가?”
“나, 나, 나는. 나는……!”
몇 마디 내뱉으려 애쓰며 꺽꺽거리는 동안 눈물로 시야가 흐려졌다. 아득한 공포가, 그가 살았던 지난 과거가 진팔을 짓눌렀다.
은원은 꼬리가 길어 중원을 가로질러도 떨쳐낼 수 없다고 하였다. 저 멀고 먼 신강에서 항주까지 왔음에도 결국 따라잡히고야 만 것이다.
“자, 자비를…….”
더벅머리의 남자는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말하면서도 자비 따위가 실존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저 사내에게 선한 마음이라곤 단 한 조각조차 남을 수 없게끔 짓밟고 부수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으며, 때론 한 손 거들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교를 위한 칼날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보아하니 기억하는 모양이군. 잘 되었어.”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제하량을, 가장 비천한 존재에서 기어코 천마가 되고야 만 사내를.
진팔은 젊은 곤륜의 도사를 기억한다. 곤륜에서 잡혀 온 포로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승리의 영광을 천마께 바치겠노라며 화려한 개선을 치른 위지무강은 포로를 줄지어 세워놓고 그의 전과를 과시했다.
도열한 곤륜의 늙고 어린 도사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사막의 태양에 목덜미가 벌겋게 익었으나 살은 희었고 두 손 두 발이 묶여 있음에도 비굴하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초연해 보였다. 모래바람과 피, 그리고 땀으로 얼룩진 도복 차림마저도 여전히 정갈하게 보이는 까닭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패배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같았다.
뚝 부러뜨리면 꺾을 수 있을까.
“여덟째야, 네가 제법 보는 눈이 있구나.”
제자가 포로 중 한 명을 훔쳐보는 걸 알아챈 스승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곤륜운룡이다. 이번에 본 교가 얻은 최고의 전리품이지.”
제하량.
당금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 할 수 있으며 향후 천하제일인이 될 존재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곤륜의 젊은 용.
“한동안 재미있겠구나.”
포로를 굽어보던 마의가 껄껄 웃으며 교주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곤륜운룡과 그의 사형제 모두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허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위지무강은 제 전리품을 요청한 마의에게 분노했으나 결국 천마께서는 스승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곤륜운룡 제하량과 곤륜의 무인들은 마의의 소관이 되었다.
마의의 여덟 번째 제자였던 진팔은 포로를 살피는 일을 전담하게 되면서 제하량을 가까이에서 살필 기회를 얻었다.
일견 그는 순종적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코자 하는 마의의 가혹한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으며 식사를 거부하는 동문 사이에서도 악착같이 끼니를 챙겼다.
사막을 건너며 제하량의 등에 업혀 왔다는 그의 사제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곤륜운룡은 죽어가는 동문을 살리기 위해 마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렇게 얻어낸 말미로 운기조식을 해서 내공을 모았다.
진팔은 처음엔 탈출을 위해 발악하는 게 아닐까 싶어 제하량을 면밀히 감시했다.
‘흑철로 만든 족쇄를 찬 놈이 저렇게 질금질금 모이는 내공으로 대 일월신교를 탈출할 수 있을 리가.’
그는 내심 비웃었다. 하지만 제하량은 그렇게 끌어모은 내공을 죽어가는 동문의 몸에 밀어 넣었다.
진기도인 따위로 살릴 수 있을 턱이 없는데, 나날이 숨이 꺼져가는 사제를 이승에 붙들어놓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흥미로운 발악이었다.
남들이 다 지쳐 잠든 동안, 제 피와 살을 깎아 나누어주는 사내는 낮이면 다른 이들의 비난을 온전히 감수했다.
“어찌 곤륜을 지키지 못한 구차한 목숨 따위를 부지하겠다고 마교의 주구가 되어 놈들의 발가락을 핥는단 말입니까?”
제하량은 날 것 그대로의 분노를 받아내면서도 해명 한 번 입에 담지 않았다.
진팔은 그게 퍽 재미있었다.
이듬날, 진팔은 스승에게서 약이 든 주머니 하나를 받았다.
“곤륜운룡에게 먹이도록.”
“그냥 줘도 먹지 않을까요?”
“여덟째야. 좀 더 재미있는 걸 생각해 보렴. 너의 재치를 믿으마.”
스승의 말에 진팔은 ‘재미있는 일’을 생각해냈다.
“거기 너.”
진팔은 포로들이 감금된 곳으로 돌아가는 제하량을 불러세웠다.
“스승님께서 눈여겨보는 녀석이니 이걸 주마.”
대나무 잎에 싸 놓은 주먹밥이었다.
“특별한 실험체가 너무 일찍 망가지면 곤란하지. 적당히 원기를 북돋는 약이 들어가 있으니 혼자 먹도록.”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하자 상대는 묵묵하게 음식을 받아 챙기더니 품에 집어넣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채 물러나는 곤륜운룡을 지켜보며 진팔은 즐거워졌다.
실험 때문에 며칠 전부터 하루에 한 끼만 주고 있었다. 제하량은 배가 고프지도 않은지 진팔이 건네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늦은 밤, 제하량은 진팔이 준 음식을 조금씩 떼서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동문의 입으로 넘겨주었다.
“사제, 이걸 좀 먹어 보아. 응?”
반은 뱉었으나 반은 먹는 산송장을 보면서도 곤륜운룡은 낯을 찌푸리는 법이 없었다. 그런 정성 덕분일까, 곤륜운룡의 사제는 자리보전 신세를 면치 못했으나 그럭저럭 살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지게 되리라.
진팔이 건넨 ‘특별한’ 주먹밥을 먹은 곤륜운룡의 사제는 다음 날 몸을 일으켰고 이틀째에는 두 다리로 섰다.
“사형, 곤륜이 보입니다.”
그리고 사흘째에는 눈을 뜨지 못했다. 둘째 날 그가 신열에 들떠 내뱉은 말은 유언이 되고 말았다.
“……사제.”
온기가 사라진 몸을 끌어안은 제하량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문 사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한 채 습윤하게 젖은 목소리에 진팔은 빙그레 웃었다.
“대사형. 그를 놓아주십시오.”
“세현이도 이만하면 오래 버텼습니다.”
“대사형…….”
마교에 끌려온 처지가 두려워 제하량을 비난하며 버티던 사형제들이 몰려들어 그를 위로했다. 가장 어려 보이는 한 명은 곤륜운룡의 곁에서 그가 흘리지 못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감정을 갈무리한 것은 제하량이었다. 진팔에게 다가온 그가 고개를 조아렸다.
“부디 이 아이가 묻힐 수 있게 살펴 주십시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스승님께서 강시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거든.
진팔이 흘리듯 덧붙인 말에 제하량이 무릎을 꿇었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대인.”
“생각해보지.”
뻐기듯 건넨 뒤 감옥을 나섰다. 제하량의 곁에 그 사형제가 우르르 몰리는 것이 보였다.
‘일어나십시오. 사형.’, ‘바닥이 차갑습니다.’, ‘좀 더 힘을 내셔야지요.’, ‘문 사제의 넋이나마 곤륜에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두런두런 들리는 목소리에 진팔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퍽이나.’
살아남고 싶어서, 마교에 끌려온 처지가 두려워서 특별 취급받는 듯 보이던 제하량을 경계하고 비난하던 이들이었다. 한데 곤륜운룡 홀로 살려보고자 아등바등하던 사제가 죽자 그제야 죄책감을 느끼는 저 가증스러움이란!
그래도 이만하면 스승의 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팔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의를 찾아갔다.
“……이제 실험체에게 그 주먹밥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려주면 죄책감에 먹힐 겁니다. 버릴 수도, 다른 이에게 내주지도 못하겠지요.”
한참 일지를 쓰고 있던 마의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퍽 즐거운 모양이구나.”
진팔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후기지수 중 제일이고 차기 천하제일인으로 거론되었으면 무얼 하나?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마의의 여덟 번째 제자 따위의 발밑에서 자비를 청하며 땅을 기는 신세가 되었는데.
“곤륜운룡은 이미 저 사제가 죽을 것을 알았다. 그저 포기할 수 없어 붙들고 있었을 뿐이니 지금 저자가 느끼는 것은 놓지 못한 미련의 자취일 뿐이란다.”
스승님은 그리 깊은 감흥을 느끼지 못한 눈치였다.
“여덟째야, 이 스승이 어찌하는지 잘 봐두렴.”
마의의 속삭임은 불길한 여운을 남겼다.
“분명 재밌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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